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6화 (26/561)

#6. 전율하는 거인 (5)

본디 이 「전율하는 거인」은 느리게 죽어가는 숲이었다. 수명이 다 된 줄기들을 새롭게 자란 줄기들이 대체해야 하건만, 생태계 왜곡으로 인한 초식동물 증가, 인근 목장들의 무분별한 방목 등으로 인해 새로 돋는 싹이 남아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숲의 경계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환경당국이 취한 보호조치였지만, 그 단순한 조치가 이 오래된 숲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숲의 중심부가 지척으로 가까워진 지금, 나는 시린 계절의 하얀 숲속에서 연둣빛 새순과 마주하고 있다.

“…….”

난 부하들을 대기시킨 채 손끝으로 새순을 건드려보았다. 숲은 곧 통상시야를 벗어난 영역에서 마력의 잔잔한 흔들림으로 반응했다. 내 손길을 감지한 것이다. 인간의 것과는 원리가 다를지언정, 식물에게도 나름의 촉각이 존재한다.

새순이 돋아난 그루터기엔 성화(聖畫)에 덧칠한 낙서처럼 핏빛의 칠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악마숭배자들의 미학엔 아름다움이 없다.

위에선 외곽엔 희박하던 빛이 내리쬔다. 중심부의 안개는 층이 얇았고, 목적이 선명한 대류(對流)를 통해 주변부로부터 끊임없이 온기를 공급받고 있었다. 속도는 느려도 꾸준한 흐름이다. 이로써 이곳은 광합성이 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파악한 숲의 마법은 두 가지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물의 상전이(相轉移). 그리고 물에 대한 구속력.’

안개가 품은 온기는 태양광에서 비롯된 지분과 물의 상전이로부터 부수적으로 발생한 지분이 섞여있을 것이었다. 이중 후자는 수분의 물리적 압축이 빚어내는 열.

유효하게 작동하는 회로의 비중이 1푼에 불과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술식을 구축하고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는 사실이 감탄스럽다. 최저 8만 년, 최대 100만 년을 존재해왔으리라 추정되는 포플러 숲의 영혼은 그 세월에 걸맞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도의 염동력 술식으로 비슷한 현상을 빚을 순 있겠다. 허나 숲의 마법은 염동력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직 낭비가 많고 단순한 이 술식을 내 회로에 맞게 이식(porting)하고 개선하는데 성공한다면, 이것만으로도 나는 전대미문의 폭탄마로 거듭날 수 있을 듯했다.

“형님.”

경태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본격적인 교전을 치러도 괜찮은 겁니까?”

“왜?”

“빗나간 탄들이 나무줄기에 와다다다 박히기라도 하면 거인이 화를 낼까 봐 그렇습니다.”

그런 걱정이었나.

“내가 이 숲을 계속해서 의인화하긴 했다만, 식물에게 동물적인 사고와 감정을 그대로 투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어……. 아무 반응도 없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아니. 반응이야 하겠지. 가능하다면 위협을 배제하려고도 할 것이고. 단지-”

나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짚어보였다.

“단지, 사고를 틀에 가두지 말라는 거다.”

“아하.”

“차라리 외계생명체를 상대한다고 생각해라. 감각도, 감정도, 지능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식물에겐 통각이 없지만 그것이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통의 개념 자체가 동물과는 다르단 뜻일 뿐.

‘달리 대체할 표현이 마땅찮으니 동물적인 단어를 쓸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경태는 내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었다.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본질적인 차이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별개로, 경태가 제기한 우려는 나 역시 염두에 두고 있던 바다. 나는 숲이 ‘분노’ 내지 ‘당황’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숙고해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공격은 속행한다. 강풍에 대비해라.”

“강풍입니까?”

“그래. 현재로선 그게 이 숲이 분노를 표현할 유일한 방법 같구나.”

“알겠습니다.”

숲을 돌며 악마숭배자들의 2인 1조 외곽 경계를 다 무너뜨리고 숲의 중심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린 사탄 졸개들의 마지막 무더기 사냥만을 남긴 상태였다. 통상시야가 소폭 개선된 환경에서 자동화기로 무장한 열아홉과 교전을 치르자면 유탄(流彈)이 촉발할 여파에도 대비해야 한다.

보다 단단히 엄폐를 유지하는 것 외엔 달리 대비할 방법이 없을지라도, 무엇이 닥쳐올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었다.

경태가 고개를 까딱였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공격은 내 발포로 개시된다. 적을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니까. 적이 대응사격을 개시하면 그 총구화염을 보고 경태 이하도 대략적인 제압사격을 가하게 될 것이었다.

안개가 소음을 억제해줄 줄 알았으면 수류탄을 구해왔을 텐데.

부질없는 미련을 떨치며, 난 조정간을 단발로 맞추고 조준선을 정렬했다. 속으론 표적에 번호를 매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았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적들이 피격에 반응하기 전까지 셋을 죽이는 게 베스트겠다. 가늠자와 가늠쇠 너머에 적의 머리를 두고 호흡을 차분하게 다스린다.

스읍, 후-

날숨을 중간에 끊어 몸의 기복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나는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터텅!

터지는 대가리가 둘에 관통당한 어깨가 하나. 세 번째 놈은 안 뒈졌다. 비명과 쌍욕이 터져 나온다. 난 즉각 조정간을 밀고 우왕좌왕하는 잡것들에게 3점사를 갈겨댔다. 터터텅! 터터텅! 터터텅! 쓰러진 줄기들이 파편을 튀기는 가운데 몇 줄기의 선혈도 같이 뿜어진다. 부상자가 둘 늘었다. 6밀리 강판을 뚫는 철갑탄 세례는 살아있는 줄기에도 거침없이 박혀들었다.

화악- 하고 안개가 파도친다.

아직은 흐릿한 미풍이었다. 물의 압축과 팽창이 만들어낸 바람에 안개가 흩날려 통상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가운데 악마숭배자들이 당황하여 내지르는 고함들. 뭐야?! 어떤 새끼들이야?! 직후 반격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챠라라라라락!

울림의 높이부터 다른 총성. 무지막지한 연사속도 탓에 날카로운 쇳소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로 이어진다. 그 높은 연쇄가 끝나고서야 낮은 음계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방향을 한참이나 잘못 잡았다. 난 어중간하게 엄폐한 사수의 상체에 아음속 철갑탄 세 발을 박아주었다. 반동이 어깨를 친다 싶은 순간 표적의 이마에 붉은 점 세 개가 찍히며 뒤통수가 폭발한다. 두개골이 앞뒤로 깨진 녀석이 풀썩 무릎 꿇고, 남은 적들이 악을 쓰며 초당 수백 발의 총탄을 분사하는 수준으로 뿌려댄다. 순간적인 화력이 워낙 엄청나서 이번엔 나도 몸을 사려야만 했다. 방탄복과 방탄모는 최후의 보험에 불과하다.

흔들. 한순간 거센 바람이 등을 밀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숲이 당황하는 느낌. 우리가 빗맞히는 탄보다 적들이 빗맞히는 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바람도 이쪽에서 더 많이 불 수밖에 없었다. 숲은 시각적으론 빛과 어둠만 구분하는 장님이나 다름없으니까. 진짜 가해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있나.

무지막지한 탄막을 형성하던 적들의 사격은 채 1분도 안 되어 한계를 맞이했다. 탄이 바닥나서가 아니라 소음기가 과열되어서다.

“Fuck!”

저편에서 들려오는 단음절의 욕설. 연사력이 정신 나간 총으로 대용량 드럼 탄창들을 비워댔으니 갇힌 열이 오죽이나 뜨거울까. 그 달아오른 쇳빛들을 통상시야로도 식별할 수 있을 지경. 저놈들 총은 그렇잖아도 소음기 내구성이 X신 소리 듣던 물건이다.

터터텅! 터터터텅!

경태 이하가 더욱 거세진 강풍을 가까스로 견디며 제압사격을 실시했다. 나 또한 엄폐물 삼은 줄기에 단단히 몸을 밀착시켜 몰아치는 강풍 속 정조준 능력을 확보했다. 귓가를 가득 메운 바람소리에 내가 당긴 삼점사의 총성이 섞인다.

망할……!

한 뼘이나 빗나갔다. 우왕좌왕 엄폐가 아직인 놈을 골랐건만. 엄한 포플러 줄기만 바바박 부서진다. 방아쇠를 연달아 네 번 더 당기고서야 겨우 한 놈의 피를 볼 수 있었다. 이놈의 아음속탄은 바람의 영향을 지랄 맞게 받는다. 경태 이하의 사격에 부상당한 놈들의 존재가 그나마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이젠 적들도 몸을 가누기 어려워했다. 몰아치는 강풍에 미친 듯이 전율하는 가지들. 파도처럼 물결치는 안개는 밀도의 변화를 거듭하며 투명과 불투명의 경계를 오갔다.

악마숭배자들은 전투에선 아마추어일지언정 겁 하나는 지독하게 없는 놈들이었다. 나는 서열 높은 놈이 나머지에게 지시하는 내용을 독순술로 읽었다. 환경이 요란하여 잘못 알아듣는 부하들에게 소리를 키우지 않고 여러 번 반복해 지시한다. 이쪽이 엿듣지 못하도록 애쓰는 꼴은 가상하다만…….

터터텅!

엄폐물에서 포복으로 기어 나오는 녀석의 옆구리에 관통상을 뚫어준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들어간 탄은 뱃가죽을 찢고 땅을 치며 꺾여 반대편 옆구리로 튀어나갔다.

엄호를 받으며 흩어져 이쪽의 화력을 분산시키고 반 포위를 짜려던 절반의 적들은, 그러나 내 연속 사격에 차례차례 비슷한 최후를 맞이했다. 딱 한 놈만 제외하고.

“마아아아아직!”

낯짝에 마약을 분칠한 새끼 하나가 벌떡 일어나 달려든다. 내 사격은 간발의 차로 놈이 기어가던 자리를 두들겼다. 즉각 조준을 고쳐 삼점사를 쏘았으나-

‘신체강화……!’

암과 원시마법 각성을 함께 얻은 악마숭배자의 속도가, 새로 더해진 힘에 적응하지 못한 괴상한 움직임이 예측 사격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차라리 정면으로 달려들었으면 맞았겠는데 이번엔 안개와 강풍 탓에 비틀리는 경로가 문제였다.

철컥! 공이가 빈 약실을 치는 소리. 하필이면 이때! 난 즉시 탄창을 교환했지만, 저편에 남은 적들이 목숨을 내놓다시피 가하는 일제사에 바짝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마찬가지인 경태 이하의 머리 위로도 자잘한 파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우리 측 화력의 순간적인 침묵은 약에 취한 놈의 돌진에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넘어질 때마다 방향이 꺾여서 그렇다. 저는 똑바로 달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안개 속에서 방향유지가 쉬울 턱이 있나.

“마아아흐, 흐, 지익!”

호흡곤란에 시달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기고 뛰던 사탄의 광전사는, 결국 우리가 있는 선을 멀찍이에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

난 그 허망한 등짝에 연사를 갈겨주었다. 총성에 이은 둔탁한 타격음.

광전사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으되 이쪽은 돌격소총에 아음속 철갑탄을 장전해서 쓰고 있다. 권총탄이나 막을 가벼운 방탄판으론 소총으로 쏜 철갑탄을 방어할 수 없었다.

‘그냥 둬도 급사했겠지만.’

막 각성한 주제에 힘을 미친 듯이 끌어올린 탓으로 벌써부터 장기가 망가지던 놈이었다. 한계를 넘어선 능력 사용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 불완전한 회로, 마력의 급격한 누수에 따른 세포 붕괴는 일찍이 수연과 경태에게도 숙지시켰던 위험성이다.

화력의 균형이 역전되었다.

적은 이제 순간화력으로도 우리를 압도하지 못했다. 머릿수로는 여전히 근소하게 우위였으나 탄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분당 천 발이 넘는 발사속도를 무분별하게 남용해버린 결과다.

당장 한 놈이 분통을 터트리는 게 보인다. 나무 밑동에 총을 내리쳐 시뻘겋게 휜 소음기를 분지른 것까진 좋은데, 남은 탄창이 딱 하나뿐이었기 때문.

반면 이쪽은 소음기도 멀쩡하고 잔탄도 넉넉하다.

터터텅!

조준사격이 또 하나의 무가치한 인생을 끝장낸다.

저들이 더 이상 무지막지한 탄막을 뿌리지 못하게 된 시점에서, 사탄 졸개 하나하나의 간헐적인 대응사격은 아까보다 현저하게 감소한 위협이었다. 더욱이 이쪽이 여전히 소음기를 쓰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적들이 대응사격의 방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소음기는 탄속을 줄이지도 않고 살상력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지금 쓰는 「비흐리」처럼 총열이 짧은 총은 탄속과 정확도가 소폭이나마 증가하기까지 한다.

더욱이 소음만이 아니라 총구화염까지 줄여주기 때문에, 적들처럼 난사를 해대지 않는 이상은 섬광에 따른 위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순간에 이르도록 소음기를 제거하지 않은 이유들이다.

전투지속력이 고갈된 악마숭배자들이 거친 의견들을 교환한 끝에 최후의 선택을 내린다. 그것은 앞서 뒈진 광전사를 본받는 광신적인 돌격. 폭력이 미덕이고 살인이 교리인 종교의 광신자들이라 도주 따윈 선택지에도 없는 느낌이다.

놈들은 휴대한 마약봉지를 얼굴에 문대는 수준으로 흡입하고는, 눈을 껌벅이며 허연 낯짝으로 몸을 떨다가 그들의 신을 부르짖었다.

“아아아아아아르크투루스여! 높은 곳의 어두운 성좌들이여!”

그러나 광신이 부른 장렬함은 강풍을 견딜 자리를 버리는 우행이었다. 달리 선택지가 없기는 했다만.

어쨌든 잘되었다.

서열 높아 뵈는 놈을 살려다가 머릿속을 긁어볼 수 있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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