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7화 (57/561)

#10. 엘 마에스뜨레 (12)

두 대의 탑차 뒤로는 은회색 포르쉐 카레라와 작은 승합차 세 대, 그리고 나르코 탱크 한 대가 추가로 들어왔다. 25톤 대형트럭을 개조한 나르코 탱크는, 겉보기엔 그저 바퀴 달린 고철덩어리가 달리는 꼴이었으나, 실제 전투력은 선두의 진짜배기 장갑차를 능가할 흉물이었다. 위에는 그럴듯한 포탑까지 달려있다.

후미등을 벌겋게 켠 그 흉물이 저를 꼭 닮은 시카리오들을 쏟아낸다. 닮았다는 말은 시카리오들 또한 온몸에 고철 같은 장갑을 둘렀다는 뜻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코끝에 쇠 냄새가 감도는 투박한 철제 전투복들을. 쿵쿵대는 발소리들로 미루어 각각의 전투복 무게가 족히 육칠십 킬로그램씩은 나갈 듯하다. 힘에 비해 무게가 과한지 움직임이 둔하고 관성을 주체하기 힘들어한다. 딱 지방영주 사병대 수준의 장비와 각성자들이었다.

곡선이 많고 고급스러웠던 템플 기사단 카르텔의 무구와 달리, 모서리마다 직각이 남아있는 저들의 철제 장갑복들은 필시 평범한 동네 철물점에서 다급하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일 것이다. ‘과달라하라 쇼크’에 대응하기 위한 주문이었을 테지.

포르쉐 카레라에서도 사람이 둘 내린다. 하나는 엘 후에고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애인 내지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운전석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은 엘 후에고가 기관단총을 든 손으로 삿대질을 해댔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이 얼간이 새끼들아! 5분 안에 배를 못 띄우면 10초, 그래, 10초마다 한 명씩 죽여 버리겠다! 알아들어?!”

플라자 헤페의 사나운 히스테리에 소형 승합차 세 대 분량의 시카리오들이 우르르 뛰어 짐을 나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운반하는 건 비닐로 단단히 포장한 회백색의 마약 덩어리들. 그 회백색에 희미하게나마 노란 빛이 감도는 것은 코카인의 순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증거다. 단 1그램으로 12번을 투약할 수 있으며, 소매가를 기준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50배는 더 나갈 상등품인즉, 지폐나 귀금속보다 우선하여 나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의 구성을 보니 확실히 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사냥이긴 하다. 화력 위주로 승부를 봐야 할 내 애들에겐 특히 저 나르코 탱크가 난관이 되겠다.

추가로 고작 2킬로미터 바깥에 있는 해군기지 역시 문제다. 싸움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기지경비대와 항만보안대가 출동할 테니까. 거기엔 내일모레 「북동부파」와의 거래현장을 지켜주기로 약속한 리까르도의 친구, 디에고 스바랄스카 중령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항만보안대는 우리가 싸워선 안 될 상대들이었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비하여, 수연은 해군기지 정면의 상점가에 다수의 폭탄을 설치해놓았다고 알려왔다. 이는 교전시 해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칼이 아쉽군.’

내 손아귀엔 여태까지도 칼자루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물이 가까운 싸움터이니, 짙은 안개를 일으키고서 한 자루 장검을 들고 뛰어들면 적들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는 채 무더기로 죽어나가지 않겠는가. 꼴에 플라자의 정예랍시고 장갑복을 걸친 각성자 집단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체공학과 거리가 먼 저 중갑들은 육탄전을 위한 최소한의 유연성도 고려하지 않은 쓰레기들이었으니까. 시카리오들을 다 쓸어버리고 나르코 탱크의 운전석에 칼을 꽂아 마무리하는 싸움은, 더 큰 전쟁을 준비하는 내게 그럭저럭 괜찮은 경험과 여흥이 되어줄 것이었다.

그러나 안 될 말이다. 당장 칼이 손에 없어서만이 아니라, 칼을 썼다간 지우고 덮는 데 오래 걸릴 흔적들이 남기 때문에.

기사단은 이제 없다. 시간이 많지도 않다.

「부르고스 둘 하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콘도형 리조트가 즐비한 바닷가의 특성상, 부두는 화력을 집중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개방형 테라스를 갖춘 방 하나하나가 매복지가 될 수 있으니까. 슬쩍 고개를 돌려보면, 방금 보고한 녀석들이 창문마다 자리를 잡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부르고스 둘 둘, 곧 위치에 도달합니다.」

이렇게 스페인어 음성기호를 호출부호로 쓰는 애들은 수연이 통제하는 병력이었다. 수연은 장갑차를 앞세운 차량대열이 부두에 도달하기 전, 미리 와서 현장 안전을 확보하고 있던 시카리오 저격수들을 조용하고 신속하게 침묵시켰다.

「안토니오가 사령에게. 모든 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건 수연 본인의 보고다.

“빠르구나.”

「형님 덕분입니다.」

“경태와 표적을 분배해라. 저 몬스터 트럭은 내가 처리하마. 엘 후에고는 가급적 생포를 원칙으로 하되, 만에 하나라도 놓치겠다 싶으면 죽여서라도 확보해라. 얼굴만 멀쩡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몬스터 트럭은 당연히 나르코 탱크를 말하는 것이다.

“저놈의 트럭은 마력장의 보호를 받고 있다. 능력자가 아직도 일곱이나 타고 있어. 제압하려면 내가 가까이 접근해야 하니, 애들에겐 오사(誤射) 따위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미리 주지시키도록. 경태 너도 명심하고.”

「……네.」

“……옙.”

내가 전방으로 돌출하더라도 조심한답시고 화력을 아끼지 말라는 지시. 두 녀석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지시를 받아들였다. 어지간히 강한 화력이 아니고서야 전력을 발휘하는 나의 굴절결계를 뚫을 순 없을 것인데도.

내 부하들이 착실하게 공격 준비를 하는 동안, 엘 후에고는 제 손목시계를 총구로 두드리며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3분! 앞으로 3분 남았다! 이게 너희들의 최선이냐?! 겨우 이 정도밖에 못해?!”

말만 급하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만한 리더십의 결정체다.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코카인 덩어리 하나라도 직접 날라서 작업시간을 줄였을 텐데. 작은 덩어리 하나라도 빼돌리는 놈이 있을까봐 불안한 것인가?

하기야 저놈들은 멕시코 카르텔이니까, 그러한 불신이 있다 한들 이상할 건 없지. 제 눈으로 작업을 감시하지 않고는 안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부두에 커다란 물보라가 튄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의 기다란 부교(浮橋)를 건장한 시카리오 수십 명이 전력으로 왕복하고 있었으니, 결국 발을 헛디뎌 빠지는 놈이 나오고 만 것.

투타타타타타!

느닷없는 총성이 연사로 터진다. 범인은 엘 후에고였다.

“걸음마도 덜 뗀 애새끼는 필요 없어! 그냥 뒈져! 빠져 죽으라고 등신아!”

수면을 두두두둑 두드리는 총탄 세례에 혼비백산한 시카리오는 짠물을 잔뜩 먹고서야 겨우 부두로 기어 올라왔다. 조준이 워낙 대충이었던지라 명중탄은 한 발도 없었으나, 도와주는 자 역시 하나도 없었다. 엘 후에고의 애인 역시 금빛으로 번쩍이는 권총을 들고 부둣가를 오가며 짐꾼들을 재촉해댔다.

“조심해서 다뤄, 이 매독 걸린 자X들아! 그거 하나하나가 니들 불알 두 쪽보다 백만 배는 더 비싸거든?”

천박하기는. 둘이서 쌍으로 머저리 같은 짓들을 하고 있다.

잠시 후, 무선망으로 수연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당소 안토니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대기해라.”

5톤은 넘을 듯한 코카인이 모두 배에 실리고, 이제 귀금속과 달러로 가득한 상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저것들이 다 옮겨지고 나면 저들 무리의 경계태세가 흐트러질 터. 그때야말로 공격을 개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일 것이다.

사냥꾼은 인내를 알아야 한다. 인간을 잡든 동물을 잡든, 기다리고 기다려서 쏘는 단 한 발이 성급하게 쏴대는 몇 탄창의 낭비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효율적이기 마련이었다. 엽사(獵師)를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득하는 진리.

엘 후에고가 제 부하들에게 요구했던 5분은 3분을 거쳐 이제 1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됐어!”

스스로 정한 시한을 26초 남겨두고 두 팔을 치켜드는 카르텔 지방영주.

“꼴라꼬! 구아요! 바다에서는 너희가 앞뒤를 맡아라! 릴리오는 나와 함께 타고! 나머진 내가 떠나는 즉시 계획대로 움직여! 주민들 틈으로 숨어버리면 짭새든 군대든 절대로, 절대로 너희를 찾지 못할 거다! 알겠냐?! 엘 띠로 그 미련한 놈만 죽어주면 얼마 못 가 다시 조용해질 거다 이 말이야!”

같은 카르텔의 동료를 제물로 삼아 자기 세력만 보존하겠다는 태도는 카르텔 지방영주로서 대단히 모범적인 것이었다. 헤페가 해상호위를 맡은 두 간부에게 각각이 탑승할 요트의 열쇠를 던져주는 가운데,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한 시카리오들의 경계선이 어수선하게 흔들린다.

지금이다.

“쏴라.”

내 한 마디 말에 수십 개의 머리와 몸통들이 일제히 앞뒤로 핏물을 뿜는다. 심지어 철갑을 두르고 있던 각성자 시카리오들조차 눈구멍이나 관절 등의 약점을 관통당하여 즉사 내지 무력화당하는 놈들이 많았다. 그중 둘은 소형 로켓(LAW)에 맞아 갑옷 속에서 폭사했다. 산간에서 노획한 정규군의 화기다.

이 최초의 총포성만을 차단하고서, 흡음결계를 거둔 나는 마력장을 최대로 확장하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게 뭔-!”

기겁한 엘 후에고가 제 여자를 끌어안고 웅크리는 순간, 연이은 폭음과 함께 주홍빛 섬광이 장갑차를 집어삼킨다. 전후로 두 발이나 꽂힌 로켓탄이 얇은 강판을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작렬한 것이다. 타고 있던 놈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엎드려! 습격이다!”

혼비백산한 플라자의 정예들이 강철갑주의 무게와 거추장스러운 부피에 제 한 몸 가누기조차 버거워하고 있을 때, 육중한 나르코 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은 놈이 엑셀을 밟으며 허겁지겁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쿠르르르르-

방탄타이어 아래의 도로에 몇 개의 균열이 생겨난다. 25톤 트럭을 전투용으로 개조했다는 것은 많게는 40톤 이상의 중장갑을 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딱히 놀라울 것도 없는 무게다. 과거의 부산항 부두에선 총중량 100톤을 찍고 나오던 트럭도 드물지 않았으니까. 과적은 한국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요컨대, 눈앞의 나르코 탱크는 가벼운 로켓 따위론 이빨도 안 들어갈 이동식 요새라는 소리다. 단발로 본체를 격파하려면 보다 무겁고 값비싼 대전차화기가 있어야 했다. 바퀴를 노리는 로켓 몇 발이 애꿎은 아스팔트에 꽂혀 폭발한다.

“이 겁쟁이 새끼들! 반격, 으악! 바, 반격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나를 지키라고!”

엘 후에고의 다급한 외침과 결이 다른 총성들이 들렸지만, 나는 그쪽으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부하들이 어련히 잘 처리할까.

몬스터 트럭에 탑승한 능력자들은 내가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마력장에 발작하듯 반응했다. 내겐 놈들의 혼란에 빠진- 혹은 압도당한 낯짝들이 더러운 모공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놈들의 뇌는 온갖 화학신호로 발광하는 중이다. 그것은 적을 발견한 자들의 반응이라기보다 거대한 자연현상을 마주한 자들의 전율에 더 가까웠다. 마력회로를 보유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마법사의 존재감.

그럼에도 놈들은 재빨리 포탑을 회전시켰다. 강철의 요새가 주는 안정감 덕분일까. 장전된 포구가 나를 겨냥하는 순간, 어둑한 부두가 화약 타는 빛으로 번뜩였다. 포탑 후방으로 분출되는 후폭풍. 그리고 포성에 섞인 맑은 금속성의 울림. 무반동총이다.

씨잉-

근탄으로 날아든 고폭탄이 둔각으로 꺾인다. 바람소리만을 남겨두고 비스듬히 솟구쳐 멀어지는 탄. 차체 측면의 총안구로부터도 제압사격이 쏟아졌다. 그 사격마저도 모조리 굴절시킨 나는 두 번째 포탄이 장전되기도 전에 나르코 탱크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간격이 사라지자, 탑승자들의 마력장은 차체조차 다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음은 간단했다.

비껴냈던 포탄이 부두에 저편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킬 때, 나는 나르코 탱크의 측문을 따고 후방구획으로 침입했다.

“씹-!”

보자마자 욕을 뱉으려는 무례한 주둥이에 수렵용 라이플의 단발사격을 박아준다. 천장에 붙은 전등에 피가 쫙 뿌려지자 차내의 조명이 적색으로 변했다. 쾅, 쾅, 쾅, 쾅! 밝은 핏빛 아래에 튀는 어두운 핏빛들. 연사처럼 갈기는 내 반자동 사격이 반팔에 방탄조끼 차림의 차량 전투원들을 무너뜨렸다. 한 발에 하나씩, 다섯 놈을 무력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초에 불과했다.

쿠르르릉. 독일제 트럭 엔진이 과부하를 견뎌내는 소리. 용접한 철판의 덜덜거리는 공명이 그 소리를 증폭시켰다. 후방구획이 몰살당한 몬스터 트럭은, 그럼에도 크기와 질량을 폭력의 원천으로 삼아 내 애들을 향해 기수를 돌리는 중이었다. 건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태 이하의 부하들을 향하여.

운전석이 위치한 구획엔 아직 2인분의 마력장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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