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5화 (75/561)

#13. 우화(羽化) (2)

내가 목격한 흔들림이란 외부로부터 느리게 파고드는 침식의 파동이었다. 단순히 회로의 출력과 장악력의 힘겨루기로 위축시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상. 굳이 표현하자면 천천히 풀어헤쳐서 중화시키는 개념에 가깝다. 그 현상이 너무도 느리고 미세하게 진행되었기에, 사제가 멈춰있을 때는 모르다가 등 돌려 멀어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포착해낼 수 있었다. 보잘것없는 마력장의 가장자리에 생기는 희미한 아지랑이를.

난 이 아지랑이야말로, 이 「중화」야말로 균사가 사용하는 마법의 작용이 아닌가 생각했다.

‘관찰의 대상을 달리해야 하는 거였나.’

나 자신의 축소된 마력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 보면, 그리고 내 부하들의 역장들 또한 마찬가지인 걸 보면, 이러한 침식은 영에 새겨진 회로가 일정 수준 이하여야 영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좀 쓸 만한 능력자쯤 되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으리란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깨달았다고 해서 곧바로 무슨 진척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균사의 왕국이 품은 코드의 실타래는 여전히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었으니.

이 같은 난해함은, 내 회로의 최적화가 상당히 진행된 지금도 여간해선 사용하기 어려운 황금기의 술식들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원탁의 마스터들조차 그 효과를 알 뿐 원리를 이해하지는 못하는 고대의 지혜들. 심지어 그것이 온전한 술식인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내가 곧잘 써먹는 염동이니 발화니 하는 술식들은 그 지혜들을 구성하는 코드들 가운데 일부를 추출한 것에 불과했다.

균사의 왕국이 품은 코드의 해체와 풀이에 얼마나 골몰하고 있었을까. 수연의 목소리가 내 의식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형님.”

내가 바라보자 바로 고개를 숙이는 녀석.

“죄송합니다.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니다.”

중요한 일이니까 지시를 어긴 거겠지.

“말해봐.”

“광저우에 나가있는 박미주 차장으로부터 들어온 보고입니다. 작업을 치기에 적합한 공안 간부 셋을 확인했는데, 하나같이 가까운 시일 내로 목이 날아갈 것 같답니다.”

“숙청?”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숙청을 당하기 전에 「흑해자당」의 손에 죽을 확률도 높아 보입니다. 셋 모두 흑해자당 진압 및 검거작전을 진두지휘하는 간부들이며, 이런 간부들을 노린 흑해자당의 암살과 테러활동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흑해자당을 지지하는 인민들의 숫자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군과 공안이 난관에 직면해있다는 소식입니다.”

“인민들의 지지라……. 놈들이 돈을 제법 풀고 있는 모양이지?”

“예. 자금과 물자 분배로 의적(義賊)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한편 마오쩌둥의 이름을 팔아 민중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테러 또한 민중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으로 포장하고 있고요.”

“그건 좀 뜻밖이군.”

어쩌면 흑해자당의 수뇌부가 진성 마오쩌둥 주의자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먼젓번에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이게 단순한 실수만은 아닌 것이, 중국에서 진성 마오주의자들의 세력은 씨가 마른 지 오래였던 까닭.

“혹시 「마오공」과의 연관성이 확인된 게 있나?”

마오공(毛共)이란 마오쩌둥주의 공산당의 줄임말이다. 이들 마오공은 국부(國父)인 마오쩌둥을 숭앙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테러단체로 낙인찍은 파당(派黨)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마오공이 현 중국 공산당을 ‘가짜 공산당’이자 사악한 제국주의 파시스트 집단이라고 비난했던 것. 당이 평등해야 할 인민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반동국가를 만들었다는 게 비난의 핵심이었다.

인민에 대한 착취 자체는 사실이고 사상적으로도 국부를 등에 업고 있었으므로, 중국 공산당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그저 힘으로 제압하고 선동으로 묻어버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마오공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놈들이다. 그 악명 높은 문화대혁명조차 올바른 일이었다고 평가하는 등신들이 정상이기는 무슨. 그러나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시간을 알려주는 법이었다.

수연이 내 질문을 부분적으로 긍정했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찾지 못했으나, 그들이 몇 차례에 걸쳐 마오공의 선언문 일부를 인용하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 계급의 지도권과 노동권을 박탈했으며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직으로 몰아넣었기에 반역이 정당화된다는 부분이나…….”

몇 개의 구절을 더 언급한 수연이 신중한 태도로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일 뿐입니다.”

“안다.”

정당한 반역은 혁명이 된다. 설령 그게 명분에 불과하더라도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 도둑놈들이기는 하다. 이게 만약 외국 세력이 계획한 작전이라면 중국 공산당의 급소를 제대로 찔렀다고 해야겠고.

지속적으로 들어온 정보들을 토대로 분석하건대, 흑해자당이 공산당 내 특정 계파의 음모일 가능성은 갈수록 더 희박해지는 중이었다. 정치적인 풍파가 계파를 가리지 않고 살벌하게 몰아치는 상황이었으니까. 중국 정계는 실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에 빠져있었다.

“공안 간부들이 속한 파벌은?”

“하나는 시파에 속한 칭화당이고 나머지 둘은 상하이방으로 추정됩니다.”

시파는 시진핑 주석의 추종자들이며, 칭화당은 칭화대 출신 엘리트들이 학연으로 뭉쳐 만들어낸 계파이다. 시진핑이 칭화대 출신인지라 칭화당의 주류는 거의 다 시파에 속해있었다.

“간부놈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촉박합니다. 당장 오늘 셋 다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지라.”

“다음 기회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기존의 꽌시들이 대거 위기를 겪고 있으니까요. 꽌시 없인 적합한 대상을 물색할 수 없고,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우며, 중국의 정치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진 새로운 꽌시를 만들기도 곤란합니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려면 최대한 빠르게 중국 땅을 밟으셔야 합니다.”

흠…….

한동안 새로운 꽌시를 만들기 어려우리라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공산당 고위 관료와의 꽌시를 만드는 주요한-사실상 유일한-수단은 역시 뇌물인데, 부정부패로 인해 사달이 난 지금 누가 감히 사귐이 깊지 않은 자로부터 뇌물을 받으려 하겠는가. 자칫하다간 부패가 아니라 반역 혐의로 초상을 치르게 되는 수가 있었다. 흑해자당의 배후에 외세가 있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대내적인 입장이니까.

이 시점에 벌어지는 뇌물수수는 중앙당의 입장에서 인민들에게 내세울 좋은 면피감이 되어줄 테지.

“그런데…….”

잠시 지나간 대화를 되새김질하던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했다.

“이게 박미주 차장의 보고라고 했었지? 서갑수 부장은? 둘이 같이 나가있던 게 아니었나?”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보고는 원래 책임자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게 정상이었다.

“그것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짧게 뜸을 들인 수연이 시선을 내리깔며 부고를 전했다.

“서 부장은 죽었습니다.”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나는 연속적으로 되물었다.

“죽어? 갑수 그 녀석이? 어쩌다가?”

“광저우시 공안국 부서기 가오슈센(高树森)을 접대하던 중 흑해자당으로 추정되는 무장 세력의 습격을 받았답니다. 실내로 굴러들어온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나머지 모두를 살렸다고 하더군요.”

“……가오슈센이 중요한 놈인가?”

“광둥성 감찰위원회 주임(监委主任)인 가오닝후이(高宁辉)의 조카로서, 시 공안국위원회 부비서직 외에도 광저우시 공안부의 순라경찰지대(巡逻警察支队)를 담당하는 1급 경감(一级警监)을 겸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명의 공안간부에 대한 정보가 이 꽌시에서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순라는 순찰이라는 뜻. 한국으로 치면 지방경찰청 소속 치안감쯤 되는 인물이지만, 군도 당의 군대이고 경찰도 당의 경찰인 중국에선 공산당 간부가 공안(경찰)의 간부직을 겸임하도록 되어있었다.

“이건 별로 재미가 없구나.”

달갑지 않은 손실이야. 내 말에 수연이 묵묵히 고개를 숙인다.

서갑수는 조직의 체계가 완전히 잡히기도 전에, 그러니까 해외사업장 운영과 밀수를 전담하는 국제사업부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조직의 중국 방면 사업을 개척하기 시작한 부하였다. 개국공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사업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부하라는 말이다.

비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 능력이 없어 긴 시간 동안 부장직에만 머물렀으나, 인내심이 강하고 됨됨이가 좋아 접대와 영업망 관리를 맡기기엔 괜찮은 인재였다.

나는 녀석을 마포대교에서 주워왔다. 당시 비서실장의 추천으로 내가 직접 주워온 것이다. 그날 맡았던 술 냄새가 아직도 기억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 냄새는 난간을 붙잡고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한 가장의 체취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입한 지 2년이 지난 생명보험은 자살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지급한다.

“유서는?”

“법무팀에서 보관중입니다. 이번 출장을 가기 전에 갱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식이 아들 둘에 딸 하나였지, 아마?”

“예.”

“나이는?”

“장남은 스물 하나로 현재 군대에 있고, 차녀와 차남이 순서대로 열여덟, 열여섯입니다.”

“사이들이 좋은가?”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알아보라고 할까요?”

“아니, 됐다. 장례를 치른 다음 유언대로 유산이나 나눠주면 그만이지. 장학금도 챙겨주고. 유해 수습과 운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여기서 말하는 유산은 조직이 책정하는 사망보상금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갑수가 생전에 공증을 받았을 유서는 내 위장신분들 가운데 하나를 후견인으로 지정해놓았을 터. 이는 내가 조직원들의 사기와 충성도 관리를 위하여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공정한 유언 집행과 넉넉한 보상금 책정은 충성심의 날을 세우는 좋은 숫돌의 하나였다.

딱 거기까지가 나의 역할이다. 아직 어린 차녀와 차남이 성년이 될 때까지 후견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둘 몫의 유산을 엄격하게 관리해주기야 하겠지만, 상속이 완료된 이후엔 어떻게 살든 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오지랖을 부릴 여유부터가 없고.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는 못내 심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불편하다는 사실에 다시 불편함을 느꼈다.

손실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있나.

현재 중국 정계에 피바람이 불고 있으므로, 기존에 구축해두었던 꽌시들 가운데 많은 수가 죽거나 숙청당하여 쓸모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범위를 광동성 일대로 한정짓는다면, 그러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서갑수만 한 인재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나는 그런 인재를 잃어버린 것이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수연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를?”

“……중국행 말씀입니다.”

아, 그랬지. 그 문제를 논의하던 중이었지. 갑수 녀석에 대해 생각하느라 원래 오가던 이야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시선을 돌린 나는 균사가 지배하는 숲을 바라보며 기회비용을 저울질했다.

저울의 한쪽엔 버섯을 섬기는 사제 덕분에 발견한 「침식」 현상이 있었다. 현상을 유발하는 코드는 아직 추출해내지 못한 상태. 마력장을 중화하는 침식의 코드는 내가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게 된 부하들의 회로를 새로이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밖에도 용처를 찾자면 무궁무진할 것이었고.

저울의 다른 한쪽엔 막대한 군자금 획득의 기회, 운이 따라준다면 중국의 국가정보망에 접근할 꽌시까지 얻을 기회가 올라가있었다.

전율하는 거인의 예를 보건대 침식의 코드 풀이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어려워질 게 뻔했다. 망설이던 나는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내일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알아봐라.”

“예.”

수연이 재차 고개를 숙인다.

앞으로 하루. 하루 안에 최대한 균사의 영혼을 보고 기록하고 분석해보는 수밖에. 이게 과연 잘한 선택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잘못된 결정보다 더 나쁜 것이 때를 놓친 결정이었다. 난 미혹을 떨쳐내며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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