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망중한 (7)
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하이난성 상무위원과 하이커우시의 상무위원회 서기를 겸직하던 장치(張琦)라는 놈이 부정축재 혐의로 중앙당 기율위원회에 구속되었을 때, 놈의 저택 지하실에선 8천억 원어치의 금괴와 한화 45조 상당의 외화 및 위안화가 발견되었다.
또한 같은 해 베이징 시장이었던 천강(陳剛)이라는 놈은 저택에 20톤의 황금과 미술품 2천여 점, 한화로 27조 원에 해당하는 위안화 및 해외 채권 등을 보관하다가 적발 당했고, 그밖에도 중앙당 군사위 부주석이었던 궈보슝, 쉬차이허우 같은 인간들 역시 자택 지하실에 톤 단위의 금괴와 지폐를 쌓아놨다가 역시 기율위원회에 구속당한 바 있다.
그리고 이렇게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사건들은, 당과 국가의 위신을 고려하여 그 금액을 대폭 축소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공산당의 발표나 중국 언론의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멍청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성(省) 상무위원급 피해자만 일곱이면 도난 총액은 적게 잡아도 백조 원 이상.’
각 간부의 비밀금고들이 완벽하게 털렸다고 가정하고 추산한 금액이지만, 이게 각성한 능력자들의 소행이고 보면 불완전한 절도가 오히려 현실성 낮은 일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벌어졌다고 치자. 그럼 흑해자당이 보유한 자금은 중국 GDP 총액의 2% 안팎에 이를 수도 있었다.
만약 이 자금이 마구잡이로 풀리거나 해외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중국 경제엔 문자 그대로의 재난이 될 것이다. 다른 것보다는 위안화 유통량의 급격한 증가가 문제. 돈 냄새를 맡은 전 세계의 헤지펀드들이 위안화에 대하여 동시다발적인 매도 포지션을 취할 경우, 중국은 단기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제지표가 절대 좋다고는 못할 현재, 그 손실은 거대한 동란을 불러올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이 되어줄 수 있었다.
나는 짱깨들의 대처가 궁금해졌다.
“공산당의 반응은?”
“아직 대외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으나, 대내적으론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구세력들이 초능력자들을 침투시켜 반국가세력과 손잡고 범죄행각을 일삼으며, 훔친 자금의 규모를 부풀려 공산당을 음해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는 중입니다.”
“다른 건 없나?”
“검열은 당연하고, 범인들을 검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에겐 공헌도에 따라 적게는 1천 위안에서 많게는 1억 위안까지의 상금을 지급할 것이며, 원한다면 공안 간부로 특채까지 해주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부족한데.
“아울러 삼합회에도 흑해자당 놈들을 잡아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사냥감이 흑해자당의 일원임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잘린 머리 하나에 천만 위안, 살아있는 놈은 2천만 위안의 현상금을 기본으로 지급하겠답니다. 간부급은 억 단위의 추가금을 더해주고요.”
“그리고?”
“표면적인 조치는 이걸로 끝입니다.”
“허.”
천만 위안은 한화로 약 17억, 1억 위안은 약 170억 정도가 된다. 현상금으로서 객관적으로는 적지 않다 하겠으나…….
“대단들 하군. 이 와중에도 돈을 아끼다니.”
만약 내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면, 흑해자당을 잡더라도 훔친 자금을 찾아 대신 차지할 욕심부터 들 것이었다.
칭화대 국정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던 후안강이라는 교수는, 장쩌민 주석 시기의 중국에서 매년 1조 위안 전후의 자금이 관료제의 부패로 증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국가총생산의 13~16% 정도가 당 간부들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는 전임자들을 헐뜯기 위하여 현 정권이 허용했을 어용연구일 터이나, 나는 지금의 정권이 그때보다 훨씬 더 부패했으리라 믿는다.
누가 보더라도 장쩌민보다는 시진핑이 더 많이 해먹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탈리아에선 일개 마피아 조직 하나가 GDP의 3%를 해먹는데, 공산당은 당연히 그보다 더 잘 해먹어야 정상이지.’
중국의 국가총생산이 과거와 동일한 비율로 증발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액수는 작년 시점에서 연간 2조 달러를 거뜬히 넘겼을 것이었다. 한화로는 2천 2백조 원. 고로 중국 공산당은 한 해 2천 2백조 원의 수익을 거두는 범법자 집단이 된다.
횡령, 뇌물수수, 정경유착과 공직매매 등은 명백한 범죄행위에 속하고, 범죄자들의 모임은 곧 범죄조직이 되므로, 내가 중국공산당을 세계 최대의 범죄조직이라 평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형편이 이러하기에, 공산당의 탈을 쓴 그 대단한 범죄자들은 지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불씨를 조기에 끄지 못하면 결국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무질서들이 그들의 사업장 전체로 번져버리고 말 테니까. 한데도 그들은 근시안적 욕망에 눈이 멀어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들 있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현상이었다.
“어떨 것 같으냐. 흑해자당에게 정말로 배후가 있을까?”
내가 묻자, 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정이 아니라 모르겠다는 의미로서.
“아직은 판단을 내릴 단서가 부족합니다. 조사가 좀 더 진행되고 나서 다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절도를 당한 간부들의 출신성분은 어떻게 되지?”
연이은 물음에 수연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지금은 조사 중인 단계입니다.”
“아니, 사과할 것 없다. 보고를 재촉한 건 나니까.”
“당 내부 계파간의 권력투쟁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가조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예산을 제 임의로 할당해도 되겠습니까?”
“사후승인이면 된다. 항상 그랬듯이.”
“감사합니다.”
이 녀석이 내 질문을 듣자마자 의도를 짚어낸 바, 나는 흑해자당의 배후세력이 중국공산당 내부의 특정 파벌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고 여겼다.
‘분노한 대중에게 산 제물을 공양하는 건 언제나 유효한 전략이지.’
현재 공산당은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온 업보로 인해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는 상태다.
그 업보란 결국 제국주의였다. 작금의 중국이 도달한 번영은 신분제로 인민들을 갈라놓고 소수가 다수를 착취함으로써 일궈낸 결과물이니까. 요컨대 중국은 자국 내부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변칙적인 전략으로 제국주의의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거나 추월해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얄팍한 앎은 평양만 보고서 북한을 안다고 주장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에는 네 개의 계급이 있다. 1등 시민인 공산당원들, 2등 시민인 도시 거주자들, 3등 시민으로서 호적부터 열등한 농민과 농민공(農民工)들, 마지막으로 그 열등한 호적조차 없어 아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흑해자(黑孩子)들.
그들 농민의 수는 7억이며 농민공의 수는 2억 5천만이고 흑해자의 경우 아예 신뢰할 만한 통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합계 10억이 넘어가는 이들이야말로 현 시대 최악의 식민제국인 중국의 피지배자들이다.
헌데 그 압도적인 다수의 ‘매미 유충’들에게 원시마법이- 그들의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초능력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세뇌와 선동이 사상의 중추이며 총부리를 권력의 근간으로 삼아 감시와 억압을 통치원리로 활용해온 가짜 공산주의자들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아마 타이머 불명의 시한폭탄을 품은 기분을 느끼고들 있지 않을는지.
볕 들 날 없는 시궁창에서 오물을 파먹으며 연명해온 10억 이상의 유충들이, 마침내 우화(羽化)하여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시끄러울 것인가. 그 합창이 처음에는 제멋대로인 불협화음에 그칠지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몇 겹으로 수렴하는 화음을 이루기 시작할 터였다.
이럴 때 정치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신공양은 효과적인 탈출전략이 될 수 있었다. 태자당이든 단파(团派)든 상하이방이든, 한 파벌을 부패의 근원으로 몰아 숙청해버리면 끓어 넘치기 직전의 냄비와도 같은 인민들을 빠르게 진정시킬 수 있을 게 아니겠는가.
요컨대 흑해자당은 그러한 숙청의 빌미를 자연스럽게 만들기 좋을 도구라는 이야기다. 인민들이 폭발하기 전에 미리 가스를 뺀다는 점에서도 괜찮은 전략이라 하겠다.
궁리는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나갔다.
‘어쩌면 이게 원탁의 수작질일 가능성도 있단 말이지…….’
결코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니다. 내가 그렇듯이, 그들에겐 원시마법 능력자들을 안정적으로 각성시킬 권능이 있다. 고로 원탁은 단 한 명의 마스터를 파견하는 것만으로 이 세상 어디에서든 거대한 불안의 배후조종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 역시 한 번은 그런 쪽으로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러나 원탁과 나 사이엔 정보력 면에서의 크나큰 격차가 존재했다. 원탁의 잡놈들은 그 유명한 영국 정보국(SIS)의 자원을 끌어다 쓰는 게 가능하겠으나, 내겐 내가 건설한 조직과 알량한 꽌시(关系) 조금이 있을 따름이니까. 온갖 방첩기관들과 정보기관들의 복마전인 중국에서, 내가 몸소 흑해자당 같은 조직을 만들어내는 건 적잖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겐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다. 이쪽 진영에 존재하는 진정한 마법사는 나 한 사람이 전부이지 않은가. 「코드」, 무기, 돈, 병력자원과 잠수정 등. 내 앞엔 너무도 많은 갈림길들이 펼쳐져 있고, 그중 어느 갈래가 원탁의 파멸로 이어질 최적의 길인지는 백 번을 숙고하고 천 번을 고민해도 분명한 답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직접 도둑질에 나서는 방안을 유사시의 한 수로 고려하고 있었을 뿐이다. 긴급하게 자금을 조달할 방편으로써.
이제까지의 사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기왕 혼란이 빚어졌다면, 그 흐름에 편승하여 이익을 챙기는 정도는 얼마든지 해볼 만하다. 노력과 위험 대비 기대이익이 크다는 뜻. 하다못해 내가 또 다른 고관의 집을 털어도 내 소행인지 흑해자당의 소행인지 알 게 뭐란 말인가. 필연적으로 분산될 대응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한 위험부담을 의미한다.
때마침 수연도 같은 생각을 입에 담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형님께서 중국으로 가셔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시선을 정면에 둔 채로 대꾸했다.
“그렇게 되겠지. 부스러기만 주워 먹어도 조 단위일 사냥터인데 안 가볼 도리가 있나.”
잘만 하면 런던과의 전쟁에서 소요될 군자금 전부를 단번에 얻을 수 있을 것을. 그 사냥터에서도 내 저주받은 눈알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경쟁력이 되어줄 터였다. 그 경쟁력으로 온전히 이익만을 추구하진 못할지라도.
난 간격을 두고 지시했다.
“이번 일로 궁지에 몰릴 공안 관료나 방첩 관계자들이 많을 거야. 분명 영혼을 팔아서라도 실적을 올리고 싶어 하는 놈들이 나올 테니, 여건이 된다면 그런 쪽으로도 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인맥을 만들어봐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인다만, 어디까지나 여건이 따라줄 때의 이야기다. 무리하다가 역으로 꼬리를 밟혀선 곤란하니까. 판단은 너에게 맡기마.”
“예.”
여기서 도모하는 바는 나에게 중국의 정보망을 열어줄 고급스러운 꽌시다. 다급한 간부 몇 명을 내 사람으로 삼아 은혜를 베풀고 실적을 밀어준다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원탁의 잡것들이 국가 단위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니, 내게도 그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있어야 그나마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대화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나올 말이 다 나온 듯하다.
“다른 보고들은 나중에 듣지.”
내 말에 수연이 다시금 예, 하고 대답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뒷짐을 지고서 그늘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아갔다.
어딘가 한 군데 깊이 골몰해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골몰하면 골몰할수록 더 좁아지는 생각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이미 머릿속에 가득한 논리와 그 근거들의 관성에 사로잡혀, 수많은 다른 선택지들을 못보고 지나쳐버리고 마는 그런 생각.
그러므로 어떤 중요한 사안을 검토할 때 몇 번이고 머리를 비우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였다. 무작정 시간만 늘린다고 효율이 오르는 게 아닌 것이다.
내가 지금 파도를 가까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하얗게 무너지는 물소리로 씻어내 보려고.
청각 다음으로는 촉각이 도움이 되었다. 겨울을 앞둔 남국(南國)의 해변, 진한 빛으로 물들어 일몰을 예고하는 백사장엔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정보량이 과도한 시각이었지만, 이 또한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생각을 끊은 나는 남은 뇌리를 감각으로 채우는 데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