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3화 (43/561)

#9. 굶주린 항구 (5)

“페루쵸. 나도 멕시코가 어떻고 카르텔이 어떻다는 걸 알지만, 그치가 날 납치할 작정이었으면 진즉에 했을 겁니다.”

“프레지덴떼!”

“생각해보십시오. 이 항구는 마약을 수출하기에 좋은 위치가 아니니, 플라자의 주 수입원은 결국 관광업에 달려있을 겁니다. 외국인들에게 파는 마약, 관광객을 상대하는 점포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 카지노 운영과 매춘 알선 같은 것들 말입니다.”

“…….”

“그런 사람이,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에 관광객을 무더기로 끌고 오려는 사업가를 납치한다? 그건 아니지요. 플라자의 두목쯤 되는 사람이 한탕 해먹고 튀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내가 그간 돈을 뿌려대면서도 플라자의 무장 습격 가능성을 높게 잡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 구역(플라자)을 책임지는 헤페는 사업가적인 안목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더기로 쳐들어왔어도 어차피 경호팀 선에서 잘렸겠지만.

“모든 사업엔 위험이 따릅니다. 아시지요?”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도 나온 바 있는 내 말에 페루쵸의 시선이 떨어진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되 가슴으로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기색. 난 속으론 웃으며 겉으론 담담함을 꾸몄다.

“이 후앙은 안전합니다. 허나 페루쵸, 당신은 아니에요. 그러니 당신은 여기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있습니다.”

이 배불뚝이가 안에서 오갈 대화를 들어선 곤란하다. 그 대화의 녹취엔 악마의 편집이 가해질 예정이기 때문. 대화의 당사자들이 아무리 오해가 있다고 떠들어도 죄인의 구차한 변명일 뿐이겠으나, 이 배불뚝이의 증언은 판을 엎어놓을 가능성이 있었다.

페루쵸가 보고 듣는 것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내가 시장에게 초대되어 플라자의 헤페를 만났다는 부분까지. 그러므로 나는 페루쵸의 약점을 건드렸다.

“당신이 잘못되면 마리 양은 어떻게 합니까?”

흠칫 반응하는 페루쵸.

“또 당신이 잘못되면 나는 무슨 낯으로 마리 양을 봐야합니까? 내가 일자리를 찾아준들 마리 양이 받기나 하겠습니까? 간접적으로라도 아버지의 죽음과 엮여있는 사람의 호의를?”

결국 페루쵸는 고개를 숙이며 내 뜻을 받아들였다. 뜻하는 대로 움직이는 조연의 모습에 시시한 만족감을 느끼며, 난 나를 기다리는 시장에게로 걸어갔다.

“기다리셨지요?”

“뭔가 이야기가 길더군요.”

“그냥 사소한 개인사였습니다. 첼리노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이런, 이런. 아무리 인연이 있었다지만 일개 하급 공무원에게 그렇게 진지하게 어울려주시다니요. 사람에게는 서로 간에 어울리는 격이라는 게 있는 법이건마는. 돈 후앙은 아무리 봐도 지나친 호인이란 말입니다.”

“과한 평가이십니다. 아무튼 들어가시죠. 첼리노의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그럽시다, 그럽시다. 자, 이쪽으로!”

첼리노 시장은 나와 나란히 걸어 철창으로 만들어진 사유지의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 안쪽의 보도는 호화 저택 아홉 채가 공유하는 독립적인 진입로였다. 그리 길지도 않은 길을 왕복으로 순찰하는 무장경비들이 시장과 나를 한 번식 흘끔거리고 지나간다.

저택 「바다의 꿈」의 후문은 그 진입로의 끄트머리 왼쪽에 있었다. 사용인이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시장은 자신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내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후앙.”

「바다의 꿈」은 야자수가 자라는 안뜰을 가운데 끼고 전후의 두 채로 분리되어있는 구조였다. 진입로에 면하는 쪽이 별채이며 바다를 향하는 쪽이 본관. 중정(中庭)과 본관을 잇는 문은 세로로 2층 높이까지 크게 뚫려, 그 지붕은 네 개의 백색 열주로 지탱되고 있었다. 벽은 연한 크림색으로 칠했고 지붕엔 지중해 풍의 붉은 점토기와를 올려놓았다. 정원엔 녹색 잔디가 깔렸으며, 그 사이로 하얗게 난 길이 파란 타일을 깐 수영장과 진한 대비를 이룬다. 통상 시야의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심미적인 생활공간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사생활이 보장되는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시장은 이런 저택을 부끄러워했다.

“이것 참, 작은 집에 많은 손님을 들이려니 민망함을 느낍니다.”

그래. 침실이 다섯 개밖에 안 되니 저택치곤 작은 편이긴 하지. 각각의 침실이 빈민가의 집 한 채 면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격차가 어디 멕시코만의 일이던가. 이런 면에서 멕시코가 최악의 나라인 것도 아니다. 나는 시장을 적당히 추켜 세워주었다.

“첼리노, 당신은 공직에 계시는 분이시잖습니까. 큰돈을 만지실 기회가 없으셨던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저택은 크기가 다가 아니지요. 이 저택의 바람과 바다는 한국에선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솔직히 저도 부러울 지경이니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하하, 그래요? 하하하! 빈말인 걸 알아도 뿌듯하군요!”

본관에 들어가기 전엔 시장의 사람인지 카르텔의 시카리오인지 모를 놈들이 탐지기로 나와 내 수행원들의 몸을 훑었다. 물론 탐지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잠시 센서로 가는 전류를 차단했으므로.

이후 웃으며 본관에 들어선 시장은 먼저 앉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소개했다.

“인사 나누세요, 후앙. 「시날로아 카르텔」의 「엘 후에고」와 「엘 띠로」입니다. 본명을 알려드리지는 못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놀이(Juego)와 대포(Tiro)라. 후에고 쪽은 고전적인 바가지 머리에 반투명 선글라스를 낀 풍채 좋은 사내였고, 띠로 쪽은 조금 작은 키에 머리는 다소 크고 온 몸이 근육으로 꽉 찬 「저주받은 자」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그들과 담담하게 악수를 주고받았다.

“후앙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엘 후에고요. 이 항구의 보스지.”

“엘 띠로요.”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띠로가 눈을 찌푸린다.

‘이 녀석이 뭔가를 느낀 건가?’

서로 다른 두 개의 마력장이 겹칠 때, 마력회로를 보유한 능력자는 자신의 힘이 위축되는 감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른 능력자- 또는 각성생물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엘 띠로는 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품새였다. 내가 내 역장을 최대한 억눌러놓은 탓이다. 이는 회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진정한 마법사에게나 가능한 기교. 결국 엘 띠로는 나보다는 수연과 경태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엘 후에고에게 뭔가를 속삭인다. 그 시선을 받는 와중에 수연은 경태에게 한국어로 말했다.

“내가 좌측과 전방, 네가 우측과 후방.”

유사시의 역할을 나눈 둘은 나로부터 거리를 두고 섰다. 내가 마소에 대한 장악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나, 멀찍이 문간에 선 두 녀석은 겉으로 보기엔 시장과 카르텔 간부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이었다.

시장은 눈에 이채를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돈 후앙. 이 두 사람의 정체를 듣고도 놀라지 않는군요?”

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저는 멕시코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업을 하는 이상, 언젠가는 결국 카르텔 관계자분들과 만나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지요.”

이런 태도가 어지간히 뜻밖이었는지, 시장은 웃는 것도 당황하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으로 자리를 권했다.

“허허……. 일단 앉으십시다. 앉아서 이야기하십시다.”

이음매 하나 없는 통짜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네 개의 소파에 네 명의 사람이 앉았다. 중정(中庭)을 비스듬히 등지는 내 자리에선 실내를 둘러보기가 좋았다.

배 위에 깍지를 낀 엘 후에고가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가느다란 목소리를 낸다.

“당신, 특이한 사람이군. 평범한 사업가인데 우릴 두려워하지 않고, 독실한 신앙인이면서 우릴 경멸하지도 않으니.”

첼리노 시장이 맞장구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서 내심 한껏 각오했던 이 사람이 당혹스러울 지경이에요.”

“각오요? 무슨 각오를?”

내 물음에 시장이 어깨를 으쓱인다.

“돈 후앙이 첼리노 바퀴야노에게 실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만남이니까요.”

이에 나는 궤변을 장전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가 이 멕시코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노라고.”

그러자 다시 엘 후에고가 입을 열었다.

“그쪽이 생각하는 멕시코의 특수성이라는 게 뭔지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간단합니다. 카르텔은 악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 이유는?”

“저는 사람을 살리는 게 선이고 사람을 죽이는 게 악이라 믿으니까요.”

“잠깐. 그럼 우리 카르텔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인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나 각각을 비교해보면 살리는 수가 더 많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양수(陽數)가 남으면 선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 완벽한 선이라는 건 있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저는 결과를 중시합니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저도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엘 후에고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면 사업가로서의 안목과 분석력에 문제가 많아 뵈는데. 설마 우리가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구호물자를 보고 그런 소릴 하는 건 아니겠지? 그 뻔히 보이는 의도를 모른다고? 굶주린 가난뱅이들과 무식한 아랫것들만 빼고 누구나 다 아는 그 의도를?”

“의도가 어떻든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게 사실 아닙니까?”

“이거 내가 바보랑 대화를 하러 온 모양이군. 이 단순한 계산을 틀리다니. 우리가 판 마약이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지는 아나?”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마약을 안 팔면 미국인들이 마약을 못 한답니까?”

내 느릿한 반문은, 개소리 치고는 정말 많은 진실을 담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황금의 삼각지대, 특히 중국과 연결된 와족(佤族) 반군(연합와주군)이 생산하는 펜타닐은 최근 미국에서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라는 이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약물은 1회 투여에 필요한 양이 코카인의 5백분의 1, 최소로 잡으면 2천분의 1에 불과해 밀수하기가 쉽고, 수익성은 높으며, 약효와 중독성과 부작용 면에서도 코카인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중국의 삼합회는 매해 미국 인구 전체를 여러 번 죽이고도 남을 양의 차이나 화이트를 밀수하고 있다. 실로 웃기는 노릇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중남미로부터 북미로 가는 막대한 규모의 코카인은 아주 많은 수의 미국인들을 차이나 화이트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셈이었다. 즉 멕시코 카르텔의 주력상품은 실질적으로 최악을 대체하는 차악이다.

“저는 미국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도 압니다. 알아야 장사를 할 수 있고, 깊게 알수록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코카인이 사라지면 다른 마약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조용한 어조로 늘어놓은 말에 엘 후에고가 건방진 턱짓으로 재촉한다.

“계속해봐.”

“결국 수요가 공급을 부르는 겁니다. 미국인들이 마약을 바라는 한 누군가는 그들에게 마약을 공급하겠지요. 그 역할은 보나마나 중국인들이 맡을 테고요.”

“그건 그렇지. 잘 안다더니 진짜로 잘 아는군그래. 그쪽이 하는 사업과 무슨 관련이 있는 진 몰라도.”

“실패로 그쳤으나 보험 쪽으로 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거기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자주 도왔지요. 그들의 형편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마약은 삶이 고된 자들이 선호하는 기호품이다. 하다못해 그 헐벗은 북한 주민들조차 빙두(메스암페타민)를 탐닉하지 않는가.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약이라면서.

유창한 거짓말을 들은 엘 후에고가 입술 가장자리를 사납게 비틀었다.

“염병할 짱깨들. 빌어먹을 차이나 화이트! 우린 뭐 멍청해서 펜타닐을 안 만드는 줄 아나? 당장 보이는 돈에만 눈이 멀어가지고 고객들을 싸그리 다 죽여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더니 주먹을 쥐어 이탈리아인들의 손 모으기와 비슷하게 흔든다.

“죽여도 우리처럼 천천히 죽여야 새로 들어오는 놈들이 빈자리를 채울 거 아니냐고! 그 근시안적인 놈들 때문에 우리 쪽 얼간이들도 펜타닐을 취급하자는 소리를 한단 말이지!”

여기서 연상되는 건 세계의 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의 어선들이다. 자기네 어장에서 모든 어종의 씨를 말린 붉은 대륙의 어부들은 이제 다른 나라들의 수역을 촘촘한 저인망으로 초토화시키고 다닌다. 그들의 조업방식엔 미래가 없다. 단지 오늘의 이익이 있을 따름.

그들은 황금을 숭배하는 황충(蝗蟲)의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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