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 마에스뜨레 (4)
우린 작은 댐 하나를 지나치고서부터 속도를 줄여 전장의 북쪽으로 접근했다. 이때 하류로 달아나다 끊어지는 발자국을 미리 찍어놓았다. 그렇게 교란용 발자국들을 찍고 다시 거슬러 올라올 땐 물길을 밟고 이동하여 추가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경태는 적과의 접촉을 앞두고 병력을 나누어 측면과 후방의 안전을 확보했다. 여차하면 적을 우회하거나 포위하는 데 써먹을 예비대이기도 하다. 전면을 맡는 전위는 나를 포함하는 16명으로, 이 수는 영국 놈들의 특수부대 일개 소대(Troop) 규모에 맞춘 것이었다. 적과 교전 시 전위 단독으로도 1개 소대와 동수를 이룰 수 있도록.
이렇게 나아간 끝에, 마침내 내 가시거리에 들어온 런던의 첨병들은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16인 편성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놈들도 아직은 과도기일 테니까.’
패러다임이 어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던가? 시행착오와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엔 과거의 관성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원이 최소 상등병(Corporal) 이상인 적들은 4인 1개 조로 드문드문 차단선을 형성해 놓았는데, 그 선 바깥에서부터 접근하는 내겐 무방비한 배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위장과 엄폐의 기본을 지키고는 있으되 단지 그뿐. 아무리 적을 몰아넣었다지만 후방경계를 소홀히 한 시점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온종일 계속된 사냥의 피로감과 초인적인 힘에 대한 과신이 낳았을 방심.
나는 풀어지려는 스스로를 경계했다.
너무도 죽이기 쉬운 적들을 보고, 어떻게든 하나를 사로잡아 잠시라도 심문을 해볼까 하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지금 런던의 원탁은 어찌 돌아가고 있으며 누가 내각의 수장이 되었는가 하는 정보들을. 그러나 이는 명백한 과욕이었다. 상황이 상황이거니와, 첫인상이 아무리 쉬워보여도 저들을 한낱 방계 악마숭배자들과 동급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저들은 원탁의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원탁의 정예라고 보기엔 회로의 수준이 너무 낮다. 그저 애국심으로 이용당할 뿐인 무고한 군인들이 아닐는지.
허나 그 무고함은 내게 살인을 주저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표적분배를 마친 우리는 각자의 표적을 겨냥했다.
콰콰콰쾅!
귀를 때리는 총성은 차라리 포성을 닮아있었다. 방탄복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부분, 조준당한 목덜미들이 폭발적으로 터져나간다. 일반 소총탄 대비 네 배나 무거운 수렵용 탄자의 위력. 운동에너지는 겨우 두 배지만 표적에 가하는 충격(저지력)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으며, 기습은 고작 2초 만에 결판이 났다.
시체로 다가가는 군홧발에 대가 억센 풀들이 사박사박 밟힌다. 달이 반밖에 없는 밤이라 그늘진 산기슭은 새까맣게 어두웠다. 나를 제외한 부하들이 모두 열영상 전환이 가능한 야시경을 착용한 이유다.
“형님.”
난 경태가 던져주는 무전기를 채어 전술조끼 한쪽에 결속했다. 리시버에 묻은 피를 닦아 착용하니 영국 놈들이 주고받는 명령과 보고들이 귀에 들어온다. 나와 경태 이하는 영국 놈들의 무기를 여분으로 챙겼다. 아무리 쏴 갈겨도 후환이 없을 화기들인 데다, 위력과 관통력 면에선 미리 준비한 수렵용 라이플보다 탁월했던 까닭이다. 휴대형 로켓(LAW) 같은 폭발성 화기들도 있었다.
내 몫으로는 대구경 저격 라이플이 돌아왔다. 주 임무가 매복이 아닌 놈들이어서 위장도구(길리슈트)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죽은 놈들 가운데 넷이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초소형 드론 및 컨트롤러 세트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나와 내 부하들의 짐 속에 쑤셔 박았다. 당장은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으되 전리품으로서의 가치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가자.”
재촉하는 나는 이미 북쪽 차단선의 다음 목표물, 아직 숨이 붙어있는 적들을 보고 있다. 염동력을 써서 총성을 막았어도 이제 곧 여기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수를 잡아 죽여야 한다.
그다음엔…….
땅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이동하던 내가 나무 둥치에 몸을 숨겼다. 부하들도 즉각 은엄폐를 실시한다. 잠시 후 소형 비행체가 가까운 상공을 스쳐지나간다. 손으로 날려 이륙시키며 저고도를 배회하는 무인기(Raven)였다.
저것들은 본격적인 교전에 돌입하는 즉시 마법과 저격으로 떨어뜨릴 참이다. 지금은 기습을 위해 내버려둔다.
다시금 이동이 재개되었다. 은밀함에 유의하는 전술기동 치고는 대단히 빠른 속도. 소음에 신경 쓰지 않기에 더하다. 그럼에도 나는 입이 마르는 초조함을 견뎌야만 했다.
“En nombre del dios!(주님의 이름으로!)”
산간 저편으로부터 아스라이 들려오는 포효. 기사단장의 성량은 인간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으되 소리만 들어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와중에 가짜 기사단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줄 것인가. 나에겐 얼마의 여유가 남아있는 것인가.
카르텔 기사들은 적어도 16시간 이상 도주와 교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놈들이 무너지면 이쪽의 사냥이 어려워질 것은 자명한 노릇. 어쩌면 영국군은 실전 경험을 쌓고자 사냥감을 희롱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사냥을 끝낼 수 있는 상태여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적들이 통상 시야의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번에도 16명이다. 수신호 한 번에 신속하게 각자 자리를 잡는 부하들. 표적 분배도 몇 초면 될 일이었으나-
“쏴!”
그 몇 초를 주지 못하고 내리는 사격 명령. 적의 무전채널에 경고가 전파된 탓이다. 바로 우리에 대한 경고가. 콰쾅! 콰콰콰쾅! 미처 정조준을 하지 못한 나는 화력으로 정확도를 대신했다. 연사로 갈겨진 묵직한 탄 여섯 발은 모조리 적의 등판 한쪽을 두들겼다.
“악!”
방탄판을 그대로 박살내버리는 위력에 맞은 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이것이 폭포처럼 쏟아진 총성 속의 유일한 비명이었다. 급작사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태 이하로는 각자가 노린 표적들을 모조리 즉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크흡, 그르르륵…….”
죽지 않은 하나는 곧 죽을 몸으로도 비틀비틀 일어서다 낯짝에 잔탄 두 발을 얻어맞았다. 퍼벅! 하고 머리가 터지고서 묵직하게 넘어가는 시체. 절반이 뭉개지다시피 떨어져나간 머리통엔 박살난 야시경이 조각조각 박혀있다.
쯧. 기왕이면 한 번에 뒈질 것이지. 염동 차장을 급하게 펼쳐야 했던 것은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건 지금의 내게 정말로 간단한 일이니까.
나는 비어버린 탄창을 뽑아 최대한 멀리 내팽개쳤다. 평범한 소총탄이라면 서른 발이 들어갈 사이즈의 탄창이지만, 지금 쓰는 대구경탄은 고작 아홉 발만 채워질 따름이다.
그러나 이는 감수할 가치가 충분한 불편함이었다. 운이 좋으면 코끼리가 일격인 탄이 풀 오토로 나간다는 게 어디인가. 돌격소총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탄약 크기만 키워놓은 이 수렵용 자동소총(.450 부시마스터 라이플)은 능력자 사냥에도 충분한 화력을 제공했다.
“엄폐! 엄폐!”
경고하며 급히 엄폐하느라 온몸이 소나무(Mexican yellow pine) 줄기에 강하게 부딪혔다. 줄기 한쪽이 으스러진 나무가 격하게 흔들린다. 욱신거림을 무시하고 나무 그늘에 숨어 하늘을 보니, 무인기가 약 3천 피트 고도에서 하나, 보다 낮은 고도에선 셋씩이나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도 무전이 두절되었음을 확인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다.
무인기들의 비행고도는 한계고도보다 한참이나 낮았다. 어두운 밤과 울창한 숲이라는 환경적 요인들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보니 사용 가능한 마법이 제한되었다. 각각의 술식마다 최적화된 사거리라는 게 있으므로. 나는 눈에 의지한 총질로 격추할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영의 회로에 마력을 돌렸다. 우드득! 생명이 사라져 마력장도 없어진 섬나라 능력자들의 시체들로부터 다수의 수통과 군장 하나가 뜯어져 내 곁으로 날아왔다.
마력장을 밤하늘을 향해 최대한계까지 확장한 나는, 각 수통에 든 물에 마법적인 구속력을 부여하고, 모든 수통을 전술배낭에 몰아 담은 뒤 한 무더기로 쏘아 올렸다.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날 만큼 빠른 투사(投射). 그 상승이 완만한 하강으로 바뀌어 마침내 가장 높은 무인기의 진입로에 근접했을 때, 난 각 수통에 든 물을 단숨에 수증기로 변환시켰다.
콰아아아아아-!
3천 피트 고도에서 월광을 머금은 잿빛이 폭발했다. 1,680배의 부피 증가는 속도만 빠르게 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폭탄과 같았다. 그 폭압과 수통파편들을 정면으로 맞은 무인기는 날개가 부러져 나선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전율하는 거인」 이후로 흐른 시간이 약 반년. 그동안 나는 거인의 술식에 한 가지 변화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확 퍼졌던 대기가 반동으로 수축하는 순간, 난 내 마력에 묶인 모든 수분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했다. 그리하여 머리 위 상공엔 수소와 산소가 2대 1로 균일하게 섞인 기체, 즉 수소폭명기(水素爆鳴氣)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다음은 불을 지를 뿐이다.
마법적인 점화가 먼젓번보다 더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사실상 폭풍으로 주변을 휩쓰는 열압력탄과 같은 효과였으므로, 비스듬히 아래를 지나던 드론 두 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추락보다는 비산(飛散)이 더 어울릴 완파. 남은 한 대도 포물선으로 하강한 끝에 보잘 것 없는 충돌음을 내며 파괴되었다.
굉음과 폭풍이 연거푸 후려친 숲으로부터 무수한 날짐승들이 날아오르고, 날개가 없는 네발동물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우는 소리들도 들려왔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낙엽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동요한 숲의 마력장은 비가시의 영역에서 파도치듯 일렁거린다. 그러나 숲 전체가 하나였던 「전율하는 거인」이나 나무 한 그루가 천 톤이 넘는 질량이었던 세쿼이아 서식지에 비하면 장난에 불과한 수준. 내 가시거리를 깎아먹는 정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격하게 혹사당한 회로가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나는 폭발이 야기한 결과에 만족감을 느꼈다. 물의 수소폭명기화는 최적화가 덜 되어 회로의 처리능력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잡아먹는 술식이었으나, 멀어질수록 부정확해지는 염동력보다는 쓰기가 훨씬 좋았다. 영국은 대체 어떤 놈들이 기화폭탄씩이나 되는 걸 쓰는가 착란에 빠질 것이었고.
“물러나!”
경태 이하는 영국군 시체와 그 주변에 폭탄을 설치하고 뒤로 빠졌다.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반경 수십 미터가 다 터지도록 만든 광역 트랩이다. 이번 교전에서도 염동 차장으로 총성을 흡수했으므로, 줄어든 총성을 듣지 못했을 영국 놈들은 우선 동료의 상태와 사인부터 확인하려 들 터였다. 건드리지 않으면 그땐 이쪽이 손수 터지도록 만들어줄 것이고.
놈들은 분개할 테지. 시체에 폭탄을 심는 건 국제법 위반이라며. 허나 그딴 걸 내가 왜 신경 쓴단 말인가. 나와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엔 그깟 인도주의가 낄 틈이 없다.
길지 않은 기다림 끝에 새로운 사냥감들이 우리의 사선으로 기어들어온다. 껍데기는 정규군이어도 영혼엔 원탁의 지혜가 새겨져있다. 내 부하들처럼 개개인에 맞게 조정까지 해주지는 않은, 다소 무성의하게 만들어진 마력회로들.
기사단장을 직접 쫓는 놈들에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을까? 나는 그렇기를 바랐다. 조금이라도 더 공을 들인 자원을 없애버리면 보람도 그만큼 커질 테니까.
주변을 경계하며 넓게 퍼져 접근하는 영국군은 무려 마흔 여덟 명이나 되었다. 이 구획을 담당하던 중대(Squadron)의 잔여 병력에 타 중대의 소대급 증원까지 더해졌을 규모. 나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벽처럼 밀려드는 그들의 마력장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해당 영역의 마소와 마력은 저들의 지배하에 있다.
그 마흔 여덟 중에서 동료들의 시체로 접근하는 건 고작 넷뿐이었다. 나머지는 혹시라도 있을 습격에 대비한다.
이러한 전력을 전위만으로 감당하긴 어렵다. 습격자로서의 나는 적의 움직임에 맞춰 내 애들의 배치를 재빠르게 변경했다.
“사령으로부터 4팀에 전달. 8시 방향으로 40미터 이동. 5팀은 2시 방향으로 20미터 이동. 아니, 아니. 정지. 그래. 그쯤에 엄폐해 12시 방향을 경계해라. 다음, 5-2는 유탄발사기를…….”
4인 단위로 이루어지는 중대 규모의 미세조정. 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달릴 지경이다. 경태 이하 64인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지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했다. 정확한 방향과 정확한 거리. 야지에서 흔한 방향과 거리감각의 왜곡 따윈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동료들의 시체를 발견한 영국군 넷이 전술적이면서도 아주 조용한 걸음걸이로 경계를 유지하며 현장을 확보했다. 우리가 설치해둔 광역 트랩의 예비 폭심지를.
‘겨우 넷이라니.’
살상범위에 분명하게 들어온 수가 기대보다 적다.
우리가 은폐한 채 침묵을 지켰으므로, 팀을 끌고 온 영국군 상사(Staff Sergeant)가 방탄 방패(바디 벙커)에 총구를 올린 자세 그대로 부하에게 고갯짓을 한다. 시체를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이에 후위를 담당한 상등병이 신중하게 움직여 가장 가까운 시신부터 확인한다.
“……이런 망할(Bloody hell).”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음성, 입술 모양을 읽으니 욕설이었다. 모든 시체가 처참하게 박살이 나있으니 당연히 상소리가 나올 테지. 상등병은 어두운 낯빛으로 시체에 남은 상흔들을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무기와 그 숫자를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소심하기는.’
상등병의 손길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노련하기 짝이 없다. 사냥감의 신중함이 못마땅하여, 나는 노획한 대물 저격총을 준비했다.
“사령이다. 내가 쏘겠다. 지시가 있거나 공격받기 전까지는 발포하지 마라.”
지시를 내리자 가까운 녀석들은 묵언으로 알았다는 제스처를 보였고, 멀리 있는 놈들은 짤막한 답신들을 보내왔다. 주파수 도약 기능이 있는 무전기를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교신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다.
이제 난 가상의 조준선 끝에 표적의 상반신을 두었다. 약실엔 이미 한 발의 중량 철갑탄이 들어가 있다. 운동에너지만 따지면 먼저 써먹었던 수렵용 대구경탄의 다섯 배가 넘을 흉물. 이걸 어디다 박아줄까 생각하던 나는, 무거운 탄두의 낮은 속도를 감안하여 사람 대신 시체에 갈기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쪽을 치든 폭탄만 터지면 된다. 호흡을 조절하며 집중하자 심장 박동이 커진다. 실제로 커지는 게 아니라 다른 소리들이 멀어지는 것이었다.
콰앙!
탄보다 빠른 소리. 그리고 소리보다 빠른 섬광. 정예한 적은 후자에 반응했다.
“적……!”
소리 지르려던 상사가 번뜩이는 섬광에 휘말려 찢어지고 구겨진다. 아예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평범하지 않은 육체였고, 한 음절을 내뱉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반응속도이자 판단력이었으되, 그 모든 비범함은 광범위한 폭발 한 번에 증발해버렸다. 폭압보다는 파편으로 적을 살상하도록 만들어진 함정 속에서, 강철보다 무른 모든 것이 부서지거나 찢어진 조각들로 비산했다. 그중엔 당연히 사람의 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의 폭발에 휘말려 엇갈리게 찢어지는 몸뚱이들이 번뜩이는 빛 속에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들을 남겼다.
그리고 어두운 정적이 돌아왔다.
쉬-
나는 가까운 부하들에게 다시 한 번 침묵을 당부했다. 반쯤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말라고.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내 눈에 이제 겨우 카르텔 기사들이 보이기 시작한 참이다. 흔들리는 포위망 속에서 그들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했다. 즉 내가 그들을 찾았다기보다 그들이 내게 다가왔다고 해야 더 정확할 터.
이 어찌 기특한 놈들이 아니겠는가.
잘만 풀린다면, 지금의 기특함을 보아 기사단장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겠다. 이는 내 나름대로 상대를 존중해주는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성의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