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0화 (70/561)

#12. 사냥꾼들 (5)

「더턴 의용 경기병대(Dutton Volunteer Light Cavalry)」. 끼어든 기체의 테일 붐(Tail boom : 헬기 동체와 꼬리날개를 잇는 부분)에 적힌 불청객들의 이름. 엔진 측면엔 N177CP라는 등록부호가 찍혀있었다. 무선 채널을 공용으로 변경한 닐슨이 거세게 항의했다.

「너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당장 꺼져!」

그러자 먼 저편의 헬기에서 방풍고글을 쓴 사내가 이쪽을 바라본다. 헤드셋을 한쪽만 벗은 나는 육체강화 술식을 이용하여 청각을 제어했다. 가청영역(可聽領域)을 조율함으로써 특정 주파수대의 배경소음을 억제하고 그 외의 음역에 집중하는 응용기술이었다. 그리하여 들리는 소리들이 이상하게 변하긴 했으나, 닐슨의 헤드셋에서 새는 저편의 대답을 듣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워- 진정하라고, 친구. 우린 선두에 있는 가장 큰 녀석 하나만 잡으면 돼. 어젯밤부터 쫓고 있던 놈이니 순서를 따지면 우리가 먼저란 말이지. 생김새랑 흉터를 보니 틀림없어.」

「개소리 집어 치워! 이쪽엔 항법 레이더도 없는 줄 아나? 몇 분 전까지만 해도 3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던 놈들이, 뭐? 밤을 새워 추적을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새끼야!」

「진짜라니까! 쫓는 도중에 작게 눈사태가 나서 놓쳤을 뿐이야. 빛도 없고, 연료도 간당간당하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심지어 우린 열상장비도 변변치 못하다고.」

이러는 순간에도 자리를 빼앗은 저들은 부옇고 세차게 뿌려지는 눈발의 중심을 향해 난사를 퍼붓는 중이었다. 말 같지 않은 해명에 얼굴이 시뻘게진 닐슨이 울화통을 터트린다.

「장비가 부족한 건 너네 책임이잖아! 놓쳤으면 거기서 끝인 거지!」

정론이다. 그러나 저편은 계속해서 궤변들을 늘어놓았다.

「끝? 왜? 간밤에 쏜 총탄들이 고스란히 박혀있을 텐데. 그리고 우리가 먼저 몰아두지 않았으면 너희가 여기서 저 녀석과 마주칠 수나 있었을까? 지분을 따져 보잔 말야, 지분을.」

「지분? 지분이라고?!」

「그래. 이 상황에 대한 기여도라고 해도 되겠네.」

「사냥에서 무슨 기여도를 따져!」

「아 몰라! 헬기를 세 대나 굴려먹는 친구들이 가난한 이웃들 형편도 봐주고 그래야지! 우린 곧 죽어도 저걸 잡아야겠으니, 정 아니꼬우면 몸으로 들이받아 보든가 해! 같이 죽을 배짱 없으면 물러나 있고! 하여간 있는 새끼들이 더 하다니까!」

「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닐슨. 하지만 저편으로부터는 더 이상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쪽이 총 쏘기 좋은 위치를 잡으려 시도할 때마다 위협적인 비행으로 저지하기를 반복할 따름. 이는 결국 어느 한쪽도 제대로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불청객 측은 한 대의 헬기로 세 대를 견제해야 했고, 이쪽은 원래의 몰이 진형을 유지하는 의미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최종적으로는 돼지 무리가 다 흩어져버린 가운데, 단 한 마리의 슈퍼 헤비급 각성체 돼지를 네 대의 헬기가 뒤쫓는 꼴이 되고 말았다.

Fuck! 주먹으로 문짝을 후려치며 외마디 욕설을 내뱉는 닐슨. 나는 청각을 원상태로 되돌리곤 헤드셋을 바르게 고쳐 썼다.

잠시 후 각 기체에게 위험한 자리싸움을 중지할 것을 지시한 닐슨이, 짜증과 피로가 가득한 표정으로 뒷목을 문지르며 나와 경태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사냥터의 기본예절도 모르는 놈들이 여러분의 귀중한 경험을 망쳐놓는군요.」

「당신께서 미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대답한 내가 물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요. 저들이 저렇게까지 티-호그에 집착할 이유가 있습니까?」

단순히 현상금 때문이라고 보기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쪽처럼 돈 되는 손님을 태운 것도 아닌 듯한데, 간밤부터 추적을 이어왔다는 말을 사실이라 치면 소모된 연료만 따져도 얼마란 말인가. 이렇게 고도가 높은 곳에선 시간당 6백 달러는 찍고도 남을 터.

단순히 머리가 모자라서 손익계산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었다.

「예, 뭐…….」

닐슨은 한숨 한 번 길게 내쉬고서 맥 빠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 또라이 새끼들도 정부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한 놈들이라……. 지원을 받은 단체들은 매 분기마다 활동내역을 가지고 평가를 받는단 말이죠……. 점수가 높으면 장비 대여료가 감면되고, 점수가 낮으면 장비 자체가 회수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아아.」

「거기에 유명세와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저렇게 커다란 놈들을 잡은 경력이 쌓이면 기본적인 몸값이 올라갈뿐더러 추가 투자를 받기에도 유리해지겠지요.」

이해가 간다. 이들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이 평균보다 우수한 장비들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어느 정도는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전직 군인의 지역적인 명성에 힘입은 바이기도 했던 것이다. 속 좁은 경쟁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법했다.

잭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확 그냥 한 탄창 갈겨버릴까 보다…….」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는 품새를 보아 후환만 없다면 방아쇠를 당기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경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알기 쉬운 눈짓을 했다.

「세상이 너무 뻔하게 돌아가네요, 형님.」

거인의 숲에서 악마숭배자들을 잡아 죽일 적에도 부분적으로 겹치는 대화가 오갔었다. 감식에 대한 걱정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옛날 생각이 나는데.’

과거, 나와 내 조직이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부족하던 시절, 나는 중국 고위층에 줄을 대기 위한 뇌물로써 오래된 산삼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귀물을 얻고자 한국이 아닌 이곳 북미의 산간벽지를 헤매었던 것이다. 이는 규격 외의 눈을 가지고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중무장한 약초꾼들과 몇 차례나 교전을 벌여야 했다.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오지(奧地)의 약초꾼들은 보이는 사람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북미가 삼이 흔하기로 유명한 땅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 귀한 뿌리 1파운드가 자잘하게는 수천 달러에서 커다랗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나가는 마당이니, 어디 사람 목숨 따위가 대수이겠는가.

당시에 난 되도록 경쟁자들을 피하는 길로 다녔으나, 흔적을 더듬으면서까지 쫓아오는 놈들은 죽이고 파묻어 존재를 지워버렸다. 장애물이 많고 울창한 삼림지에서 시력이 남다른 내가 피를 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그렇게 찾은 1.4파운드(635그램)짜리 천종삼 두 뿌리로 품질 좋은 꽌시 하나와 마카오의 카지노 운영권을 얻어냈으니, 고생을 한 보람은 있었던 셈.

「더턴 의용 경기병대」는 결국 산간에서 나를 추적하던 약초꾼들과 같은 부류였다. 민병대원 잭은 아직껏 씩씩대는 중이다. 이는 사뭇 예언적인 분노였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또 쌓일수록, 욕심이 없는 사람들마저 차츰 절제력을 잃어버리게 될 테지.

여단장 닐슨이 조심스럽게 이쪽의 의사를 묻는다.

「미스터 킴. 그리고 그 동료 분. 여기는 저 도둑놈들에게 내어주고 새로운 사냥감들을 몰아보고자 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뇨.」

나는 거의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괜찮다면 구경이라도 하고 싶군요. 저건 저것대로 제법 볼 만한 광경이라서 말입니다.」

사냥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여흥. 중요한 건 「코드」를 관찰하고 수집하는 일과 주변지역의 정찰이다. 목숨이 경각에 내몰린 돼지는 회로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는 중이었다. 이대로 가면 사냥꾼을 따돌리더라도 오래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털가죽 아래에서 거칠게 번뜩이는 마력의 흐름을 눈에 새기며, 나는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성당에서 죽인 기사단장을 떠올렸다. 그 가짜 기사들의 우두머리가 그러하였듯이, 이 커다란 잡식동물 또한 최후의 순간에 한계를 넘은 마력운용을 보여줄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군요…….」

곤란한 표정을 짓는 닐슨. 다른 기체에 탑승한 수연과 경호실 소속 부하는 당연히 결정을 내 쪽으로 미루었을 테니, 다수결에 따르자면 무조건 내 뜻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기체에 탄 한 쌍의 ‘깍쟁이’들은 보나마나 길길이 날뛰고들 있을 터.

날 담당하는 민병대원이 한심하다는 투로 빈정거렸다.

「거 병신들이 더럽게도 못 쏘네. 밤을 하루 더 새워도 못 잡겠어.」

민병대원의 말처럼 자칭 경기병대의 사격실력은 영 봐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게다가 헬기의 포지셔닝이 수준 이하이고, 파일럿이 사수의 사각(射角)을 제대로 고려해주지도 않으니 사냥이 단시간에 성공할 리가 없었다.

‘명성을 얻어도 지켜내질 못할 놈들이군.’

어쨌든 내 입장에선 관람시간이 길어져서 좋은 일이었다. 다만 초중량 돼지와의 거리가 아까보다 멀어진 터라 조금 더 집중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런데…….

돼지를 몰아가는 방향이 이상하다.

「어?」

부조종석에서 나오는 탄식.

「아니 저 머저리들이……. 숲으로 가는 길을 우선적으로 차단해야 할 거 아냐!」

그냥 돼지 꽁무니를 쫓기에 급급해서, 혹은 이쪽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견제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몰이꾼이 따로 없는 저들은 사냥감에게 울창한 숲으로 뛰어들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이건 나 역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 아까보다 더 혈압이 오른 닐슨이 공용 무선채널에 대고 다급한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대가리에 좆 박은 새끼들아! 가속해! 앞질러서 진로를 막으라고! 안 들리냐?!」

그러나 돌아오는 답신은 없었다. 앓는 소리를 내던 닐슨은 이쪽의 경량헬기 하나로 하여금 대신 진로를 차단토록 지시했다. 깍쟁이 남녀가 타고 있는 바로 그 헬기였다.

당장 동승한 민병대원부터가 반발했다.

「저 새끼들을 우리가 왜 도와줍니까?」

닐슨이 찌그러진 낯으로 답했다.

「나라고 설마 도와주고 싶을까! 저걸 놓치면 또 누가 다치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 우리를 믿어주는 회원들을 생각하잔 말이야, 회원들을!」

오……. 이 상황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다니. 보기 드물게 품질이 좋은 인간이다.

그러나 저편의 얼간이들은 이런 배려조차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이쪽의 배려를 끼어들기로 판단한 것인지, 더튼 측이 급격히 가속하여 이쪽 몰이꾼 기체와의 충돌궤도에 돌입하는 게 아닌가.

「회피! 회피!」

돼지를 쫓기에 좋은 높이는 거기서 거기인 법이었다. 비슷한 고도에서 교차하는 동선으로 쇄도하던 두 헬기가 서로를 간발의 차이로 비껴냈다. 상승과 하강을 달리함으로써 3미터 간격을 두고 어긋난 것.

내가 보기엔 실력보다는 운이었다. 둘 다 상승하거나 둘 다 하강했으면 아주 볼 만한 사고가 터졌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기류에 휩쓸린 두 기체는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비틀거린 끝에 간신히 균형을 회복했다.

「어우야…….」

경태가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손에는 약간의 땀이 배어있었다. 뭐, 너무 뜬금없이 박진감이 넘치긴 했지. 애당초 더턴 경기병대 파일럿의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빚어질 일이 없었던 위기였다. 이쪽 몰이꾼 파일럿은 설마 거기서 달려들 거라곤 상상을 못했을 터이고.

「3호기. 괜찮은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무전을 보낸 닐슨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을 풀었다.

「그래, 그래. 정말 다행이야.」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닐슨의 얼굴이 다시금 끔찍하게 일그러진다.

「뭐가 어째? 누구 때문에 사냥감을 놓쳐? 좆을 까라, 이 사생아 새끼야!」

아무래도 공용 채널을 통해 책임전가가 날아든 모양. 나는 굳이 청각을 조율하여 그 한심함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황당하게 자유를 얻은 관찰대상을 응시했다. 나는 놈이 그대로 달아나리라 여겼으나…….

‘뭐 하는 거지?’

몸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는 커다란 혼종 돼지는, 나무 그늘 아래 자세를 낮춘 채 이쪽의 상공을- 정확하게는 경기병대의 헬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보통 돼지는 하늘을 보지 못하는 동물이라 말한다. 골격 구조상 머리를 일정 각도 이상으로 들기가 불가능하고, 시력이 너무 나빠 멀리 있는 사물을 인지할 수가 없다며.

하나 그렇다고 하여 하늘을 아예 보지 못한다는 건 과장이었다. 하늘이 정수리 위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영혼에 회로가 뚫린 개체에겐 시력도 장애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 느낌을 확신했다.

색이 짙은 돼지는 자신을 쫓던 사냥꾼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