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7화 (77/561)

#13. 우화(羽化) (4)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중요한 꽌시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 바람에 그만.”

깊게 머리를 숙이는 박미주의 왼쪽 볼엔 붉은 선 하나가 길게 그어져있었다. 마치 예리한 칼에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 더해 오른손의 약지와 소지엔 부목을 대어놓았다. 기본적인 신체강화 술식을 쓸 수 있는 녀석인데도 늘어난 인대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마 흉터가 남을 법한 상처는 없어서 다행이다.

“다쳤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내 말에 녀석의 머리가 조금 더 깊게 내려간다.

“가벼운 부상이라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허리 펴라. 사과할 일이 아니니.”

마법적인 치료를 베풀까 생각했던 나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부상이 사라지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기는 놈들이 나오겠지.’

대신에 난 박미주를 따라온 경호실 인력 넷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조직 경호실의 첫 번째 임무는 수장인 나를 ‘능동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조직의 주요 간부들 및 위험 지역으로 파견되는 중간 간부들의 현장경호 업무도 맡는다.

“너희를 의심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구나.”

그러자 이번엔 마중을 보냈던 경태가 고개를 숙인다.

“비겁한 녀석은 없었을 겁니다, 형님.”

“보면 알겠지.”

서갑수가 죽은 현장에서 혹시라도 제 임무를 소홀히 한 녀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 그 어떤 폴리그래프(거짓말 탐지기)보다도 정확한 눈을 낭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조직의 기강을 유지하는 주요한 방편이기도 하고.

나는 많이 긴장한 넷을 마주보며, 어깨를 붙잡고서 순서대로 한 번씩 대동소이한 질문들을 던졌다.

너는 나에게 떳떳한 사람이냐?

돌아오는 대답들은 하나같이 간결했다. 네 번의 질문이 끝났을 때 경태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난 마지막으로 물어본 녀석의 상박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원위치로 돌아왔다.

“일단 움직이지. 이야기는 광저우로 가는 길에 듣겠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박미주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공항은 이용객이 적고 배치된 군경은 많아 스산하기까지 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중국 정규군의 존재. 공항에 인민해방군이 대놓고 들어와 있는 것은, 필시 흑해자당 사태가 나날이 심화되면서 덩달아 기세를 올리는 중인 홍콩 민주화 시위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전방위적 압박에 대한 중국의 과시적 대응일 것이기도 하고.

짧게 차를 타고 도달한 공항 동쪽엔 부두와 여객 터미널이 존재했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선체가 백 미터쯤 되어 보이는 한 척의 연안여객선. 여객선 치곤 예리한 형태의 선체가 인상적이다. 다른 승객들은 일절 태울 일이 없을 이 배는, 광저우 일대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안전가옥 겸 이동식 본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된 것이었다.

“여기엔 얼마나 들었지?”

갑판에 오르며 묻자 박미주가 답한다.

“90만 위안에 1년짜리 용선계약을 체결했습니다.”

“90만? 경제적이구나.”

한화로는 1억 5천쯤 되는 돈이다. 헬기 이착륙장과 차량 수용능력을 갖춘 이동식 안전가옥의 효용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는 금액. 이번 인간사냥의 기대수익에 비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내 말을 어찌 들었는지 박미주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죄송합니다.”

“또 뭐가?”

“이런 선박에 대한 수요가 전멸해버린 지 오래이니, 충분한 협상력을 발휘했다면 가격을 더 깎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박미주가 말하는 것은 푸에르토 바야르타 이상으로 박살이 나있는 이 지역 관광업계의 상태였다. 확실히 충분한 시간을 들였다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도 있었겠지. 선주와 선사 입장에선 얼마에 배를 빌려주든 무조건 이익인 시국이므로. 협상을 길게 끌면서 여러 회사를 상대로 간을 봤다면 다달이 나가는 유지비에 속이 탄 누군가가 아예 무상임대를 제안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공을 들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카오에 산삼으로 개발권을 딴 카지노가 있으니 법인을 따로 만들 필요까진 없었다고 쳐도, 고작 며칠 만에 계약을 해치우면서 뭘 얼마나 아끼길 바라겠는가.

“괜히 자책하지 마라.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었는데 바가지를 안 쓴 것만 해도 다행이지.”

어이없는 심정을 담아 평한 나는, 몇 걸음 더 나아가다가 멈춰 서서 박미주를 돌아보았다. 시선을 아래로 피하는 부하는 여전히 그늘진 얼굴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힘드냐?”

“…….”

입을 꾹 다문 박미주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든다. 내 물음이 트리거가 되어 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울컥 올라오는 눈치. 이해는 간다. 이 녀석도 내게 빚진 목숨을 목숨으로 갚기로 한 부하이지만, 이제까진 위험과 거리가 먼 업무들을 맡아왔으니까. 게다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상사가 눈앞에서 죽기까지 했으니 정신에 무리가 갈 수밖에.

모든 부하들이 경태 같고 수연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원한다면 이번 일에서 그만 빠져도 좋다.”

“형님, 그건-”

미간을 좁힌 수연이 이의를 제기하려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막았다. 힘들어도 정신력으로 극복하라고 다그치는 건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쓰면 도구로서의 수명이 너무 빠르게 닳아버리니까. 부하들을 그렇게 소모해버리다가는 언젠가 조직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내 부하들은 언제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정신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저는…….”

뭔가를 말하려다 눈을 감고 침을 삼키는 박미주. 깊게 심호흡을 하고서 다시 눈을 뜬 녀석이 고개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로젓는다.

“죽은 서 부장님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끝까지 제 손으로 매듭을 짓고 싶습니다.”

“그러냐.”

“제가 빠지면 가오슈센 부서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는 서 부장님의 희생……을 계기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제게 깊은 호의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제가 입고 있는 후광은 서 부장님이 남긴 유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무의미하게 만들 순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연이 내 처분에 반대하고 나서려던 이유였다.

난 박미주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젠 네가 부장이다. 갑수를 대신해서 제대로 해봐.”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박 내부는 더럽고 어수선했다. 여객선으로서의 운항이 중지되기 전부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새. 하기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서 청소용역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었겠느냐마는, 그러한 사정이 몰상식한 탑승객들의 위생의식과 어우러져 방치된 결과는 꽤나 볼 만한 것이었다. 어떤 애새끼가 싸질렀는지 똥이 말라붙은 자국마저 눈에 띈다.

보나마나 한번 더러워지기 시작하니 가속도가 붙었을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깨진 유리창 효과였다.

“죄송합니다. 미처 청소를 하지 못했습니다.”

박미주의 말에 나는 살짝 인상을 썼다.

“죄송하다는 말 좀 그만해라. 자책도 그만두고.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왜 모르겠나.”

“죄송……. 아.”

당황하여 입을 가리는 꼴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싶어졌으나, 사고가 부정적으로 기울어있는 녀석 앞에서 조직의 수장이 인상을 쓴 것부터가 실수였다. 난 표정을 바로잡으며 브리핑 룸으로 들어섰다. 말이 브리핑 룸이지, 이쪽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긴 마찬가지라 그저 화이트보드 하나에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만 가져다 놓은 선실에 불과했다.

배가 가속하는 것이 느껴졌다. 경태는 제 부하들에게 선박 내부의 보안검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착석하자 정해진 절차처럼 수연이 나선다.

“박 부장. 구체적인 목적지와 도착예정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박미주는 제 팀원들을 부려 보드에 지도를 고정시키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후- 하고 몸가짐을 새로이 했다.

“현재 향하는 지점은 하이저우구(海珠区) 북쪽 리에데(猎德) 대교 아래의 부두이며, 도착까지는 2시간 10분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본 선박의 항해속도(Service Speed)가 34노트이긴 하지만 아직 운용인원들의 적응이 끝나지 않았고 선박 교통량의 문제도 있어 현재는 20노트로 순항하고 있습니다.”

하이저우구는 주장강 하류의 수많은 하중도(河中島) 가운데 하나로서, 압도적인 부와 바닥없는 가난이 무질서하게 공존하는 섬이었다.

이곳은 나 역시 인간사냥을 위해 몇 번 들렀던 적이 있다. 떠오르는 건 깨끗하고 보기 좋게 개발된 구획 바로 옆에 쓰레기를 쓸어놓은 것처럼 난잡하게 들어차있는 건물들. 적게는 수십 채에서 많게는 수천 채에 달하는 크고 작은 가옥들이 사람 한둘 겨우 지나갈 틈만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솟아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난 길엔 직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언제나 가난에 찌든 생활과 범죄와 병마의 악취가 감돌았으며, 하수구의 오물처럼 질척한 그늘은 태양이 천중(天中)을 지날 무렵에만 잠시 자리를 비켜줄 따름이었다.

중국의 도시라는 것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기는 하지만.

“정박지를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수연의 연속적인 물음에 박미주가 부두에 찍었던 레이저 포인트를 살짝 아래로 미끄러뜨린다.

“부두로부터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이곳에 이번 계획의 중요 조력자인 가오슈센 부서기와 그의 부하들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시 공안국 하이저우 분국의 파저우(琶洲) 방면 중대가 머물던 주둔지입니다만, 현재는 분산된 시 공안 현장지휘중심의 하나로 격상되었습니다.”

“격상? 그쪽의 치안이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더 나쁩니까?”

“그렇기도 하고, 같은 건물을 쓰는 중국은행(뱅크 오브 차이나) 지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추정일 뿐이지만, 제가 볼 땐 당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의 길목을 지키려는 의도 역시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장비조달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차량의 경우엔 공안청의 예비 물자를 제공받기로 합의하였고, 구체적인 인도일정은-”

차례차례 빡빡하게 계속되는 수연의 질문공세는, 내가 보기엔 상급자로서 행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박미주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해보는 중인 것이다. 사실 수연 본인은 중간보고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사항들.

이어지는 문답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수연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이 되어서야 느릿하게 손을 들어 차례를 가져왔다. 그 가오슈센이라는 놈이 외국인 용병들- 즉 우리에게 제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다는 대목에서였다.

“속임수일 가능성은 없나?”

간략히 보고받은 바 그 전형적인 공산당 부패관료의 원래 계획은 부하들을 내주고 저 자신은 안전한 자리에서 관망하는 것이었다. 잘 풀리면 공을 가로채고, 일이 꼬이면 부하들을 숙청하여 본인의 공적으로 삼는 식으로.

그 부하들이 바로 원래 꼭두각시로 삼으려던 세 명의 공안 간부였다.

느린 템포로 던진 내 질문에 박미주는 티가 나도록 어깨를 이완시켰다.

‘실질적으로 가장 무서워해야 할 사람은 경태인데 말이야.’

간부들에 대한 경호실의 경호업무는 밀착감시를 겸하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감찰부장으로서, 경태는 조직의 배신자를 선조치 후보고로 처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행사한 전례가 없는 권한이기는 해도.

여하간 이렇게 군기반장이 하나 있으면 조직 총수로서의 언행이 많이 편해진다. 웬만해선 좋은 상급자 노릇만 하면 되니까.

“전무하다……고까지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진심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미주가 하는 말.

“그동안 가오슈센의 뒷배를 봐주었던 그의 숙부, 성(省) 감찰위원회 주임 가오닝후이가 오늘 오전 기습적으로 탄핵 당했기 때문입니다.”

“좀 전에 늦게 온 이유가 그거로구나.”

“그렇습니다, 회장님. 중앙당은 현재 각 지방당과 부처마다 부패척결 할당량이라는 것을 내려주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공산당에 부패하지 않은 관료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할당량을 채우는 일은 결국 간부들 사이의 폭탄돌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감찰위원회 주임이면 본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을 텐데. 관장하는 업무 자체가 고발과 숙청이니까. 비리의 증거도 자기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성(省)급 지방정부의 주임을 한국식으로 옮기면 지방청장 정도 되는 자리지만, 광둥성의 인구가 공식발표로만 한국의 두 배이고 GDP는 한국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므로 실제 권력은 어지간한 국가의 장관급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감찰위원회 주임은 대등한 주임급 인사들의 약점을 잡아두기 좋은 자리였다.

박미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그렇기에 다른 모두의 경계를 산 모양입니다. 정황상 다른 간부들이 계파를 불문하고 힘을 모아 중앙당 감찰위원회를 움직인 것 같습니다.”

“강자의 비애로군. 그래서 그 조카인 가오슈센도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를 신세가 되었다 이건가.”

“예. 비록 탄핵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의 숙부가 자력으로 혐의를 벗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라고 해서 깨끗한 사람은 아닐 테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사정을 듣고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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