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화 (35/561)

#8. 엘 무니씨오네로 (3)

손님을 거실로 들인 집주인은 내게 소파를 권하며 물었다.

“마실 것을 좀 드리리까?”

“마실 것이라. 그럼 물 한 잔만 부탁합니다.”

“그거면 되겠소?”

“예.”

내 대답을 들은 리까르도는 눈썹과 어깨를 들었다 놓곤 금방 두 잔의 물을 내어왔다. 난 그가 맞은편에 앉기를 기다려 본론으로 들어갈 첫 걸음을 떼었다.

“리까르도 당신이 과거 「로스 제타스 북동부파(Cartel del Noreste)」에서 시설운영 분야에 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동생은 지금도 여전히 북동부파에 남아있다고도. 맞습니까?”

“대충은 맞소.”

“대충은?”

“내 역할은 정확하게는 보급창 설치와 운영이었다오. 단순한 시설관리자라기보단 군수장교에 가까웠다는 뜻이지. 그리고 내 동생은 「지옥의 군대(Tropa del Infierno)」 소속이라오. 북동부파 산하의 최정예 타격대인데, 들어보셨는지 모르겠군.”

“물론 들어봤습니다.”

지식은 힘이며, 거래상대에 대한 사전조사는 성공적인 협상의 전제조건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는 꼬아놓은 다리 위로 깍지를 끼고 말을 이었다.

“동생분의 소속을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군요. 올해 초 코만단테(사령관, 지휘관) 시스네로스가 측근들과 함께 경찰에게 사살 당했다던데……. 아마 누에보 라레도에서였지요?”

“예상보다 자세히 아시는구만.”

리까르도는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코만단테 시스네로스, 풀 네임 후고 알레한드로 살시도 시스네로스는 「지옥의 군대」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붙어있는 누에보 라레도는 「로스 제타스」 카르텔의 주요 마약밀매 루트 중 한 곳이었고.

시스네로스의 죽음은 멕시코에서 카르텔을 몰아내겠다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의지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증거와 같은 것이었다. 비록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긴 했으나, 그건 사실 “총력전만은 그만두겠다.”는 의미에 불과했던 모양. 정부의 항복 선언에 방심했던 카르텔 관계자들이 꾸준히 체포당하거나 죽어나간 걸 보면.

어쩐지 촉이 온다.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던-”

나는 창밖으로 흘깃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당신이 갑자기 나와 거래할 필요성을 느낀 게 그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세대교체엔 언제나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니.”

멈칫 했던 리까르도가 잠시 수염을 매만지며 망설이다가 인정했다.

“이번에도 맞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리까르도는 대답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침묵은 조금 신경질적인 정적이었다. 신경질의 정체는 내가 아니라 리까르도 본인을 겨냥한 초조함일 것이다. 협상 경험이 적다는 게 너무 뻔히 보이는 것도 문제다. 상대를 무시하기 쉬워지니까. 나는 그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고서 이어나갈 대화의 흐름을 골랐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하면 좋을지 고민스러우신 모양인데, 늦었습니다.”

“늦었다니?”

“벌써 실수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실수?”

“예, 실수. 내게 바라는 대가가 조직의 세대교체에 관련된 무언가임을 부정하지 않은 시점에서, 또한 당신에겐 그간의 생활에 아쉬운 게 없었음을 인정한 시점에서, 당신은 동생의 처지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 역시 시인해버리고 만 겁니다.”

카르텔의 세대교체에 피가 흐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지도자의 죽음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권력공백이 원인일 경우 더더욱 그러하고.

“동생이 지도부 교체의 당사자 내지 관계자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겠지요. 이런 계파갈등은 어느 쪽이 먼저 기선을 제압하는가도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그 한 번에 승패가 갈리거나, 목숨이 날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도 하고.”

이제 리까르도의 눈엔 사람을 죽여 본 자의 서늘함이 깃들었다.

“그렇군. 내가 첫마디부터 실언을 해버렸군.”

엽총으로 무장한 아내가 남편의 변화에 입술을 깨문다. 이것 또한 둘의 생활이 평소 어떠했을지 짐작케 해주는 하나의 단서였다. 전직 카르텔 간부 치곤 정말 보기 드문 은퇴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모양. 나는 가볍게 끄덕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올해 초에 본토 트라이어드(삼합회) 놈들과 상당한 규모의 거래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요?”

“들어보십시오. 그 짱깨들도 당신과 같은 실수를 했었으니.”

“…….”

“그때 우리 회사는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카르텔의 ‘군수장교’였던 당신이라면 무기와 탄약의 통상적인 유통마진쯤은 꿰고 있을 테니, 한번 맞춰보시겠습니까? 동북아 어딘가에서 선적하여 「황금의 삼각지대」로 들어가는 미제 돌격소총 한 자루에 최종적으로 몇 퍼센트의 마진이 붙었을지를.”

눈빛을 약간 누그러뜨린 리까르도가 생각에 잠긴다. 내가 미얀마에서 얼마의 마진을 남겼을지, 또 이런 질문을 하는 내 의도가 무엇일지에 대한 궁리일 것이었다.

“뭐 한 2천 퍼센트라도 남기셨나보오?”

난 고개를 저었다.

“4,130%. 풀 옵션 소총 하나당 벤츠 한 대 값을 받고 넘겼습니다.”

“이런 미친.”

곧바로 튀어나온 욕설은 잠시 후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다시 한 차례 반복되었다.

“이런 미친! 후앙 당신 사기꾼이었소?”

실무경험을 보유한 입장에선 정색을 하는 게 당연하다. 벤츠가 올해 내놓은 C 클래스 아방가르드 세단의 가격이 5,440만원. 액세서리가 붙었을 뿐인 돌격소총 한 자루를 그와 비슷한 액수에 넘긴 건 문자 그대로 사기에 가까운 거래였다.

비록 대가를 물물교환으로 받기로 했다곤 하나, 호기롭게 무제한 매입을 선언했던 짱깨 놈들이 은근히 몸을 사리게 되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놈들은 거래이력이 거의 없어 시세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장비들로 대가를 지불, 추가적인 가격협상을 벌이는 방식으로 손실을 최소화하려 들었다.

‘그래봐야 마약 팔아서 금방 벌충할 손실이지만.’

그렇다. CIA가 한때 마약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듯이, 음지에서 암약하는 짱깨들의 자금줄도 결국은 마약 장사였다. 그 돈이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흘러오는 것.

중국은 연합와주군(UWSA)에게 무기뿐만 아니라 마약 제조설비까지 지원해왔다. 와주군의 세력은 그 유명한 동남아 「황금의 삼각지대」에 걸쳐있으며, 메스암페타민, 헤로인, 펜타닐 따위를 제조·유통하여 벌어들이는 자금은 연간 4백억 달러, 한화로 약 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저도 보수적인 추정치인지라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펜타닐의 태반이 여기서 나오니까.

「일대일로」를 비롯해 중국 놈들이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이 이익의 과반은 당연히 투자자인 중국 놈들의 몫이었다. 연합와주군의 수장부터가 중국식 이름을 쓰는 마당에 놀랍지도 않은 일.

물론 공산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마약이 국가와 인민의 적이라는 것이지만, 그건 그냥 체면치레 같은 거지. 당 간부들과 꽌시로 엮인 사업가들은 와족의 땅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마약 생산지 중 하나로 개발해냈다. 이에 대한 지방당국의 단속은 실적과 면피와 외교에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래서 중국-미얀마 국경엔 중국의 세력 확장과 마약 밀매에 이를 가는 선진국들, 특히 미국의 감시망이 거미줄처럼 깔리게 되었다. 짱깨 새끼들이 굳이 서방권에 속하는 제3국에서 외주를 줄 업체를 찾아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십시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인간들은 내가 넘긴 모든 물량을 현찰박치기로 사더라도 그냥 좀 아쉽고 말 규모의 사업을 벌이는 중이니까.”

“대체 무슨 사업이기에?”

“물론 마약입니다. 마약 말고 달리 어떤 사업이 그 정도의 수익성을 보장해줍니까?”

“…….”

미얀마 북부의 평범한 와족 마을 하나가 소규모 카르텔 하나의 유통량에 필적하는 양의 마약을 생산해낸다. 게다가 그쪽은 대단히 중앙집권적이어서 중남미와 같은 분권적 비효율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5월, 운 나쁘게 발각당한 외부유통 창고 한곳에서만 총 중량 18톤, 100억 달러어치의 메스암페타민이 쏟아져 나왔지.

멕시코 카르텔들이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중국 공산당을 이길 순 없다. 암흑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그 가짜 빨갱이들은 압도적인 격차로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나는 손가락을 퉁겨 주의를 환기했다.

“자, 리까르도. 내가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혹 나를 상대로는 그렇게 시간을 끌어 폭리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요?”

“정확합니다.”

“어째서?”

“추장은 내 친구이고, 당신은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는지 리까르도의 낯짝에 흔들림이 스친다.

「로스 제타스」 카르텔은 본디 전직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집단이었으며, 조직문화도 지극히 군대스럽게 형성되었다. 눈앞의 어리숙한 협상가가 아까부터 자신을 거듭 ‘군수장교’라고 표현한 것 역시 조직문화의 영향 내지는 과거 군경으로서 복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일 터이고.

‘지들이 전우애로 뭉친 줄 아는 놈들에겐 이런 코드가 잘 먹히지.’

말은 상대를 가려 쓰는 도구다. 이것들의 전우애가 진짜인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당사자들이 진짜라고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나는 편안함 속에 나른함이 밴 어조를 꾸며냈다.

“그러니 지하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에게 그만 안심하라고 전해주시지요. 여기선 싸움이 일어날 일도, 터널로 피신해야 할 일도 없을 테니까.”

나를 보는 두 눈에 이번엔 경악이 담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이게 나의 신중함이라고 해둡시다. 「거래상대의 신중함은 좋은 것이다」, 아닙니까?”

자신이 했던 말을 돌려받은 자칭 군수장교는 잠시 머뭇거린 끝에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설마 내가 지하까지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할 테지. 지하의 무장인원 셋이 당황하는 게 보인다. 놈들은 집주인의 조끼에 달린 도청기로 협상장에서 오가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그들을 향해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친구들도 올라오라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멕시코에서 여기까지 함께 온 친구들이라면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닐 텐데, 사업 파트너로서 소개를 받아두고 싶군요. 당신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일 사람들 같으니까.”

여기까지 말한 나는 물 한 모금으로 마른입을 적셨다. 리까르도가 어색한 태도로 제 아내를 돌아본다.

“아라셀리. 다들 올라오라고 해.”

어색함의 원인은 당연히 도청기였다. 비밀스러워야 할 대화가 새고 있었음을 대놓고 인정할 순 없으니, 몸에 익지 않은 연기를 하는 것이다.

‘됐군.’

이것만으로도 협상의 어려운 고비 하나를 넘은 셈이다. 리까르도는 내가 만들어놓은 틀에 사고가 갇히게 되었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리까르도인 것.

진실을 말하자면 리까르도에게 허락된 시간이 짧은 건 나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였다. 난 어떻게든 계약을 체결해야만 하는 입장이니까. 여기서 협상이 결렬된다면 런던 공략도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고, 시간을 잃은 나는 그만큼의 추가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이 군수장교가 무슨 수로 내 쪽의 아쉬움을 간파할까. 내 약점을 감추면서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협상의 기본이었다.

이제 리까르도는 자신이 협상가로서 풋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동시에 내가 보여준 솔직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처지에 나만큼 좋은 거래상대를 다시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또한 나는 중국과의 거래를 언급함으로써 그 규모를 통해 내가 엄청난 거물이라는 인상을 무의식에 심어주었다.

이 모든 인과의 끝은 당연히 신속하면서도 전향적으로 진행될 협상이다. 나에게도 좋고 군수장교에게도 좋을. 여기선 생각이 더 깊어질 틈만 주지 않으면 된다. 대화가 엉뚱한 흐름을 타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로 충분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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