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정한 자들의 금맥 (2)
밤 깊은 도심의 산자락에서 한 무리의 개들이 짖어댔다. 마르고 더러운 네발짐승들이 사람을 피해 달아난다. 놈들은 사나운 동물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굶주려 있었으되, 마력장을 감지할 회로가 열려있었으므로 감히 나와 내 애들을 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요컨대, 원시마법 각성체가 되는 바람에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유기견들이다.
견주들이 개를 버리는 첫 번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초능력을 얻은 개가 전처럼 사랑스럽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러나 여전히 개를 아끼는 자들이 자기 개를 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이는 사실 버린다기보단 풀어주는 개념에 가까웠다. 달아나라고. 정부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라고. 각성한 동물들에겐 실험체로서의 가치가 있었으며, 중국 정부는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들어 각성체 애완동물들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강탈해가는 중이었다.
끌려간 동물들이 잔인한 실험을 당하거나 고관들의 몸보신용으로 쓰인다는 소문까지 도는 마당에 제 애완동물을 순순히 내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주 많은 개와 고양이와 그 밖의 애완동물들이 사랑하는 주인으로부터 원치 않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광둥 도심에 솟아있는 바이윈(白云)산은 그렇게 유기당한 동물들이 숨어들기에 최적인 환경이었다. 5A급 여유경구(국립공원)로 지정되어 수렵 활동이 통제되는 곳이기에.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오늘 밤의 감제(瞰制)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경비견들이 너무 흔하게 짖어대는 통에, 저택을 지키는 자들 입장에선 이 개가 사람 냄새를 맡고 짖는지 버려진 짐승들 냄새를 맡고 짖는지 구분하기 어렵게 된 것. 그러므로 나는 산중의 풍향에 개의치 않고 털어야 할 저택의 전모를 조감할 수 있었다.
이 저택이야말로 지난 오후 가오슈센이 전달해온 목표였다.
어둠 속에서 광량이 없다시피 한 패드를 놓고 저택의 층별 도면을 작성하는 내게, 설산위장복 차림인 경태가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핀윈줘(品雲座)」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 아닙니까? 시(市) 위원회 서기가 이런 데다 지하금고를 둘 생각을 했다는 게 좀 뜻밖이지 말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지.”
“음, 아무리 그래도 전임자 목이 지척에서 날아갔는데 불길하지도 않았나 싶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길흉을 많이 신경 쓰잖습니까. 땅을 고를 때는 특히나 더요.”
“전대(前代) 서기가 꼭 부패해서 목이 날아간 건 아니잖으냐. 핀윈줘가 그 사람의 사유지도 아니었고. 그러니 땅에는 죄가 없는 거지.”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끄덕끄덕 납득하는 경태.
경태의 말처럼, 광둥(양성) 제일의 아름다움이라 불리는 이곳 바이윈 산엔 핀윈줘라는 이름의 초호화 사교클럽(후이쒀/會所)이 들어서 있었다.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경로와 완전히 분리되어있는 클럽은 사실상 공산당 고위관료들을 위해 운영되는 시설이었다.
광저우시의 전대 서기 완칭량(万庆良)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당한 장소가 바로 이 핀윈줘다.
그러나 그는 기실 청렴한 편에 속하는 관료였다. 축재액이 고작 1억 위안(한화 170억) 가량에 불과했으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무슨 농담이냐며 웃겠으나, 부패 전문가들의 복마전인 중국에서 이 정도면 독야청청이라 평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완칭량의 실각은 계파싸움에서 패배한 결과에 불과했다. 겨우 그 재산을 쌓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것만 봐도 뻔할 뻔 자였다.
킁. 콧잔등을 찡그린 경태가 내 작업을 지켜보며 묻는다.
“안에 돈이랑 금이랑은 얼마나 있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안 궁금하고?”
“에이. 형님께서 직접 보시면서 지령을 내려주실 텐데요 뭘. 털어서 얼마나 나올지가 더 궁금하죠. 대박입니까? 대박이겠죠?”
“아니, 그냥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다. 다 긁어모아봐야 트럭 다섯 대를 못 채우겠어.”
“다섯 대면…… 진짜 그냥 그러네요. 은닉처를 둘로 나눠놨나?”
트럭 다섯 대 분량의 귀중품이면 객관적으론 어마어마한 거액이겠으나, 공산당 고위 관료에 대한 기대치에 비해선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는 것이었다. 부정축재 하나가 터지면 군용 트럭들이 최소 열 대씩은 몰려와 짐을 빼가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었으니.
나는 지하층의 도면상에 귀중품들의 위치를 따로 표기했다. 말이 지하금고이지, 드넓은 저택 지하 곳곳에 비밀스러운 통로와 여백들이 있어 각종 귀금속과 현금 등이 분산 은닉되어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전 층에 걸쳐 실내와 옥외에 배치된 경비인력의 상세를 표기했다. 인원과 장비, 순찰경로, 교대간격, 정기보고가 이루어지는 시간 등.
‘실력이 빼어난 엽사(獵師)들을 고용했다고 했었지.’
엽사는 곧 사냥꾼을 이르는 말이다. 미국에서와 같이, 이쪽 대륙에서도 민간 능력자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게 발생하는 분야는 결국 각성체 야생동물 사냥과 포획이었다. 우수한 능력자들을 공적 영역으로 편입하고자 해도 아직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운 과도기였기에, 많은 주류 국가들이 민간 차원의 수렵을 장려하여 낭중지추들 스스로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사냥꾼이 초능력자의 유의어로 쓰이기 시작한 건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범세계적 현상이자 유행이었다. 정책상의 수렴진화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어찌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으니 일단 선발주자를 따라가고 보는 국가도 적지 않을 것이고.
가오슈센은 현 시당 서기가 엽사 조직을 고용하여 사병처럼 부리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왔다. 분명 저택을 경비하는 인력 중에도 그 엽사들이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조심하라는 뜻으로 전하는 경고였을 테지만, 직접 살펴본 바 큰 위협이 될 연놈들은 아니었다.
잠시 후, 나는 모든 층의 도면을 완성했다.
“됐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그 말은 일을 다 마치고서 듣도록 하지. 애들을 모아라.”
돌입하기 전 내부구조를 숙지하고 팀별 동선을 짜는 건 기본적인 과정이었다. 상황이 급하다면 생략할 수도 있겠으되,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부하들이 각자의 전술 스마트폰을 들고 위장막 아래로 모였다. 내가 그리는 도면은 실시간으로 이 녀석들의 화면에 공유되고 있었기에, 긴 시간의 브리핑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동선을 짜는 역할은 경태에게 맡긴다. 이런 면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가진 놈이었으니까.
경태가 말했다.
“자, 여기를 A 사이트로 두고 시작하자고.”
경태는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선을 그어나갔다. 그럼에도 사소한 흠결 하나가 보이지 않는 동선이자 브리핑이었다.
비상시 예비계획과 각 팀별 역할 분배를 주르르륵 쏟아낸 경태가 내게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이대로 가면 되겠죠, 형님?”
“그래.”
끄덕인 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내 가방.”
부하 하나가 가로로 긴 하드 케이스를 내게로 가져온다. 묵직한 케이스 안엔 반자동 대물 저격총 한 자루와 그 부속품들, 소음기, 스코프, 레이저 거리 측정기, 탄도계산기 등이 들어있었다. 황금기의 눈이 부여하는 시각적 인지능력을 감안하면 뒤쪽의 셋은 내게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 전부가 하나의 세트이고 상황에 따라선 부하들 또한 쓸 수 있어야만 하니까.
이 큼직한 총은 가오슈센이 제공한 중국 제식화기 중에서 선택한 게 아니라, 부하들을 시켜 마카오 카지노의 비밀금고에 숨겨두었던 내 소장품을 가져온 것이다. 소장품이라 함은 스톡, 방아쇠, 탄창과 총열에 이르기까지 전부 내 취향에 맞게 조율된 물건이라는 뜻.
총기의 기능점검을 끝낸 내가 다시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탄약.”
예의 부하가 작은 탄약 상자를 건네준다. 외부에서 저격지원을 할 때 함께 저격총을 들고 나를 보조하기로 한 녀석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내부로 돌입할 부하들은 각자의 동선과 역할을 숙지하며 간간히 대화를 나누는 중.
나는 적이 완전히 봉쇄당할 때까지 저택 내부로 돌입하지 않는다. 전체를 투시하면서 지휘하는 것, 그리고 벽을 관통하는 저격지원을 해주는 것은 오로지 나만이 수행 가능한 역할이었으니. 부지가 넓은 저택이라 혹시라도 도주하는 놈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끼긱-
염력으로 실탄을 띄워 탄자를 분리한 나는, 탄자 전체에 특정 패턴의 염력을 마찰시켰다. 철갑탄이 사아아악 갈리는 소리. 육안상으로는- 그러니까 통상시야로 보기에는 갈기 전후로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일 테지만, 내 눈엔 미세하게 새겨지는 홈들이 보인다. 수제 금형(金型)에 쇳물을 부어 탄두를 만들고, 그것을 사람이 손수 사포질로 갈아서 마감했을 때 남을 법한 흔적.
쉽게 말해 나는 지금 알 까심의 흔적을 위조하는 것이다. 정밀한 검사를 한다면야 차이점이 발견되겠으나, 하루하루의 변화가 급하고 조사할 사안이 넘쳐나며 확증편향에 휩쓸릴 공안 조사관들이 탄두 하나하나에 과도한 공을 들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오늘 밤 사용할 모든 탄약을 이런 식으로 위조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터이므로. 다만 내가 사용할 대물 저격총에는 약간의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현 시점에서 흑해자당의 무리는 이 정도의 중화기를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탄두를 탄피와 결합한 나는, 여전히 손을 대지 않고서 복수의 탄창에 탄을 장입했다. 구릿빛 실탄들이 딸깍딸깍 들어가는 와중에도 경태 이하는 도상연습(지도를 놓고 하는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저격총에 탄창을 끼운 내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적정(敵情)을 엿보고 있을 테니 준비가 되면 보고해라.”
이에 경태가 웃는다.
“당장이라도 가능은 합니다. 동태를 보시다가 이때다 싶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알았다.”
끄덕인 난 위장막을 벗어나 사격 위치를 잡았다.
‘시작하면 먼저 외부 중계기와 통신 단자함부터 날려버리고…….’
지켜본 바 저택 외부 경계조의 밀어내기식 근무교대는 15분 간격으로 이루어졌다. 각 경계지점에 배치된 인력이 15분마다 다음 위치로 이동하며 순찰을 겸하는 것. 각 팀의 정시보고는 새로운 경계지점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진다.
그렇게 보고가 전해진 직후야말로 치고 들어가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었다.
시 서기의 저택은 산간의 외진 굴곡을 등지고 있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는 자리.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좋다고 하겠으나 전파가 닿기엔 어려운 험지다. 그러므로 저택은 별도의 통신중계수단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직접 이끄는 저격조는 그것들을 먼저 파괴할 것이다. 외부 중계기가 박살나면 바깥에 있는 놈들의 전화기가 먹통이 될 것이고, 이어 통신 단자함들을 차례로 두들겨 놓으면 인터넷과 함께 저택 곳곳의 펨토셀(인터넷을 경유하는 통신 중계기)들이 연쇄적으로 마비될 터. 그러면 저들이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단은 오직 위성전화만이 남게 되는데, 이 역시 실내에서 쓰려면 중계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라 위협이 되지 않는다.
총을 안고서 가만히 적정을 보던 나는, 상황실을 차지한 놈들이 대놓고 엎어져 자는 꼴을 보고서 공격을 결심했다.
“02시에 공격을 개시한다. 모두 정위치로.”
지시를 내리자 발라클라바를 뒤집어쓴 경태가 팀장급들과 함께 시계를 맞추곤, 돌입조 전원을 동반하여 신속하게 경사지를 내려간다. 저택의 개들이 아까보다 시끄럽게 짖어댔으나, 경계를 서는 엽사들은 그저 짜증을 낼 따름이었다. 능력자 집단이라곤 하나 민간인 엽사들의 한계인지 저격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돌입조, 현재 위치에서 잠시 대기.”
무전을 날린 난 옥상에 있는 경계 인력들이 교대하기를 기다렸다. 새벽 2시 2분, 새로이 옥상에 올라온 녀석들의 머릿수는 넷. 네 사람을 죽이기 위한 표적분배는 잠깐이면 충분했다. 총구가 표적보다 많았으므로 나는 처음부터 중계기를 겨냥했다.
“셋에 사격한다. 셋, 둘, 하나.”
콰앙! 타탕! 부하들의 총성 일부는 내가 발사한 대물저격총의 굉음에 파묻혔다. 이 총은 군용 차량의 장갑판을 뚫으라고 만들어놓은 물건이므로. 0.5초의 간격을 두고 네 명 분의 머리와 통신중계기 하나가 터지거나 찢어져 나갔다.
“다음, 2시 방향 초소. 셋, 둘, 하나.”
쾅, 쾅, 쾅! 난 저격조를 유도하여 나머지 경계지점들을 차례차례 침묵시켰다. 다섯 발 들이 탄창 세 개를 소진할 즈음에는 건물 바깥에 쏠 만한 것이 남지 않았다.
이렇게 쏴댔는데도 골짜기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흡음결계의 효율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회로상의 점유율과 술식의 효과 양면에서.
나는 이제 건물 바깥쪽 회랑을 도는 엽사들을 노렸다. 이건 벽 너머로 쏘는 사격이라 나 혼자 처리해야 하지만, 그래봐야 2인 1조에 불과한 표적이었다. 속사로 갈겨대면 한두 발쯤 빗나가도 무방하다.
내가 조준하는 벽마다 구멍이 퍽퍽 뚫려나간다. 동일한 직선상에서 인체도 함께 터져나간다. 배가 찢어지고 경추와 척추가 끊어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멀리 있는 복도들이 다채롭게 흐르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대구경 철갑탄은 이렇듯 시각적인 타격감이 좋았다. 난 미리 준비한 탄들을 아낌없이 소모했다. 때로는 벌써 터져버린 몸뚱이에 추가로 탄을 박아주거나, 엉뚱한 자리에 여러 발을 더 낭비하거나 하면서.
이유는 둘.
흑해자당의 저격수가 실력이 너무 좋아도 이상하고, 알 까심의 저격 라이플이 지나치게 정밀해도 말이 안 되니까.
내 총탄이 닿지 않는 곳들의 적들 일부가 슬슬 이상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총성이야 흡음결계로 확산을 막았으되, 철갑탄이 벽을 뚫는 소음은 고스란히 울려 퍼졌기 때문.
그러나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돌입조. 들어가라.”
난 때를 기다리던 사냥개들의 목줄을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