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엘 무니씨오네로 (1)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찾아왔다.
11월의 서울은 어수선했다. 자랑으로 삼던 세계 정상급의 치안이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제 늦은 시간까지 뛰어놀 수 없게 되었고, 후미진 거리는 대낮에도 들어가기 조심스러워지는 장소로 전락했다. 시가지에서 사이렌을 켠 순찰차가 질주하는 빈도 역시 확연하게 증가했음은 물론이다. 경이로운 신체능력을 보유한 범죄자들의 출현이 하루걸러 하루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날. 그들은 길이 아닌 길을 달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과거엔 드물거나 불가능했던 양상의 범죄들을 저질렀다. 천만이 거주하는 대도시의 그늘은 날이 갈수록 크고 짙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게 안전한 도시였다. 이는 서울이 위험해진 정도 이상으로 세계 치안의 평균이 수직 낙하한 덕분. 어디 치안뿐이랴. 인류의 모든 시스템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눈곱만큼도 되어있지 있지 않았다. 중국발 역병이 낳은 극심한 불황이 그 정도를 더하게 만들었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한 애송이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저씨.”
담배를 빨던 녀석이 나를 노려보며 후우- 연기를 뿜는다. 이 어린것이 말하는 아저씨는 차라리 앚씨에 가깝게 들리는 불량한 발음이었다. 담배 필터엔 연한 색조의 립스틱이 묻어있다. 녀석은 다시 담배를 물곤 기대어있던 벽에서 등을 떼었다.
“뭘 그렇게 꼴아봐? 우리한테 볼일 있어?”
나란히 기대어있던 패거리가 귀찮은 듯 움직여 날 둥글게 둘러싼다. 주머니에 찌른 손, 늘어뜨린 어깨와 삐딱한 자세들이 멋있는 줄 아는 어리숙한 품새들. 나이로는 갓 성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교복을 벗지 못한 것들이다.
나는 개의치 않고 표적의 이름을 불렀다.
“도원희.”
움찔. 마르게 타들어가던 담뱃불이 약해진다. 오늘의 사냥감, 도원희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아저씨 뭐야?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백승연. 기억하지?”
“……하, 씨팔.”
이번엔 기가 막힌 웃음을 짓는 표적.
4년 전, 당시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도원희는 지금 이 패거리와 뭉쳐 동급생 백승연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상습적인 폭행과 따돌림, 금전갈취, 오랜 시간에 걸친 성매매 강요 등. 그러나 이 사건으로 법정에 선 도원희는 보호관찰 처분을 조건으로 형의 선고를 유예 받았다. 그 기간은 고작 1년. 도원희가 청소년임을 감안해도 대단히 가벼운 판결이었다. 이는 당시만 해도 백승연이 혼수상태로나마 숨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며, 상류층 카르텔에 속한 부모의 힘이자, 도원희의 숙부와 백승연의 아버지 사이에 성립하는 까마득한 상하관계 덕분이기도 했다.
“좆같네 씨팔.”
도원희는 담배를 툭 떨구곤 발끝으로 지긋이 비비며 내 쪽을 응시했다.
“그년 애비랑 아는 사이야?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설마 미행이라도 했어?”
“했다고 치지.”
“치긴 뭘 쳐? 어이가 없어서 진짜. 어이, 아저씨. 그거 범죄야, 범죄. 친구 따라 깜빵 구경하고 싶어? 지금 바로 보내줄까?”
패거리가 낄낄거린다. 기가 산 도원희 본인은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서며 턱을 치켜들었다.
“왜, 그 애비가 돈이라도 더 받아 달래? 돈이 필요하면 X발 본인이 와서 빌어야지, 친구를 대신 보내면 어떡해? 이런 건 성의 문제 아닌가? 다리병신이 무릎 꿇고 빌면, 뭐, 그 성의를 봐서 우리 아빠한테 한번 부탁을 해볼 수도 있는데 말야.”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뭔데?”
“너를 죽이게 해달라더군. 반드시, 자기 손으로.”
“……어?”
삐- 삐- 삐- 삐-
대형 화물차량의 후진을 알리는 신호음이 좁은 골목 저 끝에서부터 들려온다. 25톤 트레일러의 하얀 측면이 비스듬히 들어오던 서녘의 일광을 차단했다. 조직이 운용하는 이동식 작업장 가운데 하나였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도원희가 표정을 굳힌다.
“뭐야. 뭐야뭐야뭐야.”
골목의 반대편 출구는 끽- 정차하는 승합차와 거기서 저벅거리며 내리는 발소리들에 가로막혔다. 손을 정갈하게 모은 양장차림의 사내가 다섯. 경태를 비롯한 경호실의 인력이다. 도원희가 나를 보며 한 발짝 물러선다.
“너 이 씹새……. 우리 엄빠가 누군지 알아?”
“알지. 그런데 너는 내가 누군지 아나?”
“알게 뭐야!”
사납게 외치며 한 발 더 물러나는 몸짓엔 선명한 두려움이 묻어있다. 등이 벽에 닿은 도원희가 저보다 조금 덜 물러난 패거리 하나를 호명한다.
“야! 뻠규! 어떻게 좀 해봐!”
뻠규라고 불린 놈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좌우를 살피곤 “에이 씨팔!” 하며 품에서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빼들었다. 이름은 박범규. 이 패거리에 속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도원희보다는 못할지언정 이 놈 역시 부모를 잘 만난 양아치 새끼였다. 공주님의 시다바리 노릇으로 업보를 쌓은 놈답게 반응이 보통과는 다르다. 그래봐야 애송이지만.
휘릭휘릭 돌아가는 손잡이와 칼날이 금속광을 번쩍이며 찰칵찰칵 쇳소리를 낸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유행하는 물건이다. 나름 위협이랍시고 보여주는 손재주였으되 내가 보기엔 엿장수의 가위놀음과 마찬가지인 장난질. 겉멋뿐인 묘기를 실전에서 쓰면 어쩌자는 것인가.
생김새만으로는 범생이 같은 놈이 칼을 휘두르며 으르렁댔다.
“죽인다……. 씨발, 죽인다고!”
“해봐.”
덜 여문 칼질과 별개로 힘과 속도만은 상궤를 벗어났다. 신체강화의 징후였다. 그것도 꽤 우수한 축에 드는.
달칵달칵달칵-
이 와중에 도원희는 입술을 질겅대며 호출기를 눌러대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호를 받아야 할 운전수와 경호원들은 이미 이동식 작업장에서 양잿물 목욕을 하는 중이었다. 단순한 경호를 넘어 어두운 일감들로 성과급을 받아온 인생들이니 이러한 ‘사고’ 또한 각오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항상 두려움을 잊지 않는 것처럼.
사자도 영양에게 치여 죽을 때가 있는 법.
호출기를 움켜쥔 도원희가 빽 소리를 질렀다.
“뻠규 이 병신아! 인질을 잡아야 할 거 아냐! 니들은 뻠규 안 도와주고 뭐해!”
그러더니 담장 너머를 향해 손을 모아 있는 힘껏 외친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이코 살인마가 있어요!”
이게 바로 내가 직접 움직인 이유다. 도원희가 질러대는 소리는 내가 전개한 염동 차장(遮障)을 뚫지 못했다. 밀도 낮은 염동력을 퍼뜨려 음파의 확산을 상쇄하는 것이다. 이로써 조금 으슥할지언정 번화가가 가까운 한낮의 골목에서도 소리 없는 납치 살해가 가능해진다. 「전율하는 거인」의 안개가 소리의 확산을 막는 댐퍼 역할을 하던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롭게 개발해낸 염동력의 활용기법이었다.
단순히 죽이는 게 전부라면 내가 없어도 되지만, 하나를 꼭 살려서 잡아가야 하므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 새로 거둘 부하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고. 빚은 나에게 지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도원희의 말마따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성의가 중요한 게 아니겠나.
“으아아아!”
나이프 든 놈이 기어코 달려들어 명을 재촉한다. 어디 한 군데 찔러놓고 인질로 삼을 작정인 모양. 난 그 커다란 칼놀림을 쳐내며 무방비한 목줄을 잡아 단숨에 비틀었다. 우드득- 손아귀에 목뼈가 어긋나는 울림이 전해진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몸뚱이는 한순간에 축 늘어지는 무게감으로 변모했다. 죽음을 목격한 도원희 일당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놔! 놔 이 개새끼들아!”
“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어느새 다가온 경호실 애들이 도망치려던 패거리를 손쉽게 제압했다. 피가 튀지 않게끔 목을 꺾어 죽인다. 경태는 혼자서 담을 넘으려던 도원희의 다리를 붙잡아 아래로 내팽개쳤다. 쾅 소리가 나도록 떨어진 도원희는 헐떡이며 네발로 기다가 경태의 발길질에 복부를 얻어맞았다.
꺽!
볼품없는 신음을 흘리며 배를 감싸고 웅크리는 사냥감. 경태는 그 머리채를 잡고 짐짝처럼 질질 끌었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은 결국 경태가 끄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땅 밀기였다. 난 떨어진 나이프를 줍고서 가볍게 참견했다.
“살살 해라. 취급주의 상품이다.”
“에이, 형님두. 이게 바로 고객만족 배송입니다. 백 상사도 좋아할걸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골목 저편에선 트럭 화물칸의 측면이 모터 구동음을 내며 접혀 올라간다. 그 안엔 방호복 차림의 몇몇 부하들과 더불어 이제까지의 상황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한 사내가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한쪽이 불편한 다리로 일어선 그는, 끌려오는 도원희를 차갑게 식은 안광으로 쏘아보았다.
이 사내가 바로 이번 사냥의 의뢰인이자 오늘부로 내 조직에 들어올 자, 도원희가 죽인 백승연의 아버지, 백영훈 전(前) 해군 상사다. 왜 예비역이 아닌가 하면 부당한 압력으로 불명예 전역을 당했기 때문이다.
수연은 이 사람을 서울역 인근 노숙자 쉼터에서 찾아냈다. 해군에 있을 땐 「돌고래」급 잠수정의 전기장(電氣長) 직을 수행한 이력이 있는 귀중한 인재.
경태에 이어 내가 작업장에 오르자 화물칸 측면이 다시 폐쇄된다. 경태는 문이 완전히 닫힌 다음에야 사냥감을 홱 던지듯 놓아주었다. 도원희는 백 상사의 발치에 엎어졌다. 나 또한 잡고 있던 시체의 뒷덜미를 놓았다. 박범규였던 유기체는 구겨지듯 꼬꾸라졌다.
“……힉!”
백 상사와 눈이 마주친 도원희가 하얗게 질려서 뒤로 기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달칵달칵달칵. 아까 대번에 인질을 잡으라고 외친 것도 그렇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판단력이다. 내버려두었으면 크게 되었을 녀석일지도.
“담가라.”
주어가 뻔한 지시에 방호복 차림의 부하들이 시체처리에 돌입한다. 박범규 포함 숨 끊어진 연놈들을 먼저 죽은 경호원들과 같은 「욕조」에 넣어주는 것이다. 2축 스태빌라이저에 올린 6개의 밀폐용기는 주행 중에도 안정적으로 시체를 녹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도구였다. 부식 가스를 저장하고 분산 배출하는 장치도 제대로 갖추어두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가스를 흘리면 악취로 신고를 받을 일도 없었다.
도원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살려주세요.”
더는 물러날 자리도 없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욕조로 들어가는 제 패거리는 차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제가,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나는 흐느끼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뒷짐을 지고 백 상사를 응시했다.
“백영훈 상사. 이제 당신을 내 부하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예.”
“좋아. 지금부터는 말을 편히 하지.”
이 말에, 사냥감에 꽂혀있던 백영훈의 음울한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앙상하게 푹 들어간 두 눈은 말라붙은 감정의 우물이어서 오로지 건조한 냉기와 살의만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후회하는 기색이 전무하다는 점에 나는 자그마한 만족감을 느꼈다. 맹목적인 충성까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배신할 가능성은 희박할 듯하다. 달리 삶의 이유나 욕망이 없는 자의 눈이었으므로.
“거래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나?”
백 상사가 미미하게 끄덕인다.
“목숨을 빚지고 목숨으로 갚는다. 아닙니까?”
“맞아.”
“일은 언제부터 하게 됩니까?”
“우선 몸부터 추스른 다음에.”
불과 한 달 보름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였던 백 상사는 영양부족과 알코올중독으로 몸이 많이 상해있는 상태였다. 항해를 견딜 체력을 만들자면 상당기간 요양과 재활을 거쳐야 할 터. 회로 각인 및 조정은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 자연적인 각성으로 불가피해진다면 또 모를까.
어차피 첫 잠수정을 마련하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하얀 추장으로부터 마침내 「인맥 판매인」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게 겨우 사흘 전의 일이었다. 내일 모레 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더라도 최종적으로 결실을 얻기까진 많은 고비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작업실 끝에서 가냘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살려달라구요……. 돈이라면 아빠가 얼마든지 줄 테니까…….”
도원희. 외견상으로는 그저 겁에 질려 우는 한 명의 여대생일 따름이지만, 여기엔 그 껍데기에 속을 사람이 없다. 껍데기야 어쨌든 알맹이는 살인자가 아닌가. 성인이건 아니건 살인자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내가 흘릴 눈물도 그렇겠지. 만에 하나라도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면.
“장소를 따로 마련해줄 수도 있다만.”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한을 풀어보라는 내 제안을, 백 상사는 느리게 고개를 흔들어 거절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나중에 아쉽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저년 애비 애미나 잘 마무리해주십시오.”
“그러지.”
자식의 죄를 무마해준 부모는 조만간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교통사고로, 간단하게. 군에 있는 숙부 또한 간격을 좀 두고 비리를 폭로해 매장할 계획. 한동안 갖은 의혹들로 시끄럽게 되겠지만, 알리바이는 철저하게 준비되어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울음을 그친 도원희가 다급하게 묻는다.
“우리 엄빠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꼴에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깊은가보다.
“말해! 말해애애앳!”
절뚝거리며 다가간 백영훈 상사가 발광하는 딸의 원수를 폭력적으로 짓누른다. 아무리 쇠약해졌어도 명색이 전직군인인 백영훈이다. 사냥감의 절규는 이내 그으으으윽- 목 졸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이 전직군인의 팔뚝을 파고들고, 스니커즈를 신은 발이 텅텅 바닥을 때리기도 잠시. 힘이 풀린 도원희의 양팔이 차가운 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충혈된 안구로부터 점점이 붉은 핏물이 배어났다. 흰자위에 핏빛 물감으로 점을 찍는다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전직군인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