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냥꾼들 (3)
식사를 끝낸 우리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서 조금 이르게 길을 나섰다. 이륙이 10시라면 9시부터는 준비에 들어가야 이상적인 것이다.
리치필드는 남북으로 각각 하나씩 두 개의 농업용수 운하가 흐르는 도시였는데, 넓은 공공부지 일부를 헬기의 이착륙장으로 제공하고 있는 카운티 사무소는 시가지의 남쪽 경계에 해당하는 운하에 바깥쪽으로 붙어서 자리 잡고 있었다.
「허가 받지 않은 야숙(野宿)을 금함」
「공공부지 및 행사장(Fairground)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나 도난에 대하여 카운티 당국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며, 모든 위험은 부지를 이용하는 자 개개인이 감수하여야 함.」
이런 경고판이 붙어있는 펜스형 슬라이딩 도어 바깥엔 커다란 깃발들을 요란하게 휘날리는 일군의 시위대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동물의 목숨은 소중하다! 사냥꾼들은 야생 돼지 학살을 중지하라!”
“중지하라! 중지하라!”
“동물들에게도 영성(靈性)이 있다! 인간과 동물은 대등한 생명이다! 정부는 학살을 조장하는 시책을 폐기하고 동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이 도시에 자칭 요정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시 이것들도 와있으리라고 예상하긴 했다. 「지구해방전선」의 단짝이자 그들에 버금가는 악명을 지닌 방화기술자들의 모임, 동물권리 보호를 기치로 수립된 불법적 민병대, 「동물해방전선(ALF)」. 영성이니 어쩌니 주워섬기는 걸 보니 이 인간들도 친구들과 비슷하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가보다.
‘채식에 대한 믿음은 바뀌었을지 궁금하군.’
육식은 사악하다며 육류가공공장에 불을 지르고 다니던 광신적 채식주의자들이 전율하는 거인의 존재로 말미암아 딜레마를 겪고 있다면, 그건 제법 재미있는 희극일 것이었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인간의 습성을 감안할 때, 그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정문 바로 옆엔 따분한 표정인 경찰들이 순찰차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고, 허리 높이의 펜스 너머로는 중무장한 민병대와 사냥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따금 시위대를 흘끔거리며 같잖다는 표정으로 조소를 머금기도 했다.
경태가 약속을 잡은 민병대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어기 깃발이랑 현수막이 보이네요.”
사냥꾼 여단의 깃발이 꽂힌 곳은 주차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눈밭이었다. 나무와 철사로 엉성한 울타리를 두른 눈밭은 본디 방목지로 쓰이던 누군가의 사유지일 터이나, 지금은 공공부지와 마찬가지로 착륙한 헬기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줄줄이 부러지거나 쓰러진 울타리의 지주들을 보건대 여기서도 티-호그가 날뛰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울타리가 넘어진 자리를 사냥꾼들이 이착륙장의 출입구로 활용하는 중이었다.
여단 소속 사냥꾼 하나가 경태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미스터 킴! 일찍 왔군요!”
그는 나와 수연, 그리고 경호실 소속 부하 하나와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내 일행이 단 넷 뿐인 것은, 숫자가 많으면 지나치게 눈에 띌 것 같아서였다. 심지어 무기도 휴대하지 않았다.
경태는 민병대의 헬기를 보며 과장스럽게 감탄했다.
“이야, 들은 대로 장비가 아주 훌륭하네요, 잭. 슈퍼차저를 장착한 건가요?”
“하하! 그걸 알아보다니. 당신의 안목이 아주 좋군요.”
잭이라 불린 민병대원이 뿌듯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맞습니다. 이 일대는 기본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아서 말이죠. 거인의 숲 근처엔 1만 피트가 넘어가는 산지가 널려있다 보니, 어지간히 강한 엔진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날아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거든요. 엔진 튜닝은 기본이라고 봐야죠.”
슈퍼차저는 엔진에 공기를 불어넣는 과급기(過給器)의 한 종류로, 엔진의 동력 일부를 흡기(吸氣)에 할당하여 최대출력을 향상시키는 장치다. 증가하는 출력에 비례하여 연비가 감소하긴 하지만, 민병대 사냥꾼의 설명처럼 평범한 민수용 헬기를 1만 피트 고도에서 운용하려면 불가피한 개조였다.
경태가 전문적인 감탄을 연속으로 이어갔다.
“열상장비도 좋은 걸 쓰시네. 보아하니 광각렌즈에 거리측정기까지 기본사양으로 포함된 모델 같은데, 이거 한 오륙천 달러쯤 하지 않아요?”
“하하하! 우리와 함께하는 사냥꾼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려면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요.”
“이건 M210 V2 드론 세트! 이야, 죽입니다, 죽여요. 이게 이쪽 분야에서는 군용품 빼곤 최정상급 아이템 아닙니까? 돼지들 씨를 말리려고 아주 작정들을 하셨네.”
“하하하하!”
“어라? 저 라이플 저거 시그 MCX네? 탄은 당연히 .300 블랙아웃이겠지요?”
“하하하하하! 물론 그렇습니다! MCX 같은 총에다가 5.56밀리를 쓰는 건 게이들이나 할 법한 짓거리예요! 블랙아웃이 희귀야수 사냥에 얼마나 좋은가 하면, 이게 사람 몸에다 쏘면 그냥 뚫고 지나가버리지만 곰이나 돼지 같은 놈들한테는…….”
“그렇죠, 그렇죠! 탄자 무게가 그래도 백 그레인은 넘어가야 아 이게 총알 좀 박히는구나-”
잭의 웃음소리가 갈수록 더 길고 더 커지는 가운데, 관심이 끌린 동료 대원들까지 몰려와서는 웃고 떠들며 손뼉까지 쳐대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갔다. 언제 봐도 참으로 탁월한 친화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간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고 싼 건 싼 이유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50% 국비지원을 받고도 시간당 8백 달러라는 말만 들었을 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확인하니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은 이만큼의 값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이렇게 칭찬을 마무리하는 경태의 말에, 잭은 거의 감동하다시피 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다른 대원이 대답했다.
“우리 여단은 언제나 최고를 추구하죠. 책임자로서 그걸 알아주는 손님을 맞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책임자시라고요? 성함이?”
“여단장을 맡고 있는 라이언 크리스토퍼 닐슨입니다. 닐슨이라 불러주십시오.”
닐슨이 우리 일행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다. 가슴에 패용한 훈장이 가짜가 아니라면 현역 시절 꽤나 날리던 군인이었을 것이었다. 현재는 자연적인 회로가 제법 형태 좋게 열려있는 능력자이기도 하고.
이때 임시 이착륙장이 가장자리부터 부산스러워졌다. 가벼운 무질서와 함께 나타난 것은 꼬리를 물고 진입하는 세 대의 전륜구동 픽업트럭이었다. 각각의 트럭은 측면에 월마트 로고를 붙여놓았다. 선두 차량에서 내린 남성이 스피커에 연결된 마이크를 들고 외친다.
「무기랑 탄약 배송 왔습니다! 주문하신 분들 찾아가세요!」
이쪽에서도 주문을 넣었는지, 닐슨이 대원들로 하여금 물건을 받아오도록 지시한다. 그렇게 가져오는 탄약 상자들도 월마트 로고가 붙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바람에 날려 오는 광고지 하나를 낚아챘다.
「최고의 사냥꾼들을 위한 최고의 사냥용품 배송 서비스! 월마트의 「Lastmile for Hunters」! 총기와 탄약을 포함하여 엽사에게 필요한 모든 보급품들을 원하는 사냥터까지 직배송으로 가져다 드립니다! 월정액 멤버십에 가입하시면 아래의 목록에 기재된 탄종들을 5% 할인된 가격으로 주문하실 수 있으며, 각 탄종별 구매한도는 멤버십 등급에 따라-」
…….
뭐랄까, 시장통이 따로 없군.
광고지를 다시 바람에 내어준 나는 경태와 닐슨이 코스를 정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곧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하자, 경태는 네 사람 분의 두 시간 비행요금에 임시면허 발급 비용, 온천행과 사냥물의 바비큐를 위한 추가금, 민병대가 제공하는 총기대여 서비스 및 탄약 무제한 이용권, 마지막으로 민병대측이 요구하지도 않은 15퍼센트의 봉사료까지 포함해서 합계 5,336달러를 결제했다.
닐슨은 기꺼워하며 영수증을 발급해주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경험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후로도 경태는 여러 대원들에게 붙임성 좋게 말을 걸었다. 그 대화를 들어보건대, 대원들 중 많은 수가 원시마법에 각성한 능력자들이기 이전에 불경기로 인하여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었다. 이에 경제적 곤경에 처한 대원들의 형편을 딱하게 여긴 닐슨이 민병대 조직을 영리법인으로 전환해서 고위험 사냥을 해보자는 의견을 냈고, 뜻있는 간부들 몇몇이 가산을 정리하여 조달한 자금과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특별대출을 합쳐 사업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연기에 능한 경태는 그런 사연들을 듣고서 감동적이라며 눈시울까지 붉혀주었다.
그러던 중에 한 대원이 따뜻한 증기가 오르는 종이컵 세 개를 쟁반에 올려서는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여러분. 코코아나 한잔씩 드시죠.”
말은 나에게 걸었으되 안 그러는 척 눈이 돌아가는 방향은 내 옆에 있는 수연 쪽이었다. 수연 녀석은 코에서 목덜미까지 감싸는 방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누군가에겐 내놓은 눈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컵을 받아 뜨거운 단맛을 머금었다. 색이 짙은 선글라스에 김이 서린다. 수연은 조용히 손을 저어 사양함으로써 젊은 민병대원을 상심케 했고, 마지막으로 경호실 소속 부하가 짤막하게 고맙다고 말하곤 제 몫의 코코아를 맛보았다.
나는 의기소침한 민병대원에게 말을 걸었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래도 헬기를 세 대씩이나 구입할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군요.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중고로 사들여도 최소 100만 달러씩은 줘야 할 기종들일 텐데 말입니다.”
“아아.”
젊은 민병대원이 어깨를 으쓱인다.
“두 대는 투자를 받은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돈을 주고 구입한 건 저쪽에 주기된 작은 녀석 한 대뿐이죠. 그래도 앞으로 10년간 매달 8천 달러씩 잔금을 치러야 하지만요.”
“투자요? 헬기를?”
“예. 리더 기(機)로 쓰는 커다란 놈은 군에서 원래 민간에 불하할 예정이었던 걸 정부가 고위험 사냥 지원 사업으로 빌려준 것이고, 다른 한 놈은 토마스 피너라는 지역 유지분께서 수익 분배를 조건으로 지원해주신 겁니다. 운이 아주 좋았죠.”
“확실히 그렇군요. 기체가 셋이면 면을 이룰 수 있으니까.”
“어?”
민병대원이 당황했다.
“우리 대장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잖습니까.”
“……그런가?”
두 개의 점으로는 선밖에 이루지 못하지만 세 개의 점으로는 면(面)의 최소조건인 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 무언가를 가두거나 포위하는 과정에서 둘과 셋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그 점들 하나하나가 기동성 좋은 헬리콥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은 다른 사냥꾼 집단과의 협력 없이도 단독으로 효율적인 몰이사냥을 해낼 수 있는 단체라는 뜻이었다.
‘체급이 가벼운 헬기도 좋은 투자 상품이 되겠어.’
이는 암시장에서가 아닌, 합법적인 시장에서의 수요증가에 대한 예측이었다. 각성한 야생동물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중에는 헬기 제조사에 주문을 넣어도 생산량이 부족하여 물건을 인도받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명의를 분할하여 다수의 업체에 백 대 가량 주문을 넣어놓고, 훗날 경량 헬기에 대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폭발했을 때 주문 자체에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아넘긴다면 1-2년 안에 상당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민간에 불하되는 정부자산들도 최대한 받아서 쟁여놔야겠지.
이처럼 돈이 나올 구석은 많았으되, 그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민병대원이 다른 방향을 보며 말했다.
“나머지 손님들이 오는군요.”
헬기가 셋이고 승객 한 사람당 한 명의 민병대원이 붙는 식이므로, 승객에게 열려있는 자리는 모두 합쳐 여섯 석이 되었다. 기실 젊은 민병대원이 리더 기체라고 지목한 헬기는 체급이 한 단계 위여서 자리도 더 많았으나, 대장인 닐슨은 그 자리에 여분의 물자와 구난장비 등을 실음으로써 불의의 사고를 대비했다. 제법 마음에 드는 견실함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가 차지하는 좌석 네 개를 제외하면 남는 좌석은 둘.
이륙을 20분 앞두고 합류한 것은 선글라스를 쓴 한 쌍의 남녀였다. 그들을 상대하는 잭과 닐슨의 태도는 이쪽을 상대할 때에 비해 사뭇 식어있는 온도였다.
“이건 비밀인데…….”
제 자리로 돌아가기 전, 젊은 민병대원이 입가에 손을 대고 들려주는 말.
“저 사람들이 타는 기체가 가장 재미없는 몰이꾼 역할을 전담할 겁니다. 원래는 각 기체별로 돌아가면서 수행하는 역할이지만, 저치들이 진짜 밥맛없는 깍쟁이들이었거든요. 장비 차이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다른 데보다 비싸다고, 깎아달라고 진상을 부리는 통에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곳이 더 저렴하면 그냥 거기로 가버리라고 하지 그랬습니까?”
“당연히 그랬죠.”
“그런데요?”
“정부지원을 받는 단체가 이래도 되는 거냐면서, 민원을 넣어서라도 꼭 불이익을 보게 해주겠다고 언성을 높이는데……. 하. 홧김에 쏴버릴 뻔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제 막 시작한 사업에 만에 하나라도 재를 뿌리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받아줬죠.”
겁도 없는 녀석들이군. 무장한 민병대원들 앞에서 그 난리를 쳤다니.
다시 곱씹건대,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는 능력은 지능에 비례하는 두뇌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