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8화 (38/561)

#8. 엘 무니씨오네로 (6)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은 의외로 신실한 가톨릭 신도들이다. 적어도 그들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이나마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때로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칠 만큼 진지하게.

「템플 기사단 카르텔(Los Caballeros Templarios Cartel)」은 그런 저급한 신앙의 정점을 찍은 집단이다. 주의 섭리는 사람의 이해를 벗어난 영역에서 작용하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계획 속에 있으므로, 자신들이 저지르는 살인, 강도, 마약생산과 유통 또한 주 하느님의 계획으로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게 바로 이놈들이 믿는 엉터리 교리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이놈들은 범죄 집단 주제에 기사도를 내세운다. 약자를 보호하고 어쩌고 하는 그 계율을. 여기서의 약자는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 즉 자신들에게 거역하지 않는 주민들을 말한다. 보호의 대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은 소명 받은 기사단의 정당한 권리.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전에서마저 기사 흉내를 낸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칼은 의전용으로나 쓰고, 갑옷은 포스터에나 그려 넣던 것이었을 텐데.

이게 그저 작은 위협이었다면 굳이 경고할 이유가 없었을 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과달라하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증거다. 그 말은 즉 기사단의 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고.

‘하지만 놈들은 조직을 다 재건하지도 못하지 않았나?’

이 가짜 「템플 기사단」은 장기간에 걸쳐 멕시코 정규군의 공격을 받았고, 그 결과 전체적인 조직력이 붕괴하여 다수의 잔여 조직들로 쪼개졌다.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시날로아 카르텔」이나 분열된 이후에도 하나하나가 강력한 세력으로서 반목과 연대를 거듭하는 「로스 제타스」에 비하면 오합지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우호 카르텔의 밑으로 들어가 생존을 도모하고 있었을까.

그런 놈들이 다른 카르텔도 아닌 「시날로아」를 후려치고 있다? 그것도 단독으로?

여기서 유추 가능한 결론은 오직 하나뿐이다. 갈라진 조직을 순식간에 재통합하고, 모자란 전력을 혼자 벌충할 수 있는 인중여포가 튀어나왔다는 것. 멕시코 인구가 1억 3천만이니 그렇게 타고난 천재 하나쯤 나타난들 이상할 것은 없다. 그게 하필 카르텔의 성전기사라는 점은 멕시코의 불행이겠지만.

나는 리까르도를 식은 어조로 힐난했다.

“그런 정보가 있다면 미리 알렸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난 정말 만약을 대비하자는 거였소. 보시오!”

테이블 위엔 아까의 지도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리까르도가 눈으로는 나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과달라하라를 찍어, 그로부터 서쪽으로 빠지는 도로를 따라 미끄러뜨렸다.

“과달라하라에서 푸에르토 바야르타까진 가장 빠른 길을 타더라도 300km를 넘게 달려야 한단 말요. 그 사이에 「시날로아」 놈들의 관문이 대체 몇 개나 있을 것 같소?”

“지금이야 그렇겠지!”

상품을 실은 배가 항구에 도착할 즈음이면 상황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른다. 기사 흉내 내는 도살자들의 무차별 학살이 계엄에 준하는 상황을 불러온다면? 그리하여 카르텔과 가짜 기사단과 군경의 삼파전이 시가지를 불태우기 시작한다면? 그날부로 도로는 통제되고 항구와 공항의 검색도 강화되겠지. 연방경찰이나 방위군이라도 출동해서 검문검색의 권한이 해군의 것이 아니게 될 경우엔 제독의 보증도 무의미해질 테고, 거래와 설계도는 물 건너 가버리는 거다.

‘이 덜 튀겨진 나초 새끼들이…….’

문간에 발 들여놓고 말하기에도 정도가 있지. 난 이 개잡것들을 마저 튀겨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것들의 주파수와 암호 체계를 확보한 만큼 무방비하게 날벼락을 맞을 확률은 낮을 테고, 최악의 경우엔 배를 돌려버릴 수도 있겠으나…… 설계도의 가치를 감안하면 어지간해선 교전을 치러서라도 강행하는 게 맞다. 항구가 막히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비틀린 내 속을 모르는 리까르도가 다시금 상황을 변호한다.

“이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오. 칼 든 사이비들이 날뛰는 동안에는 「시날로아」 놈들의 시선과 전력이 온통 동쪽으로 집중되어 있을 테니. 과달라하라는 그만큼 중요한 곳이오.”

다급한 어조의 갈피엔 살기도 언뜻 느껴졌다. 폭력적인 충동을 가라앉힌 난 조금 더 시간을 끌어 평정을 완전히 회복한 뒤에야 비로소 말로써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지요.”

“무엇을?”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애들이 용병노릇을 할 일은 없을 거라는 점. 설령 교전이 벌어진다 한들 우리는 자위적인 무력만을 행사할 겁니다. 상품이 부두로 내려간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알아들었습니까?”

“……그 정도면 됐소.”

미련이 없진 않았는지 군수장교의 낯짝에서 희미하게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럼 여기까지로군요. 이 거래가 양측에게 마지막까지 만족스럽게 끝나기를 바랍니다.”

“동감이오, 엘 무니씨오네로(El Municionero).”

“엘 무니씨오네로?”

“스페인어를 아는지 모르겠소만, 「탄약을 주는 자」라는 뜻이오. 우리 「로스 제타스」와 거래를 하는 상대가 그럴듯한 별명 하나 없어선 곤란하지. 어차피 그 후앙이라는 이름도 진짜는 아닐 거 아니오.”

난 간단히 인정했다.

“그렇긴 합니다.”

이름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실리콘을 씌워놨지.

“잠깐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후앙 당신은 언젠가 멕시코 땅에서도 이름을 날릴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요. 훗날 당신이 내가 붙여준 별명으로 유명해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기대가 되는군 그래. 「엘 무니」 정도로 줄여도 괜찮겠지.”

자기가 붙여준 별명으로 뭐? 나는 군수장교가 보여주는 유치한 감성에 눈을 찌푸릴 뻔했다. 가라앉힌 짜증이 다시 올라오려고 스멀거린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코 내가 달갑게 발을 들일 시장이 못된다. 시장 규모는 클지언정 경쟁자가 많고 위험도도 높기 때문이다. CIA와 DEA의 눈이 어디에 있을 줄 알고? 엘 무니씨오네로는 아마도 일회용 별명이 될 것이다.

리까르도 내외는 처음 맞이할 때처럼 현관 앞까지 나와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눈인사를 남긴 채 자동차에 오르려던 난, 차바퀴 근처 잡초들 사이에서 부산하게 바글거리는 자그마한 유기체들을 발견했다. 꿀빛에 가까운 밝은 갈색의 개미들이었다. 그걸 보던 난 못내 남아있던 불쾌감이 서서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형님?”

문을 붙잡은 채 의아해하는 경태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손짓한 나는, 코카인이라도 먹은 것 마냥 빠른 속도로 정신 사납게 방향을 꺾어대는 개미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한두 마리가 그러는 게 아니라서 수풀 새로 몇 줄의 유동적인 무질서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혹시 이게 그 미친 개미인가?’

하얀 추장은 약속장소의 전기가 나갔을 때 「라즈베리 미친 개미」에 대해서 불평했었다. 심심하면 배전반으로 기어들어가 합선을 일으킨다고 했었지. 삐뚤빼뚤 광기마저 느껴지는 동선을 보니 과연 「미친」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하다.

말로 들을 땐 대충 넘겼으나 실물을 직접 보니 뭔가 영감이 떠오를 것 같았다. 난 허리를 숙여 개미를 집어 올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낀 개미는 발광하듯 몸을 꿈틀거렸다. 잠시 그렇게 잡고 있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개미들 위에 닿을 듯 말 듯 검지를 두고 조금씩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개미들의 움직임이 대번에 달라졌다.

스스스스스-

보는 것만으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감각을 자아내는 시각적 변화였다. 잡혀있던 녀석이 내 손가락에 경보 페로몬(Alarm pheromone)을 묻혀놓은 것. 개미들은 적을 찾아내 찢어발기고자 이제까지보다 더 미친 것처럼 방정을 떨어댔다.

“아까부터 대체 뭘 하는 거요?”

팔짱을 끼고 손님이 떠나길 기다리던 리까르도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 다가와서 내가 무엇을 보는지 확인했다. 그는 이 악명 높은 개미를 발견한 즉시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젠장. 아라셀리! 페스트 컨트롤(해충방제업체)을 불러야겠어!”

페스트 컨트롤?

소용없을 거다. 「황금기의 눈」을 보유한 나는 추장이 이 개미들에게 왜 그렇게 치를 떨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착했을 무렵엔 이렇게 사소한 데까지 살피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는데, 미친 개미들의 지저제국은 시야의 소실점으로부터 이 목장의 울타리 안쪽까지 거대하면서도 입체적인 도시를 건설해놓은 상태였다. 면적이 최소 에이커 단위인 초유기체라는 의미다. 개체수를 헤아리면 족히 수억 마리에 달할 것이다.

이거, 잘하면 생물병기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인프라를 파괴하는 간접적인 용도의. 나는 불현듯 떠오른 이 가능성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조금 더 조사를 해보면 답이 나오리라. 실용화에 착수할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왠지 모르게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을 연상케 만드는 개미였다.

“가지.”

차가 출발하자 수연이 나에게 사죄한다.

“죄송합니다, 형님. 과달라하라 건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카르텔 간의 분쟁과 세력변화는 협상에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수연은 비서실이 실시한 사전조사에 미비한 부분이 있었음을 사과하는 것이었다. 난 대강 손을 내저었다.

“됐다. 보나마나 「시날로아 카르텔」이 불리한 정보를 차단한 거겠지. 기사단에게 카르텔의 중요 거점을 공격당한 건 쪽팔리는 선에서 끝날 일이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멕시코 정부 입장에서도 그렇겠고.”

또한 현 시점의 지구촌에서 시끄러운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외신의 관심을 사로잡을 보다 커다란 사건들이 널려있다시피 하다. 군사적 긴장과 외교적 마찰, 그리고 무수히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들. 마법의 시대에 던져진 인류의 성장통.

무엇보다…….

‘멕시코에서 카르텔이 지랄하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거기는 원래 그런 동네인 것이다.

작년 말 정부와의 총력전에서 승리를 거둔 「시날로아 카르텔」은, 중국발 전염병의 기세가 주춤해지자 최전성기에 지배했던 17개 주(州)를 회복하기 위한 공세에 돌입했다. 지난 수년간 남쪽 카르텔들의 연합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과달라하라와 할리스코 주(州)도 그때 「시날로아」의 땅으로 돌아갔다. 「템플 기사단」의 잔당은 당시 격퇴당한 연합세력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남부 연합의 현 맹주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지도부가 역병으로 죽거나 정부군에 의해 괴멸당한 상태여서 조직적인 반격이 불가능했던 탓이 컸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시날로아」 좋은 일만 해준 셈이 되어버렸다.

“두 세력의 항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보겠습니다.”

수연의 말에, 난 아까 빌렸던 수첩을 돌려주며 다른 지시를 추가했다.

“푸에르토 바야르타에 현장지휘소와 안전가옥을 설치하고 행동타격대를 보내 놔라. 파견 규모는 경태와 협의해서 결정할 것. 지원팀엔 일이 끝날 때까지 거기 적힌 주파수를 감청하라고 전해. 설계도는 검토가 끝나는 대로 기술진에게서 직접 결과를 보고받겠다.”

“예. 현장지휘소 설치는 전염병 위험지역 여부를 확인한 다음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경태.”

“넵.”

“너는 책임자로서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라. 현지 동향을 살피고 계획을 세워두라는 거다. 이번 납품에선 단 한 명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나도 그리로 가겠다. 어떤 변수도 내 눈을 피하진 못할 테니.”

두 녀석은 내 뜻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내 각오와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경태는 내가 합류하는 현장지휘를 ‘맵핵’이니 ‘방플’이니 하는 이상한 단어로 표현하곤 했다. 이것도 요즘 세대의 트렌드라면서.

“그나저나 그 기사단의 대가리 말입니다.”

경태는 흥미로워하는 기색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냥 미친 게 아니라면 머리를 아주 잘 굴렸지 말입니다.”

머리를 잘 굴렸다는 건 각성자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는 의미다.

“우리만 생각을 할 줄 아는 게 아니니까. 놈들이 오로지 칼만 휘두르는지, 아니면 자동화기를 함께 사용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올 거다.”

단순히 미쳤을 뿐인가, 아니면 계산된 전략인가.

우리도 조직 내 미래전략회의를 여러 번 열면서 고찰한 바, 현대전에서 체력은 곧 화력이자 방어력이었다. 육체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각성자들은 더 강력한 화기로 무장하며 더 두꺼운 방어구를 착용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대인’화기로는 각성자 저지가 난감해진다는 뜻. 말하자면 무기체계의 아노미 현상이었다.

그런데 조직 차원의 장비 및 전략 교체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므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먼저 도입한 「템플 기사단」은 당분간 「시날로아」를 일방적으로 유린할 수 있을 것이었다. 카르텔 업계에 최초로 군사적 정예화 패러다임을 도입했던 「로스 제타스」의 악몽이 재현되는 꼴이다.

장검 같은 냉병기의 사용 역시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개인화기의 고위력화는 탄약 휴대량의 감소 내지 탄약 소모율의 증가로 이어지기에, 장검 따위의 냉병기를 휴대함으로써 전투지속력을 개선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고려해볼 가치가 있었다. 특히 지금의 「템플 기사단」처럼 적지에서 장기간 게릴라전을 벌이는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

경태가 말했다.

“그게 만약 의도적인 전술이고 연출이면 한번 만나 승부를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고두고 이자가 붙을 경험을 얻을 기회니까요.”

난 이 흰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괜한 소리 마라. 걸린 게 너무 큰 판이다. 안전하게 가야지.”

“형님도 참. 저희는 질 자신이 없습니다. 특히 형님께서 함께하실 때는요.”

“…….”

정 위험하다 싶으면 중간에 때려치울 심산이긴 하나, 보상으로 잠수정이 걸려있는 이상 여간해서는 그만두지 못할 거래였다. 그런 판에 마약 파는 봉건 예수쟁이들이 칼 들고 난입했다간 여러모로 곤란해질 터. 그 가짜 성전기사들은 놀던 곳에서 놀아주는 게 최선이다. 푸에르토 바야르타는 과달라하라에 비해 중요도가 한참 떨어지는 도시다.

‘허나 과달라하라가 떨어진다면 각오를 해야겠지.’

경태 말마따나 우리가 가짜 기사단을 두려워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가 경계하는 건 그들과의 교전 그 자체가 아니라 불필요한 교전이 빚어낼 추가적인 변수들이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내가 직접 현장의 상황을 보고 내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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