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83화 (83/561)

#13. 우화(羽化) (10)

재료에는 한계가 없으며 음식에는 계급이 있다(材料無限 食在階級). 중국인들이 미식에 집착하고 희귀한 식재료에 환장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곧 자신의 지위를 보여준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계급이 올라갈수록 강해진다. 내가 남들보다 귀하다면, 먹는 것도 남들보다 귀해야 하는 것.

같은 맥락에서 식사는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도 된다. 중국인들의 사업 이야기가 매양 식당에서 정찬과 함께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요한 손님에게 격조 높은 식사를 제공함은, 귀빈을 접대하는 성의이기 이전에 본인의 체면을 세우는 행위인 것이다. 손님 또한 그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나오는 음식들을 조금씩 다 남겨놓음으로써 주인의 준비가 부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게 예의바른 행동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오슈센에게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 했던 것은 그 공산귀족의 자존심을 대놓고 긁어놓는 짓이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지만 손님을 굶기면서 기다리도록 만들고, 또 손님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게 하다니. 거의 면전에서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을 터.

그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부둣가의 레스토랑을 통째로 비우고는, 먹을 사람의 숫자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양의 호화로운 요리들을 준비시켰다. 본인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처지지만 부디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기를 바란다며.

레스토랑에 들어서기 전엔 보안수색을 철저하게 진행했다. 꼭 가오슈센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가오슈센이 즐겨 찾는 업소라면 다른 간부들이 수작질을 부려놓았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흑해자당이 공안간부를 노리고서 폭탄을 터트리거나 습격을 가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인간사냥에 종사하며 중국인들을 많이 상대해본 경태가 가벼운 우려를 표했다.

“형님의 사람 다루는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가오슈센 그 인간 자존심을 좀 과하게 건드려 놓으신 거 아닐까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첫인상이 길게 가는 것이다. 내가 그놈의 아랫사람은 아니지 않으냐.”

내가 나를 높여야 상대도 나를 높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요. 당의 높으신 분들은 대체로 속이 좀생이 같던데 말입니다.”

“잘 먹고 나서 최고의 만찬이었다고 인사나 전해주면 그만이다. 괜한 걱정 말고 들기나 해라. 이거 겉과 속의 대비가 아주 일품이구나.”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지금 먹는 메뉴는 통째로 구운 돼지새끼(燒乳猪)다. 껍질이 불그스름하게 익은 통구이가 한 사람 앞에 하나 꼴로 나와서는, 금빛 쟁반 위에서 종업원의 전문적인 칼질로 해체되었다. 칼을 쓸 때마다 나는 스릉스릉 하는 울림들은 곧 얇고 단단한 껍질이 내는 소리였다. 장식이랍시고 형태가 그대로 남은 머리통의 눈알에 붉은 과실을 꽂아 장식한 건 제법 악취미였으나, 그래도 보기 드문 진미(眞味)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요리. 어느 나라든 공무원은 맛있는 집을 아는 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맛이 좋다 한들 이걸 다 먹기는 어려웠다. 한 끼로 먹기에도 과하게 많은 양인데, 마리당 5킬로그램씩은 나갈 황제게들이 먼저 식탁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정말 작정하고 남기라고 나오는 코스 요리들이었다. 가장 맛있는 뱃살만을 맛보고서 아쉽게 식기를 내려놓은 경태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말을 꺼냈다.

“아, 그렇지. 형님.”

“뭐냐?”

“저 불을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신체강화 이외의 새로운 원시마법에 눈을 떴다는 말이다. 내가 회로를 열어준 녀석들은 기본적인 마력 운용법 또한 배웠지만, 아직까진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았었다. 언젠가는 나오려니 기다리고 있던 내게, 경태의 성공 선언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주변이 싹 조용해진 가운데, 식기를 내려놓은 나는 칭찬을 기대하는 사냥개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얼마 안 됐습니다. 한두 시간 전? 별 생각 없이 마력을 돌리고 있는데 담뱃불 사이즈로 불꽃이 튀지 않겠습니까? 어이쿠야 하고 그만뒀죠.”

두 시간 전이면 내가 가오슈센을 기다리는 동안 경호팀이 별도의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다. 즉 공안지부 안에서 능력자로서의 우화를 맞이한 셈. 난 눈을 살짝 찡그렸다.

“다소 부주의했구나.”

“죄송합니다. 진짜 안 되던 게 그렇게 갑자기 터져 나올 줄은 몰라서.”

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경태 녀석.

“그래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카메라를 포함해서요. 불도 아주 작았고요.”

“어떠냐. 실전에 쓸 수 있을 것 같으냐?”

“어, 글쎄요. 육탄전에서라면 어찌어찌 써볼 법도 한데, 그래도 아직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화력도 약하고, 몸에서 떼어놓기도 쉽지 않고, 또 그걸 활용하는 기교를 새로 몸에 익혀야 하기도 하고……. 아무튼, 한번 직접 보시겠습니까?”

이미 전체적인 점검이 끝난 실내였지만, 나는 한 번 더 구석구석을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

경태는 손가락을 퉁겨 불꽃을 일으켰다.

“손가락은 왜 퉁기는 거냐?”

“폼이 살잖습니까. 불이 작으면 멋이라도 있어야죠.”

“…….”

폼이야 어쨌든 경태가 일으킨 불꽃은 진짜였다. 비록 열이 낮고 크기가 작긴 했으나, 회로를 타고 흐르는 마력은 내가 처음 이 녀석의 회로를 설계할 적에 그렸던 청사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막힘도 없고 낭비도 없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축하한다. 제대로 해냈어.”

“감사합니다, 형님. 크, 이럴 때 축배가 센 걸루다가 한 잔 딱 들어가 줘야 하는 건데……. 근무 중이어서 아쉽지 말입니다.”

“마셔라.”

“예?”

“네 주량에 이깟 술 한 잔이 문제가 될까. 그러니 마셔라.”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종업원을 호출했다. 공손한 점원에게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술을 요구하자, 이내 나오는 건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마오타이주(茅台酒)였다. 그것도 최상급 라인에 속하는 차이푸(財富) 마오타이.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가짜가 너무 많아서 맛보기 어렵다는 명주다.

“와, 이거…….”

입 꼬리를 귀에 걸고서 기대감을 드러내는 경태.

“이거는 진짜 제가 먼저 맛을 봐야하는 술이네요. 형님께 가품(假品)을 올릴 순 없으니까요.”

“난 됐으니 잔이나 들어라.”

신체강화 술식으로 대사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곤 하나, 그래도 50도가 넘는 독주는 썩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잡생각이 많아 잠이 오지 않을 때라면 안정제 삼아 신세를 질 법도 하지만……. 마개를 뜯은 나는 병을 기울여 경태의 잔을 채워두었다. 두 손으로 황송하게 받은 경태가 눈을 반개하고 향을 음미하더니, 이내 잔을 꺾어 꿀떡 비워버렸다.

“크으-! 이거지!”

“진품이냐?”

“옙! 아주 나이스한 진품입니다! 나갈 때 꼭 챙겨가야겠습니다.”

입맛을 짭짭 다시는 품새를 보니 어지간히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이 녀석이 진짜라면 진짜인 거겠지. 최소한 진짜에 뒤떨어지지 않는 가짜이거나. 손에 쥔 술병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마음을 바꿔 이 자리의 모두에게 잔을 돌리기로 했다. 지금쯤이면 갑수의 유가족들이 가장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것이었다.

“그냥 다들 한 잔씩 하자. 축배가 아니라, 서갑수 부장의 헌신과 죽음을 기리는 의미로.”

이제까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미주가 흠칫 하고 반응한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녀석을 향하여 남는 손을 까딱거렸다.

“이건 너부터 받아라.”

“앗, 네.”

미주가 받쳐 든 잔에 꼴꼴꼴 독주가 채워진다. 난 남은 부하들을 줄 세우는 대신 테이블을 한 바퀴 돌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잔들을 마저 채워주었다. 배에서 내릴 적에 인원을 적게 끌고 온 덕분에, 순서가 다 돌고도 병엔 절반이 좀 못 되는 양의 술이 남아있었다. 난 마지막으로 내 잔을 채워서 들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진 채로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악운이 따라주는 편이었다.”

정말이다.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게 어딘가. 아무리 내가 직접 진두지휘를 했어도 운이 나빴다면 몇 명쯤의 손실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운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건 덜떨어진 겁쟁이의 현실도피에 불과하겠지. 갑수의 죽음은…… 굳이 따지자면 우발적인 사고에 가까운 업무상의 재해였지만, 나와 너희 모두가 하나의 사실을 새롭고 분명하게 인지하는 계기로 삼을 순 있을 거다. 아무리 서열이 높은 간부라도 안전할 수만은 없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차장급 이상의 간부가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건, 불법적인 사업에 발을 많이 들이고 있는 내 조직에서도 대단히 드물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마법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기 이전엔 가장 위험한 역할을 도맡는 경호실과 국제사업부 밀수처 애들도 일 년에 몇 명이 죽을까 말까 했었으니.

“나는 갑수의 헌신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녀석은 내게 빚을 갚았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믿음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는 짐승 새끼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항상 고마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내 너희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받아낸 약속들은 내가 가진 가장 귀하고 값진 자산이며, 우리 조직의 근간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설령 조직의 물질적인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사람만 남아있으면 조직을 재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자산보다는 항상 사람을 챙기는 게 먼저인 것이다. 언젠가 수연이 위험한 제언을 올렸을 때 내가 망설임 없이 각하해버린 이유였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언제 어느 때라도 무가치하게 소모하지 않겠다. 너희를 성벽으로 삼아 의지하더라도 벽 뒤에 안전하게 숨어만 있지는 않을 것이며, 불가피하게 약속의 최종적인 이행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일을 내 뼈에 새기는 손실로써 기억하겠다.”

약속의 최종적인 이행이란 결국 목숨 빚을 목숨으로 갚는 일을 말함이다. 이는 내게 뼈에 새기는 아픔보단 뼈에 새기는 짜증과 분노에 가깝겠으나, 어쨌든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현장에서 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종종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는 배경엔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관리하려는 의도 역시 깔려있는 것이었다.

“들어라.”

잔을 눈높이로 올리자 여러 잔들이 뒤따라 올라온다.

“갑수를 위하여. 그리고 나와 너희들을 위하여.”

목구멍으로 뜨끈한 차가움이 내려간다. 속이 든든하게 차있으니 겨우 이걸로 정신이 무뎌질 일은 없을 테지. 오늘 밤엔 이틀간 밀린 결재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다이아몬드 카지노에다가 메시지도 한 통 보내놓고.

죽은 자를 기리며 술을 돌렸어도 분위기가 무거워지진 않았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염두에 두고서 일하는 놈들이고, 꼭 곡소리가 나야만 추모가 되는 게 아니니까. 잔을 내려놓은 나는 술병의 뚜껑을 닫고서 경태에게 말했다.

“남은 건 미주에게 양보하자.”

“아이구, 그러믄요.”

내가 병을 밀어주니 미주가 당황하며 받아서는, 잠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제 앞에 놓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마시고 하룻밤 취하기에 적당한 양의 술이다. 그리고 내가 취할 만큼의 술을 준다는 건, 다음 날 반나절쯤 늦게 업무를 시작해도 이해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자리를 끝내고 여객선으로 복귀했을 때, 수연은 여객선의 재정비를 절반 이상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이동식 거점 겸 작전본부로써 기본적인 역할은 당장이라도 수행할 수 있도록. 특히 집중치료실 여덟 병상이 벌써 가동준비를 마친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인력손실 예방은 중요한 거지. 특히나 여기서의 사냥은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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