#15. 고독의 도가니 (3)
내가 탄 차는 선행 차량들의 질주가 남긴 파괴흔을 따라 후롱방의 성채로 직행했다. 1번 단차의 돌격으로부터 고작 2분도 흐르지 않은 시점. 광둥 삼합회의 떨거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조차 아직 정하지 못한 품새들이었다. 전반적인 움직임에 통일성이 결여되어있다. 시력이 남다른 나는, 낮부터 후롱방의 사업장을 이용하던 막장 인생들 또한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돌입 이전의 짧은 여백에, 나는 좌우로 흘러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 헐벗은 거리의 집값은 의외로 비싼 편이었다. 왜냐면 이런 주거지야말로 돈 많은 임대사업자들의 천국이었기 때문. 한 평이나 될까 싶은 방 한 칸에 2천 위안의 세를 매겨도, 도시에 집을 가질 권리가 없는 농민공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급여는 5천 위안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꼴의 거주지가 많았다. 기초연금 수급자들이 주로 거하는 쪽방촌 건물들은 수익성과 안전성 양면에서 정말로 우수한 투자 상품이었다. 정부가 기초연금을 인상하면, 건물주들은 정확하게 그 인상폭만큼 월세를 올린다. 그러므로 이 임대사업의 수익성은 정부가 보증하는 셈이며, 연금이 아무리 올라도 그걸 받는 노인들의 수중엔 언제나 간신히 연명할 만큼의 푼돈만이 남게 된다. 건물에 쥐가 들끓고 바퀴가 넘쳐나더라도, 돈을 받는 건물주들 입장에선 알 바가 아니었다. 노인들에겐 쪽방을 벗어날 능력이 없으니까.
사람이 있는 곳엔 반드시 착취도 있다. 그 착취의 형태가 어떠한가, 눈에 잘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 문명화된 착취는 착취의 수혜자들이 피해자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게 내가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세상의 모습이다.
나는 잡아먹히는 쪽보다 잡아먹는 쪽을 선호한다.
쿠궁!
배터링 램이 후롱방의 성채에 구멍을 뚫었다. 동시에 건물 안쪽으로부터 중구난방으로 울려 퍼지는 총성들. 차체 전면에서 티딩 팅 소리를 내며 수많은 불티들이 피어났다. 진입로가 직선이었으므로 매복은 당연한 결과였는데, 통제되지 않는 사격이 안에 있는 건달패거리의 수준들을 보여주었다. 대비할 시간이 없었고 어쩌고 해봐야 허술한 자들의 변명일 따름. 층계를 내려오던 ‘고객’들이 기겁하여 도로 올라간다.
“방독면 착용!”
경태가 중국어로 내리는 지시에 전투원 모두가 일사불란히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라고 해서 최루가스가 괴롭지 않은 건 아니니까. 내가 끄덕이자 경태가 이어서 외치는 명령.
“전원 하차! 최루탄과 연막탄부터 갈겨!”
투웅-! 투퉁! 다수의 최루탄과 연막탄이 하얀 꼬리를 끌며 무리지어 날아간다. 저편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방언 섞인 욕설과 다급한 외침들. 내 부하들은 하얀 연기 사이로 번뜩이는 발사섬광들을 겨누어 삼점사를 갈겼다. 매 발포마다 세 발 중 하나는 반드시 명중탄이 나오는 정교한 사격이었다.
적을 겁먹게 만드는 게 목적인 제압사격- 점이 아니라 면(面)을 쏘는 난사는 하지 않는 편이 유익했는데, 웅크리면 오히려 죽이기가 귀찮아지는 까닭이었다.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주변이 다 위축되기 마련. 근래 경험 풍부한 미 해병대가 제압사격이랍시고 정밀사격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폐! 엄폐엣!”
적들 가운데 하나가 최루 가스에 콜록대며 울부짖는 소리. 우리가 삽시간에 반수를 죽여 놓자, 애들 패싸움 하듯 횡대로 서서 총을 갈겨대던 놈들이 이제야 엄폐물을 찾으려 든다. 대구경 저격 라이플을 든 나는 이번에도 벽을 관통하는 사격으로 부하들을 지원해주었다.
쾅!
단발 사격이 긋는 탄도상에서 인체는 물풍선처럼 연약하게 터져나간다. 콘크리트를 뚫으며 무뎌진 탄자는 무수한 파편들과 함께 사람의 몸을 찢어발겼다. 딱 두 발을 더 쏘자 벽 뒤의 적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빠지려 했다. 눈물 콧물 다 쏟느라 두 발로 뛰는 자가 드물다. 즉각 신호하여 부하들을 끌고 나아간 나는 예비화기인 돌격소총으로 연속적인 삼점사 한 탄창을 갈겨주었다. 한심한 등짝과 엉덩이와 허벅지들이 무더기로 피를 분출한다. 항문을 맞고 배꼽이 터져 죽는 놈도 있었다.
경태가 나를 돌아보았다.
“대장님! 지시를!”
호칭이 평소와 다른 것은 우리가 지금 무장경찰 흉내를 내고 있는 까닭이다. 장비부터 복식까지 전부. 헤드캠(Headcam)에 영상으로 담아 나갈 전투기록은 대중을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술식 사용이 제한되겠으나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페널티다. 정 급하면 편집과 수습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초과 능력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적정을 살핀 내가 손짓을 섞어 지시했다.
“2조는 저쪽으로. 중앙 층계와 엘리베이터를 차단해라. 3조는 2조를 엄호. 엄호가 끝나면 설비실을 장악하고 전기를 끊어. 지하로 내려가면 바로 보일 거다. 지키는 놈은 둘. 보일러 뒤에 처박혀있으니 찾아서 죽여라. 1조는 나와 함께 비상계단으로 간다.”
이쪽은 나까지 고작 열두 명, 운전을 맡은 녀석들까지 합쳐도 열여섯 명에 불과했으나, 집단전 훈련이 거의 안 되어있는 지역구 건달들을 상대하기엔 넘치고도 남는 전력이었다. 적의 움직임이야 내가 전처럼 실시간으로 중계해주면 그만인 것이고.
“움직여!”
2조와 3조는 모루였고 내가 포함된 1조가 망치였다. 각 차량의 운전석에서 나오는 녀석들이 4조로서 퇴로 확보와 동시에 예비대 노릇을 수행한다. 각층의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적들은 기다리면서 요격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핵심 전력은 최상층에서 두목의 곁을 지키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점감요격(漸減邀擊)의 구도가 되겠다. 하기야 훈련도가 떨어지는 놈들을 달리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는가. 요소요소 좁은 길목들을 틀어막고 농성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저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고.
그래봐야 최초의 일방적인 학살이 반복될 따름이겠으나-
‘꼴에 나름 믿는 구석이 있다 이거지.’
기사단장(엘 마에스뜨레)이 유발한 패러다임의 변화, 이른바 「과달라하라 쇼크」는 이 도시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삼합회의 일개 지파조차 흉내를 내려 들 정도로.
쾅! 쾅! 쾅!
철근을 비껴 쏘는 대물저격총 속사는 비상계단을 위아래로 뚫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긴장한 채 대기하던 놈들이 갑작스럽게 튀는 피에 비명들을 질러댔다. 그러다 서로에게 엉켜 우르르 굴러 떨어진다. 카카카캉! 방탄 방패를 앞세운 부하들의 사격이 피부 더러운 건달 셋을 단번에 절명시켰다.
층계참엔 생존자 둘이 각기 다른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으, 으르르륽…….”
“살려주세요! 항복하겠습니다!”
둘 다 내가 쏜 대구경탄에 맞은 놈들이다. 철근을 피해 쏘다 보니 세 발을 갈기고도 경상자 하나에 중상자 하나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던 것. 투시능력을 자랑할 게 아니므로 영상기록 측면에서도 이 정도가 적당하다. 한 놈은 폐가 상하여 목구멍에서 피가 끓는 소리를 냈고, 다른 한 놈은 발뒤꿈치가 날아갔다. 손 번쩍 들고 목숨을 구걸하는 쪽은 당연히 후자였다.
“항복은 없다.”
쾅! 자비를 구하던 머리통이 폭발한다. 예비화기, 돌격소총의 액세서리로 달려있던 단발 샷건의 위력. 해머로 수박을 치면 모양새가 비슷할까? 가운데가 뻥 뚫린 대가리 뒤쪽으로 피와 뇌수와 뇌 부스러기들이 뿌려졌다. 낡은 벽에 그려진 질척한 방사형의 추상화였다. 이 광경을 화면으로 보게 될 자들이 좋아할 테지.
「2조, 로비(门廊) 확보.」
아래층에서 들어온 무전. 나는 폐가 찢어진 놈을 제 피에 익사하게 내버려두고서 대물 저격총의 탄창을 교환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쓴 대구경탄은 약실에 있던 한 발, 첫 탄창에 있던 다섯 발이 전부. 5층까지는 과연 몇 발이나 더 필요하려나. 남은 탄창이 셋이니 조금은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액세서리 샷건 또한 재장전을 마쳤다. 본래 사람 대가리가 아니라 잠긴 자물쇠를 파괴할 용도(도어 브리칭)로 달고 온 것이었다.
「3조, 설비실 확보.」
퍽-
낡은 전등이 꺼지며 실내의 밝기가 확 떨어진다. 애초부터 창문이 적고 그 적은 창문들조차 대부분을 불투명하게 발라놓은 터라, 밝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실내는 어스름 내리는 늦저녁처럼 침침했다. 나와 함께하는 부하들이 미리 준비한 야간투시경을 착용했다.
“3조는 해당위치를 청소한 후 2조와 합류. 탈출하려는 적을 저지할 것.”
「3조 입감.」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고서 2층 철문 앞에 선 나는, 문 너머로 대구경탄을 한 발 갈겨놓고 곧바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투카카카캉! 타타타타!
적들이 쏟아내는 무질서한 보복 사격. 통제하는 이 하나 없이 제각각 가진 탄들을 다 쏟아내며 철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계단을 따라 죽 늘어서선 부하들은 나와 더불어 이 반격탄의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아. 그렇지.
나는 층계참에서 죽은 놈을 하나 들어다 문짝 앞으로 던져놓았다. 벽에 부딪힌 시체가 두두두둑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탄을 아까운 줄 모르고 소비한 안쪽 패거리는 문틈으로 새들어가는 피를 보고서 사격을 멈추었다.
“정지! 정지!……잠깐 멈춰보라고, 이 자라 새끼들아!”
청각을 조율하니 총성 사이로 들리는 이 외침. 나름 지휘관 역할을 하는 간부는 있는데 질서는 없다. 결국 마지막 한 명까지 탄창을 다 비우고서야 사격이 종료된다. 총구와 약실에서 초연이 새는 총을 든 간부가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그딴 소린 탄창이나 갈아놓고 하셔야지.
“돌입.”
내 명령에 선두를 맡은 녀석이 방탄방패를 앞세워 문을 걷어차며 들어갔다. 누더기가 된 문짝은 쾅 하는 발길질 한 방에 날아가고, 이어지는 4인분의 포화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동태를 살피던 건달 새끼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교전이 매양 이런 식이어서 4층까지는 거의 무인지경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어디에 매복이 있고 어디가 비어있는지 뻔히 보며 치르는 싸움이라 시간을 길게 끌 것도 없었고.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는 고객들과 인간형 자산들은 무시한다. 어차피 달아날 길이 빈틈없이 막혀있는 전장이었다.
그리하여 앞두게 된 5층엔 각성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후롱방의 핵심 전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두꺼운 방탄 소재 전신 방어구를 착용한 4인의 거구들. 이 넷은 하나같이 등짝이 넓고 배가 불룩한 근육돼지들이어서, 하나만 앞을 가로막아도 복도가 꽉 막히게 생겨먹었다.
심지어 이것들은 방독면까지 착용했다. 근육돼지들의 경우 안면을 전부 가리는 풀 커버 방탄 투구 자체에 방독 필터를 다는 형식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엘 후에고의 정예들보다 낫군.’
물론 화력 면에선 그보다 현격하게 떨어진다. 카르텔 놈들은 중기관총에 로켓 발사관까지 보유하고 있었지만, 여기 있는 건달들은 끽해야 돌격소총이 고작이었으므로.
근육돼지들의 배치는 둘둘로 나뉘었다. 묵직한 방패와 총기를 든 둘은 하나뿐인 복도를 앞뒤로 막았고, 커다란 해머를 든 둘은 각각 복도를 막은 두 동료와 가까운 방에 도사린 채 나머지 정예들과 함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여기서 도출되는 저들의 방어 계획은 이러했다. 방패로 복도를 막은 중갑 돼지가 우리를 붙잡아 끌어들이고 나면, 대형 망치를 든 중갑 돼지가 벽을 부수며 돌출하여 우리의 측면을 덮쳐오는 것. 간단하면서도 매복을 모르면 당하기 쉬운 전술이다. 우수한 육체강화 능력자의 힘은 기존의 실내 전술들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흑해자당의 활동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조잡하게 만든 깡통형 급조폭발물 몇 개가 눈에 띈다. 작약의 성분이 발하는 색채는 소총탄의 작약과 동일하다. 망치 든 돼지가 튀어나오기 전에 먼저 터트려서 기선을 제압할 요량인 모양이었다.
자, 이것들을 어떻게 죽여야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