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9화 (29/561)

#7. 8월의 가로수들 (2)

“신체기능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참으로 기능적인 대답이다.

“그건 안다.”

내가 조정했고 그 결과를 매일같이 확인하니까.

“난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이 없는지 궁금했던 거였다.”

짧게 생각에 잠겨있던 수연이 희미하게 고개를 흔든다.

“역시 문제없습니다.”

“그러냐.”

난 수연의 호흡을 눈여겨보았다. 말을 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이 녀석은 미미한 숨을 아주 느리게 쉬고 있었다.

일부러 참는 게 아니라 호흡의 효율이 그만큼 증가한 덕분이다.

내 영의 회로를 마소 농도에 맞게 조율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시점에서, 나는 가장 긴요한 전력이 될 부하들부터 회로를 열어주는 과업에 착수했다. 경태, 수연, 경호실과 국제사업부, 행동타격대, 그 밖의 간부 및 본사 배치인력 등 급변사태 발생 시 고강도 교전에 노출될 개연성이 존재하는 애들.

안정적인 영의 회로가 처음으로 개화시키는 능력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생명의 기본적인 기능들을 강화하는 쪽이다. 그러나 그 기능들이 반드시 균형 있게 향상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예컨대 면역체계의 과도한 강화는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을 야기한다. 골격의 강도는 그대로인데 근력만 계속 증가하여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폐의 기체교환 효율- 즉 산소를 흡수하는 효율이 너무 급등해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바닥을 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겠지. 몸의 염기도(鹽基度)가 치명적으로 올라갈 테니.’

물론 그 전에 호흡을 조절하면 될 테지만, 사람의 호흡은 다분히 습관적이어서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게 아니면 어려울 수 있었다.

이처럼 자연발생적 원시마법에 의한 인체강화는 인공적으로 설계된 내 인체강화 술식과 달리 무수히 많은 위험성들을 내포하고 있다.

원시마법에 대한 적응력만 놓고 볼 때 동물은 식물보다 한참이나 열등하다. 식물은 자신의 일부를 죽여 가며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있으나, 동물은 그게 불가능하니까.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회로를 개화시킨 부하들은 조직 산하의 병원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받으며, 그 상세는 나에게 직통으로 보고된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새겨준 회로들은 자연적으로 열릴 회로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정교하며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었을 터이나, 그래도 만약의 만약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

자체적으로 역장을 형성하는 회로의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로가 정착한 다음에는 나도 더 이상 손을 써줄 수가 없다. 본인의 역장이 내 마법적인 간섭을 밀어내버리니까. 문제가 있다면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내가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소식들을 전했다.

「-각종 경기들의 일정이 줄줄이 미뤄지면서 도쿄에선 관광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이코 하시모토 올림픽 담당상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올림픽 개최를 연기할 당시 8월 무더위를 고려해 순서를 미루었던 축구 경기 일정을 다시 앞으로 당겨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기존의 일정에 맞춰 현지 적응에 한창이던 각국 축구 대표단은 하시모토 담당상의 발표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진이 남아있는 제3세계에 의료진과 전세기를 보내면서까지 대표단을 실어왔던 일본. 그만큼 이번 올림픽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이겠죠. 그러나 성화가 봉송 도중 꺼지는 사건에 이어 올림픽 개최 지연으로 인한 추가비용 발생, 후생노동성의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통계 조작 의혹, 바이러스 확산 도중에 있었던 총리 부인의 부적절한 신사 나들이, 이번엔 도핑 논란과 경기 중단 사태까지. 끊임없이 잇따르는 악재들에 아베 총리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난 반년 간 서서히 누적된 세계의 변화는 이제 인류가 인지 가능한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초 단위의 기록 갱신이자 급증하는 암 발병률이며, 야생동물에 의한 인명사고 증가와 도로를 손상시키는 나무의 뿌리들이기도 했다.

‘30만 6천 972그루……라.’

이게 서울 한 도시에 있는 가로수의 숫자다. 보고서에 첨부된 중량 추정치를 보면 근원 직경이 10센티만 되어도 그루당 무게가 1톤을 넘는다. 생체질량에 따른 각성확률의 대비로는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13배 이상. 근원 직경 30센티부터는 34배, 40센티부터는 70배, 50센티부터는 100배 이상까지 치솟는다.

인간이 고작 세계기록에서 초 단위의 변화를 겪고 있을 때 8월의 가로수들이 본격적인 각성 및 기형적인 성장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였다.

난 보고서에 명시된 대응방안 중 하나에 주목했다.

“흠. 국립생태원? 산딸기 녀석에게 이런 조카가 있었나?”

조직 간부의 조카 하나가 작물생명과학을 전공하고 학과 교수의 사노비 노릇을 하는 중이니, 돈을 처발라 빠르게 박사를 달아주고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먹여 국립생태원에 꽂아 넣자는 제안. 발안자는 수연이라고 적혀있다.

‘괜찮은데?’

국립생태원이면 수목에 관한 온갖 통계와 국책연구의 결과물들이 집중되는 기관이다. 그 위상은 조만간 폭발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하겠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걸 넘어서서, 연구의 방향성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단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뒤쪽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고선 맡기기 어려울 역할. 단순히 연구원을 매수하는 것만으로는 내 지식을 풀어놓기 곤란하다. 비록 식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일지라도 마소와 회로에 관한 지식은 동물에게 확장 적용될 수 있다.

이는 내가 비서실에 방법을 찾아보라고 특별히 지시한 사안이다.

‘이렇게라도 해놔야 원탁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겠지.’

영국 놈들이 마법연구에 관한 국제표준을 선도하게 되면 원탁의 영향력도 그만큼 강해지지 않겠는가? 전 세계의 관련 정보들이 런던으로 집중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지식의 불균형도 불균형이거니와, 그 정보 가운데 나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수연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냐?”

수연은 보기 드물게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송흥주 부장을 산딸기라고 부르셔서…….”

“…….”

이런.

이건 경태의 영향이다. 녀석이 매번 산딸기, 산딸기 하고 부르니 나까지 실수를 하게 되지 않는가.

산딸기는 경찰이 붙인 조직명으로부터 유래한 별명이다. 안산 산딸기파. 필요하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파견되는 팀이 어쩌다 안산에서 흔적을 남기는 바람에, 경찰에겐 실체가 불분명한 의문의 조직으로 남았다. 의문으로 남도록 돈을 쓰기도 했지만.

수연은 표정을 지우고 본래의 주제로 돌아갔다.

“다른 관계시설에 대해서도 동일한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만, 적합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외국의 기관은 더더욱 그렇고요.”

“네 동문 중에도 딱히 없는 모양이지?”

“예.”

“아쉽구나.”

“죄송합니다.”

“그 죄송하다는 말은 그만 좀 해라. 난 네가 거기서 몇 명이라도 협력자를 모집한 것 자체가 놀라웠으니.”

“……예.”

이 녀석은 예전부터 공부머리가 좋았다. 하는 꼴을 보고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는 생각에 유학 물을 먹여봤더니, 고작 2년 반 만에 졸업장을 따오지 않겠는가. 고등학교 졸업도 검정고시로 대신했던 녀석이, 나름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의 에머리 대학에서.

‘조직에 한시라도 빨리 합류하고 싶다는 이유였지.’

심지어 그 치열한 학업의 와중에 인맥을 관리하며 고학생 셋을 현지협력자- 조직 장학생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과 지원을 구하는 메일을 받았을 때의 어처구니없음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싫어하실 것은 알지만-”

신중하게 입을 여는 수연.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으니, 조직원을 영입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식을 달리한다? 어떻게?”

“목숨을 빚져야 할 지경에 처한 사람을 물색한 다음 필요한 인재를 고르는 게 아니라, 필요한 인재가 목숨을 빚지도록 만드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함정을 파서?”

“예.”

난 눈을 심하게 찌푸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수연은 내가 드러내는 거부감 앞에서도 특유의 침착성을 유지했다.

“분명한 건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을 견제할 학문적 성과가 한국에서만 쏟아져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목표는 형님의 최종적인 승리이며, 다른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라도 말이냐?”

“극단적인 상황엔 때로 극단적인 대응이 요구됩니다. 형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더라도 제 충성엔 변함이 없을 것이고, 비밀은 끝까지 지켜질 것입니다. 그리고 작전을 수행하는 인원들은 작전의 전모를 모르도록 파편화하면 그만입니다.”

“…….”

여기에 대고 차마 너를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소리는 못하겠다. 그러나 수연의 제안은 잠재적으로 조직 전체를 무너뜨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수연의 계책을 실제로 시행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사실이 어쩌다 조직 내에 새어나갔다고 치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게 빚을 지고 있는 애들이 저마다 의심을 품기 시작할 테지.’

어쩌면 나도? 하는 의혹들. 물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 도움을 받은 녀석들까지 그러진 않겠으나, 보스로서의 나에 대한 믿음은 절대로 지금과 같을 수 없을 터. 구원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결함이 큰 인간에 대한 메마른 의리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렇게 삐걱대는 조직은 결코 원탁에 대적할 무기가 되지 못한다.

자칫 조직 전체를 날려버릴지 모를 폭탄의 도화선을 수연 한 사람에게 쥐여 줄 순 없는 노릇. 이 녀석은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는 눈치지만, 나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믿지 않는다. 능력 있는 부하에 대한 신뢰와 맹목적인 믿음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안 된다.”

난 반복해서 강조했다.

“절대로 안 돼.”

“알겠습니다.”

받아들이는 수연의 낯빛에 찰나의 아쉬움이 스친다.

“차선책으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이 있겠습니다만, 이 방법으로는 형님의 지식을 직접 전달할 수가 없으므로 효율이 상당히 떨어질 것입니다.”

“감수하는 수밖에.”

“다소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다른 대안도 있습니다.”

“말해봐.”

“런던입니다.”

“……?”

내가 의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자, 수연이 차분하게 풀어놓는 계획.

“「빛과 진리의 원탁」이 마법에 관한 분야에서 장차 세계를 선도하고자 한다면, 이 시점에선 이미 영국정부나 정계에 연이 닿아있는 유력인사에게 관련된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영국정부라면 모를까, 원탁의 마법사들은 마법의 대가일 뿐 전자보안의 대가는 아닙니다. 기껏해야 돈 많이 들여 외주를 쓰는 수준이겠죠. 또한 영국정부와 원탁의 관계가 그렇게 원만하기만 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

정말이지, 머리 하나는 참 잘도 돌아가는 녀석이다. 과거 정부로부터 손절당하기 전에도 원탁은 사뭇 고립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이었다. 놈들은 단 한 순간도,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지혜를 정부에 전적으로 공유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 놈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보안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있나? 결국엔 자신들이 정부의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놈들인 것을.

“맞다 치고, 다음.”

“다음으로 형님께선 그 연결고리를 유추할 만한 원탁의 내부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죽은 스승새끼의 지식을 말하는 거다. 비록 수십 년 전의 지식일지언정, 종교적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마스터들의 인간관계는 ‘귀족적으로’ 고착되어 있으니.

“그리고 런던 정가의 비밀스러운 정보는 언제나 다른 국가들의 주요한 관심사죠.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그렇습니다. 영국이 심상찮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정황만 파악한다면, 나머지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낼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들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것뿐입니다.”

그 살짝 밀어주기- 냄새를 맡게 해주기가 어감처럼 만만한 일은 아닐지라도,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마법 연구의 단초를 제공할 지식이 암암리에 주요 국가 전체로 확산된다면 원탁에 대한 간접적인 견제도 효율이 많이 높아질 터. 손을 모은 채 평가를 기다리는 수연의 모습이 예쁘게 보인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봐.”

난 보고서를 툭툭 두드리며 허가를 내렸다.

“돈과 인력은 얼마든지 가져다 써도 좋다.”

“예.”

수연이 까딱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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