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7화 (47/561)

#10. 엘 마에스뜨레 (2)

영국군이 진입했다는 두 경로, 15번과 70번 국도는 둘 다 푸에르토 바야르타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물론 끝까지 외길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분기를 타버릴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내게 행운이 찾아올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난 거액을 베팅한 경마꾼의 심정으로 위성사진 분석결과가 갱신되기를 기다렸다. 저지구 궤도(Low Earth Orbit)를 도는 큐브 위성들의 카메라는 사람을 구분하기엔 부족할지언정 차량을 식별하기엔 넘치고도 남는 해상도의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다만 세 번째 위성과 첫 번째 위성의 간격인 74분 29초는 지금의 내겐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하필 이 간격에 분기가 걸리다니.’

일부러 준비한 게 아님에도,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그야말로 완벽한 사냥터가 되어있었다. 누군가 불씨를 당겨주기만 하면 타오를 장작더미들이 사방에 쌓여있다. 멕시코 군경과 카르텔이 서로 죽고 죽이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 속에서, 난 거기에 끼어든 원탁의 첨병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잡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나를 저지하려면 동일한 수준의 준비를 갖춘 원탁의 마스터급 마법사가 필요하다.

그저 영국 놈들이 이 도시로 들어와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더는 바랄나위가 없을 터.

항구로 들어올 상품들? 그깟 것 인근 해상에서 이틀쯤 대기시키면 그만이지.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벌어질 싸움은 과달라하라에서 벌어졌던 ‘고기방패들의 전쟁’과는 다르다. 단기간에 끝날 것이며,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형님.”

수연이 내 주의를 환기했다.

“벌써 사진이 떴나?”

“그건 아닙니다만, 본사 현장지원팀이 「라 씨네가 데 로스 아우마다」라는 곳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소스는 현지 주민이 이른 아침에 업로드했던 동영상입니다.”

“업로드했던?”

“지금은 원본이 삭제되고 없다는 뜻입니다. 현장지원팀도 어렵게 확보했다더군요. 주요 인터넷 플랫폼마다 ‘부적절한 컨텐츠’라는 애매한 사유로 게시를 차단하는 중이라고. 아마도 영국과 미국 정부 차원의 요청과 조치들이 있었겠지요.”

“아아.”

그래봐야 정보 확산을 하루 이틀 지연시키는 정도가 최선이겠으나, 진행 중인 작전 정보를 최대한 은폐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어쨌든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떤 정보라도 알카에다의 정기 온라인 소식지만큼 찾기 번거롭게 만들어놓을 수 있다. 본격적인 확산이 이루어지기 전, 초기대응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헌데 장소가, 라 씨네가…… 뭐라고?”

“데 로스 아우마다. 4번 국도와 70번 국도 사이의 산지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지도와 영상을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수연은 테이블 위의 노트북을 두드리더니 내 쪽으로 화면을 돌려놓았다.

‘불타버린 것들의 늪지’라는 이름을 지닌 마을은 정말로 깊은 산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개간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물길을 따라 선형으로 자란 나무들과 물웅덩이 몇 개가 남아있어 과거의 모습을 짐작케 해주었다.

시간대는 아마도 일출을 앞둔 새벽. 마구 흔들리는 영상 속 촬영자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폰을 들고 창가를 기웃대는 심리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모순적인 어리석음에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멈춰.”

딸깍. 수연이 영상을 정지시켰다. 난 노트북을 직접 붙잡고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되감았다. 빗발치는 예광탄 줄기들 사이로 묵빛의 쇳덩이 하나가 굴러들어온다. 그것은 전신갑주를 걸친 거구의 기사였다. 나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기사는 사납게 일어서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까가가강! 방패 겉면에 예광탄과 철갑탄 세례가 쏟아지며 거친 불티를 일으켰다.

「¡Levanta el escudo! ¡Reúnanse a mi alrededor!(방패를 들어라! 내 주위로 모여!)」

기사의 포효에 보다 작은 몸집의 기사들이 방패를 치켜들고 모여든다. 검게 칠해진 그들의 방패는 총탄을 맞은 자국들만 조명의 빛으로 번뜩였다. 무광 코팅이 벗겨진 탓이다. 그렇게 집결한 기사의 수는 다섯. 다섯 중 하나가 제 덩치에는 버거운 장검 한 자루를 거구의 기사에게 던지다시피 넘겨주었다.

「Maestre! ¡Es tu espada!(단장님! 당신 칼입니다!)」

마에스뜨레. 거구의 기사를 부르는 호칭. 역시 가장 큰 놈이 기사단장이었구나.

검을 받은 단장은 칼을 칼집에 꽂고는 두껍고 큰 방패 안쪽으로부터 러시아제 대구경 돌격소총(ASh-12.7)을 뽑아들었다. 쾅! 콰쾅! 콰쾅! 탄창까지 7킬로그램이 넘는 총을 가볍게 다루며 잘게 끊어서 쏘는 사격.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화면의 초점이 아주 크게 흔들린다. 촬영자가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망할! 겁이 없으려면 끝까지 없어야지. 가뜩이나 세로로 찍어놔서 화면의 폭이 좁은 마당에.

나는 갈피를 못 잡는 화면 대신 소리에 집중했다. 기사단장의 사격은 대충 쏜 듯해도 제법 정확한 것이었던가 보다. 멀리서 울려오는 총성, 영국군 측의 발포가 순간적으로 줄어든 게 그 증거였다. 아마 엄폐하느라 생긴 화력공백일 테지.

「¡A este paso, estaremos rodeados pronto! ¡Vuelve! ¡Vuelve rápido!(이대로는 곧 포위당한다! 물러나! 빨리 물러나!」

카르텔 기사들은 방패를 나란히 하고 대열을 유지하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흔들리는 초점은 돌담을 엄폐물 삼아 사라지는 기사들을 끝까지 쫓아가지 못했다. 난 화면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싶은 폭력적인 충동을 느꼈다. 이윽고 소대 규모의 영국군 능력자들이 전력질주로 스쳐지나갈 땐 더더욱 그러했다. 이후의 영상은 그저 간헐적으로 총성이 메아리칠 뿐인 산간 촌구석의 밤에 불과했다.

“후…….”

초조함에서 비롯된 짜증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히며, 나는 방금 얻은 정보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래도 영상의 길이가 짧은 데 비해 얻은 게 적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원탁은 살아있는 기사단장을 원하는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음. 영국 놈들의 장비와 속도를 봐라.”

되물었던 경태는 내가 다시 되감은 영상에 집중했다. 그러곤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우리 애들보단 못해도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상당히 가볍네요. 장비랑 배낭 전체 무게가 못해도 5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화력도 만만치 않고요.”

그렇다. 영국 놈들이 투입한 전력은 기사단장을 죽이려 했다면 벌써 몇 번은 더 죽였을 레벨이다. 기사단장 개인의 기량은 영국 놈들 하나하나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전력의 격차를 단신으로 만회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반대로, 아직까지 쫓고 쫓기는 중이라는 건 영국 놈들의 전력이 기사단장을 사로잡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일 테지.’

또는 마력에 의지하는 실전이 처음이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거나.

요컨대.

“이건 단시간에 담판이 날 추격전이 아니구나.”

나는 초조한 와중에도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내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내가 끼어들 기회도 없이 상황이 종료되어버리는 것.

“요격이라도 바로 나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무심결에 흘리고 마는 무의미한 안타까움. 이 무의미함을 알기에 경태도 수연도 딱히 대꾸를 하지는 않는다.

어째서 무의미한가? 영국이 미국의 제일가는 우방들(Five eyes)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놈들이 세계 최강대국의 정보자산을 빌려 쓰고 있는 이상, 미국의 정찰위성들이 몇 개나 이 땅을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해가 지기 전에 내가 요격을 나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추가로 고고도에 떠있을지 모를 무인기들도 문제다.

고성능 위장막(MCS) 내지 적외선 차단 길리슈트(위장복)가 있다면 해볼 만하겠으되 현재로선 어느 쪽이라도 없는 장비였다. 이런 상황을 상정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랫것들만 내보내지도 못할 노릇.

밤이 되면 그나마 낫다.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이 광량(光量)과 채도를 대낮처럼 보정해줄 수 있다지만, 위성이나 고고도 항공관측에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해상도가 저하되기에. 또한 그 짓을 실시간으로 하려면 데이터 처리능력의 한계로 감시범위가 좁아진다.

따라서 최선은 놈들이 이 도시로 기어들어오는 것이며, 차선은 서쪽으로 이어지는 추격전이 어둠이 찾아오도록 끝나지 않는 것이다. 각성한 수목(樹木)과 짐승들이 넘쳐날 산간은 능력자들의 감각을 교란하면서 내 모든 역량을 투사하게 만들어줄 사냥터였다. 밤이 된다 한들 하늘에선 적외선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있겠으나, 그런 열추적은 교란할 방법이 있었다.

초조한 기다림 속에 망연한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범선시대의 바다에서 적선(敵船)을 기다리는 선장이 된 기분이었다. 망망대해 어디에도 적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에 사방의 모든 수평선 너머엔 불분명한 적의가 넘실거린다. 그러한 어느 때에 적대적인 돛대 하나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 위로 올라오면, 배 전체의 긴장감이 단숨에 한계를 돌파한다. 선장은 드디어 나타난 적으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다. 마치 전투가 당장 목전까지 닥쳐오기라도 한 양.

그러나 높은 갑판에 선 나와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10km 이상이다. 적의 존재감은 선명하지만, 사략선인지 군함인지 모를 적의 배가 내게 오기까지는 아직도 수십 분이 더 필요하다. 이마저도 서로가 서로를 회피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 어느 일방이 상대를 피하기 시작하면 추격은 수십 일간 이어지다가 전투 없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바람이 어떻게 불어주는가, 배가 어느 물살을 올라타는가에 따라…….

“형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가까워진 수연이 걱정을 띠고 나를 바라본다.

“세 번이나 불렀습니다. 각성제는 역시 삼가는 편이 좋았던 게 아닌지.”

“…….”

망할.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잖아도 잠이 부족한 판에 어제부터 밤을 새다시피 한 영향인가? 체감하는 피로와 진짜 피로는 별개였고, 육체적인 긴장은 그 자체로 체력과 정신력을 깎아먹는다. 눈앞에 적이 보이기라도 하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혹은 마법적인 육체강화로 인해 약효가 예전과는 다른 식으로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신 차려라. 적을 만나기도 전에 지쳐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속으로 스스로를 다그쳐본다.

흐트러진 집중 속에 바다와 범선으로 흘러버린 망상은 내 정신에 남은 스승새끼의 유해가 원인이었다. 어릴 적의 스승새끼는 당시에도 이미 퇴물 취급을 받던 전열함의 함장을 꿈꾸고 있었으니까. 귀족적인 로망이자 아이다운 장래희망이었던 셈.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이도록, 무난한 질문을 골라 던졌다.

“상황이 뭔가 바뀌었나?”

“……예. 기사단 잔여세력이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마을에서 영국군과 또다시 교전을 벌인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거긴 어디지?”

“여깁니다.”

수연이 태블릿에 지도를 띄워 보여준다. 앞서 교전이 벌어졌던 「라 씨네가 데 로스 아우마다」와는 직선거리로 40km나 떨어진 마을이다. 푸에르토 바야르타와의 거리는 그보다 조금 못 미치는 35km 가량이었다.

‘먼젓번의 교전이 새벽에 터진 게 맞다 치면……. 시간상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로군.’

내가 방독면을 쓴 채 무거운 짐을 지고 6km의 산길을 주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분 안팎이다. 물론 나는 원탁의 마스터급 마법사이긴 하나, 능력 순으로 뽑은 각성자 집단이라면 새벽부터 오전 사이에 40km의 산악지대를 이동하기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사단의 능력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동선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그 두세 배까지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번엔 소스를 무슨 수로 구했지? 입수가 굉장히 빠르구나.”

전투가 발생한 시각을 보건대 사실상 실시간으로 정보를 입수한 수준이었다. 먼젓번의 영상이 최소 반나절의 텀을 두고 손에 들어온 것과 대조적이라 하겠다. 아무리 인터넷 공간이 광활하여 완전한 차단이 불가능하다지만, 혐오스러운 섬나라 놈들이 초기진화에 전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실시간에 가깝게 정보를 확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내 물음에 수연이 지체 없이 대답한다.

“미리 손을 써뒀습니다.”

“어떻게?”

“앞서 기사단이 「라 씨네가 데 로스 아우마다」에서 포착되었을 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쫓기는 입장인 기사단이 과연 비상식(非常食)을 충분하게 휴대하고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다면, 그들이 은신에 유리한 너른 산지를 두고 굳이 민가로 향했던 건 열량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육체강화에 의지한 험지기동의 극심한 소모를 고려할 때, 이 가정이 맞다면 그들은 곧 다른 마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확률이 높았습니다.”

이건 내가 당연히 생각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손을 썼다는 말은?”

“예상 경로의 모든 마을에 거주하는 SNS 이용자들을 찾은 뒤, 공중파에서 일하는 조직 장학생들로 하여금 접촉을 시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기사단과 영국군의 교전에 관한 자료를 보내주면 적잖게 사례를 하겠노라고. 단, 그 자료가 다른 어떤 경로로도 새어나가선 안 된다는 조건이라고.”

간단하면서도 실로 효율적인 조치였다.

“잘했다.”

짧은 칭찬 뒤에, 난 약간의 공백을 두고서 한마디 덧붙였다.

“너에겐 항상 의지하고 있다.”

수연의 눈이 조금 커진다. 짧은 흔들림이 스쳐간 후, 녀석은 시선을 떨어뜨리며 “예.”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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