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69화 (69/561)

#12. 사냥꾼들 (4)

마법사로서의 존재감을 거의 완벽하게 은폐 가능한 나와 달리, 내 부하들이 영혼의 역장을 펴고 거두는 데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존재감을 줄일 수는 있으되 스스로가 능력자라는 사실 자체는 감출 방법이 없다는 뜻.

그래서 경태는 이륙 직전까지 민병대로의 영입제안에 시달렸다. 경태가 끝끝내 거절하자 제안에 가장 열심이었던 잭이라는 대원은 간식을 빼앗긴 리트리버처럼 풀이 죽었다. 내 가장 충성스러운 사냥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곧 이륙합니다. 탑승자 전원은 안전 고리 결속을 확인해주십시오.」

내부 교신용 헤드셋을 통해 파일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속하는 회전익 아래 쌓여있던 눈이 안개처럼 흩날리며, 얼어 죽은 잡초들이 겨울철의 햇빛 아래로 누런 이파리들을 내놓았다. 그 이파리들의 흔들림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헬기와 헬기의 그림자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어지는 틈은 곧 높아지는 고도였다. 바깥으로 내놓은 발밑에서 땅과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다. 초당 8미터씩 상승한 기체는 이윽고 운하를 스치는 듯한 반원을 그리며 동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러던 중에, 나는 시가지 외곽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녀 하나를 발견했다.

“……!”

햇빛이 눈부신지 손으로 눈가에 그늘을 만든 그녀의 이목구비는, 스승새끼의 기억 속 그레이스의 얼굴을 꼭 닮아있었다. 게다가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위화감까지. 철렁 떨어진 심장과 급증하는 맥박이 혈관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장애물을 무시하는 시야가 없었더라면 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좇고자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을 것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내 이상을 알아차린 경태가 걱정스레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주변을 의식하여 애써 침착하게 돌려주는 대답.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후방으로 고정시켜둔 채다. 「아는 사람……입니까?」라고 중얼거리는 경태. 그 사이 수도복을 입은 여인의 실루엣은 작고 먼 점으로 변해간다. 그 형상을 더 이상 식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서도, 빨라진 맥박은 쉽게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나는 아직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이거나 단순히 얼굴만 닮은 타인일 확률은 희박했다. 검고 흰 수도복은 백인들의 신을 모독하길 좋아하는 마녀가 실제로도 즐겨 착용하는 복장. 후기성도교회의 교세가 지배적인 유타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복장이기도 하다.

복장에 대해 반추하던 나는, 머리가 조금 식고 나서야 첫눈에 감지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불투명함.

의식이 얼굴에만 집중되었기에 깨닫기가 늦었지만, 바람에 흔들리던 머릿수건과 수도복은 황금기의 눈으로 보기에도 거의 불투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는 그 복장이 최소 아티팩트(Artefact)급에 해당하는 마법적 도구라는 의미.

확신을 얻은 난 느린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어차피 그쪽은 나를 알아볼 수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얼굴엔 이렇다 할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생각 없이 돌아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어도 그녀는 나를 알아볼 수 없다. 스스로를 감출 능력과 적을 먼저 식별토록 해줄 눈을 겸비한 이상, 사냥감으로서의 내가 과민반응을 보일 이유는 없는 셈이었다. 당장 몸을 피해 달아날 이유는 더더욱 없었고. 난 단지 생각지도 못했던 조우에 놀랐을 뿐이다. 우연한 마주침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왼쪽에 보이는 마을이 글렌우드(Glenwood)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는 불 클레임 힐(Bull Claim Hill)입니다. 몰이꾼들이 돼지 무리를 포착했다는군요. 두 대의 헬기가 계곡을 따라 돼지들을 아래로 몰고 내려올 겁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언제라도 발포가 가능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선을 타고 오는 조종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악마의 수녀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은 전율하는 거인 그 자체.

이미 방계 교단을 파견하여 포플러 숲을 사람 잡아먹는 미궁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그녀다. 범행현장을 다시 찾는 범죄자와 같이, 또는 다음 전략을 구상하는 모략가와 같이 숲과 그 주변을 탐색할 동기는 넘치도록 충분했다.

그리고 그레이스 역시 나와 같은 원탁 밖의 마법사로서, 전율하는 거인으로부터 마법적인 지혜를 얻으려 할 수도 있었다. 비록 그녀에겐 나와 같은 눈이 없으나, 원탁의 마스터급 마법사쯤 되고 보면 간접적인 관찰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어쩌면 포교가 목적일 수도 있겠다. 이 일대엔 모호한 신비주의에 경도된 인간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들은 그레이스가 신도로 거두기에 적합한 인적자원들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미 존재하는 단체들에 기존의 숭배자들을 침투시키는 것도 유효한 전략일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사냥이다. 이 근처엔 반드시 제국주의자들의 첨병이 나와 있을 터이므로. 그들을 잡아 죽이는 일은 악마적인 수녀에게 있어 대단히 보람찬 여가활동이 될 테지. 그녀가 노리는 잠재적인 사냥감의 목록엔 아마 크로우허스트 경의 이름도 올라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유해만이 남아있는 내 저주받을 스승새끼.

「자, 승객 여러분. 잠시 후 돼지들이 정면에서 출현할 겁니다. 여러분 입장에서의 정면이니까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이렇게 알리며, 파일럿이 기체의 고도를 낮추었다. 능선을 끼고 소음의 확산을 최소화하려는 비행이었다. 분수령이 모종의 경계선처럼 다가온다. 그 경계를 지나치는 순간, 덩치가 큰 혼종 돼지들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새로운 헬기를 보고 자지러지듯 방향을 꺾었다.

「지금!」

총구의 소염기가 연속으로 번뜩인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산간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죽은 돼지와 놀란 돼지가 산비탈을 따라 굴러 내린다. 그러나 구르는 방향이 추격의 방향이었으므로 놀라서 넘어진 돼지들은 다시 일어나기 전에 시체로 변했다. 배를 드러낸 채 총을 맞았기에 터지는 피의 양들이 앞서보다 많았다.

「훌륭합니다!」

날 담당하는 민병대원의 표정이 밝아진다. 사수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쏴주는가는 몰이사냥의 속도에 직결되는 요소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담담한 사격으로 돼지들을 쓰러뜨렸다. 특별히 눈여겨볼 개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질량이 질량인 만큼 회로가 뚫린 놈들이 일부 섞여 있었으나, 내가 수집할 만큼 질이 좋은 「코드」를 지닌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 중에 특별한 놈은 없어 보이죠?」

「그래.」

내게 확인한 경태가 어깨를 으쓱이곤 정확한 사격을 이어갔다. 스물 남짓한 돼지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네 발로 달리는 동물에게 아래로 기우는 산비탈은 전후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까다로운 도주로다. 돼지들은 넘어지고 구르기를 거듭함으로써 필사적인 희극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민병대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했다.

‘사냥감을 모는 실력들이 상당히 좋은데……?’

세 대의 헬기는 표적 집단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속도와 위치를 조정했다. 감탄스러운 건 그때마다 ‘여단장’ 닐슨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 이들의 전술적 움직임에선 나와 내 애들도 배울 부분이 많아보였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을 잡는 사냥과 짐승을 잡는 사냥이 기술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당초엔 예상하지 못한 유익함이었다.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사격의 여백마다 각 기체의 기동을 진지하게 눈에 담던 경태가, 돼지 무리의 전멸을 보고서 기내회선에 질문을 던진다.

「죽은 돼지는 회수하지 않는 겁니까?」

대답은 부조종석의 닐슨으로부터 돌아왔다.

「아뇨. 가까운 지상작전팀에게 좌표를 송신했으니 회수는 그쪽에서 대신해줄 겁니다.」

「와우! 밑에서 활동하는 팀이 따로 있다구요?」

「예. 우리가 다른 업자들에 비해 차별화되는 요소이자, 다른 곳보다 요금을 비싸게 책정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리 하나를 잡을 때마다 착륙해서 시체를 매달고 이륙해야 한다면 시간낭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헬기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또 어떻고요?」

「아하.」

「미스터 킴이 워낙 흔쾌히 값을 지불하셔서 이런 부분까지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었을 뿐이죠. 장기적으로는 아주 넓은 면적에 걸쳐 진정한 의미의 공지합동 사냥을 해보려고 합니다.」

경태가 새롭게 묻는다.

「민병대 이름에 여단이 들어간 건 그만큼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까?」

정규군 편제로서의 여단(Brigade)은 독립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한 최소단위의 부대로서, 국가마다 다르긴 하나 가장 적은 경우에도 천 명 이상의 전투 병력을 포함한다. 다시금 질문을 받은 닐슨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주력으로 활동하는 타우-러너(능력자)의 수가 서른 남짓이고, 나머지 무장 대원들을 합쳐도 채 백 명이 안 됩니다. 다만 일반 회원으로 가입한 주민들까지 한 식구로 쳐서 여단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대원하고 회원은 무슨 차이입니까?」

「회원들은 사실 고객에 가깝습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안전에 기여하겠다고 매달 몇 달러씩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죠. 우리는 그런 분들의 주거지에 대해 강화된 순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야간에 응급사태가 발생했을 땐 헬기도 보내드리고요. 물론 헬기 출동엔 정비비와 연료비가 추가로 붙습니다.」

「말하자면 그것도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로군요?」

「그런 셈이죠. 아직 체계가 덜 잡히긴 했어도 말입니다.」

「나중엔 사단이나 군단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 근처 주민들이 다 가입해도 군단이 되기엔 모자랄 겁니다. 인구밀도가 너무 낮은 동네니까요.」

부분적으론 사설보안업체 노릇도 겸하고 있다는 말. 경찰이 출동하는 데 한 시간은 기본으로 걸릴 벽지에선 수요가 제법 많을 것 같았다. 각성한 능력자 집단이 자신들의 능력을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

망할. 나는 맥락도 없이 다시 고개를 드는 근심, 그레이스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려 애썼다.

‘온천을 예약해두길 잘했군.’

사냥이 끝난 뒤에 방문하기로 한 온천은 안전가옥을 둔 리치필드로부터 남쪽으로 약 10마일(16.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거기서 안전가옥에 남아있는 녀석들에게 연락하여 주변 상황을 확인하도록 하는 게 좋겠지.

당장은 통화권 이탈이라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위성전화 또한 헬기를 타고 이동하면서는 쓸 수가 없는 물건이었고.

헤드셋에서 파일럿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슬슬 다음 사냥감들이 온다는군요. 멀리서 봐도 심상찮은 놈이 섞여있다고 하니 두 분 모두 준비하십시오.」

날렵한 두 대의 헬기가 먼 곳으로부터 새로운 돼지 무리를 몰아왔다. 본래 하나가 아니었을 무리들이 강제로 뭉쳐져서는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온다. 집돼지와 야생 돼지의 혼종들은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몸집들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도 선두에 선 수컷은 유난히 더 덩치가 컸다. 그 무게는 한눈에 보기에도 1천 파운드(약 454킬로그램) 이상. 힘과 속도도 크기에 걸맞은 수준이어서, 눈밭을 달리는 모습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제설차를 보는 듯했다. 거칠게 뿌려지는 눈으로 인해 통상시야로는 그 너머의 돼지를 식별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어이쿠, 저 녀석 저거 티-호그급 아닙니까?」

경태의 말에 동승한 잭이 맞장구친다.

「운이 정말 좋군요! 저 정도 힘이면 백 퍼센트 희귀야수 판정이 나올 겁니다! 포상금이 3천 달러부터 시작하니 반드시 잡아야 해요! 오닐! 제대로 녹화되고 있는 거 맞지?!」

「물론이지!」

민병대원들이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나는 전차를 연상케 하는 돼지의 질주를 유심히 관찰했다. 등짝의 갈기를 휘날리는 돼지의 「코드」는 역시나 가장 기본적인 육체강화에 치중된 것이었다. 완전히 새롭거나 대단한 구석은 없으되, 마력의 운용 면에선 그래도 약간의 영감을 주기는 했다. 머릿속에 넣어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다 싶은 정도.

「어?」

파일럿이 당황하는 소리. 새롭게 출현한 헬기 한 대가 최대속도로 날아와 난폭하게 끼어든 탓이다. 충돌을 피하려면 이쪽에서 자리를 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난입한 헬기의 탑승자들은 즉각 선두의 돼지에 대한 사격을 개시했다. 이쪽에서 붙잡아둔 사냥감을 가로채려는 것이었다.

닐슨이 격분하여 외쳤다.

「더턴! 이 상도덕도 없는 후레자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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