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의 가로수들 (1)
끔찍한 일이 있었다.
중국 우한에서 출현한 바이러스성 폐렴 하나가 약 반년에 걸쳐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주요 국가들의 감염 확산이 억제된 현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감염자 수는 물경 310만에 이르렀으며, 사망자는 20만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후진국들은 신뢰할 만한 통계 자체를 못 내는 상황이었고.
이 사태를 바라보는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심정이었다.
‘마소의 풍요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세유기체에겐 유해한 환경이었을 텐데.’
스승새끼가 몸담았던 「빛과 진리의 원탁」은 영국 정부에게 손절당하기 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생물병기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마법적인 질병을 창조해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을 뿐이다.
세균은 작다. 바이러스는 더더욱 작다.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단위의 유기체에 깃든 영은 회로가 새겨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소와 마력에 강하게 피폭당한 병원체들은 자외선에 노출된 것 이상의 속도로 지리멸렬하게 죽어나갔다.
미세유기체에게 회로를 새길 수만 있다면, 크기가 작은 만큼 마소 요구량도 미미하여 마소가 거의 고갈된 환경에서도 유의미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라는 게 영국 정부의 발상이었으나, 그건 결국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발생했단 말이지.
원래대로라면 더 크게 번졌어야 할 질병이 마소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로 억제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모종의 변인이 질병의 확산을 증폭시킨 것일까.
머리는 전자로 기울지만 가슴으로는 좀처럼 갈피를 못 잡겠다. 최근 제약회사를 비롯한 여러 바이오기업들이 균주 및 세포주 배양 수율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걸 보면, 역시 전자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어쩌면 제국주의자들의 실험 자체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어딘가 편찮으십니까?”
상념에서 깨어보면 내 안색을 살피는 수연의 얼굴이 조금 가깝다.
“딱히.”
조직의 우두머리가 자신감 없는 태도를 내비쳐선 곤란하다. 난 표정에서 감정을 빼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저 운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탓입니다.”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넌 아주 잘해주었어.”
이 녀석의 사죄는 광둥삼합회- 실질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체결한 무기 공급 계약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중국 놈들의 주문은 납기에 제한이 걸려있었다. 한데 생각해보면, 이 납기제한은 우리만이 아니라 협상장에 나선 짱깨들에게도 족쇄처럼 작용하는 조건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온 지시인즉 어떻게든 그 전에 해결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수연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계약이 무난히 성사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양보에 양보를 반복하여, 너무도 쉬운 협상과 딴 주머니 찰 욕심에 눈이 먼 중국 측 협상단이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터무니없는 요구를 거듭하도록 유도한 것. 거래항목이 워낙 다양하여 시간을 끌기가 쉬웠다고 한다. 각각의 항목마다 마진을 달리했으므로.
때가 무르익자 수연은 꾹 참아왔던 분노를 연기하며 판을 엎어버렸다.
사후보고의 녹취록엔 당시의 발언이 적혀있었다.
「우린 이미 전례 없는 수준의 양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당신들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버리는군요. 정말로 모욕적인 요구입니다.」
「앞으로 우린 여러분과 거래하지 않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수연이 내세운 명분은 체면이었고, 짱깨들에게 있어서 체면은 목숨이 오가는 문제였다.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게 자신들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다 된 밥이라고 보고 예비 거래선을 준비할 생각조차 않았던 중국 놈들은 엄청난 양보를 해서라도 ‘격노한’ 수연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기한을 못 맞추면 깨지는 건 자신들일 테니.
‘깨지는 선에서 그치면 다행이지.’
공산당 내부의 실적경쟁과 계파다툼은 살벌하기로 악명 높다. 낙관적인 경과보고를 몇 번이고 올려둔 상태에서 무리한 욕심으로 일을 그르쳐봐라. 실적과 부정축재를 함께 날려먹은 직속상관의 분노가 과연 일반적인 징계만으로 해소될까?
그리하여 최종 협상은 대단히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되었다.
전략 자체는 간단할지라도 실천은 별개의 영역이다. 행동이 말처럼 쉬울 것 같으면 주식 좀 안다는 사람들은 죄다 백만장자가 되어있을 터. 이번 협상에서 보여준 수연의 역량은 내가 알고 믿던 것보다 한 단계 성장한 것이었다.
나는 턱을 괴고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마. 이번에 죽은 애들은 네 책임이 아니야. 그것 또한 운이 나빴던 거지. 그 바이러스가 그렇게까지 확산되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어. 할 수도 없었고.”
“아닙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였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요.”
“그 정보는 나도 받아봤다.”
“…….”
“다시 말하지만, 너에겐 잘못이 없다. 이건 ‘내가’ 내리는 판단이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수연이 짧게 고개를 숙인다.
이 녀석이 자꾸 자기 책임을 이야기하는 건, 상품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태국으로 들어간 우리 애들 중 다섯이 폐렴과 뎅기열의 합병증으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오가는 길이 험한 데다 방역봉쇄의 여파도 있어 소식이 전해지는 것조차 늦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팬데믹이 터졌으면 납품을 연기해주는 게 맞다. 그러나 이쪽 시장엔 상식이라는 게 없었고 중국 놈들에겐 더더욱 없었다. 놈들은 약정한 기일을 무조건 준수하라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해왔다. 시국이 시국이라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질까 두려웠던 것이겠지. 그러면 횡령을 못하게 되지 않는가. X미 뒈진 짱깨 새끼들 같으니.
난 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가만히 시선을 내리까는 녀석.
‘참, 예전부터 변하질 않아.’
수연의 자책엔 슬픔이 없었다. 이 녀석을 오랫동안 보아온 나는,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의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형태로부터 대략적인 감정을 구분해낼 수 있었다. 보통은 이자가 뭔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정도로 그치는 투시임에도.
그러므로 이 녀석이 느끼는 책임은 오로지 제 오판으로 나에게 입힌 손실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전전두피질에 흐르는 강도 약한 신호의 정체는 필시 나를 향한 죄의식일 테고.
사망자가 다섯.
확실히 가벼운 손실은 아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마음이 상했었지.
국제밀수의 일선에 투입하는 애들은 경호실과 마찬가지로 행동타격대 이상의 정예이자 내 귀중한 자산이다. 개개인이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고, 유사시를 대비한 험지생존기술 및 교전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선 자살과 자폭으로 흔적을 지울 만큼 투철한 충성심과 탁월한 임기응변 역량을 겸비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환산하면 최저 수십억씩을 매겨야 할 터.
돈과 달리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기에 더더욱 큰 손실이다. 현찰로 되살릴 수만 있다면 천억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몸값 비싼 축구선수 하나의 연봉밖에 더 되나?
최고의 성적을 바란다면 최고의 구단을 꾸려야 한다.
“형님.”
“음?”
“태국 건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운이 나쁘다고 하셨던 겁니까? 혹시 김재환 사장의 일을 신경 쓰고 계십니까?”
“……그것도 아니야.”
김재환은 여의도 김씨의 본명이다. 녀석은 팬데믹으로 인한 폭락장에서 3천억대의 손실을 보고했다. 이유와 시기가 다르긴 하나 어쨌든 폭락장이 올 것에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실패 없는 투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무조건적인 성공을 요구하는 조직은 결국 실패를 은폐하는 조직으로 변질될 따름이다. 보고받은 손실은 불가항력에 가까웠으며, 나는 김재환이가 이번 경험을 통해 더욱 뛰어난 투자가로 거듭날 것을 믿는다.
내 아쉬움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반년씩이나 발이 묶여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운 거다, 나는.”
“아.”
수연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세계 각국이 방역 목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기 전, 1월과 2월에 걸쳐 가장 중요한 장소들은 탐사를 마쳐두긴 했다. 그러나 원탁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려놓아도 모자랄 이때 추가적인 탐사가 봉쇄된 건 뼈아픈 일이었다. 중진국 이하로는 지금까지도 항구와 공항을 걸어 잠그고 있는 국가들이 많았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한숨을 참기가 어렵다. 정말로, 이렇게 운이 안 따라 줄 수가 있나.
“TV나 켜봐라.”
내 말에 수연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곧바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무실에서 매양 시청하는 건 뉴스 채널이었다. 여러 사건사고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수연이 가져온 보고서를 정독하던 나는, 아나운서가 전하는 올림픽 소식에 고개를 들었다.
「다음은 일본 소식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과 일본 정부의 늑장 방역 및 불투명한 정보공개 등으로 한때 좌초 위기마저 겪었던 2020년 도쿄 올림픽. 그러나 개최일자를 한 달 가까이 연기한 끝에 결국 어제, 성공적으로 개막식을 치러냈죠. 아베 총리의 강력한 추진의지와 적극적인 올림픽 외교가 빚어낸 성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쿄 올림픽이 첫날부터 좋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바로 도핑 논란인데요, 선수단 대표 다수의 거센 항의로 일부 경기는 아예 중단되기까지 했습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특파원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강영림 특파원?」
화면이 바뀌어 경기장을 배경으로 마이크를 든 기자의 모습이 잡혔다.
「예, 강영림입니다.」
「현지 상황, 어떻습니까?」
해외 특파원의 보도가 늘 그렇듯 대답은 한 박자쯤 늦게 돌아왔다.
「네. 저는 지금 도쿄 고토쿠(江東区) 소재의 올림픽 아쿠아틱스 센터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오전 9시부터 남자 400미터 자유형 예선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경기 진행 초반부터 기존 세계기록을 큰 폭으로 경신하는 사례가 속출하여 결국 경기중단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아나운서가 다시 질문한다.
「세계기록 경신 사례가 다수 쏟아졌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경기 진행이 중단될 수 있는 건가요? 그게 선수들 실력의 상향평준화를 의미하진 않겠습니까?」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자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세계 정상권 선수들의 메달 경쟁은 백분의 1초를 다투는 싸움이죠. 실제로 오늘 이전까지 최고기록 보유자였던 독일의 폴 비더만 선수는 단 0.01초 차이로 기존의 1위 기록을 경신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태국의 피타야 송캄(Pitaya Sonkham) 선수가 비더만 선수의 기록을 27초 92나 단축하여 비공식적인 세계 최고기록 보유자로 등극했습니다.」
「27초 92라고요?」
「네. 송캄 선수의 기록은 3분 12초 15이고 비더만 선수의 기록은 3분 40초 07입니다. 지난 20년간의 자유형 장거리(Long course) 400미터 월드 레코드가 모두 3분 40초대에 머물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죠.」
「과연 충격적이군요. 한데 그런 사례가 송캄 선수 말고도 많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타우픽 아흐마드(Taufik Ahmad) 선수가 3분 19초 83을, 캐나다의 딜런 바나비(Dylan Barnaby) 선수가 3분 22초 20을 기록하며 예선전 2위와 3위에 올랐고, 그 아래로 7위까지가 모두 비더만 선수의 기록을 초 단위로 압도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1위부터 7위까지의 국가들 가운데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이 단 한 번도 세계기록을 내본 적이 없는 국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도핑 의혹이 제기될 만 하네요?」
「예. 경기가 중단된 후 타우픽 아흐마드 선수가 흉부와 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이송되어 어수선함을 더했습니다. 의혹을 제기한 선수단 대표들은 아흐마드 선수의 컨디션 난조가 약물 과용의 부작용이 아닌지 의심하며 철저한 검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다만 어떤 약물이 이토록 강력한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올림픽 위원회 측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올림픽 위원회는 선수단 전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약물 검사를 진행하는 한편, 공식 타임키퍼(Timekeeper) 제조사인 오메가 사(社)의 파견 기술자들에게 전자계측 시스템의 이상여부 확인을 의뢰했습니다.」
「아아. 계측장치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오메가 관계자는 자사 퀀텀 타이머의 최대오차가 천분의 1초에 불과하며, 기록 영상을 다시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이 증명된다고 항변하면서도, 위원회가 요청한 시스템 점검엔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점검이 완료될 때 까지는 시간 계측이 필요한 다른 경기들도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상세한 소식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들은 나는 눈동자를 수연에게로 돌렸다.
“적응은 잘 되어가나?”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이는 당연히 육체강화에 대한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