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6화 (76/561)

#13. 우화(羽化) (3)

내가 기다리던 우화(羽化)들은 연속적인 물결처럼 찾아왔다. 서로 관련이 없는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때를 기다려오기라도 한 듯이.

유타 주로부터 세 차례의 번거로운 환승을 거쳐 한 번의 긴 밤을 지나 도착한 오후 1시의 홍콩 국제공항에서, 밤새도록 얕은 잠을 자다 깨길 반복한 나는 하얀 추장의 손녀딸이 요청한 통화에 피곤한 상태로 응했다.

그녀, 마샤트가 사용한 번호는 할아버지인 추장의 것이었다.

“요컨대 무기를 찾는 고객을 우리와 연결해주고 싶다는 겁니까? 그것도 고객의 정보를 일절 알려주지 않고서, 카지노가 구매와 수령을 대행하는 조건으로?”

「예.」

“추장님께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돈이 된다고 아무에게나 무기를 팔아치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혹은 상품의 대략적인 용처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위험도를 평가하여 거래를 수행하지요.”

상품을 아무 데나 보관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막 팔아버리지 않으며, 대가를 아무렇게나 주고받지도 않는 것.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타협이 있을 수 없는 밀수의 기본. 구매목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거래는 자칫 나에게 튀는 불똥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내가 팔아넘긴 폭탄이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터지기라도 했다간 그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최소한의 정보는 알려주셔야겠습니다.”

마샤트는 이 합당한 요구를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양해? 이건 양해를 말할 문제가 아닙니다.”

「카지노와 부족의 신용을 걸겠습니다. 상품을 받아 최종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는 건 우리 다이아몬드 카지노의 역할이니, 회장님께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장담해요.」

장담이라니. 이 분야에서 백 퍼센트 안전한 거래라는 건 없다. 나 같은 무기상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태반이 위험관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투자한 카지노의 멕시코 방면 사업은 이제 막 기반을 닦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사람을 고르고, 건물을 올리고. 즉 현 시점의 카지노에서 수령을 대행한다는 말은 즉 무기의 최종적인 행선지가 미국 내부라는 뜻이었다. 사용처도 마찬가지일 테고.

‘별도의 운송업자를 고용해서 경로를 세탁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러나 카지노의 자금사정이 썩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운송업자를 추가로 쓸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구하려는 무기 또한 평범한 총기류는 아닐 것이다. 세계에서 총과 탄약이 가장 넘쳐흐르는 땅이 미국인데, 그런 땅에서 나 같은 해외의 무기상에게 굳이 개인화기를 주문할 이유가 없으니까.

“마샤트 양. 혹시 추장님과 직접 통화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묻자, 대답은 약간의 여백을 두고 돌아왔다.

「할아버님께선 통화가 어려운 상태이십니다.」

“다른 용무를 보시는 중이라면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흐려지는 말끝은 명백한 이상신호였다.

“아니면 뭡니까? 그쪽은 지금 오후 11시쯤 됐을 텐데, 벌써 주무시러 들어가셨는지?”

「…….」

평범한 가정에서야 11시가 잠자리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늦은 시각이지만, 추장은 카지노를 경영하는 사업가였다. 다이아몬드 카지노는 여타의 원주민 카지노들과 같이 자정까지 영업을 하며, 영업을 마친 후 사업장을 정리하고 하루치의 손익을 정산하는 데에만 다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침묵하던 마샤트가 조금 낮아진 음색으로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께선 부족의 친구이자 은인이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할아버님께선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를 보지 못하고 계세요. 추장 자리는 후계자인 제가 대행하는 중이고요. 이건 할아버님께서 평소부터 분명하게 못박아두신 사항이며, 조직의 간부들도 제가 업무를 대행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추장님께서 활동이 불가능하시다?”

「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아닙니다. 그 병은 회장님의 도움으로 완전히 이겨냈으니까요.」

“그러면?”

「……D.C의 시위현장을 찾아 부족 사람들을 격려하시다가, 경찰에게 밀쳐져 넘어지시는 바람에 두개골 골절과 뇌진탕을 입으셨어요.」

“저런.”

뜻밖의 소식을 들은 나는 머릿속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이 사고가 내게 얼마의 손실과 얼마의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로써 부족 단위의 우화는 얼마나 앞당겨졌을 것인가.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할아버님께서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계십니다. 너무 어지러워서 잘 걷지도 못하시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수시로 치미는 구토감에 식사마저 제대로 못하시고…….」

길어지는 마샤트의 말에 점점 울화가 녹아나온다. 이제까지는 그래도 한 조직의 수장 대리답게 어떻게든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애썼던 모양이지만,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부동의 평정심은 오직 연륜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계산을 일단락지은 내가 제안했다.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시도록 하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기는-」

“약을 담은 종이컵 하나에 1천 달러, 수술용 장갑 한 매에 2천 달러 꼴로 청구하는 그쪽 병원보다는 한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추장님을 위해선 무엇이 최선일지를 말입니다.”

마샤트가 망설임 끝에 짧은 한숨을 곁들여 답한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고민해보고 따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나는 훗날의 대답이 부디 긍정이기를 바랐다. 추장을 내가 거두고 있으면, 고향을 떠나야만 할 처지에 내몰린 부족민들을 내 영향권 아래로 끌어들이기가 그만큼 쉬워질 터이므로. 설령 추장이 후유증을 못 이겨 폐인이 되거나 죽어버린다고 해도, 내가 그를 도운 사실은 그를 존경하는 부족민들에게 두고두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이렇게 타산적인 호의를 베풀고서, 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되돌렸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클라이언트가 구매를 희망하는 상품의 종류와 양이 어떻게 됩니까?”

「거래를 승낙하시는 건가요?」

“서두르지 마십시오. 들어보고 결정하려는 겁니다.”

「필요한 건 폭탄이에요.」

“폭탄?”

「네. 산업용이든 군사용이든 상관없으니 TNT(군용화약의 일종) 2백 킬로그램에 해당하는 위력의 폭탄과 원격 폭파가 가능한 기폭장치를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기폭장치는 킬로그램 당 하나가 돌아가도록 부탁드립니다.」

“배송지와 기한은 어떻게 됩니까?”

「기한은 3개월 이내. 물건은 카지노로 배달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가능할까요?」

TNT 2백 킬로그램이라. 솔직히 내게 직접 전하는 의뢰 치고는 물량이 적다. 이게 다른 딜러의 의뢰였다면 자존심이 상했을 터.

그러나 여기선 양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간 이쪽 시장과 인연이 없었던 카지노가 어떤 이유로 무기거래 중개역을 자처하고 나섰는가가 문제지.

‘최소한 구매자가 아마추어라는 점은 확실하고.’

미국에서 폭탄을 구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건 사이즈에 맞는 기폭장치를 구하는 일이다. 폭약이야 질산암모늄 비료를 가져다 쓰거나, 민간시장에 매년 수십억 발씩 풀리는 실탄을 분해해서 얻으면 그만. 실탄의 추진제로 쓰이는 화약은 싱글 베이스 파우더일 경우 첨가제가 들어간 면화약(綿火藥) 내지 니트로구아니딘이고, 더블 베이스 파우더일 경우 면화약과 니트로글리세린의 혼합제재다. 어느 쪽이든 폭속(爆速)이 초당 8천 미터를 넘나드는 강력한 화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약은 그 양과 특성에 따라 적합한 뇌관(또는 신관)을 쓰지 않으면 제 위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총 연소시간이 길어지면서 순간적인 최대 화력이 깎이거나, 최악의 경우엔 그냥 좀 세게 타들어가는 고체연료가 되어버릴 따름.

아마추어들은 이러한 비효율을 그냥 양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론 정교하면서도 계획적인 타격을 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저 강력하고 커다란 한 방을 터트릴 수 있을 따름.

즉 폭탄을 굳이 외부로부터 구하는 시점에서, 구매자들은 기폭장치를 자체적으로 조달하거나 제작할 능력이 결여된 아마추어 집단이 된다.

‘2백 킬로그램의 폭탄과 2백 개의 원격 신관. 2백 개소의 분산된 타격을 가할 만한 목표. 뜬금없이 무기 거래 중개에 뛰어든 카지노.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은 카지노의 간부들. 그리고 내게 정체가 노출되면 곤란한 아마추어 집단……. 곤란한 건 그 아마추어들인가, 아니면 이 풋내기 대행 추장과 다이아몬드 카지노인가.’

서로 맞물리는 몇 개의 키워드들이 내 심중에서 하나의 유력한 가능성을 도출한다. 무기를 구하는 자들과 카지노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거나, 혹은 카지노 스스로가 바로 구매자일 가능성을.

해묵은 차별, 빼앗긴 성산,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폭파당한 성지, 광산에 걸린 이권, 전염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부족 단위로 겪은 수모와 위기, 존경 받는 부족의 어른이 당한 이번 사고에 이르기까지. 사막의 원주민들은 품은 원한의 불씨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었다.

나는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서 확답을 미루었다.

“일단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본 다음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 가격을 포함한 다른 조건들은 그때 다시 대화를 나눠 봅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늦어도 사흘 안에는 결정을 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디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겠어요.」

통화가 종료되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내 물음에,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서 처음부터 통화를 듣고 있었던 수연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며 대답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부족 차원에서 지원하는 사보타주 활동입니다.”

사보타주(Sabotage)는 저항의 수단으로서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를 뜻한다. 결국 이 녀석도 나와 같은 의견인 셈.

폭탄을 시간 간격을 두고 수차례에 걸쳐 나누어 사용할 확률은 희박하다. 첫 번째 폭탄이 터지는 순간부터 미국의 모든 대테러 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테니까. 그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 자기 목에 올가미를 걸어 스스로 조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2백 킬로그램의 폭탄은,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한날한시에 사용될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조건 하에 바로 떠오르는 표적은 둘이었다.

“너라면 어딜 노릴 것 같으냐?”

“국경장벽 건설현장보다는 성산(聖山) 와우 키울릭 쪽이 아닐까 합니다.”

“왜?”

“첫째로 그들 부족에겐 성산이 성지보다 더 중요한 곳이고, 둘째로 국경장벽에 대한 공격은 장벽 건설에 집착하는 현 대통령을 지나치게 자극할 위험이 있으며, 셋째로 와우 키울릭은 성산의 최고봉을 차지한 천문관측시설단지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서도 외부인의 진입을 차단할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진입을 차단해?”

“예. 도로를 폭파하면 됩니다. 지형이 험한 산지이고, 차량이 들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몇 개소의 절벽을 붕괴시키면 인명 살상을 피하면서도 시설 전체를 즉각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여론의 역풍을 피하면서 성산 강탈 문제를 공론화하는 선택지죠.”

“들어가는 도로가 하나인지 둘인지까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구나. 우리와는 인연이 전혀 없었던 장소인데.”

“이야기를 듣고 어쩌다 지도를 봐뒀던 게 떠올랐을 뿐입니다.”

어쩌다 본 걸 일일이 기억하는 것부터가 보통이 아닌데 말이지.

올해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초선 당시의 공약이었던 국경장벽 건설을 과거 이상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이를 지지하는 여론 역시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중남미로부터 온갖 국적의 유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물론 그 장벽을 정말로 끝까지 지을 심산은 아닐 것이다.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그 돈으로 차단작전을 강화하거나 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현 행정부는 유민의 물결에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는 시민들에게 가시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을 터였다. 적당히 진도를 빼다가 다음 정권으로 공을 넘겨버리면 그만이니.

따라서 원주민들이 이 장벽을 건드리는 건 그렇잖아도 말이 통하지 않기로 악명 높은 대통령과 전쟁을 하자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파괴된 신성한 매장지는 포기하고 성산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 온건하면서도 이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그 온건한 선택이 온건한 대응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냄비가 언제 끓어 넘칠는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요청은 받아들이는 쪽으로 할까…….’

처음부터 완제품을 넘기기보다는 교육 컨설팅 서비스를 제안해보는 편이 낫겠지. 폭탄과 신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그래야 이쪽도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는다.

제조법을 가르칠 폭발물은 트리아세톤 트리퍼옥사이드(TATP)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언젠가 추장의 의뢰로 인간 사냥에 나섰을 적에, 사냥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었던 그 과일향 짙은 폭발물. 만들기가 쉬워서 사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 폭탄의 레시피라면, 둘 중 하나 꼴로 고등학교를 못나온 원주민들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한이 3개월이라 했지만 교육훈련은 1주일이면 충분하다. 전통의 질소비료폭탄(ANFO)도 괜찮겠으나 TATP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료 거래 감시가 강해서 말이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디 먼저 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부하, 박미주 차장이 이제야 나타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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