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9화 (79/561)

#13. 우화(羽化) (6)

시한신관에 장입된 시간은 1분 42초. 분 단위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필시 공격 장소가 이곳 하나만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쪽의 테러리스트가 꽤나 늑장을 부린 셈.

폭탄을 작동시킨 테러리스트는 차를 버리고 황급히 달아났다. 그가 달아나는 방향엔 바이크를 탄 공범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가 뒷좌석에 올라타자 공범자는 스로틀을 풀로 당겨 단숨에 현장을 이탈했다. 오토바이가 빠져나가는 길엔 역시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CCTV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53초가 되었을 때 후샨량이 초조한 낯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일회용 대포 같은 거라고 하셨는데……. 거리를 더 벌려야 안전할까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도 충분하오. 그보다, 테러리스트를 저대로 보내줘도 되는 거요?”

“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말 안 해줘도 아오. 당신 상사가 저쪽 책임자와 적대관계인 거겠지. 내 말은, 최소한 저들을 추적해서 거점이라도 알아놔야 하는 거 아니냐는 뜻이었소. 흑해자당을 쫓을 단서가 아니오?”

후샨량은 입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무능한 것들. 아랫물이나 윗물이나 똑같은 수준이다.

폭발까지 앞으로 29초. 나는 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남는 무기가 있다면 주시오. 교전에 대비해야 하니. 내 애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예? 교전이라뇨?”

“여긴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잖소. 내가 테러리스트라면 여길 뚫어놓고서 그냥 뚫었구나 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요. 하다못해 도심 한복판에서 세리머니라도 하겠지.”

광저우의 랜드 마크인 광저우 타워가 여기서 고작 다섯 블록 떨어져있다. 그 주변엔 공산당원들이 집중적으로 입주해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그런즉 대낮의 도심 한복판에서 깃발 따위를 휘날리며 단체로 질주하기만 해도 엄청난 충격을 선사할 수 있다.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각자의 고국으로 열심히 생중계들을 해주리라.

말은 추측처럼 하고 있으나 나는 이미 일련의 매복자들을 포착했다. 그들이 갖춘 무장 가운데 일부는 나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도록 만드는 것들이었다. 정말이지, 프로파간다가 뭔지 아주 잘 아는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마가 번들거리기 시작한 후샨량이 다른 차에 무전으로 지시를 하달하고는 글로브박스를 열어 권총을 꺼내주었다.

“받으십시오. 트렁크엔 자동보창(자동소총)도 두 자루 있는데, 지금 나가기는 좀-”

“일단은 이거면 됐소. 받아라.”

“옙.”

묵묵히 듣고 있던 경태가 나를 대신하여 권총을 받아들었다. 15발들이 탄창이 들어간 반자동권총은 중국제이긴 하나 서구에서 더 보편적인 9mm 탄을 사용하는 모델(QSZ-92G-9)이었다. 중국만의 독자규격을 쓰는 군용과의 차이점이라 하겠다. 경태가 슬라이드를 찰칵 당겼다 놓아 약실에 실탄을 밀어 넣은 시점에서 남은 시간은 3초였다. 나는 무심하게 경고했다.

“귀를 막으시오.”

“예?”

멍청한 새끼. 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직후 트럭이 폭발했다. 섬광, 폭음, 그리고 충격파. 응축된 수증기가 확 퍼지는 순간 주변의 유리창이란 유리창들이 모조리 다 부서진다. 이쪽의 차량 유리도 퍽 소리와 함께 투명함을 잃었다. 도로 곳곳에선 추돌사고가 속출한다.

앞좌석의 둘이 도살장의 돼지들처럼 얼어붙은 가운데, 나는 일렬로 시원하게 관통당한 인민해방군 차량대열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EFP 발사체의 관통력이 워낙 엄청났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탑승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졌다. 차량대열의 앞쪽 절반가량은 발사체가 너무 깔끔하게 뚫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뒤에 위치한 차량들이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차체가 갈리며 발생한 파편들이 내부를 갈아버리다시피 한 탓.

이로부터 살아남은 행운아들의 대응이란……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수준들이 남수단에 있던 병신들과 비슷하군.’

지난 16년, 중국은 남수단 내전에 1개 기계화 보병대대를 평화유지군으로 파견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당시에 어떠했느냐면, 주둔지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전투가 벌어지자 기지 중심부로 대피했으며, 교전이 격화되니 초소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이 순간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추태가 딱 그 꼴이었다.

이 차의 블랙박스가 무음(無音)임을 확인한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경태야. 내리자.”

“옛썰.”

덜컥. 콰지직. 차에서 내린 나는 문짝을 뜯어 방패로 삼고 유리창을 쳐내어 사격을 하기 편하게끔 만들었다. 경사를 주면 권총탄 정도는 도탄(跳彈)시킬 법한 방어수단이다. 염동력을 코팅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겠고. 어쨌든 여긴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해도 좋을 싸움터가 아니니까, 어떤 술식을 쓰든 효율을 우선시해야 한다.

차량 뒤에서도 잠금쇠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경태가 트렁크를 힘으로 열어버린 것이었다. 조정간을 안전으로 둔 권총을 허리춤에 꽂은 경태가 두 자루 들어있던 소총을 꺼내어 내게 하나 던져준다. 인민해방군의 치장 물자였을 법한 AK 계열 소총(81式)은 고풍스럽게도 스톡의 재질이 나무로 되어있었다. 이것만 봐도 가오슈센 계파가 받는 푸대접을 알 만하다. 나는 급조한 방패를 잠시 내려놓고 예비탄창을 받아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 무슨…….”

얼빠진 소리를 내는 후샨량에게, 나는 고갯짓으로 급격히 접근하는 소음원들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정신 차렸으면 준비하시오. 사나운 손님들이 오고 있소.”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요란한 소음들의 정체는 RPM을 끌어올리는 바이크들의 합창이었다. 후샨량이 다시 한 번 얼빠진 소리를 한다.

“우리가 꼭 싸워야 합니까?”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으시려고?”

“그게, 어차피 폐쇄회로도 다 망가졌고…….”

“이 차의 블랙박스는? 그리고 저기서 구경하는 인민들의 스마트폰은 또 어쩔 거요? 그 영상들이 다 베이징으로 들어갈 텐데.”

내 말을 들은 후샨량은 정신이 번쩍 드는 표정으로 주변의 건물들을 살폈다. 주변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예외 없이 보기 좋은 녹지들을 두르고 있었다. 중국의 도시에서 녹지가 있는 거주지는 기득권층의 전유물. 창가와 테라스마다 나와서 스마트폰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기득권층의 가족들이었다. 폭발이 불러낸 수많은 카메라들이다.

“당신은 조국과 당의 영웅이 될 거요.”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내 말에 후샨량은 눈을 질끈 감고는 무전기를 쥐고 제 부하들에게 임전태세를 요구하는 동시에, 상급부서엔 지원을 요청했다.

바아아아아앙-!

배기음으로 이루어진 합창이 절정에 이르러, 대로에 접한 골목들로부터 수십 대의 바이크들이 말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바이크 한 대당 검은 바이저를 쓴 능력자들이 둘씩 올라탄 흑해자당의 공격대는 권총과 기관단총, 단축형 소총, 그리고 넓은 날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대도(大刀)로 무장하고 있었다. 손잡이가 긴 이 대도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과의 싸움에 제식(制式)으로 쓰여 항일대도(抗日大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날붙이다.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야.”

내 지시에 경태가 끄덕이며 차체 뒤로 몸을 낮추고는, 무전으로 다른 차량의 부하들에게 같은 지침을 전달했다. 적이 1차적으로 쇄도하는 표적은 EFP에 직격당한 인민해방군의 생존자들. 굳이 일찍 나서서 주의를 끌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몸을 사리자 후샨량 패거리 또한 눈치를 보며 웅크렸다.

타타타타탕! 총탄을 위협적으로 뿌려대며 고속으로 돌입한 흑해자당 바이크 공격대의 분산 돌격은, 제압사격에 기겁한 중국군 생존자 집단을 서로 다른 다섯 방향에서 연속으로 관통했다. 각각의 관통에 낀 시차가 고작 3~4초에 불과할 만큼 정교하게 직조된 협격(挾擊).

“救救我(살려줘!)!”

외마디 절규를 내지른 군 생존자가 크고 세찬 칼질에 맞아 위아래가 어긋난다. 바이크의 속도에 각성자의 힘이 더해진 강철 칼날은 마치 저항이 없는 것처럼 인체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하여 잘리기는 한순간이었으되 무너지는 속도는 느리다. 팔이 먼저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두 토막으로 쓰러져 피를 쏟아내는 몸뚱이.

비슷한 꼴로 칼을 맞은 수가 잠깐 사이에 열다섯이었다. 근접사격에 맞은 수보다 무려 일곱이나 더 많다. 불타는 기갑차량들 주변으로 잘린 머리와 팔다리와 몸통 따위가 굴러다녔다. 아스팔트 위로 검붉은 피웅덩이들이 스멀스멀 번져간다.

투카카카카캉! 부대 전체가 공황에 빠진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을 차린 한 병사의 대응사격. 그러나 조준이 투박한 지향사격이었고, 부연 연기가 가시거리를 줄였으며, 추돌로 인한 장애물이 많아 이리저리 날렵하게 방향을 꺾는 바이크들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장거리 사격이 어렵기는 흑해자당 돌격대도 마찬가지니 단단히 엄폐하고 있다가 근거리 일제사로 대응하거나 해야겠지만, 꼬라지로 봐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지휘관이고 뭐고 핏빛 발자국들을 찍으며 사방팔방 흩어져 웅크리기 바쁜데 가망 따위가 있을 턱이 있나. 이렇듯 최소한의 조직력조차 상실해버린 이들을 향하여 흑해자당의 2차 강습이 쇄도했다.

바아아아아앙- 부다다다다!

폭주족처럼 일부러 시끄럽게 내는 굉음들. 수십 대의 바이크들이 사냥감을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했다. 연기 속에서 검은 실루엣들이 춤을 추고 총기의 발사섬광들이 번뜩인다. 사방에서 요란한 울림을 더하는 총성과 공랭엔진의 거친 합주에 압도당하여,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번쩍 들고서 피를 토하듯 항복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속출했다. 아이처럼 울면서 상점가로, 또 빌딩과 아파트 단지로 달아나는 병사들마저 있었다. 대응사격은 간헐적으로 몇 번씩 끊어지듯 이루어질 따름.

그런 그들을 향하여 피 묻은 바이크들이 무자비하게 들이쳤다. 또다시 다수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지고 여러 개의 몸통이 상하로 분리된다. 한 바이크 기사(騎士)는 자신이 올려친 머리통을 공중에서 낚아채더니 트로피처럼 치켜들어 쏟아지는 피를 맞았다.

“革命万岁! 黑孩子黨万岁! 中国人民万万岁! 人民的敌人要死! (혁명 만세! 흑해자당 만세! 중국인민 만만세! 인민의 적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탕전. 아니, 소탕전이라기보단 집단처형식에 가깝겠다. 허리가 잘린 열병(列兵/하급 병사) 하나는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로 질주하는 바이크에 견인 당했다. 갈비뼈 아래가 사라진 상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고 있었으며, 바이크가 달리는 원형의 궤적을 따라 핏빛 수묵화 같은 핏자국을 주르르륵 남겨놓았다.

이렇게 피로 경계가 그어진 처형장에서 저항의지를 상실한 중국군이 차례차례 칼을 맞아 죽어간다. 바이크의 뒤에 타고 있던 전투원들이 훌쩍 뛰어내려서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교와 부사관과 병사들을 질질 끌어다 꿇려놓고 참수형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영상을 촬영하고 누군가는 전리품을 챙기는 등 역할분담이 확실하다. 바이크에 남은 라이더들은 도주하는 자들을 추적하여 섬멸했다.

우우우우우우우아!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승리를 자축하는 흑해자당의 공격대. 단 두 번의 강습으로 승패를 갈랐으니 자랑스러울 법도 했다. 그러나 이제 슬슬 이쪽에도 사냥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가 되었다.

“고, 공격하시려는 겁니까?”

방패를 앞세워 무릎쏴 자세로 적을 조준하는 내게,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후샨량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그를 스치듯이 일별했다.

“그럼 안 하겠소?”

경태에게 눈짓을 하자 끄덕인 녀석이 무전으로 공격을 통제한다. 표적분배는 진즉에 마친 상황. 내 몫은 연기에 가려져 통상시야로는 보이지 않는 표적들이다.

점검 차원에서 아군 진영을 돌아본 난 파리해진 낯빛으로 권총을 잡은 박미주를 보곤 경태에게 추가로 지시했다.

“미주는 교전에 가담하지 말라고 해라. 뒷좌석에 숨어있든지 하라고.”

“옙.”

모든 조직원들이 의무적인 전투 훈련을 받긴 해도, 죽은 갑수나 미주처럼 ‘순수 영업직’으로 분류되는 애들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회로 개방 여부와 무관하게 실전경험이 없거나 미비한 탓. 하물며 지금의 박미주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가오슈센과의 주요한 연결고리였으므로 우선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하고.’

미주는 제 사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으니까.

빠박! 빠바바바박!

이쪽이 전투준비를 마친 시점에서 타이밍 좋게 장갑차 한 대에서 유폭이 일어났다. 불길에 구워진 탄약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가며 열린 문 밖으로 굵은 탄자들을 튀겨대기 시작한 것. 라이더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할 때, 경태가 부하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다.

“지금! 쏴!”

카카캉! 카카캉! 끊어서 갈긴 삼점사가 내 조준선상에서 라이더 둘의 헬멧을 두들긴다. 명중탄은 넷. 뇌수가 새는 두 놈이 휘청 흔들리더니 무릎을 꿇고 앞뒤로 쓰러졌다. 더하여 경태 이하의 사격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수가 일곱. 장애물이 많고 사각과 화기가 제한적이지 않았더라면 두 배는 더 죽일 수 있었을 터였다. 후샨량의 부하들은 지들이 소총을 잡고 내 부하들에겐 권총을 양보했다. 실력보다 욕심이 앞서는 것들.

“뭐야? 무슨 일이야?!”

승리에 도취되어있던 라이더들이 당황하는 사이, 한 박자 늦게 후샨량의 부하들도 공격에 가세했다. 그러나 죽일 수 있는 놈들은 우리가 다 죽여 놓은 상태에서 무작정 쏴대는 제압사격이었기에, 전과를 더하기는커녕 적들이 이쪽의 위치를 확실히 알아차리도록 만드는 역효과만을 발휘했다. 곧이어 쇠가 튀기는 소리와 함께 이쪽 주변의 아스팔트들이 부서져나간다. 저쪽의 총잡이들이 가하는 반격이었다. 내가 쥔 문짝 방패에서도 몇 번이나 터덩 텅 울리는 소리들이 났다. 입사각에 경사를 주었고 안팎을 고밀도의 염동력으로 채워놓았으므로 단 한 발도 뚫고 들어오는 총탄이 없었지만.

끼기기기기기-!

높은 음계의 마찰음이 여러 겹으로 들려온다. 바이크 동체를 낮게 기울이고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방향을 전환하는 라이더들. 수십 대의 바이크가 제 자리에서 빙그르르 도는 사이, 하차했던 칼잡이와 총잡이들이 신속하게 원위치로 복귀한다.

흑해자당 공격대가 또 한 번의 맹렬한 돌진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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