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82화 (82/561)

#13. 우화(羽化) (9)

가오슈센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난색부터 표했다.

“아니 되오. 당신 말대로 이 지역의 삼합회는 당과 국가의 더러운 심부름꾼들이란 말요. 그들을 대책 없이 치워버렸다간 그들을 완충으로 끼고 추진하던 비밀스러운 사업들이 전부 다 허공으로 떠버리고 마는데, 나더러 그 뒷감당을 어찌 하란 말씀이시오? 더구나 놈들이 상납금을 바치던 꽌시가 나 한 사람이 아니건만, 줄이 닿아있는 다른 기관과 간부들의 분노는 또 어떻게 받아내라고?”

여기까지 주르륵 쏟아낸 가오슈센이 떼를 쓰는 애새끼처럼 도리질을 쳤다.

“나는 못하오. 그건 나를 더 빠르게 죽이는 길이오!”

중앙당의 까마득한 윗선들을 포함하여 국가안전부, 총참모부 등 쟁쟁한 방첩기관들이 광둥 삼합회에게 하도급을 주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는 하다. 하다못해 동남아에서 생산된 헤로인과 펜타닐을 유통시키는 과정에서도 삼합회의 조직망은 필수적인 도구일 터. 삼합회가 붕괴해버리면 분기마다 최소 수백억 위안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었다.

결코 수면 위로는 드러나지 않을 손실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뒷주머니를 차던 자들의 분노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겁이 너무 많으시군요.”

한순간 표정관리에 실패하는 가오슈센.

“부서기님이 하신 말씀엔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어디가?”

“삼합회를 치워버리면 그들에게 맡겼던 사업들이 허공으로 떠버린다는 부분 말입니다.”

“그게 틀렸다고?”

“예. 틀렸습니다. 왜냐면 그 사업들 대부분은 진작부터 중단된 상태니까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허공에 뜨고 말고 할 것도 없는 판국이지요.”

“무슨, 무슨 소리요?”

간접적으로 떡고물이나 주워 먹던 처지라면 모를 만도 하지. 나는 업계의 전문가이자 예의바른 사업 파트너로서 가오슈센에게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우선, 그들의 가장 큰 사업이자 돈줄이었던 마약 유통부터 살펴봅시다.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최대의 적국으로 중국을 지목한 사실은 들어서 알고 계실 겁니다. 예전에도 불평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엔 아예 공식적으로 언명했다는 점이 중요한 거지요.”

내가 볼 때 이는 반중정서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 지지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대중 강경외교의 명분을 다지고자 추진한 일이었다.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단속을 벌이며 마녀사냥 같은 재판을 거듭한 결과, 북미의 삼합회 분파들과 그 현지 파트너들은 잔뿌리조차 남기지 못하고 초토화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자들도 적잖게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으나, 그건 미치광이 같은 미국 대통령과 반중정서가 골수까지 스민 미국 시민들에겐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폭동, 초능력자에 의한 범죄 급증, 전율하는 거인의 침략 등등 달리 이목을 끌 관심사들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 쪽의 시장은 멀쩡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지요. 이런 정세 속에서 마약을 계속 팔아넘긴다는 건, 유럽 국가들에게 제발 미국의 손을 잡고 중국을 패달라고 애걸하는 수준의 멍청한 짓거리니까요. 그거야말로 미국의 외교 사업을 전력으로 도와주는 이적행위입니다.”

결론적으로, 삼합회를 거치는 모든 마약유통은 일시적으로나마 완전히 중지되고 말았다.

“그건, 음, 확실히…….”

납득하여 표정을 누그러뜨리는 가오슈센을 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부 핵심도시의 공안 관계자인 이 인간이 내가 말한 상황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 자체가, 삼합회의 마약유통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통제력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국가안전부든 총참모부든 광둥 삼합회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이다.

아니었다면 삼합회는 계속해서 마약을 팔아댔을 테고, 중앙에선 강력한 단속명령을 내렸을 것이며, 가오슈센은 명령을 수행하는 실무자로서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을 터였다.

나는 자세를 바꾸며 말을 이었다.

“남은 건 인신매매나 무기밀수 따위의 잡다한 사업들인데, 그 가운데 당신네 당에게 쓸모가 있는 건 무기밀수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무기는 마약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며, 암시장에서의 국제적인 무기 유통은 대개 부정기적이면서 단발적인 거래들을 통해 이루어지죠.”

“그래도 필요하긴 한 거잖소.”

“어차피 여차하면 잘라낼 꼬리로써 써먹던 일회용품들이 아니었습니까? 다시 필요해지기 전에 새로운 심부름꾼이 준비되어 있으면 그만입니다.”

가오슈센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를테면 동사장의 무명회사와 같은?”

“아뇨. 삼합회 떨거지들의 빈자리는 부서기님이 고삐를 틀어쥔 놈들로 채워야지요. 우리 회사에도 지분을 좀 챙겨주기는 하셔야겠습니다만, 과욕을 부릴 마음은 없습니다.”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한다는 거요?”

“과욕을 부릴 마음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중국 땅은 외국인이 고정된 기반을 가지고 장기적인 사업을 경영하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잖습니까. 무릇 사업가라면 가질 수 없는 것과 가져선 안 되는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돈만 보고 앞 다퉈 중국에 진출했던 각국의 기업들이 결국 무슨 꼴들을 보았던가. 중국의 음지는 양지보다 더 적대적인 사업 환경이었다. 양지에서와 달리 타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

“허.”

탄식한 가오슈센이 내게 사과한다.

“미안하오.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구려.”

“아닙니다.”

“하지만 말이오, 놈들이 당장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해도, 놈들의 연줄마저 없어진 건 아니지 않소. 그 문제는 어찌 해결하실 셈이오? 거기에 대해서도 뭔가 계획이 있으시오?”

“그건 그냥 돈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돈이라니? 무슨 돈?”

“당신 정적(政敵)들의 지하실을 털어서 나오는 돈.”

“…….”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가오슈센이 곧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동사장. 지금 내게 도둑질을 제안하는 거요? 도둑을 잡는 게 임무인 공안 간부에게?”

“도둑을 잡긴 잡을 겁니다. 도난당한 재화 일부가 삼합회의 사업장에서 발견되긴 할 테지만. 정적들의 지하실과 금고 속에 꼭 지폐만 있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하하!”

긴장된 웃음을 터트리는 공안 간부.

“아까 관계는 우리가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셨던 게 이런 뜻이었소?”

“장물과 함께 다른 증거들이 발견된다면 삼합회와 흑해자당의 관계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삼합회엔 흑해자 출신 조직원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호적이 없는 인구인 흑해자들은 태생적으로 정상적인 구직활동이 불가능하다. 어찌어찌 정직하게 일을 하려고 해도 사장들이 반드시 수당을 떼어먹고, 그렇게 수당을 떼어먹히더라도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할 데가 없는 까닭이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집을 사지도 못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하지도 못하며, 다치거나 병이 들면 생사를 순전히 운에 맡겨야만 한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불법인 흑해자들은 타고난 숙명처럼 불법적인 사업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합회의 행동대에서 흑해자의 비중이 상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적에 얽힌 흑해자들의 설움을 아는 삼합회는, 호적 밀매나 위조 등을 미끼로 삼아 조직에 대한 흑해자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곤 했다. 즉 법적으로 사람이 될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삼합회의 흑해자들은 흑해자당에 가담한 부류들만큼 막막하고 절박한 집단이 아니지만, 위쪽에서 보기엔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은 금수새끼일 뿐이다. 나는 그 공산귀족들의 계급적 몰이해를 부추겨 이득을 볼 작정이었다.

“그건 그렇다 칩시다.”

가오슈센이 끄덕끄덕 고갯짓을 한다.

“가장 중요한 ‘의적질’에선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소?”

“정보만 주십시오.”

“정보?”

“누구의 자산이 어디에 은닉되어있는가에 대한 정보 말입니다. 부서기님의 숙부께서 지금은 비록 영어(囹圄/감옥)에 계신 몸이라도, 그 전엔 성(省) 전체를 총괄하는 감찰위원회 주임이셨잖습니까. 그분에겐 분명 숨겨둔 비수 한 자루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당 간부들이 차명으로 얻어두었을 저택들을 하나하나 추적해서 내 눈으로 살펴봐야겠으나, 정말로 그래야 할 일은 없겠지. 중앙당 진출이 목전이었을 권력자가 아무 보험도 안 들어놨을 리가 있나. 적의 약점에 관한 지식은 사라질 위험이 없는 우수한 보험이다.

물론 그 정보를 얻으려면 우선 가오슈센이 숙부 가오닝후이와 비밀리에 접촉을 해야 할 테지만, 그 정도는 스스로의 인맥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정보만 전달해주신다면, 나머지 일은 모두 나와 내 회사가 처리하겠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중간에 잡히거나 꼬리를 밟히기라도 하면?”

이렇게 멍청한 질문이 나올 수가 있나? 난 한심함을 감추며 건조하게 대꾸했다.

“내가 거기까지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까? 세상에 리스크가 따르지 않는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서기.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경우의 결말뿐이지요. 유사시 외국으로의 탈출 정도는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가벼운 면박을 받고 고민하던 가오슈센이 이내 다시 한 번 끄덕인다.

“……해보겠소. 잘하면 나만이 아니라 숙부님께도 살길을 열어드릴 수 있겠군.”

“나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해내기만 한다면 당신은 나와 숙부님의 형제로 대우받게 될 거요.”

“그것도 좋겠지요.”

가오슈센과 가오닝후이에게 동시에 형제가 된다는 건, 족보를 개차반으로 만들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꽌시로서 핏줄과 같은 취급을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시려오? 그러니까, 물증으로 쓸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 말이오. 순수하게 흑해자당을 털어서 나오는 이익이라면 당연히 동사장에게 많은 비율이 돌아가야 맞겠으나, 이건 나도 적잖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잖소.”

적잖은 위험은 무슨. 가오닝후이가 수감당한 상태라곤 해도 그의 계파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성 감찰위원회 주임쯤 되면 숙청을 하더라도 법으로 정해진 재판 절차를 다 밟아야 하며, 최종판결 전까지는 혐의가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

고로 위험 운운하는 가오슈센의 말은 가소롭기 그지없는 것이었으되, 나는 이 미래의 ‘형제’에게 얼마든지 호의를 베풀 용의가 있었다.

“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눕시다.”

내 말에, 여기까지 기대하진 않았을 가오슈센이 혀로 입술을 적신다.

“그렇게 해주시겠소?”

“난 신용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작업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될 것이고, 당신은 그 영상을 통해 내 공정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단.”

“단?”

“훔쳐낸 금품과 귀중품들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증거물로 전용할지는 온전히 내가 결정해야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간단히 말해 네 참을성과 절제력을 못 믿겠다고 하는 소리였다. 증거물로 삼는 재화의 액수가 곧 흑해자당에 대한 단속 실적이 되는 마당에, 훔쳐낸 금품을 재투자하길 아까워한다면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을 테니까.

“동사장께선 나라는 사람을 너무 무시하시는군.”

가오슈센이 맥 빠지는 기색으로 동의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소.”

“저야말로.”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시구려. 내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해드리리다.”

받아야 할 지원은 많다. 사냥에 쓰일 공안용 무기와 장비들, 차량과 번호판, 위조된 신분증, 공안 인트라넷 접속권한, 순라경찰지대의 인력과 시설에 대한 정보 및 비공식적인 통제권한 등. 장물을 바닷길로 빼내려면 수상 검문검색권한도 필요하겠으나, 현 시점의 가오슈센에겐 다소 무리가 있는 주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장 급한 것부터 요구했다.

“여기서 가까우면서도 괜찮은 음식점 하나만 추천해주십시오.”

“……음식점이라니?”

“당신을 기다리느라 난 내 애들에게 밥도 먹이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아랫사람들을 굶기는 건 우두머리 된 자의 부끄러움이지요.”

“허, 허허…….”

조금 굳어진 가오슈센의 낯빛에 불그스름한 핏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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