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67화 (67/561)

#12. 사냥꾼들 (2)

가장 눈에 띄는 건 영혼의 복음 운운하는 부분이었다. 환경보호에 미쳐있긴 했을지언정 이렇게 종교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는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원시신앙의 부활인가…….

아예 생각도 못한 바는 아니었으되 막상 현실에서 마주하고 보니 어색함을 금할 수 없다. 마법사로서의 내가 이해하는 영혼은 산 것을 이루는 구성요소의 하나에 불과한 까닭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현시점의 과학으로는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

그래서 나는 마소와 영혼이 암흑물질의 일종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관측 가능한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제한적인 경로로만 이루어지는, 단순한 물질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로 인간에게 죽음 이후는 없다. 영혼은 생명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질 뿐. 「황금기의 눈」으로 목격한 모든 죽음들이 그러했다. 천상으로 올라가는 영혼도, 지옥으로 떨어져 내리는 영혼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애당초 이 관측 불가능한 인간의 구성요소에 제멋대로 ‘영혼’의 개념을 갖다 붙인 원탁의 마스터들이 문제인 것이다.

달리 대체할 명칭이 마땅치 않아 나 역시 준용(遵用)하고는 있어도.

그렇다곤 하나, 가슴이 아닌 머리로는 엘프를 자칭하는 방화(放火) 애호가들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인의 존재감이 워낙에 거대하니까.’

태풍, 지진, 번개, 불과 화산, 태양과 달,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천체들, 커다란 짐승, 드높은 산, 그 위의 커다란 바위와 오래된 거목, 그리고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최초로 종교적 숭배를 받은 것들은 하나같이 관찰자에게 경외감을 주는 자연의 일부들이었다.

그 경외감의 근원은 감각적으로 압도당하는 경험이다.

나조차도 숲의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꼈건만,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지닌 평범한 각성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안개를 두른 하얀 숲이 지평선을 넘어서까지 투사하는 거대한 존재감은, 그 자체로 누군가를 무릎 꿇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이 녀석들의 머릿수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고?”

내가 재차 물어보자 경태가 끄덕인다.

“도시의 서쪽과 서남쪽에 텐트랑 캠핑카들이 모여 있는데, 거의 무슨 중동의 난민촌을 잘라다 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북쪽으로 2킬로미터만 올라가면 시가지와 맞먹는 규모로 또 하나가 있다고 하고, 동쪽의 샌드 렛지스(Sand Ledges)라는 곳에도 외부인들이 무수하게 진을 치고 있답니다.”

“그게 다 ‘순례자’들인가?”

“아뇨. 돼지 잡으러 온 사냥꾼들도 많고, 민병대원들도 많고, 순수하게 연구나 관찰을 위해 온 사람들이나 관광객들도 많고,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는 단체들도 많고, 그밖에도 군에 경찰에 시민봉사단(Citizen Corps)이나 주 재난관리부서 인력 등등 해서 아무튼 오만 잡놈들이 그냥 다 많습니다. 심지어 보이스카우트랑 걸스카우트까지 있던데요.”

경태가 주머니로부터 부스럭거리는 봉지들을 꺼내놓았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쿠키 좀 드시겠습니까? 볼이 발갛게 언 애들이 하나만 사달라고 조르는데 한 봉지만 달랑 사올 수가 없었지 말입니다.”

“…….”

쿠키는 좋은 것이지. 마침 자기 전에 섭취할 열량이 필요하던 참이다. 봉지 하나를 뜯자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굵은 초코 칩이 알알이 많이도 박혀있는 쿠키들이었다. 입에 하나 넣고 깨물자 와사삭 부서지는 질감 사이로 강렬한 단맛이 밀려들었다.

내가 원래는 과한 단맛을 싫어했는데 말이지…….

“어떠십니까?”

“맛있다.”

“크, 다행입니다.”

“너희도 먹어라.”

내 말에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실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홍영식 차장에게는 서늘한 눈짓을 한다. 따라오라고. 홍영식이는 세상 다 산 얼굴이 되어 수연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손수 회로까지 뚫어준 간부가 불혹의 나이에 저러는 걸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조직 내 서열이라는 게 나이와는 무관한 것이긴 하지만.

경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진짜, 직접 보니까 하나하나 일일이 조사를 못한 이유를 알겠던데……. 이번엔 홍 차장이 운이 나빴네요.”

“…….”

슬쩍 주방을 보면, 수연은 불에 물을 올리고 석류 티백과 잔들을 꺼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질책이 이어지는 내내 홍영식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구해방전선이 우리 조직의 옛 고객만 아니었어도 책망의 강도가 많이 낮아졌을 것이었다.

잠시 후, 차를 곁들인 다과를 들면서 나는 나머지 팸플릿들을 순서대로 살펴보았다. 개중 하나는 문자 그대로의 광고지였다.

「신나는 레이저백 헌팅 투어!」

레이저백(Razorback)은 야생 돼지를 뜻하는 표현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야생화된 집돼지들만을 가리키는 단어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집돼지와 멧돼지의 혼혈도 대충 레이저백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헬기를 타고 미국의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돼지들을 사냥해보세요!」

「작년 한 해 돼지들로 인해 발생한 농작물 피해액이 자그마치 15억 달러! 그 밖의 손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돼지, 돼지, 돼지! 사방 천지에 넘쳐흐르는 더럽고 탐욕스러운 돼지의 무리들! 매년 2백만 마리씩 잡아 죽이지 못하면 놈들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난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야생 돼지들과의 총력전을 개시해야만 한다!」

「국비지원으로 저렴해진 요금! 한 시간에 8백 달러면 당신도 애국자가 될 수 있다! 사냥도 즐기고 주민들의 안전에도 기여하며 식량안보까지 수호하는 일석삼조의 경험을 해보자! 행정명령에 의거, 사냥용 임시면허 발급도 현장에서 단돈 60달러에 간편하게 가능!」

「보너스! 괴물 같은 티-호그를 잡아 연방 환경청과 주 정부가 지급하는 포상금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파운드당 기본 50센트! 그것이 만약 희귀야수(Rare beast)일 경우엔…… 하나님 맙소사, 파운드당 3달러씩이나 받을 수 있다니!」

「우리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은 고위험 사냥(High-threat hunting) 경험이 풍부한 합법적 민병대로서, 숙련된 타우-러너 대원들이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모든 사냥과정에 대한 영상기록을 제공해드립니다. 희귀동물 증명 절차 또한 친절하게 도와드리니, 망설이지 말고 연락 주세요.」

「애국적인 사냥꾼들이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낯선 용어들이 몇몇 섞여있었으나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 맥락상 희귀야수는 각성한 야생동물들을, 고위험 사냥은 그런 각성체들을 쫓는 사냥을 뜻할 것이었다.

나는 눈을 들어 경태를 바라보았다.

“이건 왜 받아온 거냐?”

“거기 쓰여 있는 거랑은 다른 의미로다가 일석삼조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의심 받을 여지가 없는 광역정찰, 힘 좋은 돼지들의 「코드」 관찰, 그리고 형님의 기분 전환까지.”

손가락 셋을 펼쳐 하나씩 접어가며 늘어놓는 이유들이 타당하다.

“제가 보니깐 괜찮은 코스들이 있더라고요. 두 시간 코스를 예약해서 잘 이야기하면 포플러 숲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빠르게 둘러보고 올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투어가 끝난 다음 남쪽에 있는 온천에 들를 수도 있다고 하고요.”

“……온천?”

“예. 찬바람 맞으시면서 사냥을 하시다가 뜨끈-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시면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나쁘지 않지. 내가 끄덕이자 경태가 묻는다.

“내일 중에 예약을 잡아 볼까요?”

“잡을 순 있고?”

“가능할 것 같습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보이던데요.”

“해봐라, 그럼.”

“옙.”

원래는 설상차 같은 걸 몰고 가볼 계획이었으나, 그 전에 내 눈으로 직접 항공정찰을 수행한다면 만에 하나 존재할지 모를 위험요소들을 보다 안전하게 식별 가능할 것이었다. 지상으로부터의 접근과 관찰은 그 다음이어도 무방하다. 하늘에서의 관찰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아예 생략해버리는 수도 있겠지.

난 돼지가 박살낸 벽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15억 달러라…….

작년은 각성체 야생동물 같은 변수가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한화로 1조 8천억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면, 올해 발생한 손실은 족히 그 두 배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 단순 계산으로 이는 피해예방에 그만큼의 돈을 쏟아부어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뜻. 현명한 당국자라면 그 이상의 자금을 할당해서라도 재난의 뿌리를 뽑는 편이 이상적임을 알 것이다. 예산을 조달하는 건 별개의 정치적 과제가 될 테지만.

어쨌든 이런 분야에선 공권력보다는 민간인 각성자들이 활동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소위 ‘고위험 사냥’은 각성한 능력자들의 유망한 생계수단으로 부상할 것이었다. 조직의 기반이 있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리라. 뉴트리아만 잡아도 포상금을 지급하는 마당에.

나는 당초 암에 대한 공포가 능력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리라 예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에 이르러서 보면 대중의 어리석음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오판이었다.

‘상반기에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가 답을 알려준 문제였지.’

중국발 폐렴의 대유행 당시에도 마스크 착용을 귀찮아하고 교회에선 집단예배를 강행하며 밤에는 클럽을 찾아 서로에게 몸을 비벼대던 멍청한 인간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남용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는 경고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다. 걸릴 사람은 걸리고 안 걸릴 사람은 안 걸리는 게 암이라며.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는 것도 결국은 지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볼 때 인류의 평균적인 지적 능력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이 미국처럼 공교육이 박살난 국가는 더더욱 그러할 터였고. 체감이 되지 않는 위험은 불감과 망각의 영역으로 가라앉는다.

나로서는 나무를 숨길 숲이 많아지는 격이니 반가운 노릇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 경태는 저가 장담했던 대로 이른 비행을 하나 물어왔다. 오전 10시에 카운티 사무소 앞 공터에서 사냥꾼들의 헬기 편대가 이륙할 것이라고.

나는 조금 어이없는 심정으로 말했다.

“이 시간에 재주도 좋구나.”

현재시각 오전 7시 30분. 아침거리를 사오겠답시고 자청해서 나갔던 녀석이 사냥꾼들과의 약속을 잡아왔으니 황당할 수밖에. 팸플릿에 적혀있던 문의 가능시간은 오전 9시부터였다. 경태는 부하와 함께 양손 가득 포장해온 음식들을 차례차례 꺼내놓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 친구들도 밥은 먹어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돌아다니다보니 브렉퍼스트 카페 앞에 설산 위장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녀석들이 모여 있길래 아, 이거다! 싶었죠. 아무리 봐도 주방위군은 아니었거든요. 이야기를 붙여보니 바로 오케이 하더라고요. 형님께 도움이 되고픈 제 간절한 마음을 보고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 거죠.”

“그래, 잘했다.”

“하하!”

가벼운 칭찬을 듣고 더더욱 함박웃음을 짓는 녀석. 품새를 보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나갔던 모양이다.

식사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였다. 영국놈들의 아침식사를 조금 더 해로운 방식으로 계승한 식단. 내 몫의 종이상자엔 네 줄의 베이컨과 네 줄의 소시지, 세 개의 계란, 그레이비소스를 뿌린 해시브라운과 비스킷들이 들어있었다. 그밖에 꿀과 크림을 잔뜩 올린 팬케이크와 프렌치토스트, 치즈를 듬뿍 얹은 감자튀김 및 등심 스테이크 등이 테이블을 꽉 채워놓는다.

“이 가게가 나름 이 도시의 명소 같은 곳이었지 뭡니까. 커트 러셀이니 스티븐 킹이니 로버트 와그너니 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다녀갔다더라고요. 아, 참. 미국 땅 치고 스테이크 가격이 미묘하게 비싸길래 이유를 물어봤더니, 소고기 값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라는 이야기가-”

나는 경태가 떠드는 소리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몸속에 부지런히 열량을 쟁여 넣었다. 사냥꾼으로서든 사냥감으로서든, 성실한 식사는 만약을 대비하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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