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4화 (74/561)

#13. 우화(羽化) (1)

유타 주에서 사흘을 더 머무른 나는 당초 목표한 바의 절반가량을 성취했다. 어째서 절반인가 하니, 안개 속의 하얀 숲이 새롭게 열매 맺은 마법의 조각들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에 기대했던 건 내가 사용하는 술식들처럼 기능적으로 하나하나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마법적 현상들과, 각각의 현상마다 일대일로 대응하는 독립적인 「코드」들의 존재였다.

그러나 숲이 실제로 만들어낸 건 무수히 많은 코드들이 서로의 일부를 공유하고 다시 공유하며 배배 꼬인 실타래처럼 연쇄적으로 뭉쳐있는 수십 개의 덩어리 같은 마법들.

그 덩어리들을 보는 나는, 황금기의 눈을 가지고서도 어디까지가 유효한 코드이고 어디까지가 무의미한 마력의 흐름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고로 각각의 덩어리는 많은 공을 들이더라도 풀이와 해석을 장담하지 못할 방정식과 암호문의 조각모음과 같았다. 정크 데이터가 잔뜩 섞여 옥석을 가리기 까다로운 상태의.

이로부터 내가 느낀 실망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영혼의 격이 너무 높아도 문제인가…….’

압도적인 생체질량이나 종의 차이도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역시 영혼의 질과 격이라고 봐야 한다. 어쩌면 현생인류가 출현하기도 전부터 존재해왔을 영혼이니까. 수령(樹齡)의 최대 추정치가 백만 년인데, 그때는 호모 에렉투스가 주먹도끼로 사냥을 하며 불의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을 무렵이다.

아예 연초부터 숲에서 머물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변화를 지켜봤다면 그래도 사정이 달랐을 터. 혹은 지금부터라도 아예 자리를 잡고 연구를 해보든가.

그러나 나는 학자가 아니었다. 내게 지식이란 사업과 경영과 투쟁과 절박한 생존의 도구에 불과한 것. 그런 내가 하나의 연구대상에 평생을 바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궁극적인 승리 이후에 찾아올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내가 지난 실망감을 곱씹는 이유는, 유타를 떠나 도착한 이곳 오리건의 숲에서도 비슷한 좌절을 겪고 있는 탓이다.

2천 5백 에이커에 걸쳐 퍼져있는 균사(菌絲)의 왕국, 단일유기체로서의 버섯에 점령당한 이 숲은 나에게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그나마 이쪽의 영혼은 나이가 어린 편이어서, 최대로 잡아도 87세기를 넘지 않는다. 품고 있는 방정식과 암호들의 난이도가 포플러 클러스터의 그것만큼 높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 87세기는 결코 얕볼 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나는 그 장구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돌아버리겠군.

연초엔 미숙하고 국지적인 회로들로 나를 실망시켰던 2천 5백 에이커짜리 균사체는, 이제 와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식으로 나를 괴롭히는 중이다. 회로에서 나오는 아웃풋이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확인 가능한 현상은 없는 기괴함.

이렇듯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에게 일군의 무리가 접근했다. 날 포착하고서 생글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서는 희미한 마리화나의 쓴내가 풍겨왔다. 무기는 없고, 원시마법에 각성한 자 다수가 섞여 있으되 평균적인 수준이 낮다. 회로 발달이 불균형하여 대부분 능력자로서는 쓸모가 없는 레벨. 경호팀으로부터 무전이 들어온다.

「자칭 드루이드라는 사람들입니다. 저희에게 입교를 권유하더군요.」

쯧……. 단체로 대마나 피우는 걸 보면 영국의 정통파(CRP) 내지 미국의 개혁파(RDNA)는 아닐 테고, 대충 들은 이야기와 ‘영적 체험’에 심취하여 흉내만 내는 멍청이들일 가능성이 높겠다. 정통파라고 해봐야 흉내쟁이들이긴 마찬가지지만.

내가 그냥 지나가라는 의미에서 우호적이지 않은 표정으로 길을 비켜주었으나, 이 모자란 연놈들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나를 향해 방향을 꺾었다.

이 추운 날씨에 외투 하나 없이 하얀 원피스만 입은 여성이 밝은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혼자이신가요?”

“일행은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고 싶었을 뿐.”

“어머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비슷합니다.”

“저런.”

맨발로 선 여자가 두 손을 맞잡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안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되는데.”

……미친년인가?

무시하고 자리를 피하기도 곤란한 게, 지금 이 위치를 그냥 지나치면 느리게 걸으며 관찰하던 회로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짜증이 나던 참이라, 화풀이를 겸해 전부 두들겨 패서 쫓아낼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안 될 말이었다. 유타 주의 안개 낀 숲만큼은 아니라 하나, 이 균사의 왕국 역시 거대한 영적 존재감으로 무수한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기는 마찬가지. 전율하는 거인과 달리 표면적인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이곳에선 숲속을 거니는 구경꾼들이 많았고, 정부에서 파견한 연구 인력도 많았고, 숲의 훼손을 막고자 순찰을 도는 군경 및 국립공원 순찰대(NPS Rangers) 또한 많았다.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무장한 군경과 제 힘에 도취된 애송이 능력자들이 사방에서 몰려올 환경이라는 뜻이었다.

그 덕분에, 앞서 결국 무사히 거쳐 왔던 리치필드에서와 같이, 내가 숲에 숨는 한 그루의 나무로서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많은 수의 능력자들 가운데 마력장을 억제하고 있는 날 잠재적인 적들이 무슨 수로 찾아낼 것인가?

흰 옷의 여자가 친절을 베풀 듯이 말한다.

“잘됐어요. 우리는 삶이 힘들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위대한 자연과 어머니 아밀라리아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제들이거든요.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시겠어요? 마침 식사를 준비하려던 참이니, 같이 드시면서 좋은 말씀을 들어보세요. 일행 분들도 환영이랍니다.”

아밀라리아(Armillaria)는, 발음만으로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뽕나무버섯 속(屬) 전체를 가리키는 학명일 뿐이다. 즉 이것들은 버섯을 숭배하는 사제들이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거절-”

“어머나, 어머나.”

사양을 다 말하기도 전에, 뭔가를 발견한 여자가 기뻐하며 허리를 굽힌다.

“보세요. 여기에 생명의 열매가 있었네요.”

나는 이 미친 여자가 생명의 열매랍시고 줍는 살덩이를 보고서 눈을 찌푸렸다. 살덩이의 정체는 모체가 죽은 후에도 마소와 마력으로 스스로를 살찌우는 암세포들, 즉 세간에서 불사암(不死癌, Undying cancer)이라 칭하는 종양 덩어리였다. 원시마법과 각성 능력자를 부르는 명칭들이 나라와 지역마다 아직 제각각인 것과 달리, 마소암과 마력암은 특성이 너무 뚜렷하고 가시적이기 때문인지 많은 국가에서 대동소이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여사제가 찾은 우둘투둘한 종양엔 날개, 깃털, 머리 등이 붙어있었다. 자그마한 머리통의 검고 하얀 줄무늬들을 보건대 북미에 흔한 멧새 종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탈모환자의 머리털처럼 듬성듬성 남아있는 깃털들이 차가운 바람결에 가늘게 흔들린다.

“자아, 내려가렴.”

종양을 톡톡 두드려서 살점을 뜯던 개미들이 도망치도록 유도한 여자는, 제 동료를 불러 동료가 지닌 망태기에 도톰한 종양을 굴려 넣었다. 그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미간을 좁혔다. 망태기를 반쯤 채우고 있는 것은 크기가 비슷비슷한 마법적 종양 덩어리들이었으니까.

잠깐. 이것들, 막 식사를 준비하려던 참이라고 했었지.

“당신들 설마 그걸 먹으려는 겁니까?”

“네.”

사제는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위대한 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선물인걸요? 먹지 않을 이유가 없죠. 고기를 손질한 뒤 칼집을 내고 마리네이드를 해서 미디움으로 구워먹으면 맛있답니다. 남은 건 팔기도 하고요.”

“……그걸 식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이신지?”

“그럼요.”

가벼운 긍정 뒤에 느긋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우선은 채식주의자분들이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오세요. 그분들은 고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살육이 싫어서 육식을 거부하는 건데, 이건 사람이 일부러 죽여가지고 만드는 고기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먹어도 괜찮은 고기인 거죠. 생김새에서 오는 거부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요.”

“…….”

“그리고 중국에서도 찾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답니다. 그분들은 이걸 약재로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뭐라더라, 로커? 로우쿼? 비슷하게 부르던데.”

발음을 들어선 아마 로우꿔(肉果/육과)가 아닐까 싶다. 고기 열매라는 뜻.

“원래 어떤 동물이었느냐, 어느 땅의 기운을 받고 생겼느냐에 따라 약효가 다르다고 들었어요. 이곳 어머니 아밀라리아의 숲처럼 특별한 장소에서는 특별히 더 영험한 기운을 품은 약재가 나온다나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저희로선 기쁜 일이죠.”

자칭 드루이드의 티 없는 미소를 보며 나는 가벼운 역겨움을 느꼈다. 불사암에 걸려 죽은 것들이 곳곳에서 부풀어 오르면서 자연계에 막대한 추가 열량과 양분을 제공하리라는 사실은 일찍부터 예측한 바이지만, 그걸 인간도 집어먹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새끼들은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그놈들은 코끼리 상아도 약이라고 먹고 물개의 불알도 약이라고 먹으며 코뿔소 뿔과 천산갑 껍데기까지도 갈아서 약이라고 처먹는 병신들이다. 뭔가 좀 있어 보이기만 하면 환장하고 입에 집어넣는 족속이니, 모체가 죽어도 죽지 않는 암세포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그러고 보면 수개월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세계 곳곳의 암시장에서 각성체 동물들의 사체와 고기가 비싼 값에 매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나마나 밀수꾼들과 꽌시로 엮여있는 중국의 한의사들이 그 비싼 주둥이들을 털어댔겠지. 기의 흐름이 어쩌고 사람의 기맥이 저쩌고 하면서, 이 기회에 돈이나 좀 만져보고자.

사실, 거부감을 제외하고 보면 불사암이 궁극의 식량이기는 하다. 조금씩만 썰어먹으면 무한히 재생하는 고깃덩어리가 아닌가. 어쩌면 벌써 많은 인구에게 식용으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의 많은 부분들이 전보다 극심해진 빈곤을 겪고 있고, 아사나 식인보다는 암세포를 먹는 게 나은 선택일 테니까.

위산(胃酸)에 녹고 나면 불사암이든 뭐든 결국 단백질과 지방의 혼합물일 뿐. 너무 큰 덩어리를 생으로 삼켰다간 곤욕을 치르겠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독성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어떠세요?”

사제가 다시금 나를 초대한다.

“저희와 식사를 함께하시고,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털어놓아보세요. 그리고 삼라만상과 어우러져 어떤 고뇌도 고통도 없이 거대한 순환에 녹아드는 삶에 대해 들어보세요. 위대한 자연과 자애로우신 어머니 아밀라리아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베풀어주신답니다.”

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고통이 없다니? 사람이 불사암에 걸리는 것도 선물이라고 할 참입니까?”

“네.”

“어떻게?”

“그 사람은 부름을 받은 거예요. 몸은 자연에게 돌려주는 선물이 되고, 영혼은 어머니 아밀라리아의 품에서 영원토록 행복을 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부름을 받으면 주변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축복을 받으며 스스로 육신의 옷을 벗어던져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요.”

자살을 한다는 소리다.

두 손을 모은 사제는 기도하듯 눈을 감고 배역에 도취된 배우처럼 읊조렸다.

“고통은 자연과 어머니의 부름을 거부할 때 찾아와요. 부름을 거부하고, 받은 만큼 나누기를 거부하며 부질없는 삶에 집착하려고 할 때. 어머니께서 배려해주신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이 세상에 머무르려고 할 때…….”

이제 다시 눈을 뜬 사제가 이렇게 결론짓는다.

“결국 고통은 순리를 거스르는 그 개인의 책임인 거예요. 육신을 벗고 나면 더 나은 행복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고통에 몸부림치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늘려가는 거죠. 정말이지 가엾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먼저 깨달은 자들’인 우리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전하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고요.”

행복하게 미쳐버린 연놈들이군.

“됐습니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던 길 가십시오. 당신들의 가르침엔 관심이 없으니.”

“그럴 순 없어요. 저는 당신의 영혼을 구해야 하니까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필요 없다고. 더 이상 내 시간을 빼앗지 마라.”

“…….”

사제의 입가에서 서서히 미소가 지워진다. 눈을 깜박이며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여자는, 이윽고 나직한 음성으로 실망감을 표현했다.

“제가 전한 어머니의 지혜가 당신에겐 시간 낭비에 불과했나요?”

“그래.”

“그런가요…….”

생각에 잠겨있던 사제가 등을 돌린다.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나는 그 뒷모습에서, 정확히는 사제의 볼품없는 마력장에서 기이한 흔들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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