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화(羽化) (11)
다음 날, 여객선 베크룩스의 아침은 많은 소음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첫 번째 소음은 쇠를 자르고 접붙이는 소리들이었다. 열리지도 않는 창문들은 방탄유리를 덧대어 방어력을 강화하고, 일부는 방어전을 대비하여 총안구로 개조했다. 쓸데없이 많은 의자들은 모조리 떼어다가 폐기물로 실어 보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칸막이를 설치하여 추가적인 선실들을 확보했다. 외벽 안쪽엔 케블라 섬유 소재의 파편방지 라이너를 도배하여 흑해자당의 급조폭발물 공격에 대비했다.
‘하다못해 통조림 깡통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게 폭발성형 관통탄(EFP)이니까.’
앞서 인민해방군 차량들을 일격에 싹 관통해버린 거창한 물건보다는, 오히려 개인이 휴대 가능한 크기의 폭탄들이 더 위협적이라고 봐야 한다. 정말 통조림으로 위장해서 들고 다니기라도 하면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단속한단 말인가. 고작 파인애플 통조림 사이즈의 EFP라도 이삼십 미터 거리에서 최소 10센티 이상의 철근 콘크리트를 뚫어낼 수 있다. 또 발사체가 될 금속 접시를 파편이 되도록 가공하는 경우엔 사람 대여섯 명쯤 우습게 찢어버리는 산탄지뢰가 완성된다. 캔, 화약, 금속접시. 이 세 가지만으로 만들어지는 지향성 폭탄의 유용함이라 하겠다. 점화장치는 점화용 화약과 원시적인 도화선의 조합이라도 무방했다.
두 번째 소음은 새로운 차량과 화물들을 선적하는 소리였다.
우리가 공안 흉내를 내고 다니려면 당연히 공안의 차량과 공안의 장비와 공안의 신분을 써야 한다. 어제 나와 내 애들의 실력을 확인한 가오슈센은 이른 아침부터 제 부하들을 시켜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주었다. 개중엔 가오슈센 본인의 관용차량 가운데 하나일 듯한 이치아우디(一汽奥迪/아우디의 현지 생산법인) SUV도 한 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와 경태는 차 자체보다는 번호판에 더 주목했다.
“사치스러운 번호판이로구나.”
내 평에 경태가 공감한다.
“어지간한 검문소는 하이패스로 통과할 수 있겠습니다, 형님.”
번호판의 문자와 숫자는 「粤O88899警」. 월(粤)은 광둥성의 다른 이름인 월성(粤省)에서 따온 지역 식별 문자이고, 알파벳 O는 관용차임을 나타내는 기호이며, 8과 9는 둘 다 중국인들이 길하게 여기는 숫자였다. 마지막으로 붙은 경(警)은 이 차량이 공안국 소속임을 알려준다.
다른 차량의 번호판들도 숫자의 격이 좀 떨어질 뿐 구성은 다들 동일했다. 8이나 9가 적어도 둘씩은 연속으로 들어가 있는지라,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최소한 공안의 간부급이 타고 있으리라 짐작할 것이었다.
경태가 만족스러워하는 한편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번호판이 다 좋기는 한데, 이대로는 그냥 움직이기만 해도 흑해자당의 관심을 있는 대로 다 끌게 생겼지 말입니다. 평범한 번호판을 몇 개 더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험이 없는 티를 내는 거지.”
1급 경감씩이나 되는 인간이 이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보나마나 부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서 저 혼자 결정을 내리고 뿌듯해했을 것이다. 현장 경험 없이 당 경력만으로 경찰 고위직을 차지한 낙하산의 한계라 해야 할 것이다.
일단 알파벳 O만 들어가면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차를 몰아댈 권리가 합법적으로 부여되므로, 귀한 숫자들은 사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정도의 도구였다. 미끼로 쓰기는 좋지만, 사냥을 미끼만 가지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 왜, 베이징 인근에서 사냥감을 추적할 때 써먹었던 번호판이 떠오르네요. 진짜 최소한의 규제도 없던 시절이라 사냥을 하기도 편하고 돈을 빼내기도 좋았는데. 트렁크에 금괴를 채워서 뒷바퀴가 내려앉았는데도 항구까지 직통으로 뚫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경태가 회상하는 건 중국에서의 인간사냥 사업이 마지막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베이징엔 아주 좋은 번호판 공급책이 활동하고 있었다. 관용 번호판을 너무 많이 팔아먹어서 결국 기율위원회에 덜미가 잡히긴 했지만. 이후 밝혀진 바, 그 인간이 순수하게 번호판만 팔아 벌어들인 돈이 당시 환율로 한화 사십억을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쿠궁!
시가지 방향에서 천둥을 닮은 울림이 부두까지 들려온다. 이것이 여객선의 아침을 여는 세 번째 소음, 거리와 골목마다 스며든 흑해자당이 군과 공안을 습격하는 소리였다. 몇 번의 폭음이 울려 퍼진 다음에는 따다다다닷 하는 총성들이 뒤를 이었다. 나는 그 음색만 듣고도 총기의 종류와 교전 현장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차에 실린 화물들 중 무기부터 먼저 점검하던 경태가 고개를 돌리며 어깨를 으쓱인다.
“대체 저 화약과 무기가 어디서 다 나오는 걸까요?”
“글쎄.”
어제를 기점으로 도심에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화약의 양은 명백히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오랫동안 모았다고 치면 배후세력의 도움 없이도 가능한 일이기는 한데…….
“오늘 가면 흑해자당으로부터 노획한 무기들을 한번 살펴봐야겠다. 잘하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홍콩에서 암약하고 있을 영국놈들이 여기까지 손을 뻗쳤거나, 그 외의 배후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은 지극히 높은 편이었다.
이런 대화가 오갈 즈음, 짙은 강물 내음 사이로 상큼한 향이 가까워졌다. 또각또각 다가오는 정장 차림의 미주는 여기 있는 사람 숫자만큼의 갈색 봉투들을 안고 있었다. 나는 내 몫의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조금 더 쉬다가 나오지 그러냐.”
봉투의 내용물은 위조된 시민증서와 공안 신분증, 여권, 그리고 과거 활동이력이 적당하게 기재된 공산당 당원증이었다. 일단은 가오슈센이 제공한 것들이되, 사진만큼은 이쪽에서 준비했다. 신분증의 사진이야 실물과 좀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미주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가오슈센 부서기가 저를 현장 연락담당자로 지목했으니, 하시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일찌감치 가서 자리를 잡아두려고 합니다.”
“뭐, 네가 괜찮다면야.”
“그리고 비서실장의 전언입니다만, 다이아몬드 카지노 측에서 형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하길 바란다더군요.”
“잘됐군.”
마샤트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내가 제공할 컨설팅은 내가 그들을 거두기에 앞서 그들을 미리 훈련시켜두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다. 테러리스트로서 최소한의 교육을 해놓으면 추후 전력화에 필요한 기간을 그만큼 단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젠 너도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구나?”
“……예.”
“미주 너와 네게 붙인 애들은 내가 그쪽 지휘부에 꽂아두는 칼이다. 가오슈센 그놈이 딴마음을 품거든 네가 손수 총탄을 박아주도록. 대가리든 사타구니든 거슬리는 쪽에다가.”
“예.”
미주가 찰나의 희미한 미소를 지우고서 허리를 숙였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형님.”
“수고해라.”
경태는 공안 차량에 탑승하는 미주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박 부장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간밤에 취기로 나오는 진담들을 좀 들어줬지. 가능하다면 부탁도 하나 들어주기로 하고.”
“부탁이요?”
“그런 게 있다.”
경태 이 녀석은 저 이외에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조직원이 많지 않다 보니 궁금증이 도지는 모양이지만, 내가 들은 미주의 속내는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필요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부탁은 복수에 관한 것이었고. 쓸 만한 부하가 기왕 지고 있는 빚에 다른 빚을 더하고 싶어 한다면 나로서는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일이었다.
물론 이미 약속한 충성에 새롭게 값을 매기려 드는 짓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건방진 연놈이 나온다면 공구리를 쳐서 바다에 던져버려야 마땅하지. 미주는 충분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간청했고, 난 형편이 닿는다면 들어주겠노라 답했을 따름이었다.
“어제 올라간 동영상들의 반응은 어떻지?”
내가 말을 돌리자 경태가 히죽 웃는다.
“어마어마하죠. 새벽부터 유쿠(优酷)랑 투더우(土豆) 같은 데서 실시간 랭킹 1위를 찍고 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굳이 볼 것까지야. 어차피 부정적인 반응은 다 검열되었을 텐데.”
“그건 그렇지만요.”
어제 발생한 흑해자당 바이크 돌격대와의 교전은 공산당 입장에선 아주 좋은 선전거리였다. 블랙박스 기록과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들의 인기는 곧 가오슈센의 생존과 직결되는 지표였다. 앞으로도 공적을 쌓는 동시에 이런 식의 여론전을 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어쨌든 반응이 좋다니 가오슈센 패거리도 한숨 돌렸겠군. 미주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거든 가오슈센에게 전해라. 압수된 흑해자당의 무기들을 살펴보려고 하니 시 공안국 증거품 보관실을 열어달라고. 동행할 간부도 한 사람 있어야겠지.”
“넵.”
“그리고 침투식 비파괴검사에 필요한 약제도 준비해두라고 해.”
“어……. 그걸 금방 구할 수가 있을까요? 갑자기 구하려면 몇 시간은 발품을 팔아야지 싶은데요.”
“시 공안국쯤 되면 과기통신처(科技通信处)가 비품으로 가지고 있을 거다. 혹은 협력망으로 묶인 대학에서 가져오거나. 가오슈센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손 쳐도 겨우 스프레이 몇 개 가지고 생색을 내진 않겠지. 과기통신처 자체도 계파 싸움에 직접 가담할 만한 부서가 아니고.”
“음, 그러네요. 알겠습니다.”
가오슈센이 머무는 공안지부가 가까웠으므로 연락이 오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50분 뒤, 광저우시 공안국 본청에 도착한 나는 가오슈센이 제 측근과 호위를 대동하여 직접 마중을 나와 있는 걸 보곤 살짝 눈을 찌푸렸다. 부하 하나 보내면 충분할 자리에 왜 최상급자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업무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다른 계파와 부서의 관심을 과도하게 끌 것이 문제였다. 다들 생각하겠지. 저 새끼가 대체 여길 뭐 하러 왔을까? 또 저 새끼가 마중을 나온 상대는 뭐하는 인간들일까?
‘가뜩이나 위장이 충분치 않은 마당에.’
예전부터 애용하던 실리콘 마스크는 상시 교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선 착용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능력자로서의 힘과 급가속, 충돌에 따른 충격 등을 견디지 못할 우려가 있으므로. 안면 피부가 통째로 비뚤어지는 꼴을 내보이면 그것만큼 의심스러운 몰골이 다시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지금은 색이 짙은 보안경과 복면의 조합, 발라클라바, 또는 방독면 정도가 최선이었다. 여기저기서 최루탄이 뻥뻥 터지고 있는 환경이라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혹시나 가오슈센이 벌써 도둑질할 목표를 확보하여,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노출을 피하고자, 소심하기 짝이 없는 마음에 몸소 전하러 온 거라면 그나마 이해 가능한 범위지만……. 내 속을 모르는 멍청이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오셨구려. 기다리고 있었소.”
“……제발 보는 눈 좀 신경 씁시다.”
“아.”
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오슈센은 이제야 태도를 바꾸며 목소리를 키웠다.
“들어가세! 당과 조국을 위해 오늘도 힘내야지! 하하하!”
증거품 보관실은 본청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검색대를 지나 계단을 내려간 나는 철창과 방탄유리로 막힌 창구, 그리고 은행 금고를 연상케 하는 방폭문을 볼 수 있었다. 각종 증거물들 중에서도 특별히 위험하거나 가치가 높은 것들을 따로 보관해두는 공간. 당연히 증거품 조사실도 딸려있다.
가오슈센의 측근으로서 이미 안면을 익힌 사이인 후샨량 3급 경독이 창구의 경관에게 신분증을 내밀자, 잠시 후 짧은 전자음에 이어 금속성의 구동음이 울리며 방폭문이 개방되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창구 담당자가 보관실 내부구획의 키 카드를 내어주며 담담한 어조와 기계적인 태도로 말한다.
“허가된 시간은 두 시간이며 증거품의 외부 반출은 별도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증거품이 훼손되거나 멸실될 경우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조사실에서는 사전 허가를 받은 증거품에 대하여 허가를 받은 조사만을 진행해야 하며, 조사를 진행하기 전 증거품의 상태를 면밀히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상태 기록은 조사실에 비치된 청단(清单/체크리스트)을 준수하십시오.”
이 건조한 경고가 공산귀족에겐 적잖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가오슈센은 방폭문이 닫히자마자 인상을 구기며 불만을 쏟아냈다.
“감히 내게 저딴 태도를 보이다니. 내 입장이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그러자 후샨량이 제 상급자의 심기와 천장을 번갈아 살펴본다. 사각이 없도록 배치된 보관실 내부의 폐쇄회로들은 시각적인 감시만 가능한 모델들이었다. 후샨량이 달래듯이 말한다.
“그냥 잠깐의 행운이라 생각하는 거겠지요. 어차피 머지않아 죽을 목숨이라고. 공적을 더 쌓아나간다면 하나둘 먼저 숙이고 들어오기 시작할 겁니다.”
“공적, 공적이라…….”
공산귀족의 누그러진 시선이 나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