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 마에스뜨레 (13)
나는 흔들리는 차체 속에서 앞으로 걸었다. 내 접근을 감지한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어쩌지, 어쩌지 씨발?! 몰라 새끼야! 이렇게들 주고받으며 숨을 몰아쉬는 두 상판대기는 싸구려 공포영화 예고편의 스쳐가는 희생양들을 연상케 만들었다.
날 넘어뜨리기라도 하려는 양, 좌로 꺾고 우로 도는 차체의 요동이 복부 뚫린 포수를 포탑 좌석으로부터 떨어지게 했다. 스르륵, 쿵. 아까부터 배에 난 구멍을 움켜쥐고 가는 숨을 헐떡이던 예비 시체다. 피거품이 부글거리는 입. 죽음이 임박한 눈동자가 스르륵 굴러 나를 바라본다. 팔다리의 움직임은 물을 채운 가죽부대 같았다. 나는 포수의 문신투성이 목을 밟아 뿌득뿌득 짓이긴 뒤 염동력으로 두 개의 수류탄을 띄워 안전핀을 제거했다. 티팅, 하는 맑은 울림과 함께 튕겨지는 금속 핀들. 안전손잡이는 아직 놓아주지 않는다.
철컹-
“뒈져, 이 괴물아!”
선수를 치듯 열린 운전석 방향의 작은 강철 미닫이창으로부터 두꺼운 권총탄(.45 ACP)들이 빗발쳤다. 이 짧은 기관단총 난사를 방어한 나는, 상대가 탄창을 가는 타이밍에 두 수류탄을 교차시키듯 투사했다. 좁은 창문으로 들어간 수류탄 두 발이 운전석 전면 장갑에 맞고 꺾이듯 떨어져 두 시카리오의 발치를 굴렀다.
“어억!”
간결한 유언. 조수석의 시카리오가 허둥거리며 수류탄을 붙잡으려는 순간, 한 쌍의 폭발이 두 좌석을 휩쓸었다. 두 사람 분의 안면과 사지가 찢어지는 가운데 외부관측용 모니터 역시 스파크를 튀기며 액정이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시체가 밟는 엑셀은 트럭을 폭주하도록 만든다. 이제 운전석을 감싸던 마력장은 없다. 나는 차량에 제동을 거는 대신, 원격으로 핸들을 돌려 기수를 전환하고서 후방 출입구를 박차고 도로 위로 뛰어내렸다.
부아아앙-
선회하며 가속이 붙은 나르코 탱크는 내 부하들에게 산발적인 총격으로 저항하던 갑옷 입은 놈들에게 쇄도했다. 세 대의 승합차를 차례로 밀어버리며 돌출하는 육중한 엄습. 이는 몸으로 사격을 받아내며 네 발로 기어 다니던 중장갑 시카리오들에겐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쿠궁, 쿵! 무거운 질주에 무거운 인간들이 고라니처럼 치이는 소리. 중장갑 시카리오 세 놈이 몬스터 트럭의 희생양이 되었다.
“다리, 다리가아아아!”
몬스터 트럭의 충각에 치이고도 모자라 커다란 바퀴에 두 번이나 깔린 시카리오는, 통짜 갑옷 덕택에 목숨을 부지했으나, 허리 아래의 관절이 전부 비틀어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그밖에 물에 빠져서는 허우적거릴 틈도 없이 가라앉은 놈이 하나, 치이자마자 피를 토하며 즉사한 놈이 하나다. 더더욱 돌진한 트럭은 부두에 매인 요트를 깔아뭉개며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쾅! 라이플의 약실로부터 탄피가 튀어나왔다. 허리 아래가 틀어진 놈이 눈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늘어진다. 총을 쏜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가랑이로 물이 새던 플라자 정예 최후의 생존자 둘은 각자의 무기들을 내려놓고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나르코 탱크에 타고 있던 놈들과 마찬가지로, 진작부터 내 존재감을 느끼고 있었을 각성 능력자들. 달리 몰살당한 시카리오들을 보건대 이제까지라도 저항을 하고 있었던 게 용할 지경이다.
물론 투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냥 멍한 머리로 생각 없이 총질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뿐일 테지만. 사고가 마비되면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헤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깡! 나를 제멋대로 헤페라 부른 놈의 대가리에서 금속성의 불꽃이 튀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선착장 언저리에 비교적 작은 총성이 연거푸 메아리친다.
“누구 맘대로 항복이야! 싸워, 싸우라고 이 버러지들아!”
8할의 공포에 1할의 분노와 1할의 독기가 섞인 이 째지는 외침은 황금 권총을 든 여자의 질타였다. 강철을 두른 두 시카리오의 뒤통수와 몸통에 무의미하게 실탄을 낭비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도 힘겹게 탄창을 교체하더니 이번엔 나에게로 총구를 겨냥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투지라 하겠다.
“죽어!”
타앙! 단발의 총성과 함께 터져나가는 건 여자의 머리통이었다. 떨어져 나온 긴 머리카락들이 바닷바람에 날려 지푸라기처럼 흩어진다. 본인이 자각하고 있었을진 모르겠으나, 여자 또한 회로가 뚫린 능력자였다. 그 힘이 아주 미미해서 그렇지.
“큭……!”
관통상을 입은 종아리를 지혈하고 있던 카르텔 지방영주는, 머리가 터져서 쓰러지는 애인의 모습을 질끈 감는 눈으로 외면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도로변의 수풀과 상점가 등의 매복지로부터 경태 이하의 전투원들이 걸어 나왔다. 직전의 저격은 경태가 날린 것이었다. 녀석은 열의 색채가 남아있는 총을 늘어뜨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고생은 너희가 했지. 앞선 싸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법사로서의 나를 감춰야 하는 전투와 그렇지 않은 전투간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만약 나르코 탱크에 통신장비를 갖춘 영국 놈들이 타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쉬운 싸움을 하진 못했겠지. 전파방해를 마법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좋을 텐데.
아니, 그랬다간 발신원을 포착하는 식으로 날 찾아내겠구나.
나는 잡념을 떨치며 항복한 두 시카리오의 눈구멍에 대고 차례로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저항의지를 상실한 놈들은 도살장의 가축들처럼 무기력하게 죽었다. 둔중한 쇳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몸뚱이들.
“열쇠를 가져와라. 셋 모두.”
“옙.”
내 말을 들은 경태가 가까운 부하 둘을 지목하곤 엘 후에고에게로 고갯짓을 해보였다. 바로 움직이는 둘. 하나는 엘 후에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다른 하나는 무장을 해제시키고서 품을 뒤져 요트 열쇠를 끄집어냈다. 다른 부하들이 먼저 죽은 간부들의 시체에서도 두 개의 열쇠를 확보해 내게로 가져온다. 이름이 각각 꼴라꼬와 구아요라고 했었지.
부하가 빼앗은 무기는 죽은 여자와 쌍으로 맞춘 듯한 황금권총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수요가 많은 클래식한 모델(M1911). 나는 손을 내밀어 그 권총을 넘겨받았다. 원래는 탄창까지 합쳐 1.3킬로그램쯤이어야 정상일 물건이지만, 금이 쓸 데 없이 많이 들어간 탓에 손맛이 제법 묵직하다.
“니들 정체가 뭐야?”
엘 후에고가 복면을 쓴 우리를 보며 발음이 세고 어설픈 영어로 묻는다.
“아무리 봐도 영국 놈들은 아닌데……. 짱깨(Chino)냐? 트라이어드 새끼들이야?”
얼굴은 창백하고 몸가짐은 겁에 질렸건만 말만은 여전히 건방지다. 영어로 오가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나름대로 정체를 짐작해보려고 눈알을 굴리는 중. 저를 아직도 살려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는지, 놈의 눈에 교활함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유감이군.
“일어서라.”
“선생, 내 다리 꼴을 보고…… 어어?”
마력장이 없다는 것은 타인의 마법적 간섭을 거부할 기본적인 안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이 깃든 육을 침식하는 건 별개지만, 염동력으로 구속하여 인형처럼 다루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지. 엘 후에고는 휙 끌어올려지는 몸뚱이에 기겁했다.
“뭐야, 뭐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경태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을 처리하고 오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봐라.”
“옙. 마약을 좀 갖다 써도 되겠습니까? 얘 부하들이 들고 튄 것처럼 꾸미려고 하는데요.”
“그것도 괜찮겠지.”
지시를 마친 나는 앞장서서 정박된 요트로 나아가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인형을 억지로 따라오도록 만들었다. 부두와 부교 위로 길게 남는 핏빛의 발자국들. 흔적을 보면 누구든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자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연상할 것이었다.
“이, 이게 대체 뭐냐고…….”
엘 후에고의 사타구니가 조금 축축해졌다. 본디 전방 호위를 맡기로 되어있던 요트에 탑승하면서, 마약과 금품을 실어놓은 커다란 쪽으로부터 코카인 한 덩어리가 스스로 날아들어 내 손에 잡히는 걸 본 다음엔 한층 더 본격적으로 젖어든다. 저주받은 내 눈은 그 뜨끈한 열까지도 시각적인 정보로 가공하여 보여주었다.
선실로 들어선 다음에 내가 한 일은 마약의 포장을 자르는 것이었다. 마침 선실 테이블에 꽂혀있던 나이프가 귀신 들린 칼처럼 떠올라 마약을 포장한 비닐을 세로로 쭉 그어놓는다. 덩어리진 마약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이, 이, 이봐요.”
엘 후에고가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한결 공손해진 태도로.
“나한테 뭐, 뭘 바라는 겁니까? 당신, 사, 사람이기는 합니까?”
나는 질문들을 무시하며 플라자 두목의 지갑을 띄워 지폐 한 장을 뽑았다. 동시에 선실 테이블 위로는 곱게 분쇄된 고순도의 코카인으로 줄을 하나 그어놓았다. 미겔 이달고의 초상이 들어간 1천 페소 지폐는 허공에서 스르륵 말려 마약을 빨기 좋은 도구가 되었다.
“제발……. 뭐라고 대답을 좀…….”
덜컹. 엘 후에고를 강제로 의자에 앉힌 나는 녀석의 두 손에 나이프와 지폐 빨대를 쥐어주었다. 떨리는 손이 제 의지와 무관하게 두 도구를 잡는다. 이로써 나이프 손잡이엔 지문이 찍혔으되, 호흡까지는 내가 조종하지 못할 영역이었다.
“해라.”
난 턱짓과 함께 플라자 두목에게 상반신의 자유를 주었다. 엘 후에고는 뻣뻣하게 굳어 침만 삼키다가, 내가 제 미간에 금빛 권총을 겨누자 그제야 상체를 앞으로 구부렸다.
쓰으읍-!
돌돌 말린 지폐로 마약 분말이 빨려 들어간다. 표정을 관리하려 애쓰며 코를 몇 번 훌쩍이는 엘 후에고. 놈이 다시금 내게 말을 건다.
“저기, 이보십시오. 선생? 아니면 헤페? 아무래도 저를, 주, 죽이시려는 것 같은데, 당신이 사람이라면, 협상을, 그래요, 협상을 해봅시다. 내 지갑에 하얀 카드가 하나 있을 텐데, 그게 버진 아일랜드의-”
“은행에 개설해놓은 비밀계좌 카드겠지.”
“……예.”
“관심 없다.”
고객의 신상정보가 번호로만 조회되는 비밀계좌는, 대중적으로는 오직 스위스 은행들만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영국 여왕의 여러 직할령들을 비롯해 모나코,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아일랜드, 홍콩 등 다양한 국가의 은행들이 비슷한 상품을 경쟁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오히려 스위스는 익명 비밀계좌 개설을 법적으로 금지해놓은 국가였다. 은행만은 고객의 정확한 신상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은행에겐 고객의 돈이 불법적인 자금이 아님을 확인할 의무도 있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러하다는 이야기.
엘 후에고의 비밀계좌가 있는 버진 아일랜드는, 영국 여왕의 직할령이자 세계적인 조세피난처의 하나로서 전 세계의 검은 돈이 흘러들어오는 암흑경제의 요충지다. 영국 여왕은 자신과 왕실의 사익을 위해 국가의 공익을 관습적으로 침해하는 군주였다.
요트에 맞는 열쇠를 찾아 타륜 옆에 끼우는 내 등 뒤에서, 생의 미련을 못 버린 엘 후에고가 유혹하듯 중얼거린다.
“거, 거기 들어있는 돈이 5백, 5백 7십만 달러나 되는데…….”
관심 없다니까. 은행도 은행 나름이지. 고객이 사라지면 그 돈을 다 자기네가 먹는 이런 은행들은 대외적인 이미지와 실체가 완전히 딴판인 경우가 많았다.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은행은 특히 더 그러하고. 엘 후에고의 카드번호 형식은 내가 모르는 은행의 것이었다. 모르는 은행은 믿을 수 없다.
부교를 오가는 내 부하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들린다. 엘 후에고가 고개를 흔들었다. 커다랗게 확장된 동공. 슬슬 죽여도 괜찮을 때다. 너무 빨리 죽이면 약효가 다 돌기도 전에 혈류가 정지할 터라 잠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권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실을 나섰다. 혼자서 닫히는 문과 스스로 걸리는 잠금장치. 밀폐된 공간에 홀로 남은 엘 후에고는, 이번에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황금권총의 그립을 거머쥐는 손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안 돼!”
죽음을 예감한 카르텔 지방영주가 다급하게 외쳐대는 소리. 뇌가 격렬한 신경신호의 색채로 물들고 온 몸의 근육이 강제력에 저항하려 용을 쓴다. 뿌직뿌직 똥을 쌀 만큼의 필사적인 저항이 무색하게, 검지는 방아쇠울로 들어갔고 총구는 관자놀이에 달라붙었다.
“살려줘!”
타앙! 총탄이 뚫고 나온 구멍으로 뼛조각 섞인 뇌와 뇌수가 뿜어진다. 현장증거만으로는 의심 받을 구석이 없는 밀실살인이었다. 전신에 고르게 작용한 마법적 물리력은 특별히 눌린 자국을 남기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요트의 엔진을 고장 내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이로써 이 항구에서의 모든 사냥이 끝났다.
몸은 고단하고 정신은 노곤한 가운데 강한 허기가 느껴진다. 자는 게 먼저일까, 먹는 게 먼저일까. 나는 조금 멍한 정신으로 부둣가에 뿌려지는 코카인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 남쪽 해군기지 근처의 상점가에선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이른 새벽의 아랫자락이 흔들거리는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