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80화 (80/561)

#13. 우화(羽化) (7)

바이크 라이더들은 헤드라이트를 켜서 이쪽의 시야를 교란했다. 평범한 상향등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에 얼룩을 남길 만큼 광량이 높고 집중된 조명들이다. 그런 조명이 열 개가 넘어가니 통상시야로는 제대로 견제사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신원노출 방지를 위해 보호경을 착용한 내 부하들의 사격조차 정확도가 떨어지는 마당이었다.

“빌어먹을(该死)!”

후샨량이 눈을 질끈 감으며 내뱉는 욕설. 이 와중에 오로지 나만이 정확한 조준으로 적의 첨단을 분쇄했다. 급조한 방패에 총구를 걸어놓고 연사처럼 당기는 단발사격. 막대한 광량(光量)을 믿고 직선으로 쇄도하던 돌격대의 선두가 삽시간에 붕괴한다. 전열(前列)이 이렇게 무더기로 쓰러지자 후열(後列)이 다급히 회피기동에 돌입했다.

“피해!”

“부딪힌다!”

저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절규들. 그러나 여덟 대의 바이크가 팽이처럼 돌며 미끄러지고 그 2배수의 라이더들이 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그 모두를 피하는 회피가 후열 전체에게 가능하다면 기적일 것이었다. 곳곳에서 추가적인 추돌이 벌어지며 사람과 기계가 사이좋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좌아아악 미끄러져오는 바이크를 낮은 자세로 타넘으며 외쳤다.

“지금이다! 쏴! 전방 우측으로 집중 사격!”

회피에 성공한 무리가 좌우로 갈라지며 넓은 측면을 드러낸 상황. 내가 우측 집단으로 화력을 집중시킨 것은, 한쪽을 먼저 무너뜨림으로써 적의 공세를 한 방향으로 제한하기 위함이다. 한쪽만 막는 싸움이 그렇지 않은 싸움보다 쉬운 것은 당연한 일. 광둥어로 외쳤더니 후샨량 패거리 또한 무의식중에 내 지시를 따랐다.

카카캉! 카캉! 틱- 연속 사격을 끊어놓는 가냘픈 쇳소리. 이 중요한 순간에 탄창이 비었다. 적의 사격을 방패로 막으며, 한쪽 무릎을 꿇은 나는 소총을 무릎 뒤에 고정시킨 후 한 손만으로 신속하게 탄창을 교환했다. 여기에 걸린 시간이 두 호흡 미만. 새로운 탄창으로 다섯 발을 쏠 즈음 우측의 무리는 돌격을 포기한 채 장애물 사이로 흩어졌다. 이 대가로 좌측의 돌격은 지척까지 육박했다. 고막이 괴로울 만큼 가까워진 요란한 배기음들. 아무리 쏴도 내 방패가 뚫리질 않자, 격분한 적 선두가 대도를 뽑아 어깨 뒤로 잡아당겼다. 나는 회로의 한정된 출력을 한 순간 육체강화 쪽으로 더 몰아주었다.

“죽어!”

떠걱! 풀 스윙으로 들어오는 칼날을 전력으로 받아치자 칼은 꽂히고 사람은 퉁겨진다. 우드득 비틀리는 소리는 칼잡이의 손목에서 난 것. 악 소리도 못 내고 구르는 놈과 뒷좌석에서 떨어진 동료를 돌아보는 바이크 라이더에게 각각 세 발씩 두 번의 삼점사를 갈겨준 나는, 동시에 후속타로 들어오는 칼질들을 연속으로 방어해냈다.

“형님(大哥)! 수류탄!”

경태의 다급한 경고성에 녀석의 시선을 쫓자 막 던져진 수류탄이 보인다. 내 눈에 강조되는 화약의 색채가 선명하여 심장박동이 치솟았다. 아드레날린이 확 도는 뜨거운 감각. 필시 저들이 앞서의 전투에서 노획했을 폭발물이다. 발화억제로 막을까? 아니, 그건 너무 눈에 띄는 행운일 것이다. 찰나 간에 찾은 대안으로서, 난 총을 놓아버리며 방패에 꽂힌 칼을 뽑아냈다.

태앵-!

뽑는 동작과 쳐내는 동작이 하나였고, 항일대도의 넓은 옆날은 수류탄을 걷어내기에 최적이었다. 힘을 있는 대로 실어 강타한 결과, 수류탄은 던져진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른 투사체가 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땅이 경련했다. 수류탄 터지는 폭음과 진동에 아스팔트 위의 흙먼지들이 자르르르 떨었다. 불타는 차들의 아래를 지나 지면을 구른 끝에 터진 수류탄은, 밑에서 반사된 충격파로 인해 얕은 각도 위로만 파편을 흩뿌렸다. 아까 저지했던 우측 전방의 무리가, 장애물 너머에서 전열을 재형성하던 와중에 약간의 파편을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심각한 부상자는 없어 보인다. 머리는 헬멧이 막아주었고, 그들이 입은 징 박힌 가죽재킷은 사실 안쪽에 철편을 고정시킨 방어구였기 때문이다. 구조상 브리건딘(Brigandine) 내지 두정갑(頭釘甲)과 같은 형식. 다만 전신을 보호하진 못했으므로 피 흘리는 경상자가 몇 명 발생했다.

“으악! 악! 살려줘!”

누가 비명을 지르는가 봤더니 후샨량이다. 돌진으로 지나친 무리가 후방에서 사격을 가했으므로 좌우로 활짝 열어놓은 문짝이 엄폐물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흑해자당 무리들이 달리고 또 지그재그 회피기동을 하면서 쏘는 부정확한 사격이라 아직 명중탄은 없었으나, 자기보전이 최우선인 관료가 엄살을 부리기엔 충분한 상황. 아주 기겁을 해서는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중이다. 이게 원래 제압사격의 목적이긴 해도.

“후방을 막아라! 돌출해서 시선을 끌어!”

내 지시에 경태가 제 부하 여섯을 이끌고 후방의 엄폐물들을 새롭게 확보했다. 이 틈을 타 나는 칼을 입에 물고 소총을 회수하여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새로운 공격을 위해 연기와 엄폐물 밖으로 빠져나오려 드는 우측 전방의 무리를 향하여.

“뭐야?!”

엄폐물로 삼았던 6중 추돌 현장으로부터 가장 먼저 빠져나온 바이크의 기수는, 단 5미터 거리에서 날 발견하곤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곧바로 스로틀 레버를 최대로 비틀었다. 그 급가속에 대항하여 난 총을 쏘는 대신 방패를 비스듬히 세워 온몸으로 부딪혔다. 후샨샹과의 거리가 벌어졌으니 회로의 출력을 더 끌어올려도 무방한 상황. 앞바퀴가 방패를 타고 솟구치는가 싶더니 바이크 전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갑작스럽게 커진 내 존재감에 경악한 흑해자당의 기수와 전투원은, 타고 있던 바이크와 함께 코끼리에 던져진 멧돼지처럼 공중제비를 돌았다. 난 그렇게 밀어서 쳐 날린 바이크의 연료통에 대고 연사를 갈기며 발화 술식을 운용했다. 무수한 카메라들이 비추고 있어도 겉보기에만 그럴듯하면 된다!

퍼엉-!

공중에서 폭발하는 바이크. 산 채로 구워지는 두 인간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약간의 불똥이 방패에도 튀어 짧은 시간 불이 붙는다. 이제 이쪽에 성하게 남은 바이크는 넷. 좁은 틈을 통과하고자 어중간하게 뭉쳐있는 놈들을 향하여, 나는 남아있는 잔탄을 머리 높이의 연사 한 번으로 싹 비워버렸다. 여러 개의 바이저가 파사사삭 깨어지며 구멍 뚫린 낯짝들을 드러낸다. 기수들의 죽음으로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바이크들. 다만-

“씨, 씨팔!”

후방좌석의 칼잡이와 총잡이들은 기수를 고기방패삼아 살아남았다. 소총탄이 능력자의 두개골과 헬멧 뒤통수를 동시에 관통하진 못했던 까닭. 무너진 자세를 황급히 수습하는 놈들과의 거리는 많아도 고작 예닐곱 걸음 정도에 불과했다. 난 이번에야말로 탄창이 빈 소총을 완전히 버리곤 근접전에 돌입했다.

카카카캉-!

나를 겨누어 쏘는 총을 옆으로 쳐내며 육박하여, 폭 넓은 칼날로 대가리를 찍어버린다. 아래로 빠지는 칼날 뒤에 핏물과 함께 부서진 앞니 부스러기들이 튀어나왔다.

이제 남은 숫자는 셋. 칼잡이가 둘이고 총잡이가 하나다. 바이저 너머로 겁에 질린 낯짝들은 먼저 죽은 중국군 병사들을 닮아있었다. 뻐억! 냅다 방패를 던져 총잡이를 반으로 접어놓고, 두 칼잡이가 호흡을 맞추기 전에 다시 하나를 대각선으로 토막 친다. 이어 연속동작으로 대도를 내리그어, 신음하던 총잡이를 끝장냈다.

“사…….”

최후의 칼잡이가 부들거리며 다리 사이를 적셨다.

“살려 주세요…….”

“칼부터 버려.”

칼잡이는 얼른 대도를 내려놓았고, 나는 빈손이 된 녀석의 목을 흐릿한 횡 베기로 날려주었다. 내 회로의 출력이 한순간에 높아지는 걸 경험한 놈을 살려둘 순 없잖은가. 팽그르르 돌다가 떨어진 머리는 눈을 두 번 깜박인 뒤에 죽음을 맞이했다. 풀린 눈동자 한 쌍이 내 쪽을 향하고 있다. 자신이 뭔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멍청한 표정이었다.

나는 떨어진 방패를 회수하고 죽은 시체들로부터 총기와 탄약을 노획했다. 이렇게 새로운 전투준비를 마치고서 모습을 드러내니, 전후의 동시타격을 노리며 때를 기다리던 저편의 흑해자당 무리가 술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엄폐물을 끼고 사격을 가하며 동태를 엿보던 놈들은, 이내 현실적이고도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후퇴한다!”

위계가 높아 봬는 한 녀석이 주먹을 돌리며 외치자, 바이크 공격대의 나머지 전부가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숫자에선 여전히 저들이 앞서므로 화력으로 싸움을 끌어나가면 승기를 잡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보다 더 크게 누적될 피해는 둘째치더라도 이편으로 증원이 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대단하십니다, 동사장님!”

차 안에서 상황을 엿보던 후샨량이 이제야 기어 나와 찬사를 바친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 많은 반역분자들과 싸워 이기시다니! 홀로 달려 나가실 땐 그대로 돌아가시는 줄로만 알았지 뭡니까!”

“호들갑 떨지 마시오. 표면적으로 당신이 이 싸움의 최고 공로자가 되어야 하는 판인데, 이 중인환시(衆人環視)에 나에게 굽실거리면 뭐 어쩌자는 거요?”

보는 눈들을 신경 쓰라는 지적에 비로소 자세를 고치는 3급 경독. 그가 이어하는 말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예의와 경외에 더해 욕망과 기대감을 추가로 담고 있었다.

“제가 정말 이 공로를 다 받아도 괜찮겠습니까? 가오슈센 부비서님께서 신분을 마련해주신 다음에는 아예 진짜 공안 간부로 출세하실 수도-”

“나중에 딴소리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예, 감사합니다…….”

얕은 속을 간파당한 후샨량이 민망함 반 흥분 반인 표정을 짓는다.

“증원은 아직이오?”

“예. 습격이 이곳 한 곳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모양입니다.”

“그럼 구급차라도 요청하시오. 병원이 가까우니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크게 다친 사람이 없는데 구급차는 어째서-”

“진짜 정신 안 차릴 거요? 우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다쳤잖소, 시민들이!”

“아.”

영웅 노릇을 하게 해주었으면 마무리를 확실히 지어야 할 게 아닌가. 전투흥분으로 사고가 마비된 얼뜨기의 행태가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한다. 상을 차려줬는데 왜 처먹지를 못하나. 후샨량은 이제야 무전기로 의료지원을 요청했다. 광둥 제2인민병원이 이 근방이므로 구조대 파견에서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형님! 여기 구급낭이 있습니다!”

경태가 뚜껑 떨어진 트렁크에서 붉은 가방 하나를 찾아 꺼내었다. 나는 무전을 마친 후샨량을 다시 한 번 다그쳤다.

“구조 활동을 지시하는 시늉이라도 하시오. 지금 우리는 당신의 통제에 따르는 편의경찰(便衣警察/사복경찰)인 거요.”

“아, 알겠습니다. 동사장님.”

그리하여 나와 내 애들은 연극이나 다름없는 구조 활동을 개시했다. 찌그러진 사고차량에서 차체에 낀 부상자들을 꺼내주고, 그들을 다친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후송 순번을 정하며, 위중한 사람부터 응급처치를 베풀어주는 식.

“앞이, 앞이 안 보여요…….”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구급차가 올 겁니다.”

흐느끼며 내게 기대는 피투성이 중년인은 폭탄이 터지던 순간 충격파에 박살난 유리조각들을 뒤집어썼다. 고층 빌딩으로부터 쏟아진 강화유리 파편의 폭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 이 어머니는 피를 흘리면서도 목 놓아 자식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신옌! 신옌! 선생님. 내 아들 신옌을 찾아주세요! 붉은 상의에 하얀 바지를 입고 있어요!”

나는 신옌이 누구인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날카롭고 반짝이는 비가 내린 자리에 아이의 시체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바지가 피로 물들었기에 인상착의는 다르지만.

“……찾아볼 테니 우선은 안정을 취하십시오.”

여기서 짜증이 치미는 건 다음 꿈자리가 사나울 게 뻔한 까닭이었다. 내 정신의 그늘을 퍼 올리는 스승새끼의 유해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의 신경을 긁어놓을 것이다.

그래, 이것은 내가 도모하는 그날에 비하면 사소한 비극에 불과하다.

불쾌감을 떨치려 애쓰는 나를 향하여, 사방에서 환호와 응원과 찬사들이 쏟아진다.

“공안 최고다! 위대한 조국 만세!”

“반역도당 새끼들을 다 죽여 버려!”

“당신들을 믿고 있어요!”

이러한 열광은 곧 부유한 구역에 거주하는 기득권층의 기쁨이었다. 공산당원의 수가 9천만에 달하고 이는 곧 부유층의 수로 수렴하니, 사실상 당원들과 그 가족들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할 귀족집단이라 하겠다. 나는 이들을 홀리기 위한 역할극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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