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의 가로수들 (4)
육체강화 술식의 작용은 없는 힘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있는 힘을 증폭시켜주는 방식이다. 열량 대비 운동능력이 증가하기는 하되 기본적인 열량 소모가 전제된다는 뜻. 회복을 촉진하는 효과 역시 자연적인 회복의 가속이라, 빨라지는 만큼의 소모를 동반했다. 이는 내 일일 섭취 열량이 고탄수화물식으로 5천 kcal을 초과하게 된 이유였다.
양적으로 약간 버거운 식사를 마칠 즈음, 먼저 식기를 놓은 수연이 웅웅 우는 제 핸드폰을 보더니 수신한 메시지를 담담한 목소리로 전한다.
“형님. 정부가 조직 계열사들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표창이라니? 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국격을 드높이고 한미 양국의 우호 제고에 기여한 공로……라고 합니다.”
“…….”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정부가 말하는 인도적 지원이란 내가 요 몇 개월간 다이아몬드 카지노의 요청에 응하여 5개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보낸 바이러스 검진 키트 및 각종 방역용품들을 이르는 것일 터였다.
중국발 폐렴의 대유행이 미국 내에서 절정을 찍었던 시기, 그 수개월 간 북미 원주민들은 연방정부의 보건행정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연방정부가 보건서비스부대를 통해 제공한 의료지원이라곤 고작 시체를 담을 가방들이 전부였을 지경.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미국 내 북미 원주민 자치구역의 공식적인 호칭은 국가(Nation)다. 그러나 외교권을 박탈당한 국가가 어찌 국가일 수 있으며, 무슨 수로 외국으로부터 방역용품을 조달한단 말인가? ‘진짜’ 국가들조차 물량을 조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건만.
결국 남는 건 민간 차원의 노력이다. 「사막의 사람들」이 픽픽 쓰려져가는 가운데 추장은 내게 전에 없던 외상거래를 타진해왔다. 그의 절박한 제안을 물린 나는, 그가 요청한 양의 열 배에 달하는 무상지원을 정중하게 약속해주었다. 추장은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내겐 합리적인 동기가 존재했다.
‘충분히 가능해.’
일찍이 난 매미가 우는 계절을 예견한 바 있다. 그 계절이 오면, 북미의 원주민들은 참으로 사무치게 울어대는 매미 무리가 되리라고. 나는 그들을 거두어 런던을 불사를 테러의 기수로 삼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있어 원주민들의 고난은 시기 적절히 찾아온 행운이나 마찬가지. 침략자들에 대한 해묵은 악감정이 시체가방을 받고서 새로워졌을 원주민들은, 각성으로 주어질 힘과 능력들을 분노의 도구로 써먹을 개연성이 높다.
설령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원주민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이고, 따라서 범죄율이 높은 집단이기도 하며, 이는 곧 원주민들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더러워질 미래를 예고한다. 초능력을 범죄에 악용하는 부랑자 집단 내지 잠재적 안보위협 즈음으로. 그런 인식이 불러올 차별과 그에 대한 항거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증오하는 모병집단의 형성으로 이어질 터.
그렇다. 나는 그들의 불행을 기원하며 그들을 돕는 것이다. 죄는 침략자들이 행할 것이요 선택은 오롯이 원주민들의 몫이니, 난 그저 온정을 베푸는 것만으로 바라는 결실을 얻게 된다. 이 어찌 내게 좋은 형편이 아니겠는가.
어려울 때 오직 나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신들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원주민 부족들에게도 내 존재가 뚜렷하게 각인되었겠지. 물론 현재로선 내 존재를 아는 이들 사이에 한정된 각인이겠지만, 부족 전체가 어두운 그늘로 떨어지고 나면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경태가 싱겁게 불평했다.
“거 기왕 줄 거면 훈장이라도 주지, 좀스럽게 표창장이 뭐랍니까. 우리가 쓴 돈이 얼만데.”
이에 수연이 짤막히 답한다.
“어쩔 수 없어. 명의를 분산시켰으니까.”
“그래도 말이죠……. 형님께서 국가유공자가 되실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아쉽지 말입니다.”
난 조금 황당했다.
“내가 국가유공자가 되어서 뭐한단 말이냐.”
“나쁠 건 없잖습니까? 형님의 표면적인 신분이 그만큼 사회적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는 건데요. 전 사람들이 형님을 우러러보는 게 좋습니다.”
“…….”
쓸데없는 욕심은. 사회적 명성이 유익한 위장이라곤 하나, 이런 단발성 명성은 유효기간이 길지 못하다. 본사 단독으로 일을 추진함으로써 본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 오히려 손해였다. 의뢰인인 하얀 추장에게도 조직의 심장부가 노출될 터이고.
경태 말을 듣고 뭔가를 숙고하던 수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향후의 행동방침에 대한 제언입니다만-”
“음?”
“이번 건과는 별개로, 형님이나 조직의 주요 인력들이 이 나라의 애국자 겸 전략자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애국자 겸 전략자산?
“뒤쪽이 핵심이구나.”
“예. 다소 귀찮은 일들이 따라올 수도 있겠으나, 양지에서도 국가 차원의 비호가 주어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빛과 진리의 원탁」이 영국 정부의 외교와 첩보를 지렛대로 쓰고자 할 때, 우리를 중시하는 한국 정부는 괜찮은 방파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확실히, 뇌물 먹이고 음지에서 받는 비호엔 한계가 있지. 표면적인 신분에 대한 공식적인 보호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압력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작동할 방어 장치다. 최소한 탈출할 시간은 벌어주지 않을는지.
국력도 적절하다고 본다. 너무 강한 국가에 의지한다면 이쪽이 지나치게 휘둘릴 우려가 있고, 국력이 어중간하다면 방파제 노릇을 제대로 못해줄 테니.
‘이번에 다시 본 것도 있고.’
전염병으로 인한 국제적 보건위기 속에서 한국은 전 세계의 방역을 선도하는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진단키트 생산, 방역전략 확립, 의료기구 및 개인보호장비 수출 등. 덕분에 내가 추장을 쉽게 도울 수 있었으니 이것만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연의 제언이 이어졌다.
“아울러, 각종 정보 및 국책사업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집니다. 추후 마법이 국가의 핵심이익과 관련된 분야로 떠오른다면, 중요하거나 위험성이 높은 일부 각성생명체 및 지역에 대해선 일반인의 접근을 제한하는 법적 장치들이 마련되겠죠.”
“음…….”
“기존의 연줄과 조직 장학생들만으로는 이러한 장치들을 극복하기가 어렵거나 번거로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겠죠. 많은 경우에 국가적인 영향력과 외교적 접촉이 요구될 겁니다. 따라서 형님의 원활한 「코드」 수집을 위해서라도, 공식적인 자격 및 사업 수주가 용이한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수연이 제기한 가능성을 나도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겠지?”
“예.”
“그런데도 넌 이익이 더 클 거라 보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네 계산이 그렇다면, 알았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마.”
“감사합니다.”
국가권력이 기술적으로 미지의 영역에 눈을 떴을 때, 보통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그 기술의 군사적 활용방안이다. 고로 내가 염려하는 여러 위험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전쟁을 비롯한 국가단위의 분쟁에 동원되는 상황이었다.
‘이 나라는 워낙에 강제노동을 좋아하니까.’
일단 병역제도부터가 강제노동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칭 진보라는 작금의 대통령도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엔 모르쇠로 일관한다. 뭐, 각성자의 처우가 일반 병사들보다는 나을 테지만, 꼭 국제분쟁이 아니더라도 재난대응이나 대민지원 등 여러모로 귀찮고 불쾌한 취급이 많을 게 뻔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번 중국발 팬데믹에서 의료진이 받은 취급만 봐도 답이 나오는 일. 월급이나 제때 주었어야 말이지.
가뜩이나 이 나라의 주변엔 잠재적 불안요소들이 많았다. 중국이 제일이며 북한이 그다음이다. 이런 환경에서 각성자들을 얌전히 내버려둘 리가 있나. 나를 제외한 일부 부하들만 양지에 내놓는 차선책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의의 전력손실을 최소화하자면 결국은 내가 음양으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비서실장의 판단력을 신뢰했다. 예측이 결과적으로 빗나가더라도, 이 녀석이 길을 찾는 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잠자코 듣던 경태가 좋다고 웃는다.
“결국 훈장이 아쉬운 거 맞네요.”
“……그렇다고 치자.”
엄밀히 따지면 추장에 대한 나의 지원은 수교훈장을 받을 건더기가 못되었다. 당장 백악관의 주인부터가 연방정부의 체면이 상했다며 SNS로 역정을 낸 마당에, 우호 제고는 무슨 놈의 제고.
미국의 현 대통령은 예전부터 원주민들에게, 특히 하얀 추장이 속한 「사막의 사람들」에게 지대한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려는 대통령의 계획에 「사막의 사람들」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 부족의 땅이 미국과 멕시코에 걸쳐있는 「사막의 사람들」은 원주민 협약에 따른 자치권으로 장벽의 통과를 거부했다.
허나 「사막의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부족의 땅이 갈라지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미국과 대통령이 싫어서도 아니라, 장벽이 지나갈 자리에 조상들이 묻힌 성스러운 땅이 존재했던 까닭. 미국인들이 「오르간 파이프」라고 부르는 변경주 선인장(Saguaro cacti) 군락은 「사막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파치 부족에게도 신성한 매장지로 통한다. 원주민들은 이 군락의 선인장들이 선조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올해 초, 중국발 역병이 미국에 발을 들이던 무렵, 조상의 넋이 깃든 그 선인장들은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줄줄이 잘리거나 폭파 처리되었다.
병마로 떼죽음을 당하는 와중에 성산(聖山) 「와우 키울릭」의 최고봉에 이어 또 다른 성지를 상실한 「사막의 사람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필시 추장은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게 있어 그들의 분노란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상품이었다.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착신 전화를 알린다. 액정에 뜬 번호는 하얀 추장의 것이었다.
“이 영감도 양반은 못 되는군. 커피나 한 잔 내려와라.”
통화하며 홀짝일 셈으로 시키니 두 측근이 동시에 반응했다. 엉거주춤한 경태가 바른 자세로 선 수연을 바라본다.
“누님은 맨날 하시니까 이번엔 저한테-”
“앉아.”
“넵.”
기가 눌린 경태가 엉덩이를 붙인다. 이 녀석들은 대체 뭘 하는 건지……. 난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서 20초쯤 울리도록 내버려둔 전화를 받았다.
“납니다.”
「회장.」
부르는 목소리가 전보다 힘이 없다. 나에게는 좋은 징조였다.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그간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 연락했소.」
“글쎄요. 부족의 상황이 아직 감사를 받을 단계가 아님을 압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당신이 괜한 시간을 냈을 리 없으니, 분명 다른 용건이 있겠지요. 말씀하십시오. 나는 생산적인 대화를 선호합니다.”
「……」
스피커가 한숨 소리로 우르륵거린다. 뻔한 일이었다. 미국이 전염병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지만, 방역의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뒷전이었던 원주민 보호구역들은 지금도 여전히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국지적인 봉쇄령 탓에 물자반입조차도 원활하지 못하다.
「하……. 매번 이런 식이니 참으로 면목이 없구료.」
“그래서, 용건은?”
「검진키트를 추가로 구하고 싶소. 이번엔 대금을 지불하리다.」
“돈은 됐습니다.”
「회장.」
“됐다고 했습니다. 그거, 받는 만큼 굶는 사람이 생길 돈 아닙니까?”
「…….」
다이아몬드 카지노는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 대부분은 고객의 돈이지 추장의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은행과 달리 투자운용에서도 운신의 폭이 많이 좁다. 수익의 태반을 각종 서비스의 수수료에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 그 수수료가 범죄조직의 수익으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니겠지만, 세계적 보건위기와 그에 따른 경제위기 및 이동제한조치 속에서 사업을 유지하는 동시에 부족민 전체의 생존을 담보할 수준엔 한참 미치지 못할 터였다.
‘그나마도 요즘은 경화되었을 돈줄인데.’
역병은 카지노의 고객들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추장은 일감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무겁게 침묵하던 추장이 묻는다.
「내 이런 질문을 할 처지는 아니요마는, 그래도 물어볼 수밖에 없군. 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주는 거요? 당신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지 않소?」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다. 난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했다.
“뭘 새삼스럽게. 당신과 나의 첫 거래부터가 내 대가 없는 호의였던 것을 잊었습니까?”
인생사 새옹지마.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제국주의가 싫어서 부렸을 뿐이었던 변덕은, 지금 내 진짜 의도를 감출 훌륭한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
「……」
나는 다시 돌아온 추장의 침묵을 만족스럽게 들었다. 변덕을 부렸던 과거의 나를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