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2화 (52/561)

#10. 엘 마에스뜨레 (7)

영국군 차량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마력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즉 각 차량마다 한 명 이상의 각성한 능력자가 탑승한 상태라는 뜻.

따라서 내가 저들의 차량에 마법으로 장난을 칠 순 없었다. 저깟 수준 낮은 원시능력자들의 역장쯤 조금 더 근접하여 압도적인 출력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쪽에 차원이 다른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어선 곤란하니까. 그런 식의 마법 사용은 모든 적을 확실하게, 연락할 틈도 주지 않고 몰살시킬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사용이 허락되는 것이다.

여하간, 그렇게 다수의 능력자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차량 대열은 도로를 막은 장애물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르고 멈춰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비슷한 꼴들을 이라크에서 많이 봤을 테니까.’

길을 장애물로 막고 급조폭발물(IED)을 설치해두거나, 폭탄을 잔뜩 실은 승용차 따위를 들이박아 터트리는 테러리스트의 전술. 이라크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그만큼 많은 피해를 입은 영국군으로선 비슷한 것만 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정상이다. 전후보고서에서도 원인과 과정과 결과 모두가 ‘총체적으로 부적절했던’ 전쟁이라 평가했으니.

하물며 지금은 정체불명의 적성세력- 즉 우리들의 습격으로 인하여, 탑승하고 있던 예비병력 전부를 기사단 추적의 증원으로 내보내 놓은 터라 이쪽 현장을 확보할 인력이 없다. 어떤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자리에 소수의 수색반만 투입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아마 저들은 암중에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세력이 시날로아 카르텔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다소 미심쩍은 구석이 있긴 해도, 이 일대에서 그 정도의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집단은 시날로아가 유일하기 때문에.

순망치한. 영국이 생각할 시날로아 카르텔의 공격 동기. 결국 악연으로 엮인 이 두 집단은 똑같은 이유로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소심한 대치를 앞두고 내 부하들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위치에 도달했다. 4인 1조로 구성되는 팀 두 개가 장애물로 꾸역꾸역 막힌 도로의 지척에 위치한 주유소로 돌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약의 번뜩임들. 실내와 실외에 카르텔 시카리오(정규 무장조직원)들의 피가 뿌려졌다.

「4팀, 5팀. 주유소 확보 완료.」

“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지?”

「당소 4-1. 앞으로 2분…… 아니, 1분 30초면 됩니다.」

“알았다.”

최대효율로 폭파시키기까지 1분 30초면 된다니. 카르텔 녀석들이 밑작업을 제법 잘 해놓은 모양이다. 내가 눈이 아무리 좋아도 이 거리에서 그런 작업의 상세까지 확인할 순 없었다.

폭파전문가가 포함된 4팀이 카르텔의 작업물을 손보는 동안 5팀은 작업현장을 보호했다. 그런 그들에게로 드론 한 대가 접근한다. 외롭게 차량대열을 맴돌던 바로 그 드론이었다. 나는 거기에 대고 수렵용 자동소총을 겨냥했다.

콰앙!

나는 초탄의 궤적을 눈으로 쫓고서 오차와 풍향을 고려하여 조준을 수정했다.

쾅!

차탄이 드론의 비행궤도 전방을 가로지르는 순간, 이때다 싶었던 내가 탄창에 남은 일곱 발을 풀 오토로 갈겨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 사실상 무반동으로 나간 중량탄자들 가운데 세 발이 두랄루민 동체를 파고든다. 불티를 튀기며 회전하는 드론. 방탄성능이 전무한 기체에 중량탄 세 발은 지나친 물리력이었다. 무인기는 찢어지기 직전인 몰골로 어지럽게 추락했다.

“훌륭하십니다, 형님.”

“관둬라. 애들 보기 민망하니.”

경태의 아부야 어쨌든 속이 시원하기는 하다. 앞서 비슷한 표적을 산간에서 쏘았을 땐 단 한 발도 명중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총질을 한 세월이 몇 년인데.

이번엔 번거롭게 총성을 가릴 필요도 없었다. 마을 중심가로 번져가는 아비규환이 크고 작은 폭발과 총성과 단말마의 비명들을 퍼뜨리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급하게 탈출하는 자동차들이 요란스레 울려대는 경적들까지. 이 무분별한 소음들은 어두운 골짜기에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 정도의 청각적 무질서였다.

조금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시끄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내게 도움이 되는 곳이다.

추가로 접근하는 무인기는 없었다. 가용기체를 전부 기사단 쪽으로 보내놓은 탓이리라.

「4팀, 5팀. 철수 완료. 지금 바로 폭파 가능합니다.」

“터트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충격파가 건조한 들판을 휩쓸었다. 지저 저장고의 용적으로 미루어 최소 6만 리터의 유류를 보관하고 있었을 주유소의 폭발은, 종류별로 방류된 기름과 잘 조정된 폭파절차에 힘입어 그야말로 엄청난 불길이 솟구치도록 만들었다. 뭉게뭉게 올라가는 검은 연기가 자연스러운 상승과 확산에 따라 버섯구름의 형상으로 별들을 가린다. 솨아아아- 몰아치는 흙빛의 파도는 사막에 불어 닥치는 모래폭풍을 보는 듯했다. 매캐한 냄새가 삽시간에 확산된다. 홍수처럼 번지는 불길의 끝자락에서, 영국군을 돕고자 대기하던 현지 경찰들이 산 채로 타오르며 도로를 내달렸다.

“Mamá! Mamá! No quiero morirme, mamá……!”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가장 멀리까지 가서 쓰러진 경관은 불붙은 발자국을 스물 남짓이나 남겨놓았다. 나는 약간의 시간과 자비를 할애하여, 죽지도 못하고 굴러다니는 경관들의 머리통에 빠르고 정확한 단발사격들을 꽂아주었다.

「사격! 사격!」

이 폭발을 신호로 모든 팀들이 공세에 돌입했다. 이번 사냥감은 시날로아 카르텔. 우리가 일으킨 폭발은 그들의 계획에도 중요한 것이었을 터이기에, 통보도 없이 폭발한 주유소를 보며 웅성이던 시카리오들은 내 부하들의 공격을 받고서야 비로소 악을 쓰기 시작했다.

영국 놈들을 죽이라고.

나 또한 휴대한 시체들을 늦지 않게 앞세웠다. 두꺼운 방탄복을 입은 네 구의 영국군 사체는 서로 다른 방향에 둘씩 배치되어, 쏟아지는 소총탄 사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적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빌어먹을! 저 새끼들은 뭔데 안 죽고 지랄이야?!”

“RPG, RPG 가져와!”

마을 중심가로부터 교전을 피해 계속해서 물러나며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을 카르텔 시카리오 놈들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총력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저항엔 나름의 체계성이 녹아있었다. 그 정체는 카르텔이 준비했을 유사시의 ‘반격계획’일 터였다.

“쏴!”

화광과 열풍에 춤을 추는 관목의 그림자들 사이로 파괴적인 직선을 긋는 로켓 한 발. 지근거리에서 터진 고폭탄두는 두 구의 시체를 강한 폭압과 자연적인 파편들로 후려쳤다. 보이지 않는 차에 치인 수준으로 굴러버리는 시체들을 보며 시카리오들이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Goyo! Goyo! Goyo! Goyo!

로켓 사수의 별명이 고요인 모양이다. 빈 발사관을 든 사수 녀석이 팔을 번쩍 들어 스스로를 과시한다. 이 와중에? 뇌가 없나? 싶은 멍청함. 마약에 취했다면 이해가 갈 행동이다. 오합지졸들 같으니라고. 나는 한심해하면서도 남은 두 구의 시체를 적당하게 쓰러뜨려, 시카리오들에게 뻔히 보이는 자리에 방치해놓았다.

이쯤이면 됐다. 나는 가장 앞선 전열을 뒤로 뺐다.

“1팀에서 6팀까지, 적을 견제하며 두 번째 포인트로 물러나라.”

시작은 우리가 했으되 불벼락은 영국군이 얻어맞았다. 시카리오들 입장에선 한쪽은 격퇴했지만 다른 한쪽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것도 크고 눈에 잘 띄는 차량대열이. 오히려 이 대열이야말로 진즉부터 경계하고 있던 대상이 아니겠는가. 자연히 이쪽을 주력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예리하게 바람 갈라지는 소리들이 불길한 화음을 이룬다 싶더니, 하늘에서 뚝뚝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시체를 버린 들판과 불타오르는 주유소와 영국군 군용차량들의 좌우에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발들. 이는 카르텔이 가하는 최대속도의 박격포 사격이었다. 직경 51밀리, 60밀리, 80밀리 고폭탄들이 1~2초 간격으로 낙하하자 차량 대열엔 삽시간에 난리가 벌어졌다.

쿵-!

정신없이 후진한 군용 랜드로버가 후방의 장갑차(Foxhound)와 충돌하고, 그 장갑차는 다시 기수를 돌리던 장갑트럭(Husky)과 부딪힌다. 차간 간격은 모자라지 않았으되 좌우 공간이 넉넉지 못했으므로 곳곳에서 연쇄적인 추돌들이 빚어졌다. 그 와중에 장갑트럭을 강타하는 박격포탄 한 발. 탑승칸 좌우의 장갑판이 섬광에 찢겨나가며 차량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친다. 포탄을 맞은 탑승칸 바닥이 대각선으로 주저앉아 아스팔트와 맞닿았다. 그럼에도 엔진과 운전석만은 무사했으나, 탑승자의 정신머리까지 무사하진 못했다.

운전병이 착란으로 밟아버린 엑셀에 너덜거리는 트럭이 맹렬히 가속한다. 좌아아악 끌리는 쇳소리를 따라 요란한 불티가 일어났다. 그 멧돼지 같은 돌진은 버려진 건물의 허술한 담벼락을 들이받아, 거기 숨어있던 멕시코 경찰들까지 짓뭉개놓고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혼자 돌출한 이 차량을 향해 카르텔의 사격이 집중된다. 카강! 캉, 캉! 보닛 위로 총탄이 튀는 가운데, 연사를 맞은 방탄유리에 쩌억 쩍 금이 갔다. 정신을 차린 운전병은 무기를 챙겨 급하게 차량을 탈출했다.

“전방에 적 로켓!”

차량대열의 선두, 랜드로버의 포탑 사수가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기관총의 트리거를 누른다. 예광탄이 섞여 레이저처럼 나가는 사선이 로켓을 조준하던 시카리오를 가로로 긁고 지나갔다. 퍼벅 퍽 관통당하는 몸뚱이는 삽시간에 사람이었던 무언가로 전락했다.

쾅!

우리 쪽에서 쏜 저격탄 한 발이 랜드로버 포탑 사수의 귓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사수는 머리가 꺾인 채 연체동물처럼 흘러내렸다. 군용 차량으로선 가볍다는 것 말곤 장점이 없는 랜드로버인지라, 사수의 화력이 증발하니 순식간에 걸레짝 신세가 된다.

“A la mierda culeros!(이 염병할 새끼들!)”

떨어진 로켓발사관을 주워든 새로운 시카리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엉망진창인 자세로 로켓을 발사했다. 발사 직후 장갑차의 화력에 분쇄육이 되었으나, 발사된 로켓 또한 장갑차 전면 유리를 관통하여 보조석을 타격했다. 차내를 꽉 채우는 화염이 직격 맞은 인간을 박살내고 옆에 있던 다른 하나도 문짝에 처박아 곤죽을 만들어놓는다. 제아무리 마력으로 강화된 몸뚱이들이라 한들 로켓탄의 화력을 견뎌낼 순 없었다.

은신하여 지켜보는 입장에선 대단히 보기 좋은 광경들이었다.

경태가 말했다.

“모범적인 개판입니다. 더 손을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니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죠, 형님.”

“음.”

마을 중심가로부터 영국군 하차병력들이 차량대열을 지원하러 달려오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만큼 기사단장에게 가해지던 압박도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이 잘 짜인 유혈극을 조금 더 감상하고 싶었으나, 이쯤에서 다음 마을로 자리를 옮겨둬야 할 것이었다.

나는 부하들의 철수를 지도하며 생각했다.

영국 놈들이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마을 하나가 지옥으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영국이 이대로 작전을 속행하자면 굉장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드론과 무인기를 무더기로 상실한 참이므로 과달라하라에서처럼 압도적인 시가전 역량을 과시할 수도 없게 된 처지.

이번에도 확률은 반반이었다. 원탁에 빚을 지는 동시에 일개 카르텔에게마저 치욕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과달라하라 사태를 터트리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일단 어느 쪽이든 국가위신의 실추는 피할 수 없다.

부아아아앙-

우리의 이동경로 북서쪽, 마을의 남쪽 출구로 측면이 요란하게 갈려나간 4륜구동 차량 한 대가 튀어나왔다. 총격전의 흔적이 선명한 그 차량엔 네 명으로 줄어든 카르텔 성전기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자동화기와 방패를 쥐고 허리춤엔 칼을 찬 채 탄띠를 두른 기사들이, 폐차 직전인 차량을 타고 질주하여 불타는 마을을 탈출하는 모습은, 뭐랄까, 굉장히…….

‘초현실적이군.’

새삼스럽고도 무가치한 감상이다. 나는 또다시 산만해지려는 정신을 그러모아 눈앞의 현실로 되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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