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0화 (30/561)

#7. 8월의 가로수들 (3)

근력, 근지구력, 심폐지구력은 개인 단위의 전투지속능력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단련하기 위한 생활습관으로는 달리기만큼 좋은 것이 드물었다. 달리기는 실전에서 가장 요긴한 능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니까.

물.

나는 극심한 갈증을 인내하며 새벽이 검푸르게 물들인 산길을 달렸다. 중량조끼를 차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얼굴엔 방독면까지 쓴 채 인터벌로 뛰는 6km의 굴곡진 지형. 신체강화 술식을 돌리는 상태에서 몸을 담금질하자면 그만큼 강한 부하를 가해야 한다. 백 미터가 넘는 경사로를 전력질주로 주파하자 심박은 단숨에 최대치를 찍었다.

물이 필요해.

내가 좀 달려봤다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는 얼마의 속도로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가. 얼마만큼의 고통과 힘겨움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 역치를 경신하고 또 경신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하여 주저앉고 만다는 사실을.

머리가 X랄 맞게 뜨거워.

……그러므로 내 실전적인 달리기란 강화술식을 활성화한 상태에서의 최대역치에 도달하는 것이어야 했다. 고통으로 정신을 쥐어짜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전투용 술식 구축이 가능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했다.

이 모두가 내 궁극적인 생존에 기여할 노력들이었다.

“세상에…….”

목적지인 정상 부근 약수터에 도달하자, 사진기를 든 중년 여성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죽을 것 같은 나는 돌로 쌓은 담을 짚고 방독면을 뜯어내다시피 내팽개쳤다. 몰아쉬는 숨소리가 숫제 죽기 직전인 폐병환자의 호흡이었다.

“무슨 운동을 그렇게 하구 한대? 괜찮아요, 총각?”

나는 대충 끄덕이고 고여 있던 약수를 머리 위로 한 바가지 쏟아부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떠서는 급하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일지라도 여름은 여름. 부글부글 끓던 뇌수가 이제야 좀 식는 느낌이 든다. 불지옥을 가로질러 달린 끝에 간신히 정상적인 세상으로 탈출한 듯한 기분. 이는 참으로 환상적인 안도감이었다.

후우-

기력을 소진한 난 약수터 돌담 위에 걸터앉았다. 습기를 머금은 돌은 몸을 지탱하는 손바닥에 꺼끌거리는 서늘함을 전했다. 조금은 끈적한 촉감도 있었다.

이제껏 날 걱정하던 중년 여성은 이제 내 하의를 걱정했다.

“옷에 버찌물이 들면 잘 안 빠질 텐데.”

“……그것도 괜찮습니다.”

8월과 버찌. 시기상 서로 떨어져있어야 정상일 두 단어가 지금은 그렇지 아니했다. 약수터 근처가 온통 까맣고 하얀 것은 이 옆에 뿌리내린 왕벚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이 무더운 계절에도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떨어뜨리는 벚나무다.

“꽃을 찍으러 오셨습니까?”

내 물음에 여성이 미소를 머금었다.

“요 약수터에 지지 않는 벚나무가 있다고 들어서, 사람 많은 시간대를 피해 왔어요.”

“요즘은 이런 게 많지요?”

“예……. 뉴스에선 환경호르몬이니 지구온난화니 우주방사선이니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던데,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보기 좋기는 하네요.”

세계 각지에서 수목의 이상생장과 기형발생이 속출하자 비상이 걸린 학계에선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한 온갖 가설들이 분분히 쏟아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기형을 설명하지 못했고, 우주방사선은 감소한 태양의 흑점활동에 논파 당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가설은 환경오염 영향설이다. 동물과 식물에게 공통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 내지 그에 준하는 모종의 오염이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 이는 최근 급증한 암 발병률을 한데 묶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또 곤욕을 치르는 게 바로 일본이었다. 일부 재야학자들과 환경단체들은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비난했고, 일본정부는 자국의 오염수 방류와 근래 벌어지는 이변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후쿠시마의 힘 운운하는 건 꽤 웃기는 농담이었지.’

이는 경태 입에서 나온 인터넷상의 반응이었다. 올림픽에서 각종 세계기록들이 무차별적으로 갱신되고 있는 게 방사능 오염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고 치면 그간 ‘먹어서 응원’해온 일본이 종목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기록을 냈어야 정상이다.

“무섭진 않으십니까?”

내가 다시 묻는 말에 여인이 음- 하고는 꽃을 본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다는 말이야 들었지만, 뭐, 별일 있겠어요?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하던걸. 이렇게 울타리도 쳐져 있고.”

여기서의 혹시 모르는 건 오염물질의 존재다.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오염 가설에 기초하여, 환경당국은 기형 및 이상생장을 보이는 나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발표한 상태였다. 기형과 이상생장이 발생한 곳은 그만큼 오염이 진행된 곳이리라는 판단 하에. 어떻게든 진실의 끝자락엔 닿아있는 판단이다.

그러나 범유행 전염병이 퍼질 때도 나들이를 가고 예배를 보고 낯선 이와 클럽에서 몸을 부대끼기도 했던 사람들은,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번 경고 역시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암은 암이고 꽃은 꽃이었다.

눈앞의 맹한 여인이 그 증거다.

여인은 이제 내가 내팽개친 방독면에 관심을 보였다.

“요즘은 마스크도 잘 안 쓰는 분위기인데 저런 걸 쓰고 다녀요? 불편하지 않아요?”

은근히 나를 괴짜 취급하는 눈치. 중국발 폐렴의 대유행이 피크이던 시기에도 방독면은 대단히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건 단련용이다. 과거 경찰기동대의 각 지역 선봉중대는 방독면 착용 구보로 심폐근력을 강화하곤 했다. 난 방독면을 주워 흙을 털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불편하긴 합니다만, 저는 겁이 많아서 말입니다.”

겁이 너무나 많아 런던이 불타는 꼴을 보기 전엔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는 사람이지. 내가 털어놓은 진실은 상대를 소리 내어 웃게 만들었다.

“농담을 재밌게 하시네. 몸도 그렇게 좋은 총각이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요? 폐병 걸려봐야 나 같은 사람이나 위험한 거지.”

이 나이에 자꾸 총각이란 소릴 듣고 있으려니 생경한 기분이 든다. 스승새끼가 공들여 건설한 피난처로서의 내 몸은 상궤를 벗어난 구석이 많았다.

“어머나?”

여인이 손끝으로 자신의 코밑을 찍어보더니 깜짝 놀란다.

“갑자기 웬 코피가 다 난담?”

그 핏빛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어두운 예언이었다. 나는 조용하게 물어보았다.

“혹시 가족 중에 이 근처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이 일대엔 조직이 거느린 사업체들이 즐비하게 깔려있다. 따라서 내 질문은 이 여자가 조직 관계자의 친인척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휴지로 코를 막느라 정신없는 여인의 대답은 간결한 부정이었다.

“아뇨. 살기만 여기 살지, 일은 딴 데 가서 해요.”

“그렇습니까.”

그럼 내겐 이 여자를 도와줄 의리가 없다. 난 자리를 뜨며 건조한 작별을 고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좋은 사진 많이 찍으십시오.”

이것은 인사이자 조언이다. 얼마 못 가 죽을 인생,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남겨야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내 오지랖은 딱 여기까지였다.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산책로 밖에서 지켜보던 경태가 다가와 말을 붙여왔다.

“차라리 잘됐네요.”

“뭐가 말이냐?”

“사람이 죽어나가면 산을 폐쇄할 명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경태도 붉은 예언을 눈여겨본 것이었다. 난 건성으로 끄덕였다.

“두고 봐야지.”

이 산은 조직의 사유지다. 그런데도 구와 시는 제멋대로 산책로를 내고 표지를 꽂고 계단을 까는 등 재산권을 침해해왔다. 철조망을 쳐서 출입을 막으면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랍시고 행정조처를 남발하며 귀찮게 굴었지.

‘내가 왜 배후에 산을 뒀는데.’

산을 등지는 자리에 조직 본사를 세워놓은 건 하찮은 풍수지리 때문이 아니다. 급변사태 발생 시 탈출경로를 염두에 두었던 거였지.

환경당국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걸어 해결하는 수도 있겠으나,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승소한다고 즉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짜로 누리던 혜택을 빼앗긴 주민 나부랭이들이 온갖 민원을 다발로 처넣는 까닭이다. 조직은 이미 한번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공권력의 주목을 받는 건 생산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이젠 생산성을 떠나 부수적인 비용-예컨대 뇌물 같은-을 들여서라도 재산권을 행사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내 애들에겐 더 넓고 은밀하면서 접근성까지 좋은 훈련장이 필요하다. 산행객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기슭 하나만으론 여러모로 부족했다.

“낙오자는?”

내 물음에 경태가 히죽 웃는다.

“없습니다.”

과연, 비탈진 숲 속에서 움직이는 녀석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와 똑같이 뛰어서는 죄다 나가떨어질 게 뻔하므로, 전술기동 및 지형숙지 훈련을 겸하여 산을 가로지르는 경로를 달리게끔 지시한 까닭이다. 모두 회로가 개방된 녀석들이라 마력피폭에 대한 기본적인 방호력을 보유하고 있다.

본사로 돌아와서는 경태를 비롯한 경호실 녀석들과 2대1 변칙 스파링을 붙었다. 육탄전에서조차 능력의 차이로 압살하기가 일상화될 싸움터에서 복싱 따윈 큰 쓸모가 없겠으나, 말이 스파링이지 이 링에서 소화하는 룰은 오리지널 복싱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다리기술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난타전. 변화한 동체시력과 신체의 반응성에 적응하는 데엔 도움이 된다. 얼마간 익숙해진 다음엔 다리기술도 허용될 것이다.

훅-!

헤드기어를 비껴 치고 지나가는 펀치. 나는 바싹 파고들어 턱주가리를 올려쳤다. 펑 하는 소리에 콱 막히는 타격감. 아슬아슬한 크로스 암(Cross arm) 방어였다. 막힌 걸 확인한 즉시 상체를 떨구며 측면으로 스텝을 밟는다. 머리 위로 내질러지는 후방으로부터의 일격. 난 등 뒤를 잡은 놈을 무시하고 전면의 경태를 향해 대각선으로 전진, 옆구리에 흐릿한 잽을 꽂아 넣었다.

“윽!”

가까운 굉음에 고막이 아프다. 우악스러운 힘이 보호구 너머로 갈빗대를 쳤다. 경태를 비칠거리게 만든 대가로 내 등판엔 다른 녀석의 스트레이트가 찍혔다. 맞은 건 등인데 소리는 가슴을 울리며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끼긱- 밑창이 바닥과 마찰하는 고음. 휘청이는 무게중심을 콱 찍는 디딤 발로 복구하고 상체를 확 돌리며 팔꿈치를 썼다. 팔꿈치에 찬 보호기어가 연타로 오던 왼팔 스트레이트를 쳐냈다. 다음 순간 나는 상체가 안쪽으로 말려버린 녀석의 안면에 직격으로 카운터를 꽂아주었다. 또 한 차례 펑 폭발하는 타격음. 글러브의 탄성과 강화된 근력의 조합은 매 타격마다 이명을 남기는 굉음이 터지도록 만들었다.

“이야아아아-!”

머리가 뒤로 꺾인 놈을 몰아붙일 틈도 없이 경태의 전신 태클이 들어온다. 복부를 치는 어깨는 운동에너지 그 자체였고, 허리를 죄는 양팔은 탈출을 막는 속박이었다. 복강에 가해진 충격에 불가항력으로 호흡이 새버린다. 즉각 디딤발을 바꾸어 버텨보았으나 이미 넘어가는 무게중심이었다. 힘으로는 칠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할 순간에, 발이 떠버린 나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몸을 비틀었다. 쓰러지는 위아래를 바꿔놓기 위함이다.

결과는 7할의 성공. 상하를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을지언정 양손으로 경태의 머리를 연달아 내려친 끝에 빠져나오는 데엔 성공했다. 대신 바로 육박한 다른 녀석에게 육연타를 허용해야 했지만. 퍼퍼퍼펑 작렬하는 연타는 옆구리부터 쇄골로 기어오르는 바디블로우였다. 난 동작이 큰 펀치로 순간적인 회피를 유도한 다음 정확히 그 대척점을 밟아 거리를 확보했다. 내 발이 워낙 빨라졌기에 가능한 스텝이었다.

이런 식으로 삼십분을 더 끌자 인체에서 증발한 습기와 열이 에어컨의 냉기를 완전히 상쇄해버렸다. 나도 애들도 육체강화를 끌어올린 채로 붙은 데다, 링이 하나가 아니었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내가 링에서 내려오자, 다른 링에서 상대를 갈아가며 마찬가지로 30분을 버틴 수연 또한 연습을 중지하고는 물에 빠져 녹초가 된 사람의 몰골로 내려온다.

나는 지친 와중에도 부하들 하나하나를 눈여겨 살폈다.

‘당장은 더 손볼 구석이 없겠어.’

연일 소모적으로 육체강화를 쓰고 있음에도 회로파열이나 마소 및 마력누수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사실. 기본 설계를 내가 직접 한 것은 물론, 개개인마다 최적화를 달리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그래…….”

나는 수연이 건네는 음료를 마시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링을 내려와 계단에 걸터앉은 경태가 실실 웃는 낯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아까는 대단하셨지 말입니다. 몸이 뜬 상태에서 순전히 코어의 반동만 가지고 저를 깔아버리시다니. 저랑 형님이랑 체급 차이가 얼만데……. 압도적인 힘은 다른 요소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네요.”

“그런 상황에 몰린 것 자체는 반성해야겠지.”

“에이, 형님도……. 2대1 싸움에서 어떻게 그보다 잘합니까?”

“못한다고 선을 그으면 평생 못하는 것 아니냐.”

“그야 그렇지만요.”

“씻기나 해라. 밥 먹어야지.”

“옙.”

지금은 씻고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당장 죽을 것처럼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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