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9화 (39/561)

#9. 굶주린 항구 (1)

11월의 멕시코는 중국산 폐렴의 유행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가들 가운데 하나였다. 일일 수십 명 안팎으로 꾸준히 발생하는 신규환자는 각국 외교부가 지역별 여행주의를 발령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다.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 통계에 잡히는 수가 수십이라면 실제 환자는 수백에 달할 게 뻔했던 까닭.

그럼에도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휴양도시였다. 재정위기에 처한 주 정부가 부유한 관광객들을 유치하고자 방역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봐도 역병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주 정부의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다. 팬데믹과 유가폭락이 촉발시킨 전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관광수요 자체가 바닥을 쳐버린 탓. 게다가 극심한 불황 속에서 안 그래도 악명 높던 멕시코의 치안이 연일 최악을 경신하고 있기까지 하다. 살인, 납치, 강간, 약탈, 폭동, 방화, 그리고 카르텔 간의 잦은 충돌. 당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조차 빈민가에선 심심찮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결국 휴양지로 명성이높은 늦가을의 항구엔 우울한 적막만이 감돌게 되었다.

상품을 실은 선박의 도착 예정일보다 보름 먼저, 지휘소가 채 설치되기도 전에 항구에 도착한 나는 현장답사에만 꼬박 나흘을 소모했다. 닷새째의 정오에 들른 대로변의 레스토랑에선 흥겨운 음악 대신 공중파 채널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Según encuestas recientes, la falta de seguridad pública es una de las mayores preocupaciones de las personas pobres. La industria privada de seguridad también está creciendo en respuesta…….」

치안공백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된 근심거리로 떠오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사설 보안업체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이 도시의 분위기처럼 건조했다. 이 나라에선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소리인 것이다. 그저 바닥이라고 믿었던 예전보다 더 깊은 무저갱으로 떨어졌을 뿐이지.

“Es difícil sobrevivir. Los estadounidenses no llegarán este año. Válgate! No se puede ganar 50 pesos trabajando todo el día.(먹고 살기 힘들어요. 올해는 미국인들도 안 오거든요. 세상에! 온종일 일을 해봤자 50페소를 못 번다니까요.)”

이는 맞은편에 앉혀 놓은 종업원의 하소연이다. 이 가게에 손님이라곤 내 일행이 전부였으므로, 서빙을 맡은 여급은 다른 손님이 오기 전까지 말상대를 해달라는 요청을 어렵잖게 받아들였다. 경태와 수연은 잠시 옆 테이블로 옮겨갔다. 이외엔 경호팀 2개조가 바깥에서 차량 내 대기 중이었다.

“원래는 미국인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지요?”

내 물음에 여급이 열심히 끄덕인다.

“네. 여긴 원래 겨울마다 인구가 확 늘어나는 도시였단 말예요. 북미의 돈 많은 노인들이 여기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가는 거죠. 그래서 지난 반년은 공쳤어도 겨울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푸욱 나오는 깊은 한숨.

“뭐,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개털이네요. 저 많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죄다 폐업 위기라고 하는걸요. 몇 곳은 벌써 문을 닫아버렸고. 망했어요, 우리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많이 힘드시겠군요.”

“정말로요. 세뇨르 일행께서 오늘의 개시손님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어떻게 된 불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죠?”

50페소면 한화로 채 3000원이 안 되는 금액이다. 물가가 싼 멕시코에서도 생활이 어려울 푼돈. 나는 턱을 괴고 한숨을 쉬는 여급의 눈동자가 자꾸만 내가 식욕이 없어 남긴 음식을 향해 구르는 것을 보았다. 목울대가 한 번 꿈틀거리기도 한다. 이 여자는 하루 내내 일해도 여기서 파는 가장 값싼 식사 하나를 먹기 힘들 처지였다. 직원할인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건 관광객을 상대로 파는 고급스러운 메뉴이니.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들 비슷한 거지.’

그들은 한평생 카카오를 따며 살지만 초콜릿이 무슨 맛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죽는다. 착취는 인간의 본성이며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으므로, 새삼스레 큰 감흥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애당초 멕시코는 아프리카 평균보다 두세 배쯤 더 나은 곳이다.

그리고 이 여급의 솔직한 투정은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한 기교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난 가난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흔할까.

“이건 그만 치워주시고, 원하시는 메뉴가 있다면 주문하십시오.”

“예?”

“제가 사드리는 겁니다. 식사가 아직이신 것 같아서.”

“앗, 정말로……요?”

나는 차분한 끄덕임으로 여급에게 확신을 주었다.

“가격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먹다가 남겠다 싶을 만큼 원하는 대로 시키시죠. 그러는 김에 오르차따(Horchata)도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갈등하던 그녀는 이내 배고픔에 굴복하곤,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주방의 종을 울려 자신의 주문을 접수하고 돌아왔다. 항구에 돈이 흐르던 시절엔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여급의 양 볼이 부끄러움으로 살짝 달아올랐다. 애초에 혼자 온 것도 아니면서, 일행을 물리면서까지 시간을 내달라고 한 시점에서 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낀 건 아닐까 싶기도 할 터. 자신감을 가질 법한 이목구비이기도 하다. 멀찍이 선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죽을 맛인 입장에서 싫은 일만은 아닐 테지. 어쨌든 매출은 올라가니.

여급은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앉아 미소 지었다.

“세뇨르(선생님)께선 친절한 분이시네요. 에스빠뇰(스페인어)도 잘하시고. 혹시 중국인은 아니시죠?”

“아뇨. 한국에서 왔습니다.”

“Corea?”

“Corea del Sur.”

“아아, 남한! TV에서 지겨울 만큼 자주 봤어요. 그 빌어먹을 짱깨(Chino) 폐병에 가장 잘 대응한 나라라면서 칭찬이 자자하더라고요. 마스크도 잘 만들고, 검진키트도 중국제와 달리 되게 믿을 만하다고. 저 잘난 미국조차 이번에 남한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던데요?”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진짜 속이 다 시원했어요. 평소 그렇게 잘난 체하던 것들이 실은 돈만 많은 멍청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깐.”

그렇지. 미국은 부유하고 강력한 야만인들의 국가지.

“마리아 양.”

나는 명찰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미국과 중국 중에 어디가 더 싫습니까?”

질문을 받은 여급 마리아는 토끼눈을 깜박거리다가, 이내 앓는 소리와 함께 고민에 빠졌다. 멕시코를 침략해 영토를 절반 이상 강탈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멕시코 인들을 잠재적 불법이민자 취급해대는 미국과, 역병을 수출해 세계를 초토화시키고 당장의 밥벌이조차 어렵게 만든 중국. 갈등하던 여급이 오래지 않아 답을 내놓는다.

“중국이요.”

“역시 그렇군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합니까?”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당장 죽게 생겼는데 짱깨가 더 밉죠. 자기네는 발원지가 아니라고 우기는 꼴도 보기 싫고, 도와준답시고 주는 물건들이 엉터리가 많은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지들이 병을 뿌린 주제에 마스크랑 키트 팔면서 바가지 씌우는 짓도 얄밉고.”

줄줄줄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혐오의 이유들. 예상한 대답이었다. 범상한 애국심은 굶주린 배를 이기지 못하는 법. 마리아는 한 번 빙그레 웃고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짱깨가 아니라고 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뭡니까?”

공연히 주위를 살핀 그녀가 한 손을 입가에 대고 진지하게 하는 말.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타이완이 넘버원이에요.”

풉! 옆에서 물을 뿜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면 수연이 컵을 내려놓은 채 손등으로 입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 손은 이마를 짚고 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경태는 물벼락을 맞고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수연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경태는 “아닙니다, 누님. 이건 이 김경태에게 있어선 포상입니다, 포상.”이라고 답하여 수연의 낯빛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마리아는 잽싸게 일어나더니 수건을 가져와 웨이트리스의 본분을 다했다. 얼굴, 목을 닦아주는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인 경태가 이번엔 영어로 능청을 떨었다.

“이야, 포상이 한 번으로 끝나질 않는군요.”

이 휴양도시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영어는 필수적일 교양이다.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받는 팁의 단위가 달라질 테니. 경태의 농담을 들은 마리아는 깔깔대며 웃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녀가 보다 안심한 기색으로 중국에 대한 추가적인 험담과 끼니조차 때우기 힘겨워진 주변인들의 사연을 늘어놓기를 20여 분. 타이완 넘버원 운운했던 건 그녀 나름의 추가적인 검증이었던 것 같다.

“Mary! Aqui esta tu orden!(마리, 주문한 음식 나왔다!)”

주방에서 조리사가 상체를 내밀고 외치는 소리에 마리아가 고개를 돌려 목청을 높인다.

“Bien voy a estar allí!(네, 지금 가요!)”

그러곤 나에게 윙크를 해보이며 돌아섰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시 올게요.”

나는 그 경쾌한 걸음걸이를 보며, 여급이 털어 놓은 중국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곱씹었다. 이러한 악감정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건 내게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프라이팬을 탈출하니 불속이라는 결말만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말이야.’

내가 「빛과 진리의 원탁」을 적대하는 건 그들이 내 눈을 포기할 리 없음을 너무도 확신하기 때문이며, 원탁을 파괴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는 나를 찾아 죽이려는 자들이 없는 세상에서의 평온한 삶뿐이다. 이 소망이야말로 세상에 널린 제국주의자들과 나를 가르는 가장 분명한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으나 나의 욕망엔 소박한 결말이 존재한다.

제국주의자들로 가득한 중국 공산당은 그 소박한 결말에 똥물을 뿌릴 가능성이 높은 심대한 위협이었다. 원탁을 무너뜨리고서 살아갈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리면, 내가 바라는 평온한 삶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그 껍데기만 빨간 사기꾼들이 내 이상까지 짓밟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문제는 이제 인구가 곧 비대칭전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인구는 공식적으로 14억 4천만, 비공식적으로는 15억에 달한다. 회로가 뚫린 각성자들은 갈수록 다른 수단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되어갈 터였다.

나는 이달 초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지만, 그렇기에 제정신으로는 못할 짓들을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지. 행정명령 하나로 자치권을 무시하고 「사막의 사람들」의 성지를 폭파시킨 것처럼.’

혐중(嫌中)의 고삐를 쥐고 반중의 공약을 내세워 승리를 쟁취한 그 정신병자는 벌써부터 중국과 과거 이상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었다. 그렇잖아도 미친 인간이 원한을 품었기 때문이다. 중국발 바이러스 때문에 자기 임기를 망칠 뻔 했다는 원한을.

이는 정치적 반대진영은 물론이거니와 역병 피해를 입은 국가들 다수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올해 내내 자유화 시위로 소란스러웠던 홍콩은 이제 대륙의 급소에 박힌 쇠말뚝이 되었으며, 경태는 이를 두고 “킬각이 보인다.”라는 영문 모를 평가를 내뱉었다.

드르르르-

마리아가 서빙 카트를 끌고 돌아왔다. 그녀는 내 몫의 음료부터 내려놓았다.

“자, 여기 추가하셨던 오르차따입니다.”

우유에 쌀을 갈아 넣어 베이스를 만들고 계피와 바닐라를 진하게 섞은 연갈색의 음료가 눈앞에 놓인다. 다음으로 놓이는 음식들은 메인급으로만 다섯에, 디저트 류가 둘이었다. 나는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여급에게 도구적으로 절제된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실 이 이상의 미소는 지어보일 수도 없는 처지지만.

카트를 치운 뒤 안심하고 식사를 시작한 그녀는, 아까보다 한결 더 편해진 태도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난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가 원하는 키워드들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카르텔이요?”

눈이 동그래졌던 마리아는 이내 조금 울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다들 살기가 팍팍한 시기니까요. 카르텔에 들어가면 최소한 먹을 걱정은 덜 수 있을 테니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죠. 게다가-”

“게다가?”

“아빠가 그러는데, 요즘은 우리뿐만 아니라 카르텔에게도 어려울 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서로를 잡아먹으려 날뛰는 거라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은 사람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나? 가뜩이나 사람 목숨 값까지 싸져서 조직원 모으기가 쉬워졌으니 큰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거래요.”

“좋은 의견입니다. 춘부장께선 어떤 일을 하십니까?”

“…….”

나는 한층 더 울적해지는 마리아의 침묵에 사과를 건넸다.

“미안합니다. 괜한 질문을 했군요.”

“아녜요. 이것도 결국 짱깨들이 나쁜 거니까요. 원래는 요 앞의 항만 사무국에서 일하셨었는데…….”

질서유지의 마지막 보루인 공무원조차 정리당하고 있다는 소리.

이 현지인의 진술로부터 재확인 가능한 정보는 현재의 푸에르토 바야르타, 나아가 멕시코 전체가 바싹 마른 장작더미에 휘발유를 뿌려놓은 것과 비슷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어느 카르텔이든 돈과 무기만 있으면 무한정 병력을 충원할 수 있는, 한없이 위태로운 상태.

‘과달라하라에선 이미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지.’

내가 휴스턴에서 이 항구로 오는 데 걸린 시일은 고작 사흘. 고작 사흘 사이에 과달라하라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은폐고 뭐고 불가능할 지경으로. 「템플 기사단」이 불을 지르고 「시날로아」가 맞불을 놓은 일명 ‘고기방패들의 전쟁’은 멕시코 제2의 대도시를 1990년의 바그다드 비슷한 꼴로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비단 과달라하라뿐만이 아니다. 멕시코 곳곳에서, 나아가 세계의 모든 불안정한 거리와 도시들에서 산발적으로 비슷한 일들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규모와 형태에서 차이가 있을 따름. 세계적인 불황과 정치적 혼란, 그 가운데 점점 많아지고 강해지는 능력자들의 존재는 불씨를 기다리는 메마른 숲과도 같았다. 겉보기엔 고요할지언정 속에는 열과 파괴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바꿔 생각해보면, 내가 이 점을 이용해 보험 하나를 들어들 수도 있을 듯하다. 겸사겸사 외부 세력이 칠지 모를 불장난도 예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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