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63화 (63/561)

#11. 망중한 (5)

축난 몸을 돌보며 밀린 사무를 처리하는 사이, 안전가옥을 떠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돌아가는 길엔 잠시 미국에 들러 균사(菌絲)의 제국과 거인의 숲을 살펴볼 계획이었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세쿼이아 군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서.

멕시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오후에, 나는 애들을 데리고 사람이 없는 기나긴 해변에 나와 있었다. 조각조각 작은 적운(積雲)들이 떠있는 맑은 하늘 아래, 구름의 색과 같은 하얀 파도들이 몰려와 부서지고 또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남국의 태양을 잘게 부숴 뿌려놓은 듯한 원색의 바다 위엔 그 흔한 배 한 척이 보이질 않았다. 이렇듯 사람 없는 풍경이란 내 이상의 격하된 등가물과도 같아, 파라솔 아래의 선 베드(Sun bed)에 비스듬히 누운 나는 백일몽에 근접한 안락함을 느꼈다.

이 항구의 평화는 해원(海原)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같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땅에 우선적으로 깃들었다. 해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불안이 짙어지는 도시는 어둡고 굶주린 주민들과 흉하게 불타버린 잔해들과 그 사이의 강도, 약탈, 폭력, 살인, 강간 등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알 바가 아니었고, FPDA+1과 멕시코 정부에게도 알 바가 아니었다. 뒤쪽의 둘에겐 당장 내보일 성과가 급했으며, 해변을 찾아온 기자들은 호사스러운 여가를 누리며 치안이 회복된 도시의 모습만을 카메라에 담아갔다. 바람은 여전히 남서쪽에서만 불어왔으므로 시가지가 머금은 탄내를 해변에서 맡게 될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후미진 거리의 주민들이 불을 들고 몰려오지 않는 한에는.

바다에 면한 이 안전가옥은 시가지에서 동떨어진 임대형 별장이었다. 본래는 여느 호화 별장과 같이 사기업이 소유한 시설이었으나 업체가 파산하면서 정부의 관리 하에 들어온 곳. 명분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며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었으되, 실상은 부패한 정부의 행정이 다 그렇듯이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머무는 이 별장은 공식적으로는 투숙객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시설 관리인이 딴 주머니를 찬 것이다. 그는 명부기재를 누락하고 임의로 시설을 제공함으로써 위로 올라가야 할 돈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땔감 타는 냄새와 고기 익는 내음이 같은 바람을 타고 밀려들었다. 바비큐 그릴에 모인 경태 이하가 떠들썩하게 웃는다. 저마다 자기가 고기를 가장 잘 굽는다고 자랑들을 하고 있다. 그밖에 헤엄을 치는 녀석들, 잠수대결을 하는 녀석들, 수상 스키와 레이싱 요트를 타보려는 녀석들이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흩어져있었다.

이 와중에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는 수연이 내는 것이었다. 나와는 작은 목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를 가져다 앉은 녀석은 허벅지 위에 노트북을 두고서 본사의 각부각처와 메신저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대화가 끊어질 땐 업무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한쪽만 낀 이어폰의 달리 늘어진 한쪽에서는 현지의 뉴스가 흘러나온다.

나는 눈길을 바다로 되돌리며 말했다.

“넌 예나 지금이나 쉬는 법을 모르는구나.”

타자치는 소리가 멎었다.

“저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

“안다.”

처음에는 휴식도 명령이라고 타일렀었지만, 그럴 때마다 같은 답을 반복하는 이 녀석은 아무리 봐도 내게 거짓을 말하는 품이 아니었다. 체내의 징후들이 눈에 익고부터는 그러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쉬는 법을 모른다기보다는, 다르게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은 녀석이었다. 이 순간조차 정장 차림으로 무기를 휴대하고 있을 지경. 경계를 서는 팀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내가 달리 말이 없자 수연 녀석은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단조로운 리듬. 필시 머릿속엔 내게 보고할 사안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일 테지. 듣기에 나쁜 소리는 아니다.

“형님.”

이번엔 경태다.

“요걸 순서대로 한번 맛보시고 평가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가져온 접시엔 잘린 소고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고기 굽는 기술을 겨루던 놈들의 작품인 모양. 나를 보는 경태의 눈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가장 낫구나.”

“예쓰!”

경태가 환호하며 뒤돌아 외쳤다.

“오늘도 저녁당번은 나다, 이것들아!”

그러자 그릴 주변의 부하들이 열렬한 갈채를 보내준다. 이 녀석은 그런 잡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자기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싶다. 정말로 모르지야 않겠지만,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형님이랑 누님이 마저 드십시오!”

경태는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제 무리로 돌아갔다. 나는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맛은 있다. 그러나 내가 향유하던 평온함, 그저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던 즐거움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김이 새는군.

나는 태블릿을 가져다가 오전에 읽던 문서 하나를 불러왔다. 문서는 조직 내부의 자료가 아닌, 라즈베리 미친 개미의 생태를 심층적으로 조명한 정기간행물의 기사였다.

「에드워드 G. 르브룬, 네이선 T. 존스, 로렌스 E. 길버트의 공동연구로 밝혀지고 다수의 후속 연구를 통해 검증된 바, 라즈베리 미친 개미(Nylanderia fulva)는 기존의 가장 파괴적인 교란종이었던 불개미(Solenopsis invicta)의 독소에 대하여 화학적인 중화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친 개미는 이 능력을 기반으로 미국 남부 전역에 걸쳐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인간의 운송체계에 의한 점상(點狀)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친 개미의 모든 콜로니는 하나의 여왕을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군락이 아닌, 다수의 여왕이 동시에 공존하는 초군락을 형성한다. 다른 종의 개미들이 미친 개미에게 지속적으로 밀려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미친 개미의 확산속도는 매년 조금씩 빨라지는 추세로서, 충분한 양분만 있다면 하나의 콜로니가 1년에 1마일 이상을 뻗어나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며, 올해 9월 오스틴 인근 발콘즈 캐년랜즈(Balcones Canyonlands)의 한 콜로니는 연간 약 12.7마일(20.4킬로미터)을 확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기존의 최고 관측기록을 세 배 이상 능가하는 것으로서, 인접한 다른 콜로니와 혼동한 것은 아닌지 검증할 필요는 있으나…….」

이러한 내용을 죽 읽어 내려가니, 미친 개미의 분포와 확장속도,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응방안을 다루는 챕터의 마지막 단락에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로선 미친 개미의 확산을 저지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막을 수 없는 개미가 미국 남부의 재난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직접 겪어봤듯이 전자기기에 이끌리는 기묘한 습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다 감전 당해 죽기라도 하면 적에게 공격 받고 있음을 알리는 경보 페로몬을 방출하여, 그 냄새를 맡은 동료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연쇄적인 합선을 일으키도록 만들어 놓는다.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운이 좋으면 단순한 합선사고에 그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화재 등의 추가적인 피해가 뒤따르는 거지.

오죽하면 미 환경당국이 칡, 멧돼지의 이상증식과 더불어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생물재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을까.

나는 최근 이 저지도 박멸도 불가능한 개미를 역병의 메신저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구상을 품고 있었다.

‘우선 런던의 가장 낙후된 거주지들에서부터 부동산 투자를 시작하는 거지. 유령회사를 여러 개 만들어다가…….’

이를테면 채링 크로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페컴(Peckham)이라든가, 그보다 좀 더 남쪽에 있는 듀스버리(Dewsbury) 같은 빈민가들이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다. 페컴은 런던에서 백인 인구의 비중이 가장 낮은 지역이며, 듀스버리는 영국 본토 전체를 통틀어 주택 가격이 가장 싸고 치안도 가장 나쁜 지역이다.

대략적인 구상은 이러하다.

우선 이런 빈민가에 건물을 수십 채 단위로 구해놓은 뒤, 그 지하를 파고 들어간 자리에서 얼마간 수평으로 굴착을 하고, 거기에 미친 개미의 여왕을 풀어 콜로니를 건설하도록 한다. 이때 지속적으로 열량을 제공함으로써 개체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유도한다면, 개미들이 지하로부터 지상에 도달할 즈음엔 콜로니의 규모가 충분히 커진 상태여서 확산의 중심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될 것이었다.

뭐, 관계당국이 적극적으로 찾으려 들지도 않을 테지.

내가 괜히 가난한 동네에 먼저 투자를 하려는 게 아니다. 빈곤한 자들의 민원은, 선거철이 아닌 이상 그들의 얇은 지갑만큼이나 가볍게 취급된다. 지갑 얇은 주민들이 값비싼 사설 방제업체를 부르지도 못할 것이고.

더군다나 듀스버리는 이슬람 인구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거주구역이었다. 2005년, 런던에 연쇄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킨 무함마드 시디크 칸과 그 지지자들도 바로 여기서 살고 있었다지. 제멋대로 샤리아 자치구역을 만들어 공공 사법체계까지 무시하려 드는 극성맞은 주민들의 불만사항을, 과연 영국 당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줄 이유가 있을까?

아니.

내가 아는 영국은 절대로 그럴 나라가 아니다. 어떤 개미가 말썽을 일으키는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 그러한 그들의 방심과 태업 속에, 나는 개미 왕국의 확장에 발맞춰 부동산 투자를 늘려나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도 제거하지 못할 거대한 콜로니가 완성되어 있으리라. 뒤늦게 이 생물재해를 인지한 관계자들은 당황하겠지.

대체 왜 이렇게 확산 속도가 빠른가? 하고.

그러나 그들은 결코 원인을 알아내지 못할 터였다. 그때까지 내가 런던으로 반입할 것은 오로지 설탕과 설탕과 더 많은 설탕들뿐이며, 설탕은 조금도 위험한 물질이 아니니까.

알아본 바, 브라질 남부엔 영국 본토의 절반 크기인 흰개미 도시가 있고, 유럽엔 이탈리아 북부로부터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아르헨티나 개미들의 제국이 존재했다. 후자의 영토는 그 폭이 자그마치 8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하니, 내가 먹이를 대는 미친 개미들의 왕국 역시 런던 전체를 삼키고도 남을 터.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원탁 공략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런던 전역으로 부동산 투자를 확대한 나는, 각각의 거점들을 통하여 개미들에게 질병으로 오염된 먹이를 제공할 작정이었다.

‘우선은 페스트……. 가능하다면 천연두까지.’

일단 페스트는 구하기 쉬운 질병이다. 미국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매년 꾸준히 몇 명씩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으므로. 이처럼 환자가 발생한 지역에 인력을 풀어 마멋(Marmot) 따위의 들짐승들을 잡아들이도록 시킨다면, 오래지 않아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확보할 수 있겠지. 그 샘플을 배양하여 개미에게 먹일 먹이에 혼합해주면 된다.

물론 개미는 페스트균의 중간숙주가 아니다. 그러나 몸에 묻거나 섭취한 균이 죽기 전에 진짜 숙주들과 접촉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었다. 개미가 꼬여 죽은 자리, 고장 난 전기설비를 수리하러 온 기술자들 역시 감염원에 노출될 테지.

여기에 항생제 조기 복용만으로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은 크나큰 장점이다. 살아있는 숙주를 잡아들일 때나 원탁을 공격할 때, 아군도 전염병에 노출된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자충수가 드물 것이니.

다음, 천연두.

공식적으로 박멸된 지 오래인 이 질병은 입수 난이도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중국이나 북한 정도가 엄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병원체이기에. 게다가 테러의 기수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확보하기도 쉽지가 않다.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전략비축물자이기 때문. 그래서 백신을 대량으로 구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바이오 테러를 경계하는 각국 정보기관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바이러스와 백신 양쪽을 다 얻을 수만 있다면 천연두는 더없이 강력한 추가타가 되어줄 것이다. 페스트를 먼저 써서 도시와 각 구획들을 봉쇄시킨 후, 길을 물리적으로 끊어버리고서, 비로소 천연두를 풀어 한정적이고도 강력한 2차 타격을 가하는 거지. 섬세한 외과수술과도 같이, 지도에서 오로지 런던만을 도려내는. 자칫 세계 인구의 수 할을 쓸어버릴지도 모를 전염병을 대책도 없이 풀어놓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꿈꾸는 평화를 위해서라도.

어쨌든, 강력한 두 질병의 칵테일 요법은 마소가 충만한 환경이 미생물에게 유해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원탁을 공략하는 데 충분한 도움을 줄 것이었다. 어쩌면 원탁의 마스터들조차 한두 명쯤은 간단히 죽일 수 있을지 모르고.

런던 공략의 서막으로서는 부족함이 없겠지.

그러나 이 계획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 개인과 조직 차원의 내부적인 문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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