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 마에스뜨레 (3)
늦은 오후가 되자 기사단을 가둔 영국군의 몰이사냥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남쪽은 장갑차량이 포함된 기동부대가 틀어막고, 북쪽은 산간을 가르는 물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하는 또 다른 특수부대가 차단하며, 직접적으로 추적에 나선 주력부대가 사냥감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몰아 가두는 식. 고작 수백의 병력으로 광대한 영역을 차단하는 시점에서 놈들의 감시능력이 얼마나 탁월한 수준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수연의 조치를 통해 입수된 여러 정황증거들을 취합하여 도출한 결론이었다.
정말이지, 내 비서실장의 간단한 조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방송사’로부터 제안을 받은 이들이 저가 아는 사람들에게 다시 일감을 나눠준 모양. 그리하여 깊은 골짜기의 산장 주인, 수목원 관리인, 목장 노동자, 파탄 난 경제 속에 끼니라도 어떻게 때워볼까 하여 냇가에서 그물질을 하던 주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상식선에서는 대체 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장소에서조차 다양한 제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보나마나 불법적인 상품작물을 재배하던 농민들이겠지.’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는 험지에 대마라든지 코카나무 같은 것들을 드문드문 심어놓고, 관리와 절도 방지를 위해 매일 매일 산을 타며 고달프게 단속을 피하는 농민들. 마약 생산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바닥에서 하루에 고작 백 몇십 페소를 벌어 연명하는 이들에겐 수연이 내건 제보비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는 영국 놈들이 자기네 정보를 철저히 감추고 있는 덕분이기도 했다. 아니었다면 농민들이 미쳤다고 이 시간에 산을 들어갔겠는가. 카르텔 기사단과 외국군 초능력자들이 서로 총질과 칼질을 해대는 산을.
이 상황전개는 내게 있어서 최선과 차선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현재 템플 기사단 카르텔이 몰이사냥을 당하고 있는 가로 11km, 세로 9km 어림의 산지는 푸에르토 바야르타 외곽으로부터 고작 2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내가 전력을 발휘하면 반시간 내로 도달 가능할 위치.
조금만 더 버텨다오, 잡것들아.
나는 속으로 기사 흉내를 내는 카르텔 나부랭이들에게 간절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오후 6시 18분. 테라스 너머의 바다는 일몰의 색채로 물들었고, 하늘의 가장자리는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그토록 기다리던 수렵의 시간이 다가온다. 일찌감치 사업가의 옷을 벗고 사냥꾼의 복장과 장비를 착용한 채 기다리던 나는, 각성제를 한 알 더 챙겨먹고서 침대 위에 올려두었던 사냥용 라이플을 어깨에 걸었다. 경호팀이 은밀히 반입한 물건이다. 그밖에 옮겨야 할 짐들은 벌써 다 옮겨두었다. 예를 들어, 미친 개미들의 여왕이 든 유리병 같은 것들.
“경태야.”
“예, 형님.”
“이제 체크아웃을 해야겠다.”
내 말이 떨어지자 경태는 제 부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지시를 받은 사냥개들이 먼저 문을 나선다.
“어?”
타타탕!
실내에 퍼지는 둔탁한 총성. 최상층 스위트 앞을 지키던 시경(市警) 둘이 그대로 죽어 넘어진다. 표면적으로는 후앙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로는 후앙이 마음을 바꿔먹을 경우에 대비해 첼리노 시장이 붙여놓은 감시자들. 목을 꺾어 죽일 수도 있었으되 내 애들은 일부러 권총을 사용했다. 미리 세운 계획에 따르면 여기선 후앙이 납치된 정황을 남겨야 한다.
나는 시체가 된 경찰들의 뜬 눈 앞을 지나 복도로 나섰다. 복도를 비추는 CCTV들은 이미 다 전원을 끊어놓았다. 비상계단에 도달할 즈음 요란한 화재경보가 울리며 복도의 모든 스프링클러들이 타악 탁 물줄기들을 터트려댔다. 내가 마법으로 지른 여러 층의 불이 원인이다.
천장으로부터 뿌려지는 물줄기는 나와 내 애들의 머리 위에서 보이지 않는 구속력에 미끄러져 나갔다. 계란 썩은 내 심하게 나는 물을 굳이 뒤집어쓸 이유는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아래를 투시하며 말했다.
“올라오는 것들은 마저 죽이고 뜨지.”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자들의 정체는 엘 후에고가 호텔 로비에 두었던 시카리오(정식 무장 조직원)들이었다. 시장이고 카르텔 지방영주고 하는 짓들이 거기서 거기다.
띵-
도착을 알리는 전자음이 울리기 무섭게 엘리베이터 문짝이 신경질적인 속도로 갈려나갔다. 고작 몇 초 사이에 갈겨진 수백 발의 소총탄 사격. 타고 있던 놈들은 우리 쪽 얼굴도 보기 전에 모조리 너덜너덜한 고깃덩이가 되었다. 개중엔 아직 성년도 못되어 보이는 어린놈들이 셋이나 끼어있었다.
사람 죽이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라는 게 카르텔의 정신머리다. 어리거나 말거나 사람에게 총을 쏠 수만 있으면 그만인 것.
난 소년병을 쓰는 놈들을 혐오하지만, 내게 총을 겨누는 소년병은 그보다 훨씬 더 혐오한다.
끼긱끼긱…….
총탄 구멍 가득한 두 문짝이 삐걱대며 여물어지고, 시체를 무더기로 실은 승강기가 하강을 시작했다. 층층이 내려가는 버튼들을 눌러놓은 채 발을 구르는 미련한 인간들은 핏빛 가득한 안쪽을 보고 기절초풍을 하게 될 테지.
“그만 가자.”
나의 고갯짓에 전위를 맡은 녀석들이 한 층을 앞서 내려간다. 이제부터 내 체크아웃을 목격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죽여야 했다. 미리 울린 화재경보와 시카리오들을 처리하겠답시고 기다려준 시간, 염동력으로 차폐하지 않고 퍼뜨린 총성 등은 내가 무고한 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였다.
“사, 살려주세-”
투웅! 부하 하나가 한 호텔리어를 단발사격으로 사살한다. 시끄러운 화재 사이렌과 요란한 총성을 듣고도 도망을 치기는커녕 층계참 구석에 찌그러져 벌벌 떨고만 있었던 겁 많은 인생의 끝이었다.
멍청한 놈. 찌그러져 있을 거면 고개라도 들지를 말든가. 마지막까지 무의미하게 쥐고 있던 빗자루와 그 옆의 쓰레받기가 피와 뇌수로 젖어든다.
하다못해 이런 얼간이가 하나뿐이면 염동력으로 후려쳐 기절이라도 시킬 것을. 아직은 육체강화 이상의 능력에 눈뜬 자연 각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다. 고로 부자연스러운 실신이 너무 많아져도 곤란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죽여야지. 그저 이렇게 뿌려지는 피들이 만에 하나라도 내 아랫것들의 정신을 녹슬게 할까 봐 경계감이 들 따름이다.
1층에 도달하기까지 누적된 살인멸구는 모두 아홉 건. 스프링클러가 없는 비상계단을 벗어나자 다시금 습한 공기와 계란 썩는 악취가 엄습한다. 박테리아가 수도관을 부식시켜 만들어낸 황화수소의 냄새였다.
“들어와.”
경태가 밖으로 보내는 무전. 직후 정면의 회전문이 박살나며 와장창 밀려들어왔다. 깨진 유리가 파도처럼 퍼지는 가운데, 구겨진 프레임이 안으로 나뒹군다. 현관을 밀고 들어온 차량들은 젖은 바닥 위로 미끄러지며 머리를 돌려 급정거했다.
달칵. 경태가 가까운 차의 뒷문을 연다.
“타시죠, 형님.”
SUV는 안쪽에 방탄판을 붙여놓은 상태였다. 조직이 애용하는 컨버팅 키트. 대부분의 차량에 쓸 수 있어 경호업계에선 그럭저럭 수요가 있는 제품이다.
나는 차에 오르기 전 수연을 바라보았다.
“너는 지휘소를 맡아라.”
수연은 까딱이는 묵례로 제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유사시의 퇴로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녀석에게 맡겼는데도 퇴각할 길이 막힌다면, 그때는 그저 지독하게 나쁜 운을 탓해야겠지.
나와 동승한 부하들은 출발하는 차 안에서 후방 시트를 벗겼다. 그 너머에 숨겨온 무기와 탄약을 챙기기 위해서다. 호텔에서 사용한 무기와 이제부터 사용할 무기가 달라야 하는 까닭. 정확히는 총의 탄조흔(彈條痕)이 겹쳐져선 안 되는 것이지만.
탄조흔이란 총탄에 새겨지는 강선의 흔적으로, 총마다 미세하게 다르기에 총의 지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영국 놈들을 기만하려면 이런 부분까지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나 또한 추가로 탄창과 폭발물, 여분의 물자가 든 전투배낭 따위를 챙긴다.
‘비싸게 치이는 사냥이로군.’
「로스 제타스 북동부파」로 가는 화물과 달리, 나와 내 부하들이 쓸 물자는 명성 높은 항공업자들에게 외주를 줘서 실어왔다. 그 결과가 꽉 채운 탄창 하나당 3천 달러 꼴로 붙은 운송비용. 활주로조차 없는 곳에서 뜨고 내리는 서로 다른 국적의 조종사들은 이 업계에서 대우가 아주 좋은 개인사업자들이었다.
창밖으로 해군기지의 녹색 펜스가 스쳐지나간다. 내 상품이 들어올 부두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군사시설이었다.
차량대열은 간선으로부터 우측으로 빠지는 길을 탔다. 가난이 배어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자 종종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고 흔적이 있는 차량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장 저편에 자동소총을 든 시카리오들이 있었고, 성치 않은 차는 이 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도로가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은 거주지를 지나, 우리는 도시 출입을 막는 군경의 통제선 근처에서 정지했다. 그럭저럭 가깝지만 눈에 띄지는 않을 후미진 구석. 여기엔 강으로 빠지는 지하배수로가 있었다. 이 아메카라는 이름의 강, 할리스코 주와 나야리트 주를 가르는 자연경계는 상류에서 영국군이 차단작전을 벌이는 물길이기도 했다. 중간에 갈라지는 물길은 몰이사냥 현장의 북으로도, 남으로도 갈 수 있는 첩경이었다.
끼릭-
배수로 철창을 잠근 녹슨 자물쇠가 쇠 갈리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열린다. 난 애들이 모두 통과한 뒤 자물쇠를 도로 잠가놓았다. 지문도 무엇도 남지 않는 흔적지우기.
“이쯤이 좋겠다. 던져버려.”
경태의 말에 부하들이 호텔에서 썼던 총기들을 쓰레기 많은 흙탕물 속으로 첨벙첨벙 던져 넣는다. 설령 운 좋은 누군가가 가까운 시일 내에 건져낸다 하더라도, 이미 부식이 진행되었을 총강(銃腔)은 결코 전과 같은 탄조흔을 만들지 못할 터였다.
1년에 1만 자루의 총기가 압수당하는 나라에선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염동력으로 구기거나 박살내놓으면 도리어 더 의심스러운 증거물이 된다.
배수로를 지나자 탁하고 어두운 강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빈곤이 흐르는 강변엔 일몰 후의 어둠 속에서 이렇다 할 조명 하나 없었고, 물을 좋아하는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자라있어 은밀한 기동로를 제공했다.
“이제부터는 죽기 직전까지 달릴 거다.”
내가 당부했다.
“날 실망시키는 녀석이 없기를 바란다.”
낙오자는 뭉개진 변사체로 만들어놔야 하니까.
시속 64km. 과학자들이 규정한 인간 육체의 이론적인 한계속도. 그들이 말하기를 인간의 근육으로는 그 벽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였다. 아무리 힘이 좋고 아무리 순발력을 타고났다 한들, 근육이 수축하는 빠르기엔 종(種)의 한계가 있노라고.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달리는 속도는 명백히 동물적인 것이었다. 손목에 찬 GPS 단말의 숫자변화로부터 역산한 속도는 거의 시속 70km에 달한다. 저마다 50kg 안팎의 장비를 짊어지고, 발자국을 덜 남기고자 지표로 드러난 나무뿌리와 튀어나온 돌부리 따위를 주로 밟는 고난도의 질주임에도.
허나 아직이다. 아직 더 빨라질 수 있다.
나는 벌써부터 따라붙길 버거워하는 부하들을 염동력으로 끌어주었다. 육체강화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와중에도 내 회로엔 복수의 술식을 추가로 돌릴 여유가 남아있었기에. 다만 골통에 차오르는 열과 미친 듯이 치솟는 심박과 불로 지지는 듯한 근육과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피로 따위가 집중을 방해할 따름.
그렇게 10분쯤 달렸을까. 결국 뒤에서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가 난다. 내 염동 술식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부하가 나온 것. 달리던 속도와 관성이 있었기에 부하는 거의 물수제비처럼 퉁겨지며 나뒹굴었다.
“일어나! 당……장!”
빌어먹을. 숨이 너무 차서 짧은 말조차 끊어진다. 내 잘못을 말할 여유 따윈 더더욱 없었다. 사냥이 급하니 책임은 끝나고 논해도 늦지 않다. 난 신음하는 부하를 손수 일으켜 세웠다.
“달릴 수, 있나?”
다친 부하는 몇 번 발을 굴러보더니 헐떡이며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죽고도 남았을 충격인데, 늘어난 손목인대와 찰과상 말고는 눈에 띄는 부상이 없다. 육체강화와 그에 힘입은 낙법의 결과였다.
하류보다 맑아진 계곡 저편으로부터 다양한 구경(口徑)의 총성과 폭음, 그리고 속성이 다른 굉음들이 한데 뒤섞여 들려온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현 위치의 좌표를 미리 외운 좌표들과 대조했다.
“앞으로 4, 킬로미터만 더, 이동하면 된다.”
그때부터는 열 추적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속도를 줄여야 하므로, 한계를 오가는 질주는 앞으로 몇 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니.
“움직여.”
내 한마디에 곧바로 반응하는 부하들. 물길이 갈라지는 지점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이 곁을 흐르는 물은 모두 전장으로부터 내려온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