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화(羽化) (8)
당초의 목적지였던 공안지부에 도착하고서 대기하기를 반나절. 광저우 공안국 부서기이자 1급 경감인 가오슈센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미안하오. 낮에 있었던 반동적 소요사태의 뒷수습에 시간이 꽤 걸렸거니와, 당신들이 내 체면을 살려준 덕분에 얼굴을 내밀어야 할 자리가 많았소. 이해해주시길 바라오.”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서 그냥 앉은 채로 대답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이걸로 당신과 당신 아랫사람들의 수명이 며칠쯤은 늘어났을 테니, 몇 시간의 낭비쯤은 감수할 만하지요.”
“하하.”
반평생 갑질이 일이고 하대가 일상이었을 당 간부와의 관계정립을 위해 일부러 날선 태도로 대꾸했음에도 불구하고, 볼이 투실투실한 가오슈센은 화를 내기는커녕 내 뒤에 서있는 박미주와 반가운 눈인사를 나누고는 웃는 낯으로 나를 상대했다.
“리 동사장……. 어차피 가명이겠지만, 어쨌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시로군. 내게 두 번째 인생을 주고 세상을 떠난 서 노형(老兄)의 주인이자, 인간사냥과 무기밀수로 명성이 높은 ‘무명회사(無名會社)’의 최고 경영인.”
무명회사라. 이놈들 사이에선 내 회사가 그렇게 불리고 있었나 보군.
“서 노형은 자기가 당신 덕으로 살아있는 목숨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지. 그런 인연이 있었던 사람치곤 젊어 보여서 뜻밖이오. 적어도 내 또래의 누군가를 상상했건만.”
아무래도 대역이 아닐까 의심하는 눈치였는데, 그런 의심은 오히려 유익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무난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이래봬도 내가 갑수 그놈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허? 능력만 비범한 게 아니셨구려!”
털썩. 맞은편에 앉은 가오슈센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짧은 치마를 입은 비서가 그 몫의 찻잔을 내어왔다. 비서가 허리를 기울일 때 그녀의 엉덩이를 당연하다는 듯 툭툭 두들긴 그는, 비서가 눈웃음을 치며 물러난 후에 내게 물어왔다.
“내 귀한 손님을 모셔다놓고 마냥 기다리게 만들기가 면구하여 특별한 접대를 하라고 일러두었소마는, 도착해서 들어보니 동사장께서 단칼에 거절하셨다고 하더군. 얼마나 단호했는지 저 아이가 마음이 상할 지경이었다던데. 혹시 외모가 취향에 맞지 않으셨소?”
“난 일을 하러 왔지, 떡을 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딴 데 한눈을 팔면서 해도 그만일 일감이라면 이렇듯 직접 출장을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그렇잖아도 성욕 해소를 번거로운 과제로 여기는 나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새끼와 구멍동서를 맺겠는가. 한편으로는 과거 축첩 문제로 증발해 버린 꽌시가 떠오르기도 하여 심히 불쾌해지는 수작질이었다.
“흠. 과연 수하들이 그토록 따를 만한 성실함이시오.”
끄덕끄덕 납득한 가오슈센이 보다 진중해진 목소리를 낸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동사장의 회사가 과거 이 중국 땅에서 종종 한국 출신 사기꾼들을 사냥해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소. 당신들의 추적 차단과 흔적 지우기가 지나치게 전문적이라는 점이 종종 관계자들의 우려를 사긴 했지만, 여하간 그건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지. 욕심이 과한 다른 사냥꾼들과 달리 동사장의 회사는 사냥에 성공할 때마다 꼬박꼬박 성의표시를 했었으니까.”
“그랬지요.”
중국행을 택하는 사기꾼들은, 대개 몸만 중국으로 갈 뿐 사기행각으로 벌어들인 자금의 많은 비율을 중국 이외의 제3국에 묻어두는 편이었다. 중국의 관료와 부자들도 자기들 재산을 국경 밖으로 빼내지 못해 안달인 판국에 뭐 하러 순진하게 바리바리 다 싸들고 들어간단 말인가.
따라서 우리의 인간사냥은 중국 관계당국의 입장에서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얼마나 이득이 되었으면 나중엔 아예 우리를 제쳐놓고 지들이 사냥에 나섰을까. 자칫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위험마저 감수해가면서. 이것이야말로 2010년대 중반부터 조직의 중국 내 인간사냥 사업이 급격히 기울어버린 이유였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가져와야지.’
공산당의 사냥개들을 죽이고 나서, 사냥개의 빈자리를 우리 회사의 용역으로 채우는 편이 이상적일 것이다.
중국의 감시 시스템이 미비하던 시절엔 성의표시를 할 필요도 없었으나, 이제는 공권력이 제공하는 보험을 들어두어야 안전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이익의 간접적인 수혜자였소.”
간접적인 수혜자였다는 말은, 내 회사의 인간사냥이 한창일 땐 상납금을 직접 전달받을 위치가 못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나마도 엄밀하게는 숙부의 후광이 있었기에 비로소 받을 수 있었던 것일 테지만.
“그래서 당신네 회사의 경험과 비방(祕方/노하우)이 흑해자당을 추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 회사가 찾고 우리가 잡고. 딱 그 정도를 기대했더란 말이오. 하나 오늘 동사장과 부하들이 보여준 실력은 정말이지-”
탁자 위로 깍지를 끼며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이는 가오슈센.
“정말이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것이었소.”
언뜻 들으면 칭찬이지만 안에 뼈가 든 말임을 알아차리긴 어렵지 않았다.
“의심스럽습니까?”
“은인의 은인을 의심하긴 싫으나, 맞소. 어찌 일개 민간인들이 그러한 역량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내가 혹시 외세를 끌어들이는 게 아닌가. 단순한 누명이 아니라 진정으로 반역자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근심을 떨칠 수 없구려.”
우리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너희가 지나치게 무능한 것이다, 이 돼지새끼야.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으나, 나는 겉으로나마 공감을 표해주었다.
“이해합니다. 중국의 상황이 상황이니.”
“알아주시니 고맙소이다.”
가오슈센이 피곤한 기색을 내비친다.
“내 근심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은 이번에 동사장의 조국이 보여준 결정적인 배신이오. 한국은 우리 대국과 맺어온 우의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리고 미 제국주의자들의 편에 서지 않았소? 그것이 소방(小邦/작은 나라)의 생존전략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으로 은혜를 모르는 비열한 짓이 아닐 수 없소. 우리 대국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풀어왔는데…….”
배신. 배신이라. 여기서 말하는 배신이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거대 군사협력체의 창립멤버가 되기로 한 한국의 선택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군사협력체의 이름은 「환태평양 조약기구(Pacific-Rim Treaty Organization)」. 줄여서 「파르토(PARTO)」 또는 「파트레오(PARTREO)」라고 부른다.
환태평양 조약기구의 탄생은 미국이 환태평양 지역의 동맹과 우방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 결과였다. 미국인가, 중국인가. 중립은 없다.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류하는 국가엔 중국과 같은 수준의 경제제재를 가하리라는 미치광이 같은 선언.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었다. 갈수록 더 많아지고 강해지는 원시마법 각성자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인구가 곧 비대칭전력을 담보하게 된 시대에, 14억 4천만의 인구를 지닌 중국의 비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할 재앙이었으니까.
이에 맞서 중국은 한국에게 제2의 한한령(限韩令)을 비롯해 온갖 형태의 후과(後果)가 따르리라 경고하였으나, 갈림길에 선 한국은 결국 미국을 선택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이되, 실제로는 미국 이상으로 중국의 위협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입지 때문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야말로 차원이 다른 후과를 겪게 될 터였으므로.
요즘 비뚤어진 애국심에 경도된 일부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더러 한간(韩奸)이라 일컫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제시대의 민족반역자들을 뜻하는 한간(漢奸)과는 발음이 같고 성조만 다른 한 글자 차이다.
난 그 몰지각한 군중심리와 그것을 부추기는 공산당의 생존전략을 곱씹으며 말했다.
“이해는 합니다만 쓸모없는 걱정이로군요.”
“그렇소?”
“설령 내가 외세에게 매수당한 죽음의 상인이라 하더라도, 부서기님 당신에겐 여전히 내가 가장 나은 선택일 테니까요. 답이 없는 걱정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에 불과하다면?”
“선택지가 최악과 차악뿐이면 차악이 곧 최선입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
“비록 우연한 기회이긴 했지만, 난 이미 당신에게 대가 없는 용역을 제공했습니다. 솔직히 오늘 오후 꽤 즐겁지 않았습니까? 잠시나마 언제 숙청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잊고, 누란지위에 처한 당과 국가의 영웅으로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다니는 일이?”
“즐거웠지. 당신 덕분이오.”
순순히 인정하며 미소 짓는 가오슈센을 향해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집어치웁시다. 난 당신이 문을 열어주는 사냥터에서 당신의 생존과 명예를 가져올 것이고, 그로써 당신은 내게 차별화된 ‘우정’을 제공하는 남다른 친구(老朋友)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안전성과 서로의 기여도를 따져 나눠 가지면 되겠지요. 어떻습니까, 내 제안이?”
“으흠.”
내가 말하는 친구는 꽌시의 깊이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었다. 가오슈센이 팔짱을 끼고 천장을 보며 고민하는 틈에 박미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부서기님, 잠시 괜찮겠습니까?”
“아, 박 여사. 말씀하시오.”
“긴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죽은 서갑수 부장님은 여기 계신 동사장님께 목숨을 빚지고 있었고, 그 빚을 남은 평생 목숨 바쳐 섬김으로써 갚겠다고 다짐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이 도시에서 행동으로 실천하셨지요. 문자 그대로 자기 목숨을 바쳐서 말입니다.”
“…….”
“달리 말해 부서기님께서 지금 살아계시는 데엔 얼마간 동사장님의 지분도 있습니다. 우리 동사장님께선 약속과 신용에 엄격한 분이시니, 서 부장님과 제 얼굴을 봐서라도 믿음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미주를 응시하던 가오슈센이 머리를 뚝 떨어뜨리듯 깊은 폭으로 끄덕였다.
“서 노형 덕분에 부지한 목숨은 서 노형의 회사에 의탁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겠지.”
그러곤 시선을 내게로 되돌린다.
“당신 말대로 시간낭비는 이쯤에서 그만두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 들어봅시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하실 셈이시오?”
“그건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남아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입니다……만, 오는 길에 보아하니 군과의 관계는 볼 것도 없는 듯하고, 시정(市政)이나 공안의 다른 부서들에 대해서도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요.”
아니었으면 나를 직접 만날 필요 자체가 없었을 테니. 끈 떨어진 게 뻔한 인간에게 다른 부서들이 미쳤다고 협조와 정보를 제공하겠는가. 가오슈센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직설적이시군.”
“아니라면 정정해주십시오. 그 부분을 반영하여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단, 정보의 정확성이 당신의 목숨을 좌우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쉽게 말해 괜한 자존심으로 허세부리지 말라는 소리였다. 자존심과 허세는 중국인의 골수에 흐르는 정체성 같은 것이지만, 권력중독자들의 복마전 그 자체인 공산당에서 시 상임위원직을 차지한 인물이고 보면 이 정도 분별이야 충분히 가능할 테지.
‘아니면 꽌시 만들기는 보류해야지. 다른 대상을 물색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거나.’
위장신분으로 활동해도 군자금 확보는 가능하고,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었지만, 다행히 가오슈센은 신경질적인 한숨과 함께 내 기대에 부응했다.
“……젠장, 맞소. 정치국을 필두로 해서 망락경찰지대(网络警察支队), 치안관리지대(治安管理支队), 형사경찰지대(刑事警察支队)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를 따돌리고 있지. 하다못해 내가 쥐고 있는 순라경찰지대조차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오.”
망락경찰지대는 사이버 경찰이고, 치안관리지대는 반국가적 사회활동을 감시하는 부서이며, 형사경찰지대는 범죄 및 테러에 대한 대응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여기에 육군까지 더해지고 보면, 가오슈센과 순라경찰지대의 간부들은 모든 관련정보로부터 차단된 채 다른 부서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차례차례 정치적 제물로 바쳐질 처지인 것이었다.
“요컨대.”
내가 턱을 들었다.
“오늘 오후와 같은 우연한 조우를 기대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쫓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뭐, 그게 사냥의 정석이기야 합니다만, 그런 식이어선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당신은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네놈의 목숨이 그때까지 붙어있기나 하겠느냐는 질문. 가오슈센의 낯짝이 조금 전보다 한층 더 심하게 찌그러진다.
“나로선 그쪽 회사의 실력을 믿어볼 뿐이오. 아니면 다른 대안이라도 있소?”
“있습니다. 당신의 수명을 즉각적으로 연장해줄 커다란 건수 하나가.”
“그게 뭐요?”
“이 지역의 삼합회를 갈아버립시다. 그 연놈들이 당의 더러운 심부름꾼을 자처한 지 오래이니, 지금 따돌림을 당하는 당신이라도 광둥 삼합회에 관한 정보라면 그런대로 가지고 있을 것 아닙니까. 일선 간부들의 신상명세나 하부조직의 구조들, 어떤 사업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등등.”
“아니, 그건 그렇지만, 흑해자당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삼합회를 왜-”
“순진하게 굴지 마십시오.”
나는 당혹감을 표하는 가오슈센의 말을 끊으며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관계는 우리가 만들어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