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 마에스뜨레 (11)
양쪽 모두가 총기로 무장한 집단전에서 측면이나 후방이 노출된다는 건 대단히 치명적인 일이다. 총기의 특성상, 전선을 우회한 단 한 명이 집단 전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시마법 각성자들의 우월한 신체능력은 지형과 장애물에 구애받지 않는 고속기동을 가능케 한다. 앞으로의 소규모 집단전은 각성자 개개인의 능력과 더불어 특유의 기동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훈련을 할 당시 부하들 개개인에게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한편, 나 자신의 현장지휘능력을 중시했다. 사령부가 전투원 하나하나의 시야를 직관하며 하늘에서 전장을 조감하는 최첨단 지휘체계라 한들,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현장지휘관을 능가할 순 없을 테니까. 하물며 이렇게나 방해요소가 많고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라면야.
그 결실을 도블레 A와 영국 놈들을 가리지 않는 세 자리수의 죽음으로 거둬들이던 나는, 심야와 새벽의 경계에 서서 이제 막 도살한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영국 놈들과는 냄새도, 주된 피부색도, 복장과 장비마저도 다른 군인들. 종주국의 요청에 따라 3백 3십 킬로미터를 달려온 FPDA+1 연합군의 +1, 인도군 병사들이었다.
심장이 멎은 병사들은 멍하니 뜬 눈들로 달과 별이 가려진 매캐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카르텔 무장 세력을 손쉽게 섬멸하던 이들은 재난에 휩쓸리듯이 나와 부하들의 손에 죽어버렸다.
여기까지인가.
죽일 이유가 없었던 자들의 죽음이 투쟁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머리통을 단숨에 식혀놓는다.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돌아와 온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는 액상(液狀)의 중력이 미지근해진 혈관을 따라 독처럼 퍼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때마침 경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형님. 슬슬 물러나야 하지 않습니까? 적이 너무 많아졌고, 도시를 더 불태웠다간 남은 거래가 위태로워집니다. 이쯤에서 미끼를 던져주고 끝내시는 것이…….”
“그래야겠지. 모두 갑옷을 벗어라.”
갑옷을 입힐 시체는 여기저기 많이도 널려있었다. 도블레 A의 시카리오와, 시카리오조차 되지 못한 뒷골목 떨거지들. 다만 이 중에 기사단장의 죽음을 위조할 시체는 없다. 악명 높은 「엘 마에스뜨레」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는 의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남기는 건 기사단장의 무구들뿐.
시체를 꾸며 유기한 다음으로 한 일은 사인을 위조하는 것이었다.
“쏩니다.”
투학! 부하 하나가 시카리오로부터 노획한 대전차로켓(RPG-7)을 발사했다. 그 사선 끝의 교전 현장엔 무반동총 포탄을 비롯해 다량의 폭발물을 적재한 인도군 트럭이 존재했다.
쾅! 콰콰콰쾅!
트럭이 격렬한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충격파가 두 차례에 걸쳐 퍼지며 인접한 건물들을 모조리 반파시킨다. 주차되어있던 차량들이 태풍에 뒤집히듯 굴러다니고, 폭압에 옆구리를 맞은 오토바이 한 대는 아스팔트 위로 불꽃을 튀기며 반 블록이나 미끄러졌다.
그러니 폭심지의 시체들은 어떠하겠는가. 찢어지기는 흔하며 날아다니기도 예사다. 추후 흔적을 분석한다면 나올 결론은 하나였다. 가짜 성전기사들이 인도군을 다 베어 죽였으되, 카르텔의 로켓 공격에 휘말려 불운한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
여태까지도 사람이 남아있었던 몇몇 민가로부터 째지는 비명들이 들려온다.
이 와중에 둔탁하게 굴러와 질퍽하게 퍼지는 것은 트럭에 묶어두었던 말의 일부다. 목 아래가 사라진 말은 가죽이 절반쯤 벗겨져 아스팔트 위로 펼쳐졌다. 그 모습이 현실에 옮겨놓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상처와 화상은 변칙적인 채색이다.
그 핏덩어리 예술품의 한쪽만 성한 눈을 바라보며 경태가 담담한 유감을 말한다.
“짜식. 순한 녀석이었는데.”
도시 곳곳에 인상적인 증거와 목격담들을 남겨준 기특한 축생이다. 죽음의 고통은 한순간이었겠지. 적어도 일반적인 도축보다는 빠르게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수라장을 등지고서 삐띠알 강변까지 물러났다. 철수를 결심하고서 강가의 녹지에 배치된 녀석들과 합류하기까지 우리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추가로 치를 필요가 없었고, 직선이 아닌 길을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이제껏 휩쓸고 다닌 거리들이 문자 그대로의 무인지경으로 남아있었으므로,
그런데.
“사냥감이 하나 더 남아 있다?”
현장지휘소와 연결된 교신에서, 수연은 내게 또 다른 사냥감의 존재를 알려왔다.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으나, 잡아 죽일 가치가 넘쳐나는 짐승의 출현을.
「시날로아 카르텔 측의 교신을 감청한 결과, 엘 후에고의 플라자가 도블레 A의 지원요청을 무시하고 독자행동에 돌입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 동선이 부두로 집중되는 것을 볼 때, 아무래도 후에고 개인과 플라자의 핵심자산을 안전한 곳으로 빼내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두? 어느 부두?”
「마리나 바야르타입니다.」
미리 숙지한 지도와 지명을 대조해본 나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이 상황에 해군기지 바로 앞으로 돈과 마약을 빼돌리겠다고?”
푸에르토 바야르타가 항구로서 품고 있는 만(灣)은 정말 초라할 정도로 작다. 관광지가 아니었더라면 항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했을 만큼. 그 자그마한 만의 유일한 출입구 정면에 크루즈 선들이 정박하는 선착장과 해군기지가 존재하며, 그보다 안쪽에는 고깃배나 요트 따위가 홋줄(계류삭)을 매는 소형 부두들이 들어차있다.
마리나 바야르타는 이 소형 부두들 가운데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고로 엘 후에고가 저와 제 관할구역(플라자)의 핵심자산을 바닷길로 빼내고자 한다면, 해군기지 앞의 좁은 물목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그 물목의 폭은 고작 100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해군도 지금 비상이 걸렸을 텐데. 평소 뇌물을 얼마나 먹였든 가볍게 넘어갈 때가 아닌 것이다. 자칫하다간 외교문제로 비화할 사건이니까.
이런 내 의문에 수연은 지체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겁에 질린 시민들이 앞 다퉈 바다로 탈출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해군은 순찰선을 띄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협소한 만 전체가 배와 사람으로 가득 메워진 상태이니까요.」
하, 그런 거였군.
「설령 순찰선을 출동시킨다 한들 저 많은 탈출선들을 다 단속할 순 없습니다. 무엇보다, 단속 대상엔 부유층과 지역 유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멕시코 특성상 그들에 대한 강압적 통제가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엘 후에고가 늑장을 부리지만 않으면 성공할 거다 이건가.”
「예.」
지금 바다로 나가는 배들 가운데 관광객들을 상대하던 대여업체의 소유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탈출하는 시민들이 사무실을 약탈하여 열쇠를 획득했다면 모를까.
결국 탈출행렬의 대부분은 개인용 요트를 소유한 부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해안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에 거주하는 자들. 돈 많은 관광객들과 벗하여, 파도를 몰아오는 서남풍의 신선함을 누구보다 먼저 누리는 자들. 멕시코의 공권력은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과달라하라 사태 이래, 멕시코 제2의 대도시에 거주하던 부유층들 또한 가까운 휴양지인 이곳으로 피난을 온 경우가 많았다. 호화로운 호텔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페루쵸의 딸 마리가 하루에 50페소나마 벌 수 있었던 이유.
엘 후에고는 여기까지 감안하여 행동에 들어갔을 것이다. FPDA+1 연합군과 도블레 A가 격돌한 시점에서 자기가 살 길은 이것뿐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교활하고 이기적인 놈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결정했다.
“그놈까지는 잡아야겠구나.”
다 끝나서 잠적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새로 생긴 일감이 귀찮기 짝이 없었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당첨 확정인 복권을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관광객에게 마약과 매춘을 제공하며 항구 최대의 카지노를 운영하던 카르텔 플라자, 그리고 그 플라자를 지배하는 헤페의 자산이라면 금품만 따져도 족히 몇백만 달러는 되지 않겠는가. 이는 항구의 불경기까지 고려한 추산이다.
잠깐의 추가노동으로 수십억 상당의 보너스라. 이건 잡지 않는 게 병신이었다.
그리고 엘 후에고는 엘 띠로와 더불어 FPDA+1의 전리품이 되어야 할 몸이다. 그래야만 이번 사태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전리품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카르텔 지방영주가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혹은 자기네들끼리 싸우다가 죽어버렸다, 정도의 결말이 무난하겠지.’
그쯤이면 혐오스러운 섬나라가 체면치레를 할 정도는 될 것이다. 내 한숨 소리를 들은 수연이 조금 낮아진 톤으로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장갑차량과 무장한 각성자들을 보유한 세력이라, 저희들만으로 공격하면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아니야. 잘 말해줬다.”
한 사람도 잃지 않겠노라 말했던 건 바로 나였으니까.
“계획은 있고?”
「놈들이 요트에 자산을 적재할 때를 기다려 몰살시킨 다음, 그 요트를 그대로 몰고 나아가 가까운 군도(群島)의 그늘에 숨겨두고자 합니다. 그러면 이틀 뒤 도착할 우리 측 화물선에다 필요한 것들을 옮겨 실을 수 있겠지요.」
“군도? 안전한 곳이냐?”
「자연 훼손으로 인해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섬들입니다. 외부관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가 다수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기반시설이 전무한지라 탈출하는 배들이 정박할 이유도 없는 장소입니다.」
“그쯤이면 됐다. 곧 합류하마.”
「예.」
교신 종료 후 우리는 수연이 깔아둔 길을 내달렸다. 철저하게 준비된 5킬로미터를 주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4분. 해군기지와 가까운 구간의 해안도로가 자연보호구역의 늪지와 붙어있었으므로, 이 지점부터는 그저 도로를 측면에 끼고 최대속도로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카르텔 플라자가 운반하는 화물보다 우리가 먼저 부두에 도착한 건 그리 놀랄 일이 못 되었다.
크르르릉-
장갑차량 특유의 거친 배기음이 가까워졌다. 카르텔 차량행렬을 선도하는 것은 군용으로 제작된 8륜 기동 장갑차였다. 나는 무기상으로서 장갑차를 보자마자 그것이 멕시코 정규군이 아닌 카르텔 지방영주의 사유재산임을 알 수 있었다.
‘스콧?’
스콧(OT-64 SKOT). 과거 체코와 폴란드가 굴렸던 냉전기의 유산. 군용 장갑차량이라고는 하나 지금은 곳곳에서 중고차 시장 매물로까지 나오는 철지난 골동품이다. 가격도 풀 옵션 경차 한 대 수준에 불과하여,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 부담 없이 사들이는 그런 물건이었다. 탑재화기는 다 떼어내고 파는 것이지만. 이렇듯 개인에게 팔려나간 장갑차들은 때때로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게 오죽이나 흔한 물건이면 나 같은 무기상들조차 관심을 끄겠는가. 면허만 있으면 일반 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는 걸 굳이 암시장에서 바가지 써가며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일반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위험한 고객들이 특별주문을 넣는 경우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 멕시코에선 먹히고도 남을 사양의 무기체계였다. 아무리 냉전의 유산이라지만, 온갖 것들이 20세기에 머물러있는 제3세계에선 여전히 현역으로 쓰는 물건이었으니.
예전엔 나르코 탱크(상용차를 개조한 마약 카르텔의 전투차량)나 몰고 다녔던 놈들이 참 많이도 발전했다. 운송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콰지직-
기수에 장애물 파괴용 쇳덩이(Battering ram)를 달아놓은 장갑차가 길을 막고 있던 차들을 거칠게 밀어버린다. 긴급한 피난의 와중에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낸 민간인들의 차였다. 그렇게 벌어진 틈을 통해, 상향등을 켠 차량행렬이 줄줄이 부두로 진입한다.
들어오는 행렬 중간엔 두 대의 탑차가 끼어있었다. 하나는 오로지 마약만을 싣고 있었으되, 그보다 크기가 작은 한 대는 지폐와 귀금속으로 적재함을 꽉 채워놓았다.
후자는 내 기대를 적잖이 넘어서는 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