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8화 (78/561)

#13. 우화(羽化) (5)

브리핑과 후속 회의가 한 시간을 넘겨 끝날 무렵, 선수가 예리한 여객선은 시속 25노트로 주장강 하구를 통과했다. 시간을 아끼고 싶었던 내가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증속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은 결과, 고민하던 선장이 5노트를 더 끌어올린 것이었다. 상황을 봐서 속도를 추가로 붙일 수 있다면 붙여보겠노라고.

강 우측에서 같은 방향으로 물살을 거스르는 배들이 속속들이 뒤로 뒤처져간다. 25노트, 시속 46.3킬로미터가 지상을 기준으론 느린 속도일지라도 수상에서는 상당히 빠른 속도였던 까닭이다. 특히 폭이 제한적이고 교통량이 많은 물길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어귀엔 홍콩 포함 일곱 개의 대도시와 6천만의 인구가 몰려있었으며, 강으로 오가는 물동량 또한 그 인구규모에 비례했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한 충돌 위기 따위는 없었다. 일단 배 자체가 완전히 비어있다시피 한 상태여서 움직임이 기민할 수밖에 없었고, 선수부 아래엔 순수하게 방향전환용으로만 쓰이는 보우 쓰러스터(Bow Thruster)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추진기관은 세 개의 워터제트였는데, 양쪽에 위치한 보조 엔진들이 선박의 조향(操向)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다루는 사람이 엉터리면 의미가 없다. 지금의 안정적인 항해는 오랜 시간 해상밀수에 종사해온 내 부하들의 실력인 것이다.

배가 여의도와 비슷한 크기의 작은 하중도를 스쳐 지나갈 때는 탁한 물결을 넘는 바람이 가난한 자들의 악취와 희미한 최루탄 냄새를 실어왔다. 가만히 보면, 섬을 나누는 수로 좌우로 항만노동자들의 집단거주지가 마치 대상포진의 물집들처럼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낮인데도 다들 한가하군.’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6분이다. 점심시간이라 한가한 건 아니라는 뜻. 설령 점심시간이어도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건 비정상적인 광경이다. 결국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흑해자와 농민공들은 일이 없어서 집에 머물고들 있는 것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상태에서 절망적으로 누리는 한가함인 셈.

그러한 주거지 북쪽으로는 선적을 기다리는 차량들로 가득한 선적장이 펼쳐져있었다. 정말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대기 중이건만, 그 차들을 싣고 나갈 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댄 난간 옆으로 다가온 경태가 이 장관을 보며 감탄했다.

“저게 다 무역제재 때문에 밀려있는 거 아닙니까?”

“아마 그렇겠지.”

“잘하면 이번에야말로 중국이 여러 개가 되게 생겼습니다.”

“너무 빠르게 무너져도 곤란하겠다마는…….”

항만도, 공장과 정유시설도 어디 하나 활기차게 돌아가는 곳이 없다. 예전엔 이 강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붐볐으리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최대수출시장인 인도가 서방세계와 손을 잡고 중국을 적대하기 시작한 것이 결정타였을 것이다.

‘쓸모가 다할 때까지는 공산당이 버텨줘야 할 텐데.’

나는 대륙답지 않게 부유물이 적은 물살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배를 돌아보니 어떻더냐?”

“준비만 갖춰지면 최고의 이동거점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즉답하는 경태.

“속도는 어지간한 초계함보다 빠르고, 안정성과 조향능력도 우수. 화물과 차량수용능력은 양호. 1.5톤 트럭 8대랑 2.5톤 트럭 11대를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이걸로 전리품 수송은 문제없고, 신뢰성은 아직 모르겠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니 괜찮겠지 싶네요.”

“중국제가 아니야?”

“96년생 이탈리아 아가씨라던데요. 엔진은 롤스로이스 거구요. 박미주 차장…… 아차, 이제 부장이지. 아무튼 박 부장이 촉박한 기일에도 신경을 많이 쓴 모양입니다.”

“일을 가르친 사수부터가 견실한 놈이었으니까.”

견실함이 지나쳐서 때로는 미련해보이기까지 했었지.

내가 거두기 전에는 정말로 미련한 놈이었다. 집을 담보로 잡아 친구의 보증을 서줬다고 하니까. 당연히 친구는 잠적했고, 아내는 집을 나가 서면으로 이혼을 요구했고, 가재 일체엔 압류 딱지가 붙었으며, 애들은 하루에 한 끼니를 간신히 챙겨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서갑수가 한강다리 위에서 나를 만나게 된 경위였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충성심을 관리하려면 그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데. 부장급이라곤 해도 오랫동안 나를 섬겨온 부하이고……. 화환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수연이 알아서 보내줄 테지.

“형님.”

“뭐냐?”

“짬 나실 때 박미주 부장을 따로 불러다가 격려라도 좀 해주시지 말입니다.”

“봐서.”

“일단은 좀 주무시고요. 간밤에 쪽잠밖에 못 주무셨잖습니까. 도착하려면 아직도 사오십 분은 더 가야 할 겁니다.”

내 고질병 같은 수면부족은 경태나 수연이나 항상 신경을 쓰는 문제였다. 지금도 내가 지난 밤 얼마나 눈을 붙였는지 물어보면 아마 몇 시간 몇 분이라는 정확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뭐……. 지금 내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언제는 최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피하게 생긴 여유인 만큼, 이참에 앞으로의 계획이나 더 검토해봐야겠다. 부실한 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하룻밤으로 족해.”

급할수록 돌아가라. 서두름이 일을 망친다(Haste makes waste). 바쁘게 가려다가 오히려 이르지 못하니라(欲速則不達)…….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경구들이 성급함을 경계하라 이르지만, 막상 그래야 할 상황에 처하고 보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의 일이었다. 그 순간엔 충분히 깊게 검토했다고 여긴 계획도 다 끝난 다음 곱씹으면 더 나은 대안이 여럿이었던 경우가 부지기수. 고로 강물을 거스르는 이때는 훗날의 후회를 줄이기에 좋은 여백이었다. 설령 계획이 어그러진다 한들 충분한 숙고는 더 나은 임기응변의 토대가 된다.

머리를 긁적이던 경태가 묻는다.

“배 이름은 안 바꾸시렵니까?”

현재 선수에 적힌 이름은 「베크룩스(Becrux)」. 남십자자리의 베타성이 지닌 별명이었다. 난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던 이름을 쓰는 편이 위장에 좋겠지.”

“알겠습니다.”

경태는 내 사색을 배려하여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객선 베크룩스는 거의 한 시간이 다시 흘러서야 부두에 도착했다. 부둣가엔 소수의 공안 경관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들이 좋질 못했다. 현 중국 공산당의 당내 정치는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싸움. 상급자인 가오슈센의 목이 날아가면 그 아래로도 줄줄이 정치적인 순장(殉葬)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낯빛들이 밝을 수가 없겠지.

‘내가 손수 공을 들인 꽌시가 남아있었다면 지금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과거 내게 마카오의 호텔과 카지노를 주었던 성(省)급 정부의 관료는, 유감스럽게도 지난 15년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다. 죄목은 축첩(蓄妾)과 수뢰. 내연녀를 70명이나 두고 있다가, 본처가 내연녀 다수를 청부살해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경우였다. 이 사건이 외신을 타면서 도저히 묻을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결국 중앙당은 그를 면피용으로 숙청해버렸다.

정말이지, 나로서는 아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중앙당의 요직으로 영전할 게 확실시되던 인간이었건만. 축첩질을 하더라도 다른 관료들처럼 열 명 안팎으로 유지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관료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투자 상품들이었다.

배에서 내리자, 미주는 3급 경독(三级警督) 계급장을 단 사내와 눈을 마주보며 악수를 나누었다.

“후 과장님. 사흘 만에 다시 뵙는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박 여사 역시.”

중국인들이 말하는 여사(女士)는 한국인들이 말하는 여사와 지칭하는 연령이나 어감이 많이 다른 단어였다. 눈 아래가 거뭇한 공안 장교가 내쪽을 바라본다.

“이 분이 혹시 그……?”

미주가 끄덕였다.

“네. 제가 모시는 리 동사장(董事长/회장)님이십니다.”

리는 이번에 내가 쓰는 가명의 성씨였다. 국적은 페루.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연결된 남미의 브로커로부터 구입한 신분이라 그렇다. 끄덕인 공안 장교가 나에게 간단히 경례했다.

“후샨량입니다. 가오 부서기님께 동사장님을 정중히 모셔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미주를 바라본다. 통역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리규휘요. 얼굴 볼 일이 잦을 것 같으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통역 없이 광둥어로 건네는 내 인사말에 조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 후샨량. 후샨량이라는 이름은 브리핑에서 이미 들은 바 있다. 가오슈센의 여분 목숨과도 같은 세 공안 간부들 중 하나라고. 이 공안 장교는 선글라스를 낀 나를 탐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준비된 차량 행렬로 안내했다.

“일단 타십시오. 부서기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경태 포함 최소한의 부하들만을 동반하여 차에 올랐다. 수연을 위시하여 남겨진 부하들은 마중 나온 공안들이 지키고 있던 물자를 선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식료품과 의료용품, 선내를 개조하는 데 필요한 자재들 등이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 후샨량은 뒤따라 탑승하기 전 밖에서 제 부하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하들이 나와 내 일행들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당황스럽게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은 후샨량이 흠칫 놀라 내 쪽을 곁눈질한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능력자에겐 마력장의 반응을 통해 근접한 다른 능력자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고, 후샨량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부하들은 그냥저냥 힘 좀 쓸 법한 수준의 각성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후샨량은 필시 내 부하들의 능력이 제 부하들보다 한참 윗줄이라는 사실에 놀랐을 터. 나 역시 적당한 선에서 역장을 풀어놓았었다.

‘여기선 원시마법 능력자를 이능보유자(异能保有者)라고 부른다지?’

민간에선 신통력(神通力)을 쓰는 사람이라 해서 신통자(神通子)니 신통역사(神通力士)니 하는 잡스러운 명칭들이 더 보편적이었으나, 종교를 싫어하는 공산당이 그렇게 미신적인 명칭들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순 없는 것이었다.

곧 차량행렬이 출발했다. 하얀 번호판을 단 공안 차량들이 무리지어 속도를 내자 주변을 달리던 차들이 알아서 차선 하나를 비워준다.

짧은 거리를 달리는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은 훼손된 CCTV들의 모습이었다. 보이는 모든 카메라들이 죄 부서지거나 유리에 스프레이가 뿌려지거나 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있다. 건설이 중단된 고층빌딩 공사현장의 벽면엔 누군가 붉은 스프레이로 선동적인 문구들을 휘갈겨 놓았다.

「销毁所有电眼为了革命, 帮助我们推翻共产党! (혁명을 위하여 감시 카메라를 파괴하십시오! 우리가 공산당을 타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毛主席教导给了我们无穷的力量, 是我们的指路明灯, 是我们正义行动的保证, 现在已经到了动手打倒这个假共产党的时候了! 中国人民反复辟大革命一定胜利! (마오 주석께서 교시하신 바는 우리의 무한한 힘이며, 우리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며, 우리의 행동이 정의로움을 보증하는 근거이므로, 이제 우리는 이 가짜 공산당을 타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의 반복적 대혁명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전자는 CCTV들이 왜 다 엉망이 되었는지 알려주는 문구이고, 후자는 마오 주석 운운하는 걸 보니 「마오공」의 주장에서 그럴듯한 부분만 취사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비슷한 맥락의 낙서들을 치안이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부촌의 아파트 단지에서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조만간 군대가 아니고선 감당 못 할 수준이 되겠는데.’

감시 카메라가 거의 다 먹통이라면 중국이 애써 구축한 사회적 감시망의 2할에서 3할 가량이 증발해버린 셈이다. 물론 온라인 감시망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겠으나, 평범한 인민들의 소극적인 가세를 막을 제일선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게 문제였다.

직접 눈으로 본 사냥터의 환경이 참으로 기대 이상이었다…….

“잠깐.”

눈을 찌푸린 내가 운전석의 공안에게 요구했다.

“당장 차를 세우시오.”

“왜 그러십니까?”

“일단 세우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어서!”

운전대를 잡은 3급 경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가 힘주어 말한 보람이 있어, 다른 차량들에게 무전으로 변동사항을 알린 뒤 몰던 차를 갓길로 빼내어 정지시켰다. 부두로부터 다리 하나를 갓 건너온 지점이었다. 함께 움직이던 차량 행렬 전체가 앞뒤로 일제히 멈춰 섰다.

조수석에 앉은 경사가 불만을 감추는 기색으로 묻는다.

“동사장님. 목적지가 바로 코앞인데 왜 멈추라고 하신 겁니까?”

“저기 있는 트럭을 보시오.”

“트럭이요?”

앞쪽 좌석의 두 공안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내가 가리킨 트럭을 관찰한다. 그러나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서로를 마주보며 각자 한 번씩 고개를 흔든다. 선탑자인 후샨량이 미심쩍어하며 다시 묻는 말.

“저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난 브레이크등에 불이 들어온 트럭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뒤에 실린 게 아무래도 폭탄인 것 같소.”

“예? 그냥 평범한 콘크리트 수도관이잖습니까?”

겉보기에는 그렇다. 상하수도에 흔히 쓰이는 형태의 철근 콘크리트 관. 그러나 내게는 그 안에 들어찬 화약이 보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평범한 눈을 가진 경사에게도 설명할 만한 단서가 있었다.

“다시 제대로 보시오. 관 뒤쪽이 오목한 무언가로 막혀있지 않소? 심지어 그렇게 막아놓은 데에다 관 안쪽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관이 막혀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들어놨지.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오?”

“어……. 저게 막혀있는 건가……? 듣고 보니 수상하긴 합니다만, 저것만 가지고 폭탄이라고 하기에는…….”

“잘 모르는가 본데, 저건 전형적인 폭발성형 관통탄(EFP)의 형태요. 관의 길이가 짧은 것도 그 증거고. 쉽게 말하면 관통력이 높은 일회용 대포 같은 거지. 저기 나란히 대기 중인 육군 차량들이 표적인 것 같군.”

폭발성형 관통탄이란 한쪽이 막힌 뭉툭한 관에 폭발물을 충전한 다음, 남은 입구를 오목한 금속 접시(라이너)로 봉하여 만드는 지향성(指向性) 폭탄이다. 폭발 압력으로 금속 접시를 변형시켜 고속으로 사출하는 원리.

예컨대 직경과 깊이가 각각 20센티인 용기에 화약을 채우고 3킬로그램짜리 구리 접시로 입구를 막아 격발시킬 경우, 접시가 변형되면서 만들어지는 금속 발사체는 마하 6의 속도로 쏘아진다. 그 위력은 철근 콘크리트를 최대 80센티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 이는 어지간한 장갑차량 두어 대를 단번에 꿰뚫을 파괴력이었다.

하물며 트럭에 적재된 폭탄은 직경과 깊이가 1미터는 되어 보인다. 관통력이 얼마나 나올지 어림잡기 어려울 지경. 용기가 두껍고 단단하여 흩어지는 화력이 적을 듯 했다.

이제야 내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공안들이 차를 슬금슬금 뒤로 물리며 바쁘게 무전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폭탄을 실은 트럭은 횡단보도를 앞두고 유턴으로 중앙선을 넘어가, 도로의 반대편 가장자리에서 주차를 가장하여 군용 차량들을 조준했다. 양측 사이의 간격은 약 30미터 정도.

마스크를 쓴 운전자는 몇 번이고 내려서 수도관 위에 걸터앉아 가상의 사선(射線)을 그어보고는, 운전석으로 돌아가 조준을 고치기를 반복했다. 좋게 말하면 꼼꼼하기 그지없는 테러리스트요, 나쁘게 말하면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한 풋내기라 하겠다.

나는 가벼운 만족감을 느꼈다.

‘시작이 좋아. 이걸로 초장부터 유능한 인상을 주게 됐어.’

공안들이 주고받던 통신은 점점 더 급이 올라가 마침내 이들의 우두머리인 가오슈센에게까지 닿았다. 가오슈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교신을 종료했다.

그러나.

도심지의 급변사태에 대비하여 배치되었을 인민해방군의 차량들은 5분이 더 흘러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갑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한 장교는 그저 짜증스러운 표정만을 짓고 있을 따름. 그들에겐 어떤 경고도 전해지지 않은 듯했고, 트럭 운전사는 이제 열세 번째의 미세조정을 마쳤다. 다리를 쩍 벌린 자세로 콘크리트 관에 올라탄 테러리스트는, 한쪽 눈을 감고 오른팔을 쭉 뻗어 조준을 확인하더니, 이번에야말로 만족했는지 입가에 떨리는 미소를 머금는다. 이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숨겨져 있던 폭탄의 시한신관이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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