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정한 자들의 금맥 (4)
이 도시에 온 첫날 합의했던 대로, 나는 훔쳐낸 재보에서 가오슈센의 몫을 나누어 그가 차명으로 임대한 창고로 가져다주었다. 하이저우(海珠)구와 리완(荔湾)구를 나누는 물줄기의 북안에 위치한 이 창고는 광저우 수상경찰(广州水警)의 거점 부두부터 겨우 1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지점이었다. 지나가는 배만 없으면 육안으로 사람의 움직임까지 식별 가능한 거리다.
이는 등잔 밑이 어둡다기보다 꽌시가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었다. 궁지에 몰렸다고는 해도 가오슈센은 공산당의 고위 관료였고, 공산당 관료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질은 꽌시를 관리하는 능력이었으니.
가오슈센이 창고를 임대한 것은 당연히 나로부터 제 금고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서이다. 미쳤다고 내게 자기 금고로의 직배송을 요청하겠는가. 내가 거기라고 털지 말라는 법이 없건만.
이 시간까지 몸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저가 빌려준 차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오자 두 팔을 벌리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서 오시오, 동사장! 내 삼추지사(三秋之思)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삼추지사는 보지 못한 하루가 삼년 같았다는 관용어구였다. 벌겋게 핏발이 선 두 눈을 보건대 빈말은 아닌 듯하다. 4륜구동 용시(勇士) SUV에서 내린 나는, 부서기를 둘러싼 양복 차림의 어깨들을 보며 물었다.
“여기 있는 건 다 믿어도 좋은 사람들입니까?”
“아무렴 이런 자리에 못 믿을 자들을 데리고 나왔겠소? 하나하나 다 보험이 있소이다. 그러니 자, 일단 약속한 물건들부터 보여주시구려.”
주먹을 꽉 쥐고서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가오슈센.
‘보험이라. 하긴 그쪽이 더 확실하겠지.’
납득하고서 반쯤 돌아선 나는 운전석의 부하에게 턱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덜컥. 용시 SUV 세 대 분의 트렁크가 열리자 가오슈센이 성급하게 다가가 실려 있는 짐들을 살펴본다. 자루 하나를 풀자마자 금빛이 쏟아져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오, 오오…….”
저렇게나 좋을까. 도취된 낯짝의 가오슈센은 금붙이 사이로 두 손을 절그럭절그럭 쑤셔 넣었다.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한 움큼 쥐어 집중하고, 다시 한 움큼 쥐어 빠져드는 식. 금붙이들 사이엔 금괴 말고도 인지금(麟趾金)과 마제금(馬蹄金)이 섞여있었다. 기린의 발을 닮았다 하여 인지금이며, 말발굽을 닮았다 하여 마제금이다. 둘 다 청나라 시대의 유산이었다.
이렇게 금도 만져보고 달러도 세어보고 하며 황홀해하던 가오슈센은, 산중의 저택에서 촬영해온 영상을 확인하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증거품으로 쓰는 비율은 동사장에게 맡기기로 이미 약조하였소마는…… 이만큼 많은 양이면 우리가 조금 더 가져도 괜찮지 않겠소? 내가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금괴 일이십 공근(公斤/킬로그램) 정도는 덜어내나 안 덜어내나 비슷할 듯하오.”
어림도 없는 소리를. 난 건조하게 한마디 해주었다.
“부서기. 당신은 지금 한낱 금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숙부의 목숨을 덜어내자고 하고 있는 겁니다.”
“으음…….”
이 인간이 이러는 배경엔 필시 나에 대한 의심도 있을 것이었다. 영상만 봐서는 정확한 양을 알 수 없으니까. 즉 내가 조금 더 빼돌리더라도 자기는 알기 어려우리라는 불안이 깔려있는 것. 가오슈센의 요구는 간접적인 의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저가 불안하면 어쩔 건가? 이만큼의 안전장치라도 있는 게 어디인데.
“증거물로 올라가는 금품의 총액이 곧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뇌물의 총액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모르는 척 하는 말에 가오슈센이 못이기는 척 물러난다.
“그렇지. 그래야겠지. 내 실언을 하였소. 사과드리는 바요.”
“아닙니다. 약속을 지켜주시니 감사하군요.”
국고로 들어갈 압류물품은 중앙당의 최상층이 아니고선 손을 대기 어렵다. 즉 보통은 급이 맞지 않아 뇌물을 바치기조차 여의찮은 상대에게 직접 상납을 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인 것이다. 이쪽이 충분한 가치를 증명한다면, 가오슈센과 숙부 가오닝후이의 목숨은 중앙당이 보증해주게 될 터였다. 일개 성(省)급 정부 레벨에선 감히 건드릴 상대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사무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삼합회에 대한 정보, 준비되어 있겠지요?”
“아, 물론이오. 여기 있소이다.”
가오슈센이 품에서 USB 메모리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주기를 미루고 있던 정보였다. 내 목적이 처음부터 이 정보였고, 다른 건 다 기만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내가 먹고 튈까 봐 걱정한 거다.
“공안청 수거고(数据库/데이터베이스)에서 내 권한으로 열람 가능한 자료는 다 담아두었소. 그리고 나와 내 부하들이 비공식적으로 보유한 정보들도 추가로 담았지. 그걸로 충분할지는 모르겠소만.”
“충분할 겁니다. 그보다, 현 시위원회 서기가 실각하고 나면 당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글쎄올시다.”
곰곰이 정치적 계산에 잠기는 가오슈센의 진지한 모습은, 금의 광채에 홀렸을 때와는 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쪽이 당 간부로서의 본모습에 가까울 테지만.
“저택이 털리는 영상이 공개되더라도 그의 목이 바로 날아가진 않을 거요. 동사장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이겠으나, 어지간히 중한 혐의가 아니고선 계파 간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재판정에 서게 되는 게 이쪽의 생리라서 말이오.”
“그래도 목이 날아가는 건 기정사실이니, 그 이후를 묻는 겁니다.”
“그 이후는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 어쩌면 중간 단계를 여럿 건너뛰고서 성급 정부로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어쨌든 이 사람을 한번 믿어보시오. 동사장께서 가져다주시는 공로들을 알뜰하게 써보이리다.”
슬쩍 당 내부의 사정을 떠볼까 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모호한 말들뿐이다.
‘자기 판돈이라 이거지.’
자신의 형편을 쓸데없이 풀어놓았다가 괜한 틈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굳이 더 파고들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함께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가오슈센의 목에 채워질 목줄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보다 삼합회 쪽은 언제 치실 계획이시오?”
가오슈센이 묻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오늘 내로 습격할 겁니다. 적합한 타격지점을 가려내는 즉시 말입니다.”
“……피곤하지도 않으시오? 내 말은, 방금 전까지 교전을 벌이다 오셨을 텐데.”
“부서기님 당신에 대한 내 성의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당신이 안전해져야 나도 걱정 없이 쉬지 않겠습니까.”
“그건…… 고맙구려. 참으로 정력적이시오. 내 동사장만 믿고 있으리다.”
이제 가오슈센은 제 아랫것들에게로 돌아서서 짝짝 박수를 치는 것으로 지시를 대신했다. 무표정한 어깨들이 우리가 끌고 온 차량으로부터 금품을 꺼내어 창고 중앙으로 옮겨놓는다. 나는 그들에게서 일말의 물욕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공산귀족이 이들에게 들어두었다는 보험은 과연 무엇일까.
피붙이를 감옥에 붙잡아두기라도 했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죽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이는 섣부른 짐작이 아니다. 중국의 지방행정은 은폐가 일상이었고, 중국의 교정시설에선 폭력과 죽음이 일상이었다. 따라서 궁지에 몰린 공산귀족은 자신의 권한을 얼마든지 남용할 수 있었다. 숙청을 피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고, 숙청을 당한다면 사소한 권한남용이 문제가 아니게 될 테니까.
어깨들의 작업은 가오슈센이 담배 한 대를 태우는 사이에 마무리되었다. 창고 가운데로 보기 좋게 모아놓은 금품들은, 필시 해가 뜨기 전에 보다 안전한 곳으로 다시 옮겨질 것이었다.
담배연기를 피해 몇 발짝 떨어져 기다리던 나는 공산귀족에게 짧은 작별을 고했다.
“그럼 다시 가보겠습니다. 오늘 내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살펴가시오.”
나는 가벼워진 SUV에 올라타 여객선이 머무는 부두로의 복귀를 지시했다. 다리 하나를 건너 하이저우구로 재진입한 다음 강변도로를 따라 약 10킬로미터 가량을 달려야 하는 길이었다. 전망이 좋은 길가엔 번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는데, 이 고층건물들의 얇고 정갈한 띠 안쪽의 사각지대엔 여지없이 빈민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쯤 되면 중국 대륙 공통의 공간 활용 법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밑바닥에 닿은 삶의 현장을 보았다. 어둠이 깊은 새벽, 빈곤이 가득한 거리의 응달은, 실직과 기아에 시달리는 농민공들이 잠시 인간성을 내려놓기에 괜찮은 장소였다. 굶어죽은 사람 하나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는 게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연고를 찾을 길이 없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할 자의 유해였을 터다.
고기와 죄책감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얼굴엔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있는 감정 비슷한 건 오로지 고단한 피로감 뿐. 혼자서는 넘기 어려운 선도 함께라면 넘기 쉬워지는 법이었다.
예상은 했다. 기근이 심한 곳에 식인이 없을 리 있나. 사람은 원래부터가 타인을 잡아먹고 사는 생물이며, 상황에 따라 어떻게 잡아먹는가가 달라질 따름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중국엔 굶주린 자들이 많아도 너무나 많았다. 지난여름, 역사에 유례가 드문 대홍수로 발생한 7천만의 이재민들. 살길을 찾아 꾸역꾸역 도시로 몰려들었을 그들은, 도시에 이르는 머나먼 여정에서 이미 서로를 조금씩 잡아먹었을 것이다. 보통은 걷다가 쓰러진 자들의 시체를, 가끔은 살아있지만 힘이 없는 약자들을.
그렇게 살아남은 인간들이 다시 서로를 잡아먹고 또 잡아먹기를 반복하는 현장. 그 외엔 달리 끼니를 때울 길이 없는 가난한 자들의 생활.
무한히 증식하는 암세포 덩어리들도 이들의 배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었을 터다. 마소와 마력을 먹는 세포의 증식은 다수의 굶주림 앞에 너무도 느린 과정이었을 테니까. 이듬해 파종할 종자까지 다 삶아 먹어버리고 마는 가난한 농부와도 같은 꼴이라 하겠다.
“실로 고독의 도가니로구나.”
내 말에 경태가 의문을 표한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고독(蠱毒) 말이다. 독을 지닌 동물들을 한데 몰아 가둬서는, 서로를 잡아먹고 또 잡아먹어 독이 가장 강해진 최후의 하나를 남긴다는 이야기. 미신에 불과한 주술 신앙이다만, 너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아아, 그거요. 당연히 알죠. 그런데 그건 왜……?”
“이 늦은 시간에 사람이 사람을 먹는 꼴들이 보이기에 떠올랐을 뿐이다. 독이 없는 것들도 서로를 잡아먹다보면 독기가 생기기 마련이니.”
결국엔 사람을 해친다는 점에선 마음을 좀먹는 독기도 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었다. 널리 퍼지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겠고.
“오우.”
보일 리 없는 풍경을 좇아 차창 밖을 일별한 경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원래 고독 중의 고독이 사람으로 담그는 인고(人蠱)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냐.”
“예. 그중에서도 애들을 굶겨서 만드는 게 최고라던데요. 대나무 안에 먹을 걸 두고 배고픈 애가 자기 몸을 구겨가며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죽게끔 한다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군.”
“또 모르죠. 형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그 꼴이 났을지도.”
“쓸데없는 소리.”
“하하.”
경태는 멋쩍게 웃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차량 대열이 강변도로의 곡선을 따라 완만하게 구부러진다.
나는 이 콘크리트의 정글에서 자연의 섭리를 본다. 착취와 억압. 원시적이고도 직접적인 형태의 식인과 보다 문명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형태의 식인들을. 바닥 아래엔 또 다른 바닥이 있고,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약자들은 피식자인 동시에 그보다 더 약한 자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이기도 했다. 차별과 억압의 열기로 끓어오르는 도가니에선, 부드러운 인간의 선은 녹아내리고 오직 단단한 악의 덩어리만이 남게 된다.
이제 내가 사냥꾼으로서 저 고독의 도가니로 발을 들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