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4화 (54/561)

#10. 엘 마에스뜨레 (9)

촛불이 흔들린다. 성전(聖殿)에 거친 돌풍이 몰아쳤다. 내딛는 모든 발에 바닥이 부서질 만큼의 각력으로, 닫힌 공간에서 맹렬하게 가속하는 2미터짜리 중장기사. 전신방패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돌격은 어느 각도로도 칼이 들어가지 않을 공방일체의 질주였다. 보통이라면 우선은 피하겠지. 피하고서 그다음을 노리겠지. 그러나.

투캉!

압도적인 힘의 격차. 나의 일격은 두터운 방패를 밀랍처럼 뚫고 일직선으로 머리통을 찔러 들어갔다. 카르텔 두목은 검이 방패를 관통하는 일순(一瞬)에 기적적으로 머리를 틀어 치명상을 면하고는, 달리던 관성 그대로 나를 밀어붙인다. 넘어뜨리려는 것인가? 힘으로는 어쩌지 못할 질량의 우위. 그것을 최대화하는 판단이다. 허나 주욱 밀려나는 와중에도 내 중심이 흔들리지 않자 기사는 방패를 틀어 내 검을 봉쇄하며 제 검으로 내 목을 치려 들었다.

대각선으로 떨어지던 커다란 칼이 덜컥 멈춰선다. 간격이 너무도 가까웠으므로, 칼을 쥔 손이 나에게 붙잡힌 탓이다.

이어지는 건 순수한 힘겨루기. 꾸득, 꾸득. 기사의 손에서 짓눌리는 쇳소리가 난다. 내 악력이 티타늄 수갑(手甲)과 그 안의 뼈와 살을 우그러뜨리는 중이었다. 방패 역시 꽂힌 칼날에 조금씩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있다.

기사단장이 꽉 깨문 이빨 사이로 기괴한 소리를 흘린다. 끄으후으으윽. 한계를 넘어서서까지 힘을 끌어내려는 필사적인 노력. 카르텔 두목과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기사단장의 눈이 붉게 물들어간다. 모세혈관이 파열된 자리마다 점점이 찍혀 번지는 핏빛의 일그러진 동그라미들. 이는 목이 졸려 죽는 인간에게서 곧잘 볼 수 있는 그런 눈이다.

그리고 나는 그 너머를 응시했다. 영혼의 회로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마력의 광채를. 불세출의 천재라고 해도 좋을 자연각성 능력자가 죽음을 불사하고 끌어올리는 자신의 능력을. 거기엔 여러 조각의 「코드」가 존재했다. 이 세상이 나에게 주는 지혜. 지혜가 곧 힘이다. 난 양서(良書)를 탐독하듯 눈앞의 원시마법에 몰두했다.

“끄하아아아압!”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내 속박을 풀고 떨어져나가는 기사단장. 방패를 포기하는 주먹질로 나를 떨어뜨리며 몸을 굴린다. 그 중량감 넘치는 구르기에 깔려 와지끈 박살나는 장의자가 두 개. 사실은 일부러 놓아준 것이었다. 그대로 붙잡고 있었으면 결국은 피를 토하며 죽었을 테니까.

안 되지. 그래선 곤란하지. 아직 모든 작용을 보지 못했는데. 그 원리들을 뇌리에 충분히 새겨 넣지 못하였는데.

검을 회수한 나는 떨어진 방패를 발길질로 쳐 날렸다. 결속되어 있던 총 한 자루가 충격에 떨어져 나가고, 방패는 직선으로 꽂히는 무거운 투사체가 되었다. 쾅! 허리를 트는 기사단장의 무릎차기. 확 솟구친 방패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성당 궁륭을 찍고 튕겨져 나온다. 잔해가 와르르 쏟아지는 가운데, 기사는 떨어지는 방패를 낚아채 방어를 강화했다.

측문이 가깝다. 허나 가짜 기사는 도주를 택하지 않았다. 방패로 전면을 막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며, 측면으로 스텝을 밟아 신중하게 기회를 노린다. 방패를 돌려준 보람이 있다.

빠지직…….

천장과 의자의 흩어진 잔해들이 묵직한 발에 으깨어지는 소리. 이것은 검술에 미숙한 검객들의 싸움이었으나, 조심스레 그리는 원은 전통적인 대결과 흡사했다. 염동력을 쓰지 않음은 상대의 전의를 살려 놓을 방편이자 내 나름의 훈련이다.

이러한 대치 속에 기사단장의 생체징후들은 즉사의 고비를 넘어 안정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급격히 망가져가던 장기들 역시 가시적인 속도로 회복된다.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싶지만 당장의 전투를 속행하는 데엔 큰 힘이 될 테지.

가짜 성전기사가 연신 중얼대는 소리.

“주여. 제게 역경을 극복할 힘을 주소서. 대적(大敵)을 물리칠 능력을 허여하소서. 사람의 삶이 당신께 있고 제 심령의 생명도 오롯이 당신께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저를 치료하시어 당신께서 가리어 뽑으신 자가 살아남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힘이 신의 축복이자 선택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기야 그러니 내 힘을 겪고도 달아날 생각을 않는 것이겠지. 믿음이 곧 힘이라면 패배는 곧 믿음이 부족한 자의 부덕이 되지 않겠는가. 작금의 멕시코, 나아가 사람 사는 세상 전체에서 빠르게 확산 중인 착각이자 질병 같은 광신이었다.

“……제가 당신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오며 당신의 높으신 뜻대로 행하는 즉 당신께선 제 원수의 원수가 되시고 제 대적의 대적이 되실지라…….”

그러한 회복의 와중에도 피로 물든 흰자위만은 도로 희어지지 않는다. 이미 터진 피가 다시 흡수되지는 않는 까닭이었다. 벌겋게 나를 노려보는 눈엔 야수적인 투지와 분노만이 넘실거린다. 처음 보여주었던 경악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다.

“……믿는 자는 의로운 자이니 거룩한 공의(公義)가 제 칼에 머물게 하소서!”

힘이 돌아온 기사단장의 발아래에서 대리석이 부서진다. 또 한 차례 방패를 세우고 들어오는 돌진. 설마 처음과 같은 수의 반복인가? 생각하는 순간 기사단장은 방패로 바닥을 찍어 거칠게 제동을 걸었다. 쿠웅! 콰드드드득! 파도치듯 부서지는 바닥이 시야를 가리는 먼지와 파편이 되어 나를 덮치고, 그 연막 너머의 성전기사는 앞선 발을 방패에 걸어 균형을 잡으며 급제동으로 인한 관성을 모조리 장검에 집중시켰다.

카아앙!

칼을 칼로 막는 충격에 드득 드득 떨어대는 유리창들. 기사의 회로에 흐르는 마력은 아까와는 다른 광채와 형태로 타오르고 있다. 나는 그 변화를 탐닉하며 검을 회전시켰다. 서로 얽힌 칼막이(크로스가드)를 축으로 삼아 대각선을 밟고 손목을 돌려 그리는 날카로운 반원.

기사는 제 머리를 베어오는 검을 방패 테두리로 쳐내고는 얽혀있던 칼을 떨쳐 풀어냈다. 그 직후 들어오는 역습은 바깥 방향의 발차기였다. 방패의 사각(死角)에 의지하는 절묘한 일격. 훌륭하다. 그러나 내게는 사각이 없다. 나는 바싹 붙어 타격을 무효화하는 동시에 어깨와 상박으로 부딪혀 기사를 날려버렸다. 콰직! 흉갑이 푹 찌그러지는 굉음과 함께 기사단장은 트럭에 치인 멧돼지처럼 나뒹굴었다. 그러면서도 사지를 틀고 방패를 찍어 웅크린 자세를 회복하는 걸 보면 정말로 타고난 자질의 싸움꾼이라 하겠다. 하나의 재능만 탁월한 천재가 아닌 것이다.

그런 기사의 몸에 이번엔 뭉개진 시체가 묻어있다. 앞서 죽은 세 부하 중 하나, 부상으로 갑옷을 벗어놓고 있던 놈이었다.

카르텔 두목이 몸을 떨었다. 전신으로부터 죽은 부하의 피와 살점이 뚜욱 뚝 떨어진다.

개중에는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는 살덩이들이 존재했다. 숙주가 죽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마력 종양 덩어리들. 최근의 의학계와 과학계를 경악으로 몰아넣은 원흉들. 능력과 재능 양면에서 두목에 한참 못 미치는 시카리오 기사들이 덜 여문 회로들을 한계에 가깝게 써댔으니 필연적인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격노한 기사단장의 포효에 가까운 유리창들이 줄줄이 깨어져나간다. 반짝이는 조각들이 쏟아지기도 전에 기사단장과 나는 다섯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리하여 또다시 처박히는 기사단장. 그러나 그는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나에 대한 투쟁을 이어갔다. 성체함이 부서지고 성모상이 떨어지며 내력벽은 포탄에 직격당한 듯이 박살났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라기보다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에 가까울 대결이었다.

너무도 일방적인 힘의 격차로 인해 싸움의 호흡이 툭툭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가짜 기사단장은 회복할 틈도 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성당이 진동한다. 허억, 허억……. 몇 번째인지 모르게 벽을 부수고 처박힌 거구의 기사는, 칼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벌어진 상처마다 횟가루가 핏빛으로 엉겨 붙었다. 무너진 잔해를 비틀비틀 헤치고 나온 그가, 추락한 예수상 옆에 서서 흔들리는 검을 들어올린다. 손잡이가 떨어진 방패는 옆으로 던져버리고서.

호흡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검극 너머로, 나를 노려보는 안광만은 아직까지도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형형해지는 게 아닌가. 이는 영에 흐르는 마력도 마찬가지. 한계에 달한 육체를 원시마법이 강제로 움직이는 꼴이다. 마력이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육체를 극복하는 정신. 그야말로 생명을 태우는 전의 그 자체다.

실로 흡족한 투지였다.

그래, 모든 것을 불살라 봐라. 이 세상에 너의 진정한 유산을 남기고 가라. 그 유산이 네 진짜 원수들의 죽음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니.

그렇다. 진짜 원수들. 그들의 관심만 없었더라면 이 강하고 불경스러운 기사는 이 순간에도 과달라하라를 불태우는 중이었을 게 아닌가. 부하들 역시 멀쩡히 살아서 두목의 뒤를 따라 싸우고 있었겠지.

나는 이 추악한 천재가 이토록 양질의 「코드」를 품고 있음도 모른 채, 관심도 두지 않고, 거래를 끝내는 즉시 이 항구를 떠나갔으리라. 그러면 기사단장은 멕시코 중남부의 새로운 거물, 나아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마약왕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콰앙!

부러지는 검이 잡념을 흩어버린다.

몇 번째인지 모를 격돌. 무기를 잃은 건 내 쪽이었다.

“끼어들지 마라!”

어느새 입구까지 와있던 경태와 다른 하나가 움찔 하고 총구를 거둔다.

부딪힐 때마다 이가 빠져 톱처럼 변한 날이 내 목을 자르려고 들었다. 나는 그 날을 빈손으로 붙잡았다. 케블라 장갑이 드드득 뜯겨 나가며, 그보다 더 질겨진 상태의 내 살 또한 조금씩 찢어진다. 아물고 찢어지고 다시 아무는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줄기의 피. 손목을 적시는 낯선 뜨거움.

“주여어어어어!”

나로 하여금 기어코 피를 흘리게 만든 기사는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를 박는다. 유쾌하다! 언제 이런 싸움을 해보았겠는가? 나는 투구를 이마로 맞받아쳤다. 그러므로 구도는 황소와 황소가 서로의 대가리를 밀어대고 또 부딪혀 밀어대는 야만스러운 꼴로 수렴했다.

쾅! 쾅! 쾅! 쾅!

남은 생명을 불태우듯, 이마를 부딪칠 때마다 광채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기사단장의 회로. 마력장의 반경도 푹푹 꺼지듯이 줄어든다. 애초에 나와 육탄전을 벌이며 제 마력장을 남기고 있는 것부터가 보통이 아닌 일이었다.

다행히 「코드」는 다 습득했다. 이젠 정말 성의를 다해 죽여주는 일만 남았다. 사납게 박아대는 머리통은 이 야만인에 대한 나의 존중이다. 기사단장과 내 몸 사이에 낀 커다란 검이 극심한 변형 스트레스에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쾅!

나를 치는 발길질. 기사는 저가 차놓고 저가 밀려나 엉망으로 넘어졌다. 기어서 거리를 벌리며 일어서려 해보지만, 이번에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모양이다.

“쿨럭…….”

주르륵. 투구 밖으로 검붉은 핏물이 쏟아진다.

“……너의 하느님 야훼께서, 너로 하여금 사십 년의 광야를, 걷도록 하신 일을, 기억할지어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허윽……. 시, 시험하사, 네 믿음이 어떠한지, 거룩한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아니하는지, 알고자 하셨음이라…….”

기적을 믿는 광신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부러지지 않는다. 승리도 패배도 신이 정하는 바. 이것이 마약팔이 카르텔 두목의 광신이라는 사실은, 초월적인 능력에 눈을 뜬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인격을 바꿔놓을 만큼의 종교적 체험이 될 수 있음을 웅변한다.

극도로 탈진한 녀석이 장님처럼 손을 더듬어 놓친 칼을 붙잡았다. 그그그긍. 이 빠진 장검이 질질 끌리며 당겨지는 소리. 칼날은 일렁이는 촉광(燭光)을 반사하며 희미하고 비틀린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그 자루를 억세게 거머쥔 기사단장은 육체와 영혼을 쥐어짜듯 마지막 힘을 폭발시킨다. 기습적으로 빨라진 칼이,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속도로 내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럼에도 나보다는 느리다. 나는 그 옆날을 주먹으로 올려쳤다. 터엉- 하고 솟구친 장검이 주인의 손을 벗어나 훅훅 돌면서 땅에 떨어진다.

이것이 끝이었다.

기사단장은 저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갑주와 그 밖의 장구류들 때문일까, 아니면 몸뚱이 자체가 비범하기 때문일까? 심장이 멎은 거구는 옆이나 앞뒤로 쓰러지는 대신 무릎만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멈추었다.

살아온 삶에 어울리지 않는 호상(好喪). 이것만 보아도 이 세상엔 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량한 신이란 결국 인류의 문화적 상상력에 불과하다. 재미있긴 하지만, 그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찾으려 들어선 곤란할 허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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