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60화 (60/561)

#11. 망중한 (2)

다목적선이 부두에 가까워지자 제독은 감탄하며 함수의 선명(船名)을 읽었다.

“「사파이어 익스프레스」라. 좋은 배를 가지고 계시는군.”

“그래 보입니까?”

“낡은 벌크선쯤을 보게 되리라 예상했건만……. 무기상이라는 게 내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가 보오. 한눈에 봐도 우리 해군의 해상보급선보다 우수한 선박임을 알겠소.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 바로 저런 배였는데.”

“칭찬이 과하십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우리의 「이슬라 마리아 마드레」는 말이 해상보급선이지, 실제 쓰임새라곤 교도소에다 수감자와 물자를 날라주는 게 전부인 장식품이니까.”

“교도소요?”

“마리아스 제도 연방교도소를 말하는 거요. 위에서는 기술습득이니 뭐니 핑계를 대지만, 보급선으로서의 마리아 마드레는 존재가치가 전무한 함선이지. 엘 무니 당신이 무기상으로서 한번 평가해보시겠소? 컨테이너 하나 분량의 화물도 싣지 못하면서 연료보급마저 불가능한 배가 보급선으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확실히 쓸모가 없겠군요.”

“바로 그거요. 애초에 경량 전투함으로 설계된 선박을 크레인 하나 달려있다고 보급선으로 취역시키니, 나 같은 현장 지휘관들 입장에선 기가 찰 수밖에. 그래놓고는 쓸 데가 없으니까 싸구려 페리 한 척이면 충분할 교도소 보급임무에다 2억 4천만 페소짜리 배를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 내 장담하는데, 우리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네덜란드 놈들로부터 돈푼깨나 받아 드셨을 거요.”

마르띠네즈 제독이 냉소적으로 쏟아내는 울화. 기술습득이니 네덜란드니 하는 걸 보면 아마도 네덜란드제 선박의 면허생산인 모양이지. 가격과 국적을 들으니 어떤 배인지도 대충 짐작이 간다. 건조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발 역병이 유행하기 이전의 환율로 계산하면 2억 4천만 페소는 천이백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군함 치고는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단지 교도소를 오갈 뿐인 수송선이라고 본다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맞았다.

제독의 어조는 못내 격앙되어 있었다. 긴 말을 다 쏟아내고도 여전히 배에 못박혀있는 아쉬움 짙은 시선. 적어도 거짓으로 꾸며내는 품새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과는 모순이 생긴다.

흔한 위선자라고 치고 모르는 척 넘어갈까, 아니면 확인을 해볼까. 제독의 생체적 징후들을 토대로 저울질을 하던 나는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다. 내 입장에서 이 제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거래처. 그렇다면 ‘품질’을 확인하고서 결정을 내리는 편이 낫다.

부두에 닿은 배로부터 홋줄이 던져졌다. 곧 하역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뭐요?”

“제독께서는 높으신 분들의 부패를 매우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분이 저 같은 무기상인과 거래를 트려 하신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말입니다. 카르텔의 의뢰를 받아들이신 일도 그렇고요. 실례가 아니라면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마르띠네즈는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맥박이 마구 상승한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 제독에 대해서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서야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무뚝뚝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는, 나는 그런 게 아니오.”

앞뒤가 다 잘려나간 말이지만 맥락상의 의미는 뚜렷하다.

“오해 마십시오. 저는 단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제독님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게 혹시 함정은 아닐는지.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의심이 많아져서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지요?”

담담한 태도와 적당한 핑계가 제독의 수치심을 누그러뜨린다.

“함정은 아니오. 화물이 항구로 들어왔으니, 이게 당신을 잡으려는 함정이었으면 벌써 행동에 들어갔겠지. 배는 나포하고, 당신과 부하들은 구속해서 무릎을 꿇리고, 곧 도착할 북동부파 놈들까지 싹 다 죽여 버리면 끝인 것을.”

“그러면 뭡니까?”

“그걸 꼭 들어야겠소?”

퉁명스러운 반문. 그럼 내가 뭘 보고 너와 거래를 하겠나. 물어봐주는 걸 고맙게 여겨야지. 수연의 보고엔 제독의 배경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정보만 가지고 제독이 불법적인 무기 거래에 나설 동기까지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없던 조건을 붙여가며 자리를 만든 주제에 저가 아쉬운 처지임은 모르는 모양이다. 별을 단 군인들은 이런 점이 문제였다. 계급이 부여하는 권위가 골수까지 배어있는 것. 경험상 후진국일수록 이런 단점이 두드러진다. 한국 같은 예외도 존재하지만.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건 제독님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거래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제 자유지요. 당장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게나 무기를 사고팔았으면 전 여태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는 거래처를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입니다.”

“그 신중한 사람이 마약 카르텔에게 무기를 파는 거요?”

“이건 일회성의 거래계약이며, 저로서도 내키지 않는 건수였습니다. 받을 걸 받고 나면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상대라는 뜻이죠. 하지만 제독께서 바라시는 건 그저 한 번의 거래로 끝나는 관계가 아닐 텐데요?”

“음…….”

“제겐 이미 많은 공급처들이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검증된 안정적인 공급자들이죠. 거래선의 다변화는 사업가에게 언제나 유익한 일이지만, 바꿔 말해 제게 있어서 제독님의 가치는 딱 그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보시오!”

제독으로부터 날선 반응이 나왔으나, 나는 침착한 어조로 그의 말을 잘랐다.

“더 들으십시오. 솔직히 말해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저는 당신을 만날 이유 자체가 없었습니다. 동아시아에 기반을 둔 제가 이 먼 멕시코까지 올 까닭도 없었고요. 이 자리에서 저를 붙잡지 못하신다면, 현실적으로 당신이 무기를 팔 수 있는 상대는 카르텔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조국을 소말리아의 확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마약군벌들 말입니다.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드신 걸 보면 카르텔과의 거래가 달갑지는 않으신 듯한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

“멕시코 해군의 제독이든 뭐든, 이 시장에서의 당신은 인맥도 판로도 없는 신참자일 뿐입니다. 신참자라면 신참자답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십시오. 어떤 시장에 이제 막 첫발을 디디려는 신출내기가 기반이 확실한 실력자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볼 기회는 결코 흔히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제독은 잔뜩 찌푸린 얼굴이 되었으나 내 말에 반박을 하진 못했다. 그가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 정박을 완료한 다목적선이 한 쌍의 크레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접혀있던 기계 팔이 기다랗게 연장된다.

화물을 운송할 인력과 차량은 이제야 부두로 들어왔다. 대기하기는 진작부터 대기하고 있던 무리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경계를 하고 있었던 모양. 혹시나 이 현장에 다른 세력이 난입하지는 않을지를. 저 많은 인원들이 도시가 박살나는 와중에 잘도 상하지 않았구나 싶다.

선두차량에서 내린 책임자가 한 무리의 비무장인원을 동반하고 수연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짧은 대화 끝에, 북동부파의 현장책임자는 수연에게 USB 하나를 건네었다.

설계도 검증과 하역 작업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제독은 첫 화물이 내려오고서야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참 겁이 없으시군. 그래도 여기선 내 화력이 더 우세한데 말이오.”

겉보기로야 그렇겠지.

“그래서, 제독님의 이유는 뭡니까?”

내 물음에, 마르띠네즈 제독은 다시 짧게 침묵하다가 제 부하를 불러들였다.

“스바랄스카 중령!”

“예!”

“잠깐 이리로 와보게.”

장교 하나가 달려와 부동자세를 취한다. 이 사람이 그 디에고 스바랄스카로군. 시력이 좋은 나는 제독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상의를 벗게.”

제독의 지시에 조금 당황하는 중령. 상관과 나를 번갈아 살핀 그는 총을 내려놓고 장비를 벗기 시작했다. 이윽고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그는 다시금 부동자세를 취했다. 드러난 상체엔 곳곳에 검은 반점이 퍼져있었다. 피부로 번지는 유형의 마력암이다.

중령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게 놀라울 지경. 체내에 마약 성분이 흐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멕시코에 흔한 코카인이 아니라, 군대에서 쓰는 마약성 진통제의 성분이.

“이게 나의 동기올시다. 이 빌어먹을 「불사암(不死癌)」 말이오.”

불사암, 즉 죽지 않는 암은 근래의 세간에서 마소암과 마력암을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이었다. 마소암과 마력암은 발생 원인이 마소인가 마력인가가 다를 뿐 병세가 진행될수록 차이가 사라져가기 때문에, 둘을 하나의 질병으로 묶어 부르는 걸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이제 가보게나.”

중령을 제 자리로 돌려보낸 마르띠네즈 제독이 음울한 환멸감을 드러냈다.

“정부와 국방부는 요즘 축복받은 자(벤데시도)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지. 하지만 그 결과를 책임지는 데엔 관심이 없소. 「축복」으로 주어진 힘을 남용할수록 불사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국제보건기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라며 일체의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 싶다.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몸 상하면 남의 아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했던 상반기에도 그러했소. 그 지랄 맞은 중국산 폐병 말이오. 병에 걸리면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았지. 후유증을 앓는 인원들은 사병과 장교를 불문하고 의병제대 처분을 받았소. 거기까지는 이해하오. 폐가 굳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내 거기까지는 이해를 하겠단 말요. 중요한 건 그다음이 아니겠소?”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빈민들에게 단 1페소의 경제적 지원조차 베풀지 못했던 나라가 멕시코다. 퇴역 장교와 장병들이라고 충분한 관리를 받았을 리가 있나.

“대책 없는 일괄 제대 처분은 이 시국엔 집단적인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요. 난 병영을 떠나는 표정 없는 장병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 말에, 제독이 칼을 가는 듯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내게는 돈이 필요하오. 아주 많은 돈이.”

그러고는 나에게 질문한다.

“내가 그만한 돈을 벌 수 있겠소? 좆같은 카르텔 놈들의 손을 잡지 않고서?”

“역으로 묻고 싶군요. 당신이 공급하는 무기는 결국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될 겁니다. 이 일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있소.”

동기가 깨끗한 사람답지 않게, 제독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이 악마의 똥구멍 같은 세상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단 두 가지요. 부하들에 대한 책임과 국민을 보호할 의무. 카르텔 놈들에게 무기를 주면 백이면 백 멕시코 땅에서 사용할 테지만, 아시아의 상인에게 파는 무기는 그렇지 않겠지.”

제독은 한 호흡의 간격을 두고 남은 말을 끝맺었다.

“멕시코 이외의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내 알 바 아니오.”

품질이 괜찮은 인간이군. 나는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제가 당신에게서 받은 무기들을 카르텔에게 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카르텔을 다시 상대하기 싫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텐데요. 운송거리를 감안하면 카르텔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편이 가장 경제적입니다.”

“난 당신이 아니라 나와 내 동지들을 믿는 거요. 나는 오로지 바닷길로만 물건을 내어줄 것이고, 멕시코의 바다에서 모험을 하는 건 당신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 될 테니까.”

과연.

“굳이 내 무기를 카르텔에게 팔겠다면 일단 한 번은 나갔다가 바다가 아닌 길로 다시 들어와야 할 터인데, 그런 장사가 특별히 경제적일 이유가 있겠소?”

마음에 들었다. 이만큼 용의주도한 인물이라면 다른 쪽으로도 준비성이 양호할 것이다.

“이런 말이 있지요.”

내가 이야기했다.

“정의로운 자는 정의롭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반드시 먼저 몰락하므로, 다스리는 자는 무릇 정의를 이룰 수단으로서의 불의를 알아야 한다고.”

제독이 듣기에 좋을 말을 해주며, 나는 차분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제 거래 상대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독.”

“…….”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독이 악수에 응하며 묻는다.

“이렇게 물어보기도 우습지만, 내가 한 말들을 다 믿어주는 거요? 나는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일단은 그렇습니다.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이 좀 남달라서 말입니다.”

“허.”

“처음부터 큰 거래를 할 순 없겠습니다만,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나가다 보면 서로에게서 만족스러운 이익을 거둘 날이 올 겁니다.”

“……그날이 하루라도 빠르게 오기를 희망할 따름이오.”

이후 나는 제독에게 제공 가능한 상품의 목록과 수량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제독이 읊는 무기, 탄약, 장비들 중엔 그럭저럭 괜찮은 품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제부터 수요가 많이 늘어나리라 예상되는 중구경 이상의 자동화기 탄약이라든가, 앞서 산간에서 많이 노획했던 휴대형 로켓탄(LAW) 같은 것들.

제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문득 바다로부터 고속으로 접근하는 강력한 마력장을 감지하곤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뭐요? 왜 그러시오?!”

덩달아 놀란 제독이 이유를 물었으나 나는 마력장의 근원을 탐색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잠시 후엔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원탁의 마스터 중 하나가 원정을 나왔나 싶을 정도였던 마력장의 주인은, 알고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얕은 바다를 찾아온 몇 마리의 혹등고래들. 그중 하나가 유난히 밀도 높은 회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람 중에 천재가 있듯이 동물 중에도 재능이 탁월한 개체가 있는 법.

잠시 머물던 고래들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다시 멀어져갔다. 바다가 품은 저 거대한 힘들이 이 세상에 앞으로 어떤 영향들을 미칠는지. 회로를 관찰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음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잠시, 예기치 않은 조우는 나로 하여금 다양한 상념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