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정한 자들의 금맥 (1)
가오슈센에게 초벌 보고서를 구술해주고서 시 공안국 본청을 나온 나는, 순라경찰지대로부터 잠복근무용 차량을 빌려다 전장을 탐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난개발의 극치인 광둥 시가지는 질서와 무질서, 부유함과 빈곤함, 깨끗함과 더러움을 아무렇게나 기워놓은 누더기와도 같았다. 도시 곳곳에 곰팡이처럼 뭉쳐있는 가난한 자들의 주거지는 그 모두가 잠재적인 흑해자당의 기반. 겁먹은 공산당이 헐벗은 노동자들을 예비 범죄자들로 취급하고 있었으므로, 군과 공안의 강압적인 통제가 도리어 민심을 이반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멀리서 보이는 마력장의 변화만으로 흑해자당을 추적하기란 곤란한 일이었다. 일단 능력이 쓸 만한가 여부와 무관하게 회로가 뚫린 인구가 많아졌고, 군과 경찰도 능력자들을 한데 뭉쳐서 굴려댔으며, 그 외에도 집단행동을 하는 능력자들은 얼마든지 많았으니까.
지금 눈앞에서 켄터키 치킨 점포를 때려 부수는 폭도들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충당애국(忠黨愛國)의 정신으로 투쟁하자! 이 땅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의 세력을 몰아내자!”
붉은 완장을 차고 붉은 스피커폰을 든 사내가 피를 토하듯 외치는 말. 절절함만 보면 애국열사 그 자체다. 사내의 외침에 호응하여 무리 여기저기서 성난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미국의 물건을 파는 자는 미국의 개다! 미국의 물건을 사는 자도 미국의 개다!”
“친미 부역자들을 심판하자! 미국 기업을 위해 일하는 자들을 처단하자!”
“죽이자! 불태우자! 조국의 적들에게 14억 인민의 분노를 보여주자!”
능력자들을 전위대로 앞세운 폭도들의 도끼질에 점포 전면의 강화유리가 와장창 깨어진다. 그저 치킨을 팔고 있었을 뿐인 사람들과 그저 치킨을 먹고 있었을 뿐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또는 2층과 3층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어디로 가더라도 탈출구는 없었다. 폭도들은 뒷문으로 빠져나가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자들까지 살뜰하게 잡아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머리채가 붙잡힌 채 대로 한복판으로 끌려나온 희생자들은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 중에서도 종업원들은 특히 더 취급이 좋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폭도들은 그들의 유니폼부터 갈가리 찢어발겼다. 속옷마저 벗긴 다음엔 드러난 알몸에다 깨진 유리로 삐뚤빼뚤 일곱 글자를 새겨 넣는다. 노성십족적국적(奴性十足的国贼).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민족 반역자라는 뜻이다. 생살이 째지는 동안 사지를 붙들린 피해자는 몸을 뒤틀며 발광했다.
“어우……. 좀 세네요, 쟤들.”
경태가 이렇게 감탄할 정도로 폭력적인 야만성이었다.
이 와중에도 점포는 절찬리에 박살나고 있었다. 능력이 없거나 미비한 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도끼와 방망이와 쇠파이프 따위로 무장한 능력자들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그렇게 인민재판과 파괴에 열중하던 무리의 일부가, 가만히 지켜보던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중에서 무리의 선두에 선 대머리 떡대가 거칠게 창문을 두드린다. 내 눈짓을 받은 경태가 창문을 내리자, 떡대는 반들반들한 머리통을 반쯤 들이밀다시피 하며 거친 어조로 우리를 추궁했다.
“당신들!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는 게 수상하군! 눈알도 안 보이는 묵경(墨镜/선글라스)은 또 뭐고? 설마 저 미제 매판자본의 앞잡이들인가?!”
“아니오.”
“아니라면 우리의 행진에 합류하여 결백을 입증해!”
입증해라! 입증해라! 차량을 우르르 둘러싼 무리가 후렴구 따라 부르듯 외쳐대기에, 나는 떡대의 머리통에 권총을 들이밀고 공안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내 애들도 외투 안쪽에서 겨누고 있던 권총들을 드러내자, 가깝던 소음들이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빡빡이 떡대 또한 급격히 바르고 공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힘쓰시는 분들께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러나.”
내 한마디에 반들반들한 대가리가 곧바로 차창을 빠져나갔다. 길이 열릴 때까지 잠자코 구경만 할 작정이었지만, 이렇게 공안 신분이 노출되었으니 가만히 있기가 어렵게 되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난 문을 열고 내려, 그새 무릎을 꿇은 떡대를 내려다보았다. 뒤따라 하차한 경태 이하가 나머지 군중을 견제한다.
나는 떡대를 추궁했다.
“당신들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이기에 이 시국에 도당(徒黨)을 결성하여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거지?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달라는 방송을 못 들었나?”
“도당이라뇨. 오해이십니다. 저희들은 모두 개인입니다, 선생님.”
“도당이 아님에도 우연히 무리를 지어 행동을 함께하고 있다? 완장까지 차고서?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내가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 그게, 어쩌다보니까, 으…….”
총구로 머리를 쿡쿡 찔러대자 떡대가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처럼 떨면서 말을 더듬는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내가 인상을 쓰니 둘러싼 무리 가운데 뿔테안경을 쓴 중년 사내가 대신 변명을 주워섬긴다.
“우연이 맞습니다! 우국(憂國)의 마음으로 거리에 나온 개인들이 뜻이 맞아 같이 움직이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붉은 완장은 요즘 흔한 물건이잖습니까! 망상상성(网上商城/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인기상품입니다! 수익금을 당에 헌납한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여자도 용기를 냈다.
“맞아요! 저희가 생각해도 낮은 확률이고, 또 저희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의 상황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걸 어쩌겠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거죠!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놀라운 개소리들이로군. 나는 얼간이들에게 권총을 까딱거리며 요구했다.
“모두 무릎을 꿇으시오. 변명은 서에 가서 듣겠소.”
여자가 다시 소리 지른다.
“이럴 수는 없어요! 공안이 왜 애국자들을 잡아 가두려고 하나요?!”
“왜냐면 이게 법을 따르는 길이니까. 죽기 싫으면 꿇어.”
이에 경태가 순라경찰지대의 통신망에 지원을 요청하고서, 제 부하들을 부려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때 이쪽의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눈치챘는지, 주모자를 포함한 폭도들의 본대가 우르르 몰려와 이쪽 현장에 가세했다. 그 와중에도 알몸에 글자를 새긴 포로들에게 목줄을 걸어 끌고 오는 꼴이 참 대단했다. 바보들은 숫자가 많을수록 용감해지는 것이었다.
그 용기의 다른 이름이 바로 군중심리와 집단광기다.
먼저 와있던 무리로부터 속닥속닥 사정설명을 들은 우두머리가 나를 향해 어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선생님. 큰 오해가 있었군요!”
“오해가 아닐 텐데. 당신들이 하는 짓이 어딜 봐서 우국의 행동이지? 내가 보기에 너희는 죄다 법을 무시하는 폭도새끼들일 뿐이야.”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겁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미국이 먼저 우리네 기업과 당원들의 자산을 압류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갚아주어야만 합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결의가 똑똑히 전해지도록!”
이 인간이 말하는 건 현재 미국이 중국에 대해 걸고 있는 다양한 경제·외교적 공세 가운데 하나, 청나라 국채 환수에 관한 문제다.
미국이 보유한 청나라 시대의 국채는, 예전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만 많았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아낸다는 전망은 없었던 시시한 화두였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백악관의 미치광이가 재선에 성공했고, 중국 발 폐렴이 대유행한 탓에 반 중국 정서가 팽배해졌으며, 원시마법 능력자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초당적인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졌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어제 이러한 성명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미국의 시민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당연한 권리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 권리란 무엇인가? 빌려준 돈을 받아낼 권리입니다. 우리 미국은 중국이 갚아야 할 1조 6천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갚을 생각이 없는 악성 채권이죠.」
「우리 미국에서는 다섯 살짜리 아이들도 경제의 기본적인 원칙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을 말이죠. 하지만 중국에선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후 주석을 포함한 어른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들의 교육이 수준 이하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양심이 없는 까닭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를 또 한 번 선택해주셨을 만큼 현명하고 사려 깊은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모두가 답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뿌리부터 부정직한 그들은 우리를 기만하고 또 기만하며 시간을 끌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습니다. 선조의 강역은 물려받으려고 하면서 선조의 빚은 왜 물려받지 않겠다는 겁니까? 어떤 나라의 상속법도 그렇게 편의주의적인 상속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국의 법으로도 그렇다더군요!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이익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제겐 그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강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케이크 위의 체리만 집어먹도록 방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의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소유라는 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빚을 중국의 기업에 지우는 게 과연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공산당원들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당이 곧 국가요 국가가 곧 당인 나라입니다. 그러면 당은 무엇입니까? 당원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초월적인 무언가일까요, 아니면 당원들이 있기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조직일까요?」
「제가 말씀드립니다. 당원들이 곧 당입니다! 그러므로 공산당원들이야말로 중국이라는 나라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나라의 주인인 그들에겐 나라의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미국 내에 존재하는 중국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 내에 존재하는 공산당원들의 자산을 압류할 것입니다! 주식! 채권! 호화로운 저택과 거대한 농장들! 계좌에 들어있는 현금에 이르기까지!」
「이에 따라 압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자산은 현시각부로 거래와 인출이 전면 동결됩니다! 이는 청나라 채권 상환에 관한 맥샐리-그린 법과 긴급 행정명령에 의거한 합법적인 조치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압류할 것인가는 이제부터 중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후 주석! 24일까지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채권 상환계획을 제출하고, 최소 백억 달러의 부채를 상환하여 성의를 보이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나는 25일 0시를 기하여, 어디까지나 1차적인 조치로서, 천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현금화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저는 이 조치가 정의를 사랑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중국이 갚는 돈은 오로지 미국 시민들을 위해서만 사용될 테니까요! 그러니 미리 인사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USA! 내게는 언제나 당신이 첫 번째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성탄절이 되기를!」
미국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오늘 아침의 미국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그렇다 쳐도, 압류 대상이 된 자산들이 이미 다양한 계약관계에 얽혀있었던 까닭이다. 당장 중국 기업으로부터 대금을 받아야 하는 미국 내 경제주체들부터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물론 중국 증시는 미국의 피해가 우스울 만큼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백악관의 주인에게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실제 현금화는 아마 1차분 천억 달러에서 중지될 것이었다. 남은 빚은 다른 식으로 활용하는 게 더 이득이므로. 하나 워낙 정신 나간 짓을 잘 하는 대통령이라 합리적인 예측이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사막의 사람들의 성지를 폭파할 때만 하더라도, 거기엔 오로지 독선과 광기만이 있었을 따름이다.
여하간, 이에 대하여 중국은 강력한 보복을 천명하였으나 그 내용은 아직 미정이었다. 많은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골치가 아플 터. 다만 이게 내부적으로는 뜻밖의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자고로 외부의 강력한 적은 내부를 단결시키는 법이니까.
그 작은 증거가 바로 현재 마주하고 있는 폭도들일 터.
“도와주세요! 제발!”
목에 올가미가 걸린 남녀들이 알몸으로 울부짖는다. 주변에서 이 자리를 촬영하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몇몇 눈에 띄었으므로, 상념을 떨쳐낸 나는 귀찮고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주어진 배역을 소화했다.
“그래봤자 당신들이 범법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당신들은 중국 시민의 재산을 훼손하고 중국 시민의 신체에 상해를 가했다. 그러니 모두 꿇어! 저항하거나 도주하는 자는 사살당할 것이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빠악! 나는 항의하는 우두머리를 권총 그립으로 후려쳤다. 실력을 숨기는 와중에도 내 육체강화가 몇 수는 더 위였기에, 한꺼번에 부서진 이빨들이 후두두둑 튀어나온다. 일격에 머리가 흔들린 우두머리가 억 어억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었다. 나는 그 옆구리를 걷어차 호흡마저 턱 막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데굴데굴 구르는 우두머리를 보고 군중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하늘을 겨냥하여 세 발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적막에 휩싸여 아래로 찌그러진 폭도들을 향해, 나는 분노한 경찰의 목소리를 냈다.
“이럴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불만이 있거든 법정에서 말해! 미국이 우리를 무시하듯 당신들도 조국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면!”
때마침 귓가에 아스라이 사이렌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라경찰지대의 지원이 도착한 것이다. 짧은 광대 노릇의 끝을 앞두고, 나는 나와 내 애들의 노출을 최소화할 방안부터 고려했다. 어제 올라간 영상이 그러하였듯, 사복경찰의 신원보호를 이유로 들면 모든 동영상 플랫폼에 대하여 자체적인 검열과 편집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정도면 충분하겠지.
중국이 최고의 검열국가라는 사실에 내가 만족감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삶이란 참으로 내일을 모르는 불확실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