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85화 (85/561)

#13. 우화(羽化) (12)

“이보시오, 동사장.”

“뭡니까?”

“국제 암시장의 무기 상인들은 다 당신처럼 정예한 사병집단을 보유하고 있소? 개개인의 전투력이 일반적인 열병(列兵)들을 능가하는?”

“규모와 수준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십중팔구는 그럴 겁니다. 이 시장의 고객들이란 국가든 개인이든 위험한 종자들 투성이이고, 취급하는 상품의 특성상 고객들이 사는 원한이 상인에게까지 돌아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과연 그렇구려…….”

“어떤 상인은 아예 고객에게 병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시리아 정부군의 최정예 취급을 받았던 「사막의 매 여단(لواء صقور الصحراء)」처럼, 하나의 독립부대로 편성되어 무기 상인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요?”

“있었습니다. 일단 장사꾼 본인이 정부군 장교 출신인 데다, 동생이 현직 해병대 사령관이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전투력이 높고, 장비를 자체적으로 조달 가능하며, 보급마저 스스로 해내는 부대는 내전이 한창인 국가에서 매력적인 상품일 수밖에 없지요.”

“대단하군, 대단해.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능가하는 법입니다.”

내가 말한 건 중동 밀수시장의 거물들 가운데 하나인 모하메드 자베르 대령의 이야기다. 서구로부터 무역 봉쇄를 당한 시리아 정부를 위해 각종 무기와 재화를 조달해주던 그는, 나중엔 아예 밀수조직 자체를 여단급 전투부대로 상품화하여 정부 측에 제공했다.

그 대가로 대령이 받은 건 적지를 약탈할 권리와 정부 조달사업을 우선적으로 얻어낼 권리, 그리고 점령지의 유전들에 대한 지분이었다. 이 권리들 중에서 가장 큰 돈이 되었을 것은 역시나 유전이다. 현대 문명은 유전 위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자베르 대령 이 인간이 장기간에 걸친 석유 밀수로 얼마나 많은 돈을 긁어모았을지는 추측조차 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 값진 권리를, 작은 욕심을 못 참아 날려먹었지.’

사막의 매 여단은 휘하 부대가 친정부 지역을 약탈하는 바람에 집권여당인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 통칭 바트당(حزب البعث)의 분노를 사 해체되었다. 여단장 노릇을 하던 자베르 대령도 국외로 추방당하는 결말을 맞이했고.

물론 대령의 동생 아이만 자베르 준장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해병대 사령관으로 남았으며, 또 시리아 정부에 대한 제1세계의 무역봉쇄도 여전하였으므로 대령의 본업이 망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삽질로 엄청난 이권을 날려먹은 건 부정하지 못할 사실.

이래서 합리적인 경영과 절제가 중요한 것이다. 때로 일탈을 하더라도 그 출발점은 역시 합리적인 사고에 두어야만 하는 것. 기본을 견실히 지키는 자의 사업은 뿌리가 깊은 나무와도 같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여깁니다.”

후샨량이 키 카드의 번호와 일치하는 보관실의 내부구획 하나를 열었다. 삐익-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철창의 잠금이 해제된다. 내부엔 도시 곳곳에서 모인 흑해자당의 무기들이 저마다 번호표가 붙은 채로 보관되어 있었다.

가오슈센이 새롭게 근심한다.

“내가 여길 열어달라니까 과기통신처장이 노골적으로 기분나빠하더군. 자기네가 밤을 새워 다 조사했으니 더 나올 게 없을 거라고. 기본적인 비파괴검사도 벌써 다 해봤다던데, 당신은 뭔가 새로운 걸 찾을 수 있겠소?”

“그들이 설마 하루 사이에 이 많은 무기들을 대상으로 전수검사를 했겠습니까? 표본을 무작위로 골라서 조사를 진행한 게 고작이겠지요.”

“그럼…….”

“반드시 무언가 나온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연구원의 안목과 무기 상인의 안목은 다른 법입니다. 내 눈을 믿어보십시오, 부서기.”

말은 이렇게 해도,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난 이미 반쯤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심증은 어제 전투를 치를 때부터 있었고.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나는 제조공정상의 특징이 뚜렷한 무기들을 차례차례 골라내어 운반용 카트 위에 실었다. 너무 거침없이 골라내면 의심을 살 것이 뻔하기에, 시간을 들여 무기를 꼼꼼히 살펴보는 시늉은 했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물어보는 말.

“주소는 아직입니까?”

털어야 할 지하실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다. 내 무의미한 동작 하나하나를 숨죽여 지켜보던 가오슈센이 흠칫 놀라듯 반응한다.

“아,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오늘 내로 정보를 줄 수 있을 거요.”

“서둘러야 할 일이긴 하지만, 너무 서두르다가 일을 망치지는 마십시오.”

“……알았소.”

가오슈센의 안색이 아까처럼 불편해졌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카트가 가득 찰 때까지 표본이 될 무기들을 골라냈다.

“됐다. 이제 조사실로 가자.”

“옙.”

경태가 복도를 따라 카트를 민다. 그렇게 이동한 조사실의 작업대엔 내가 요구한 비파괴검사용 스프레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작업대 정면엔 폐쇄회로와 별개로 기록용 캠코더가 트라이포드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세부적인 차이들을 제외하면 조사실 작업대의 기물 배치는 시신을 해부하는 영안실 작업대와 닮아있는 것이었다.

“시작합시다.”

내 당부와 턱짓에 후샨량 경독이 캠코더에 전원을 넣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벽에 붙은 체크리스트에 따라 접사(接寫)로 증거품의 상태를 기록하며, 나는 가져온 무기들을 차례차례 정밀 분해하여 작업대 위로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이런 단순작업은 경태에게 맡길까 했으나, 팔짱 끼고 구경하자면 따분한 시간이 될 터. 현장 경험 일천한 공산귀족이 관객으로 있는 자리이기도 하니 몸소 손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세정제.”

손을 내밀자 경태가 세정 스프레이를 건네준다. 침투형 비파괴검사는 세정제(Remover)로 표면을 닦고, 침투제(Penetrant)를 뿌려 구석구석 충분히 배기를 기다린 뒤, 마른 천으로 다시금 닦아낸 다음 현상제(Developer)를 뿌림으로써 완료된다. 그리하면 미세한 균열이나 스크래치, 접합면 등에 스며든 침투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무기가 대략적으로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짐작할 단서들이 나온다. 나는 그러한 단서들이 확실하게 드러날 무기들을 표본으로 가져온 것이었고.

침투제를 분사하고 닦아내는 일까지 마친 나는, 형광성 현상제를 분무하여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가까이 와서 보십시오, 부서기님.”

불을 끄고 자외선 조명을 끌어다 대자 반짝이는 빗금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부품들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이 불규칙한 빗금들은 무기 상인으로서의 내게 아주 익숙한 메이커의 개성이었다. 가오슈센이 호기심을 드러낸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ㅇ……건가?”

나는 손짓으로 기록용 캠코더를 잠시 정지시키도록 한 뒤, 공산귀족의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일반적인 공장식 제작공정에서는 마감의 흔적이 이런 식으로 남지 않습니다. 이건 즉 여기 있는 무기들이 전부 수제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뜻이죠. 일개 철물점 수준의 공구를 활용해서 말입니다.”

총열 가공에 수동식 범용선반과 드릴까지는 썼겠으나, 그 밖의 부품들은 곳곳에 투박한 도구를 쓴 흔적들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심지어 하부 리시버는 망치질로 단조를 해놓아, 형광성 현상제가 희미한 반점처럼 묻은 자리가 몇 군데 존재했다.

“수제? 수제라고? 게다가 철물점 수준의 공구를 써서?”

눈을 껌벅거리던 공산귀족이 부품들의 아귀를 맞춰보며 당황했다.

“그런 수제품이 이토록 정교할 수가 있나? 각각의 부품들이 서로 완벽하게 맞물리는데? 흑해자당이 탄 걸림 따위의 사소한 기능고장으로 애를 먹는다는 보고는 들어온 게 없소!”

“그야 단순히 장인들의 실력이 좋기 때문이죠. 지금 부서기께선 세계 정상급의 수공업자들이 호흡을 맞춰 빚어낸 작품들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정상급의 수공업자들이라니, 대체 무슨…….”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인의 기술은 곧 습관이자 손버릇인 법. 이 마감의 흔적들, 그리고 각각의 부품들을 가공한 방식들은 내게 일종의 낙관(落款)처럼 보이는군요.”

낙관이란 서예나 동양화에 작가가 찍는 고유의 도장을 말한다. 한마디로 예술가의 서명과 같은 것. 가오슈센이 흥분했다.

“이것만으로 제작자를 특정할 수 있다는 거요?!”

“예. 업계종사자로서 장담하는데, 이 장인들은 파키스탄의 다라-아담-켈(درہ آدم خیل)에서 활동하던 「알 까심(القسیم)」 공장 출신들일 겁니다.”

“외세? 한국에 이어 파키스탄마저 우리를 배신했다고? 아니, 이게 아니지.”

개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성급하고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억측을 도리질로 끊은 가오슈센은 분해된 총기를 노려보며 요구했다.

“내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부디 말씀해주시구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핵심은 다 말씀드렸습니다만……. 다라-아담-켈은 전성기에 6만 명의 수공업자들이 2천 개의 총기 제조라인을 돌리던 도시이고, 「알 까심」은 기술과 생산량 양면에서 도시의 정점에 군림하던 다섯 집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까심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상품을 애용하던 아프간의 무자헤딘들이 붙여준 것이지요.”

까심은 ‘아름다움의 주인’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소련과 미국을 차례로 상대한 이슬람 광신도들이 그들의 무기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보여주는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다라-아담-켈은 과거 탈레반의 병기창과 같았던 도시였다.

알 까심 이외에 「캄란」, 「사미울라」, 「샤리프켈」, 「샤라카이」 등도 정교한 총기복제기술로 이름들이 높지만, 여기에 내가 골라낸 증거품들은 예외 없이 알 까심 고유의 마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가문이 4대에 걸쳐 발전시킨 기술은, 그 가문에 흐르는 피만큼이나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흑해자당이 쓰는 무기 중 적잖은 수가 단 하나의 제조원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이는 그 제조원과 어떤 식으로든 공급계약을 체결한 주체가 있다는 뜻이지요.”

“무식한 흑해자 새끼들이 단독으로 그런 계약을 맺었을 리가 없소! 애초에 말부터가 통하질 않으니까! 그러니 틀림없이 외세가 개입했을 거요!”

그놈의 외세는 굉장히 좋아하네. 이 인간이 자기 이름으로 작성할 보고서에 지나친 비약이 들어가면 무능이 탄로 나서 곤란해지므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들려주었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예컨대, 중국 서부엔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들이 많지 않습니까?”

“……웨이우얼(위구르)족?”

“어디 위구르뿐입니까? 허난, 닝샤, 윈난 등지에 백만이 넘게 널려있는 게 무슬림들인데. 당신네 당이 그들의 모스크를 부수고 신앙을 탄압하며 여자를 빼앗아 한족과의 통혼을 강제해 왔으니, 이번 기회에 그 원한을 풀어보고자 브로커 역할을 자임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잘만 하면 독립의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고.”

“그쪽을 집중적으로 털어보라는 말씀이시군! 하기사 그 불순한 알라쟁이(绿绿)들은 전부터 아편이나 유통하던 불량한 족속들이었지. 과연, 과연! 마약이 오가던 경로로 무기라고 오가지 말라는 법이 있나! 내 바로 건의를 올려보겠소.”

이게 암중에서 미국에 헤로인과 펜타닐을 팔아먹고 동남아 반군에겐 무기를 대어 이익을 창출하는 중국 공산당의 간부가 하는 소리였다. 나는 제 얼굴에 열심히 침을 뱉는 공산귀족의 생각을 한 번 더 정정해주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그럼 또 다른 가설이 있단 말요?”

“그렇습니다. 공장 자체가 중국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고려해야지요.”

“……경청하리다.”

“파키스탄 당국이 북부에서 탈레반 세력을 축출하고 부족의회의 자치권을 축소시켰기 때문에, 자치권의 그늘에서 무기를 찍어내던 다라-아담-켈의 장인들은 모조리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즉 돌파구가 절실한 처지라는 거지요.”

“그래서 아예 기반을 옮긴다?”

“기반을 옮긴다기보다는 출장 서비스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겠군요. 그들은 트럭 한 대 분량의 도구만 챙기면 세계 어디서든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 도구들이 딱히 특별하지도 않기 때문에 단속에 걸릴 위험도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굳이 번거롭게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지요. 뭐든 현지에서 조달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요컨대 공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곧 걸어 다니는 공장인 셈이다. 파키스탄 당국은 그들에게 공업단지를 건설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겠노라 약속했으나, 중국 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여파로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러니 가진 기술이라곤 총과 폭탄과 대포 만드는 것뿐인 장인들은 자력으로 살길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이상의 내용을 보고서에 담아 올리십시오. 이 증거품들이 함께 올라가면 위쪽에서도 동일한 추론에 도달할 테니, 당신에 대한 평가도 그만큼 높아질 겁니다. 대국을 보는 안목과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양호한 인재라고.”

알 까심의 복제 무기들은 정품에 비해선 성능과 내구한계에 손색이 있지만, 그럼에도 기능적 신뢰성만큼은 매우 우수한 축에 들었다. 특히나 교전거리가 짧은 시가지에선 정품에 필적하는 효용을 보여줄 터. 보고를 받을 대가리들에게 사람의 지능이 있다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조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정황상의 타당함으로 말미암아 선전수단으로 써먹기엔 괜찮은 도구이기에.

깊게 끄덕인 가오슈센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이미 앞서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묻고 싶구려. 암시장의 무기 상인들은 다 그대처럼 박람강기한 자들뿐이오?”

의문, 당혹, 그리고 감탄. 공산귀족의 시선에 담긴 감정의 결들을 하나하나 헤아린 나는 가벼운 자신감으로 상대를 기만했다.

“당신은 나와 꽌시를 맺은 게 큰 행운임을 알게 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