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독의 도가니 (1)
다음 사냥터로의 진입을 앞두고, 난 베크룩스의 내 선실에서 해가 뜰 때까지 두어 시간 가량 짧은 수면을 취했다. 말이 두어 시간이지 실제로는 그 절반도 잠들지 못했으나, 아무튼 잠을 자기는 잤으므로 격렬한 활동을 소화하면서도 한나절쯤은 더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멕시코에서 교전을 치르던 당시의 비정상적인 흥분을 돌이켜보건대 각성제에 의지하는 건 결정적인 순간까지 미루는 편이 유익할 것이었다.
졸음을 힘들게 쫓아내자 잠이 물러간 자리에 두통이 찾아왔다. 수면부족이 원인이겠지. 이 또한 진통제를 먹지 않고 견디기로 한다. 언제 각성제를 먹어야 할지 모를 상황에서 진통제를 미리 먹어두기도 찜찜한 노릇이기에. 종류가 다른 약을 섞어 먹는 건 결코 좋은 습관이 못 된다.
훔쳐낸 장물의 보관, 운송, 반출 등은 후방지원을 총괄하는 수연의 몫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본사에서 올라오는 여러 기안과 품의서들을 1차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수연의 역할이었고. 나는 식사를 하면서 그 내용을 보고받았다.
“기존에 부산-마카오 항로를 오가던 흥성관광의 크루즈 한 척으로는 원활한 분선(分船) 반출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중국 국적의 어선 다수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북한 동해 수역으로 집단 조업을 나가는 선단을 가장한다면 해안경비대의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 공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미 20톤급 어선 물량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려두었으며, 척당 예상 단가는 선적증서와 허가증을 포함하여 약 14만 위안 안팎입니다.”
“14만 위안?”
“예.”
계획 자체는 좋다. 중국 어선이 북한 쪽 바다로 조업을 나가는 거야 워낙에 흔한 일이고, 중국 해안경비대는 밖으로 나가는 배들을 일일이 검사할 능력이 없으니까. 기나긴 해안선에 걸쳐 하루에도 수만 척에 달하는 선단이 원양으로 나가고 또 들어오는데 그걸 무슨 수로 하나하나 단속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 태반이 불법조업 어선들이라, 단속을 하면 할수록 중국에겐 손해가 된다. 단속을 하면서도 잡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그만큼 트집을 잡히게 되니까.
다만 이상한 것은 어선의 가격이었다. 14만 위안이면 한화로 약 2천 4백만 원 남짓. 한국에서 거래되는 동일한 체급의 중고 선박에 비해 4분의 1도 안 되는 값이다. 나는 시선을 기울여 의문을 표했다. 예산절감도 좋지만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짜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너무 싼데. 그 값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돈을 너무 아끼려는 게 아니라?”
수연이 차분히 끄덕인다.
“가능합니다. 몇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매물이 늘어 거래가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악재라면, 다른 나라들의 단속 강화?”
“우선은 그렇습니다. 그 외에 해양생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상세 불명의 해난사고 증가, 해적에 의한 피해 증가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입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세상에 어선을 터는 해적이 있나? 그것도 중국 어선을?”
사람이 물건으로 취급받는 나라의 뱃놈을 잡아서 몸값을 얼마나 받아 내겠다고. 중국 정부는 사람의 목숨보다 이 인질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며, 인질의 가족에겐 돈을 지불할 여력이 없을 터였다. 애초에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상으로 돈이 안 되는 국적일 가능성이 높겠고. 즉 해적들 입장에선 중국의 어선들만큼 무가치한 사냥감도 드문 것이었다.
그러나 수연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해적 행위가 아니라, 서로 국적이 다른 어민들 사이의 무력충돌입니다. 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어민들이 자국 수역으로 진입하는 중국 어선들을 공격한다고 하는데, 두 나라의 관계당국은 이를 방조하거나 은근히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허. 중국이 어지간히 만만해졌군.”
“부분적으로는 각성 능력자들이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나아가 국민감정을 고양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합당한 이야기다.
현재의 중국은 어선이 털리는 정도의 문제로 위력시위에 나설 처지가 못 되었다. 대만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미국이 대만해협에 연일 군함을 통과시키며 중국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기 때문.
물론 외부의 적은 국내의 불안을 감소시키는 좋은 수단이지만, 그 적은 명확하고 알기 쉬워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대중에게 대응한계를 넘어선 적의 존재를 추가로 알리는 건 이득보다 손해가 많을 선택이었다.
요컨대 여기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상대가 반응하지 않을 선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는 셈이었다. 장기적으로는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선택이지만, 이 두 나라도 안정적인 상황은 아닌지라 단기적인 효과에 더욱 집중했을 터다. 즉 이들에게도 외부의 적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누에바 노갈레스의 신규 토지 구입 진행상황입니다. 다이아몬드 카지노를 경유한 간접출자를 통하여…….”
이어지는 정갈한 보고들을 들으며 식사를 느리게 마친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몇 개의 전자문서를 결재했다. 인사발령, 예비비 편성과 지출, 교육계획과 조달계획 등. 조직의 일상적인 운영에 관한 사안들을.
홍채와 지문 인식으로 결재를 진행하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기본적인 원격 사무 시스템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일들이. 지금이나 그때나 조직 최고의 조커는 나 자신이었으므로 출장과 현장업무도 지금처럼 잦았는데, 오직 전화만으로 매사를 결재해주기엔 한계가 있었으므로, 모든 출장과 현장업무의 끝은 잔뜩 쌓여 나를 기다리는 서류들과의 해후였다. 그러한 일처리가 내 피로를 크게 가중시켰음은 물론이다. 같은 양의 업무를 소화하더라도 몰아서 처리하는 게 더 힘든 건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의 시스템을 구축한 건 수연의 전대와 전전대의 공로다. 전대 녀석 이후로도 보완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큰 틀에서 바뀐 점은 없다. 그럼에도 전대와 수연 사이엔 업무효율의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시스템은 동일하지만 운용하는 사람이 다른 것이다.
전대 녀석이 도망치듯 자리를 내려놓았을 땐 솔직히 괘씸한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
수연이 의아한, 동시에 약간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바라보는 침묵이 길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결재를 다 끝낸 태블릿을 밀어주었다. 태블릿을 돌려받은 수연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숙였다.
“정시에 브리핑 룸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다.”
브리핑 룸에선 삼합회에 대한 타격지점을 결정할 예정이다. 나는 몸을 돌리려는 수연에게 비어버린 커피 잔을 두드려보였다.
“가기 전에 커피나 한 잔 더 내려다오.”
“안 됩니다.”
“……?”
잘못 들었나? 이번엔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수연이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아까부터 거듭 관자놀이를 누르고 계셨습니다. 이는 형님께서 머리가 아프실 때의 습관입니다. 과량의 카페인 섭취는 두통을 악화시키니, 가볍게 졸음을 몰아낸 정도에서 끝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듣고 보니 지금도 관자놀이에 손이 가있었다. 잠시 벙쪄 있던 나는 곧 쓴웃음을 머금었다.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감사합니다.”
“이건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 고맙다. 신경 써줘서.”
“…….”
가만히 눈을 깜박이던 수연은 이윽고 시선을 내리깐 채 다시금 꾸벅 머리를 숙였다. 비서실장의 생체징후엔 내가 해석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양치 후엔 선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커피 한 잔을 대신했다. 도착 이틀째인 오늘, 여객선엔 아직도 손봐야 할 곳이 많았고, 본사에서 파견된 인력들은 일출과 동시에 작업을 개시한 상태였다. 함교의 중국제 통신장비를 한국제로 교체하고, 이동 중에도 선내에서 위성전화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중계기를 여러 대 추가로 설치하고, 선내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한 방탄구획을 확보하는 등.
선미의 난간에 도달한 나는 흐르는 강물 아래 강바닥을 구르는 다수의 시체들을 보았다. 온갖 너저분한 잡동사니들과 더불어 깊고 느린 물살에 흔들흔들 내려가는 유해들을.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아는 바와 달리, 대부분의 시체는 물에 뜨지 않는다. 사람의 사체가 물에 뜨려면 체내에 부패로 인한 가스가 들어차야 하는데, 물고기와 갑각류 따위가 살을 뜯어먹으면서 몸 곳곳에 가스가 샐 구멍들을 뚫어놓는 까닭이다.
수중의 생물들이 가장 먼저 먹어치우는 건 눈알처럼 식감이 부드러운 부위다. 다음은 살. 그다음은 내장과 지방. 조직이 질긴 근섬유는 순서가 가장 나중이다. 보통은 두 발이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데, 이는 신발이 질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에 시체를 버릴 때는 꼭 신발을 벗겨내고 버려야 한다.
강바닥에 버려진 유해들은 신발을 착용한 것이 반이요, 골격만 남아있는 것이 다시 반이었다. 전자는 기본적인 노하우조차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소행이겠고, 후자는 군경을 비롯한 보다 전문적인 살인자들과 식인종들의 소행일 것이었다.
브리핑 룸으로 들어서니 팀장급 이상의 실무진들이 모여 있다.
“앉아라.”
내 말에 기립해있던 모두가 착석한다.
어제보다 한결 그럴듯해진 룸 전면엔 레이저 프로젝터로 투사된 커다란 지도가 떠있었다. 나는 지도상에 강조된 단 하나의 지역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타격지점이 벌써 결정된 건가?”
지도 옆에 서있던 수연이 까딱 끄덕인다.
“예. 판위구(番禺区)의 서북쪽 경계에 닿아있는 다싱쿤(大兴村)이라는 거주지입니다.”
“거기 뭐가 있길래?”
“광둥 삼합회 소속 지파(支派) 가운데 하나인 후롱방(扈龙幇)의 사업장 다수가 이곳에 몰려있습니다. 투견장, 도박장, 경매장 등입니다.”
“가오슈센이 준 정보에 여기만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물론 다른 후보지들도 많았습니다만……. 경호실장도 여기가 최선의 목표라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우선 사업장들의 집적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우두머리인 후슈잉(扈秀英)의 뒤를 봐주던 자가 얼마 전 숙청을 당했으며, 이후 후슈잉이 안전상의 이유로 자택보다 사업장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입에 크고 깔끔하게 물어뜯을 수 있는 사냥감이다 이 말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정보의 신뢰성은 확인해 봤고?”
“검증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예. 그러나 자료가 부족하여 백 퍼센트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주무시는 동안 무인기를 투입하기도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해가 떠버린 지금은 무인기를 통한 정보수집이 제한된다. 휴스턴의 리까르도 역시 멀리 날았던 우리 측 드론의 존재를 눈치채지 않았던가. 상시 파수꾼들을 두고 있을 삼합회의 중간간부라면 머리 위로 드론이 뜨자마자 이상을 감지할 것이었다.
“확실히 입지 자체는 좋구나.”
지도를 보니 사업장들을 한데 몰아놓은 이유를 알겠다. 거주지를 구부러지게 관통하는 작은 물길이 강변도로 아래를 뚫고 주장강 본류까지 이어져, 어두운 시간 다양한 상품들을 소리 없이 운반할 수 있을 명당이었다. 외곽에 경계선과 방어선을 둘러치고 그 중심에다가 사업장을 놓으면, 방어전을 치르는 상황에서 미로나 다름없는 난잡한 골목들이 공격자의 피를 끊임없이 빨아먹을 요해지(要害地)이기도 하고.
게다가 배후에는 수목이 울창한 마름모꼴의 작은 언덕까지 있다. 유사시엔 이 삼림을 탈출로로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자리라면 흑해자당의 끄나풀들이 진짜로 있을 수도 있겠는데?”
지금 보는 삼합회 떨거지들의 근거지는 브라질의 파벨라(Favela)들 수준으로 어지러운 거주지인즉, 두 세력이 부분적으로나마 공존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독소전쟁기의 스탈린그라드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기 예사였던 독일군과 소련군의 선례처럼.
내 말을 경태가 긍정한다.
“옙! 그런 가능성도 고려해서 결정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톡, 톡. 탁자를 두드리던 내가 눈짓하자, 수연이 브리핑을 재개했다. 중간부터는 경태가 배턴을 넘겨받는다.
브리핑 후 30분 남짓한 논의 끝에 타격지점은 변동 없이 확정되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서 행동에 착수했겠지만,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가오슈센이 문제였다.
‘시간을 끌수록 사냥의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기도 하고…….’
여긴 하루를 조용히 넘어가면 최소 수백억의 기대수익이 증발해버리는 정신 나간 사냥터다. 이 도시에서 부정한 자들의 금맥을 얼마나 틀어쥐는가에 따라 향후의 행보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확보한 정보들의 유효기간도 문제였다.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존의 정보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하겠는가.
그러니 여기선 내 능력에 의지한 임기응변과 부하들의 실력에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을 잡아먹으려는 자는 스스로도 잡아먹힐 각오를 해야 한다. 원탁의 제국주의자들과 달리, 나는 내게 남을 잡아먹을 천부적 권리가 있다고 믿는 얼간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