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독의 도가니 (2)
내가 이 광저우에 처음 도착하던 날, 흑해자당은 동시다발적인 테러와 습격으로 도시 내에 배치되어있던 인민해방군 기동부대의 8할을 무력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관계당국 입장에서 특히나 뼈아플 것은 장갑차와 전차 등 기갑세력의 손실이었다. 이것들의 지원 없이 흑해자당의 근거지를 수색·소탕하려면 무지막지한 인명피해를 감수해야 할 테니. 가난한 자들의 미궁 속에서 군과 공안은 목숨 하나를 내주고 목숨 하나를 받는 식의 지옥 같은 시가전을 치르게 될 것이었다.
물론 남아있는 기갑세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 가오슈센으로부터 듣건대 군이 입은 피해와 별개로 무장경찰 소속 장갑차들은 대부분 무사하다고 하니까. 그러나 수량이 부족하여 도시의 중요한 길목들을 지키는 게 고작이라는 모양이다.
‘이럴 때도 난개발이 문제가 되지.’
일개 구(区) 안에서조차 부유한 자들의 거주지와 가난한 자들의 거주지가 모자이크처럼 뒤죽박죽 혼재하고 있으므로, 당의 충실한 지지자들을 위해 필수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지점도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군 전력을 곧바로 추가 투입하기는 또 여의치 않았다. 1세계의 요구와 지원을 음양으로 등에 업은 인도가 국경지대에서 하루하루 도발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었으며, 광저우만큼 상황이 급한 도시가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2억 5천만 농민공은 대륙의 모든 도시에 분포하는 화약고였다.
애들을 끌고 사냥터에 이르니 연락을 받은 가오슈센이 이번에도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중한 경호 속에 피로한 기색으로 서성이던 그가 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에 반색한다.
“왔는가! 어서 이쪽으로!”
아직도 조금은 어색한 하대. 여기 오기에 앞서, 나는 나와 손잡은 공산귀족에게 순라경찰지대가 보유한 가용전력 대부분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 그가 표면상의 현장지휘를 맡아줄 것 또한. 묵음으로 경례한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가오슈센은 바로 말투를 바꾸어 일신의 안전이 최우선인 속을 드러냈다.
“동사장. 내가 일선에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 몸을 남몰래 미끼로 써먹을 생각은 마시구려.”
귀찮은 새끼. 난 표정을 평온하게 관리하며 대꾸했다.
“염려 놓으십시오. 공적을 넘겨드리기 좋은 자리에 모셨을 뿐이니.”
“한 가지 더. 아무리 공적이 좋아도 지나친 병력 손실은 용납하지 않겠소.”
“그것도 걱정 마십시오. 침투와 타격은 우리가 합니다. 당신께선 지금처럼 밖에서 물샐 틈만 막아주시면 됩니다.”
내게 거듭 다짐을 받은 가오슈센은 이제야 비로소 계획을 물었다.
“그래서, 저 짐승(禽兽)들의 소굴을 무슨 수로 뚫고 들어갈 셈이시오? 어디에 함정이 있고 어디에 매복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마당에 말이오.”
나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귀족이 쓰는 언어를 담담하게 지적했다.
“짐승 소굴이라니……. 표현에 주의하십시오, 부서기. 설마하니 저기 거하는 자들이 다 후룽방과 흑해자당의 패거리이겠습니까? 대다수는 당신이 공안으로서 지켜줘야 할 무고한 인민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이에 황당해하는 가오슈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하오?”
“당연히 중요합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언젠가 사소한 말실수 한 번에 모든 명성이 신기루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상관없소! 모든 방송은 기본적으로 검열을 거쳐 나가니까!”
“검열에 관여할 수 있는 당신의 정적들에겐 상관이 있겠지요.”
“…….”
“고작 말 한마디로 그들에게 약점을 내어줘도 무방하다면, 뭐, 좋을 대로 하십시오. 설령 그게 결정적인 약점까진 못되더라도, 조용히 간직해두었다가 진짜 빌미가 생겼을 때 포문을 열 수단쯤은 될 텐데 말입니다. 「보라. 인민의 영웅 가오슈센은 사실 인민을 업신여기는 반동적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였다.」 라고.”
“음.”
머뭇거리던 가오슈센이 마침내 침음성을 흘리며 수긍한다.
“옳은 말씀이시오. 일깨워주어 고맙소. 항상 유념하고 있으리다.”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계획이 무어요? 통화를 할 적에 뭔가를 준비한다고는 하셨지만, 대체 뭘 준비하면 저 미로를 희생 없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소. 군과 무장경찰이 공연히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닌데……. 동사장 같은 분이 시가전의 끔찍함을 모르진 않으실 듯하고…….”
중대한 타격을 입은 육군, 그리고 광저우 공안의 다른 부서들은 중앙정부로부터의 증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당장은 어려워도, 사실상 전시체제에 돌입한 공장들이 전차와 장갑차를 찍어내기 시작했으므로 버티다보면 필요한 장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인력 손실이 곧 소속 계파의 영향력 감소로 직결되는 상황이기에, 어떤 부서도 앞장서서 총대를 메고자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보며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도착할 테니.”
“도착한다고?”
“예.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12월의 광저우에 부는 바람은 십중팔구가 북풍이었다. 타격 지점을 품은 다싱쿤(大兴村)의 북쪽 경계가 주장강의 한 줄기(大石水道)와 맞닿아 있었기에, 나는 우선 그 물길에 냄새가 많이 나는 배 세 척을 띄우기로 했다.
“……으응?”
도로 건너 거주지에서 기다리던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뭐라뭐라 소리들을 질러대며 북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주민들을 본 가오슈센이 당혹감 반 의아함 반인 표정을 짓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저 짐ㅅ- 아니, 주민들이 왜 갑자기 저 난리들을 피우는 거지?”
“공격에 앞서 주민들을 소개(疏開)시키는 겁니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니까요. 당신들도 가끔가다 한 번씩 쓰는 수법이지요.”
“우리가 쓰는 수법?”
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오슈센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짝이었다.
언젠가 중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철거대상 지역의 주민들이 행정집행을 거부하며 농성하자, 공무원들이 그 거주지 앞에 음료수로 가득한 트럭 한 대를 전복시킨 것. 주민들이 쏟아진 화물을 훔치고자 몰려나온 사이, 공무원들은 기습적으로 주거지를 봉쇄한 후 곧바로 철거작업에 착수했다.
지금도 같은 수법이다. 배고픈 자들을 유혹하기에 음식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공안의 이름을 써서 계약한 세 척의 저상 유람선과 케이터링(餐饮) 업체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빈민구호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었다. 부두에 배를 댄 그들은 예정대로 사람의 머릿수만큼 음식을 배급하겠노라 공표했을 터라, 냄새를 맡고 불온하게 기웃거리던 자들이 허겁지겁 가족과 친구를 챙겨 몰려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방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물들이 한 사람의 외침을 여러 가구가 전해 듣도록 만들어주기도 하였고.
“왔군요.”
내 말에 죽 이어진 도로를 따라 고개를 돌린 가오슈센은, 120미터쯤 거리를 두고서 줄지어 정차한 다섯 대의 덤프트럭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아니 저게 뭔…….”
불경기를 맞이한 대도시엔 건설이 중단된 공사현장들이 널려있었다. 중국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인프라 건설을 천명한 것과 별개로, 부도를 낸 기업들이 워낙 많다 보니 급격하게 개발을 추진하던 시가지 여기저기에 잿빛 흉한 곰보자국들이 남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러한 현장마다 방치되어있는 대형 화물차들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일감이 없었던 차주들은 대당 50만 위안을 부르는 내게 앞다퉈 자기 차를 넘겨주었다.
이렇게 확보한 화물차마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V자형 배터링 램(장애물 파괴용 장비)을 달아 돌파용으로 개조하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재료야 공사현장에 있는 것을 쓰고서 나중에 값을 치르면 그만이었고, 공사장에서 일하던 기술자들도 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수연이 제 아랫것들을 시켜 돌린 연락 한 번에 우르르 몰려나온 실업자들은 고작 57분 만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한 시간 내로 일을 흠결 없이 끝마칠 경우 사흘치의 일당을 주겠노라 약속한 덕분이었다. 머릿수가 많으면 배를 산으로 올릴 수도 있는 법.
그러므로 지금 가오슈센이 보고 있는 화물차 다섯 대는, 적어도 앞대가리만큼은 멕시코에서 보았던 엘 후에고의 나르코 탱크를 꼭 닮아있었다. 헤드라이트 전면의 묵직한 배터링 램과 앞유리를 보호하는 가로로 긴 철판들. 적재함엔 30톤에 달하는 철골을 용접으로 고정시켜 파괴적인 중량을 확보했다.
“잠깐.”
계획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깨달은 가오슈센이 흥분하여 내 옷자락을 붙잡는다.
“잠깐, 잠깐, 잠깐! 당신 미쳤소? 나더러는 이미지에 신경 쓰라고 해놓고서,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는 거요!”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게 생겼소? 그렇잖아도 민심을 이반시키는 범죄행위에 대해선 최대 내란(內亂) 혐의까지 적용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온 판인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저 집들을 싹 밀어버리면 나는 어쩌라고! 절대로 안 되오! 당장 중지시키시오!”
“그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뭐요?”
“돈 말입니다, 돈. 저들이 눈치챌 것 같으니 일단 진행하겠습니다.”
개조된 트럭은 외관이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턱이 삼각형으로 툭 튀어나온 멧돼지 같은 생김새. 나는 경태에게 신호를 보냈고, 경태는 다시 선두의 트럭에게 무전을 보냈다.
“1번 단차. 돌격.”
대기 중이던 차량이 곧바로 가속에 들어간다.
“어? 어어?”
가오슈센이 어쩔 줄을 모르고 허우적대는 사이,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화물차가 나와 공산귀족의 앞을 지나쳐 가난한 자들의 주거지를 일직선으로 관통하고 들어갔다.
쿠구구구구궁! 천둥이 땅을 질주하는 듯한 굉음. 빈곤과 세월의 때에 찌든 저층 가옥들이 시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철거되어간다. 철근 대신 대나무를 쑤셔 박은 부실한 벽과 속 빈 콘크리트 블록 따위로 이루어진 거주지는 총중량이 50톤을 초과하는 화물트럭의 돌진 앞에서 스티로폼처럼 간단하게 바스러졌다. 치솟는 흙먼지는 수평으로 흐르는 모래폭풍과도 같았다.
그렇게 사십여 미터를 달리고서 느려진 트럭은 기수를 비스듬히 꺾어 십여 미터를 더 나아간 뒤 정지했다. 이는 다음에 들어올 후속 차량을 위해 길을 터주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
압도적인 광경 앞에 머리를 부여잡고 욕설을 중얼거리는 공산귀족. 1번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부하가 무사함을 확인한 난 즉시 2번 차량의 돌진을 지시했다. 1번 차량이 켠 붉은 미등은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서도 후속차량을 위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4번까지 차례가 돌아가지도 않겠군.’
가옥들의 빈약함이 상정 이상이었으므로, 50톤짜리 돌진 세 번이면 후롱방의 근거지까지 길이 트일 것 같았다. 광둥 삼합회 떨거지들의 둥우리는 우중충한 골목과 빛바랜 지붕들 사이에 마치 영주의 성처럼 솟아있었다. 짓다가 만 것처럼 생겨먹은 5층 높이의 칙칙한 빌딩. 원래의 용도가 뭐였는지 짐작하기도 난감한 외양이다.
“돈, 돈은 무슨 이야기요!”
혼자서 곱씹어보면 쉬이 알 법도 하련만, 사고가 마비되었는지 가오슈센은 내게 답을 채근할 따름이었다.
콰르르르-! 다시금 굉음의 연쇄가 울려 퍼진다. 2번 차량의 돌진은 파도를 가르는 배처럼 시작되었다. 앞서 부서진 잔해들이 2번 차의 세모꼴 공성추 앞에서 물결처럼 갈라져 좌우로 밀려난다. 이어 1번을 추월한 2번은 1번과 거의 비슷한 길이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놓았다.
나는 소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가오슈센의 채근에 답했다.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소식을 들은 자들이 당국을 비난하기보다 보상 받은 자들을 시샘할 만큼의 돈을 말입니다. 집주인과 세입자를 따로 쳐서 가구당 20만 위안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 많은 돈을 누가 준단 말요! 박살난 집이 몇 채인데!”
“당연히 당신이 주는 거지요. 공의를 위하여 사재를 아끼지 않는 고위 당 관료. 그림이 좋지 않습니까? 쇼맨십은 영웅의 미덕입니다.”
당신이 주는 거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가오슈센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다 합쳐서 2백 가구쯤 보상해준다 쳐도 4천만 위안. 한화로 겨우 70억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건만.
이건 단순히 욕심이 많은 게 아니라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다. 탐욕 그 자체를 미덕으로 여기며 재물이 곧 복이라 믿는 속물들. 이런 부류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한번 수중에 들어온 돈을 다시 내놓는 법이 없다. 요컨대 가오슈센은 벌써부터 배가 부른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명목상 그렇다는 거고, 실제 지출은 우리의 ‘공금’에서 나갈 테니.”
말한 직후 세 번째의 모랫빛 폭포가 흘렀다. 마침내 목적지까지의 올곧은 진입로가 완성된 것.
본디 순서가 가장 나중이었던 5번이 4번을 앞질러 내 앞으로 굴러온다. 5번의 짐칸엔 중량을 늘리기 위한 H빔 대신 미술품과 골동품, 옥 세공품으로 채워진 금고, 위안화 뭉치들, 그리고 적진 내부로 침투해 들어갈 경호실 전투원들이 들어가 있었다. 나 또한 경태와 더불어 짐칸에 올라탔다.
난 가오슈센에게 짧은 인사를 남겼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배부른 공산귀족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