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율하는 거인 (4)
“어?!”
기겁한 두 악마숭배자가 본능적으로 반격한다. 놀란 초식동물이 움찔하듯 당기는 방아쇠일 뿐이어도, 30발을 1.6초 만에 갈겨버리는 총이라 눈먼 탄의 위협이 높다. 내 부하들이 아무리 날렵한들 손가락의 수축보다 빠를 순 없고. 그러나.
틱!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두 놈이 들고 있던 네 자루 모두.
“컥-!”
조금 더 나와 있던 놈이 먼저 복부를 얻어맞았다. 거의 동시에 가깝게 한 발짝 뒤에 있던 놈의 허리도 직각으로 꺾인다. 뒷놈을 친 경태는 측면으로 빠지며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옆구리를 콱 찍힌 사탄의 졸개는 숨이 턱 막히는 표정으로 주저앉는다. 경태와 부하들은 아픈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축생들을 찍어 누르며 무기를 빼앗아 팽개치곤 손을 묶고 입을 틀어막았다.
사로잡은 둘을 짐짝처럼 취급하며 체중을 가늠한 경태는, 부하들에게 손가락 셋과 넷을 순서대로 세워보였다. 끄덕인 부하 둘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악마 졸개들의 목덜미에 자백제 주사기를 꽂았다. 경태의 판단에 따라 미리 채워놓은 양의 4분의 3만 주입한다.
그사이 난 팽개쳐진 악마숭배자들의 총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철컥.
볼트를 당기자 약실에 있던 불발탄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실탄 뒤쪽엔 공이에 찍힌 흔적이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충격을 받고도 뇌관이 터지지 않은 것이다. 이 불발탄은 내가 사용한 마법의 결과물. 미리 장전해두었던 술식으로 네 개의 자그마한 발화를 억제했을 뿐이다.
후…….
나는 긴 날숨으로 몸을 이완시켰다. 예상한 결과일지언정 긴장은 하고 있었기 때문. 안정된 환경이 아닌, 근거리 교전에서 이런 식으로 마법을 사용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다.
‘오래 쓰진 못할 기교라 아쉽단 말이지.’
최초의 한 발. 자동화기는 그 한 발이 막히면 노리쇠를 번거롭게 후퇴 전진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모든 화기를 고철로 전락시킬 수 있다. 고로 내가 써먹은 발화억제는 최저의 비용으로 상대의 화력을 봉쇄하는 아주 좋은 기교였다.
그러나 이는 상대의 화기가 내 회로의 역장- 마소 장악력의 범위 내에 존재할 때에나 비로소 가능한 기교다. 거리가 멀거나, 총을 쥔 상대가 제 고유의 역장을 보유한 능력자라면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방식.
악마졸개의 총을 던진 난 불발탄만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기념품 삼아 가져갈 요량이다.
어으으-
상체를 일으켜 세워진 두 악마숭배자가 괴상한 소리를 이중창으로 흘린다. 풀린 눈으로 침을 흘리며 아직까지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부하들이 힘없이 흐느적대는 놈들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오클랜드에서와 달리 대뜸 자백제부터 놓은 건 이놈들이 광신도일 경우에 대비한 조치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소리를 질러댔다간 곤란해지니까. 정보의 오염 가능성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탄 졸개들의 입에서 침이 좀 덜 튀기를 기다려 물었다.
“사탄의 성도들아. 너희는 어느 교단 소속이냐?”
“교……단? 교단?”
교단이라는 단어를 모르겠다는 듯 입안에서 굴리는 졸개. 같이 묶인 동료가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아, 교단……. 우리는 「아르크투루스를 섬기는 자들」이야…….”
이름 자체는 처음 듣는 잡것들이었다. 「O7A」의 해외 방계에 속하는 전 세계 오만 잡것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순 없다. 직할 행동대나 부속교단이라면 몰라도.
다만 아르크투루스(Arcturus), 흔히 악튜러스라 부르는 목동자리의 가장 밝은 별을 단체명에 집어넣은 시점에서, 이놈들은 빼도 박도 못할 광신도 확정이었다. 왜냐면 이 별은 사탄숭배자들에게 있어 어두운 신의 성좌이며 가을철 인신공양의 대상이니까. 과거보다 순해진 현대적 사탄의 교회들은 이 신성한 별에 바치는 전통적인 제례를 폐기한 지 오래다.
“너희, 「아르크투루스를 섬기는 자들」이라 했지.”
“응, 맞아…….”
“이 숲엔 너희 교단뿐인가?”
“아니.”
“아니라고? 다른 교단이 같이 오기라도 했나? 영국에서 파견한 인력이라든가?”
“아니라니까……. 넌 왜 모르지……? X신이야……?”
“내가 뭘 모른다는 거냐.”
“조금 전 그 안개를 못 봤냐구 멍청아……. 이 숲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어두운 신들께서 권능으로 임하고 계신단 말야……. 크투나이, 네미쿠, 아타조스, 아르크투루스……. 오, 마-직. 영원한 힘과 성녀와 별들과 복수자들의 영광이여.”
“…….”
다른 놈들이 있다기에 대서양을 건너온 마녀의 직계인가 싶어 긴장했던 나는, 허무한 대답에 짜증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아아아직. 마아아아아아직. 마아아아아아아직!”
탁 풀린 눈으로 침을 흘리며 점점 크고 신나게 부르짖는 그놈의 마직. 그러자 옆에서 헤- 하고 있던 놈도 덩달아 마직을 외치기 시작한다. 대답하는 것도 그렇고, 한 놈은 아무래도 약이 좀 과하게 들어간 모양이다. 난 둘 다 뺨을 갈겨 늦기 전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마아아아직…….”
아무래도 이 방계 새끼들에겐 마직이 옴(ॐ) 같은 진언(眞言)으로도 통하는 모양이다. 외우기만 해도 어떤 신비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쪽은 치워라. 쓸모가 없겠어.”
지시를 받은 경태는 약이 과한 쪽을 뒤로 끌어내 뒤통수에 단발사격을 박아주었다. 툭 터지는 작은 총성과 팍 하고 튀는 검붉은 피. 숨이 멎은 시체는 앞으로 비스듬히 꼬꾸라진다.
난 살려둔 쪽을 상대로 심문을 계속했다.
“묻겠다. 너희는 누구의 지시로 여기에 왔지?”
“당연히…… 우리 대장의 지시지, 씨발놈아…….”
“너희가 이 숲에 온 건 너희 교단의 의지냐,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의지냐?”
“몰라…….”
자백제의 또 다른 단점. 자백제로 쓰이는 약품은 대상의 사고능력을 떨어트리기에, 질문이 어려우면 이해를 잘 못한다. 그래서 모른다는 답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 칠각기사단(O7A)의 그랜드 마스터 말이다.”
“아아, 로드 라운위사 그레이스(Grace the Lord Rounwytha)……. 선지자이자 성녀 되신 우리의 아름다운 구세주……. 그분께선 우리에게 천년왕국을 약속해주셨다구……. 부럽지? 응? 부럽지?”
“그래, 아주 부럽구나. 아무튼, 그 여자가 너희를 이 숲으로 가라고 했나?”
“어.”
“…….”
쉽고 짧은 답이 무겁기도 하다.
“그녀가 무엇을 시켰는지 말해봐.”
그러자 약에 취한 얼간이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고백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교리부터 시작해서 정기적인 집회와 폭행, 살인, 절도, 강간, 방화 등 어두운 신들이 기뻐하는 행위들까지.
이놈은 그레이스의 종교적 가르침을 그녀가 ‘시킨 것’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했던 질문들의 맥락은 싹 잊어버린 채로.
‘이래서 자백제를 잘 안 쓰는 건데.’
대상이 멍청하면 멍청할수록 자백제를 쓰기가 꺼려진다. 또 아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놈들은 약에 취하고도 거짓을 토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질문을 조금씩 바꿔가며 교차검증을 하다보면 진위가 드러나긴 하지만.
난 한숨 한 번 다시 쉬고 질문의 구체성을 보강했다.
“‘그레이스가’ ‘너희에게’ ‘이 숲에서’ ‘무엇을’ 하라고 했는지 말해.”
또박또박 강조하며 물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대답이 흘러나온다.
“그분은 우리에게…… 숲의 영혼을 인도하라 하셨어……. 어두운 신들께서 거하시는…… 불가해의 영역으로…….”
마녀가 재정립한 사탄숭배 신앙- 기존의 교단을 흡수하고자 적당히 지어냈을 교리에서, 불가해의 영역은 모든 마법(마직)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숲의 영혼을 불가해의 영역으로 이끈다는 건 숲의 마법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물의 피로 신성한 칠각의 별을 그리고…… 제물의 생명을 바쳐…… 이 숲의 영에게 길을 만들어줬지……. 많이 만들어줬지……. 신나는 일이었어…….”
“제물이 굳이 사람일 필요가 있었나?”
양분으로서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가 없다. 고로 인간을 먹는 숲과 동물을 먹는 숲은 사실상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인신공양에 따르는 현실적 위험을 굳이 감수해야만 했을까?
허나 이는 어리석은 의문이었다.
“사람일 필요가 있냐고……?”
약에 취한 사탄숭배자가 멍한 눈에 멍한 의문을 담아 나를 바라본다.
“세상에…… 사람이 아닌 제물도…… 있어?”
“…….”
그래, 이것들은 악마숭배자들이었지. 상식이 다소 맛이 간 인간들.
아무래도 인신공양은 종교적 광신을 조장한 마녀 자신의 업보라고 봐야겠다. 이 나조차 때로는 조직의 관성에 끌려가는 마당에.
이러니까 조직문화는 이성적이어야 하는 거다.
“그건 됐고, 그레이스가 너희에게 달리 시킨 건 없나?”
“있지. 우리는 축복을 받을 거야……. 축복, 아, 축복. 내 영혼을 적실 영원한 힘…….”
그건 시킨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괜히 나오는 말도 아닐 것이다. 사고의 흐름으로 미루어, 필시 지시를 받을 때 함께 들은 내용이겠지. 그렇다면 그레이스의 숨겨진 목적도 대충 알 만하다.
‘결국 이것들 역시 다른 의미의 제물이군.’
영원한 힘의 축복이 내면에 깃든다는 건, 현상만 놓고 보면 둘 중 하나를 뜻한다. 독특한 암에 걸리거나, 영혼에 회로가 뚫려 초능력을 각성하거나. 둘 다일 수도 있지만 암에 걸리면 어차피 뒈질 테니 큰 차이는 없다.
경태의 가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회로가 뚫리면 능력자가 생겨서 좋고, 암에 걸려 죽으면 암 덩어리가 남아서 좋다.
마소암은 마소와 마력이 주어지는 한 모체가 죽어도 증식을 거듭한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살찌울 육종 덩어리는, 죽은 제물을 통해 인간의 육을 양분으로 인식한 숲이 그 다음으로 끌어당기기에 적합할 ‘살아있는’ 양분이었다.
그로부터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진정한 의미에서 산 사람을 잡아먹는 미궁이 완성될 테지. 사냥감에 대한 단계적인 인식. 반드시 성공한다는 장담은 없을지언정 그레이스 입장에선 시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것들에게 무전기가 없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암의 진행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먼저 증상이 심해진 놈이 무전망에 대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나머지 무장한 제물들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 아닌가.
한데 이 모든 가설을 증명하려면 한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암 걸리기 좋은 자리를 찾는 능력.
“몰라. 몰라…….”
영국에서 보내온 무언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탄의 추종자는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만취한 주정뱅이가 흔들거리는 모양새로. 자백제의 한계를 감안하여 형식을 거듭 바꿔 물어도 여전히 같은 대답만 돌아올 따름.
“아, 가렵다……. 풀어줘……. 긁을 거야……. 아프면서 가렵고…… 가려우면서 아파……. 아픈 건가? 가려운 건가아? 모르겠다……. 민트초코 피자 먹고 싶어…….”
가려움이 괴로운지 몸을 땅에 대고 비벼대는 악마숭배자의 모습. 마취제와 뿌리가 같은 자백제의 효과가 슬슬 줄어드는 듯하다.
“일으켜 세워.”
경태가 놈의 뒷덜미를 붙잡아 거칠게 들어올린다. 난 한쪽 무릎을 꿇어 멍한 눈을 찌푸리는 악마숭배자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조금만 참아라. 질문 몇 가지만 더 대답해주면 내가 대신 긁어줄 테니.”
“얼른, 얼른…….”
“그래.”
이런 조무래기도 자기네 패거리의 숫자와 서열, 본거지 정도는 알 것 아닌가. 또 그들 각각이 어떤 화기로 무장했는지, 암구호 따위가 있는지, 유사시 행동수칙은 어떠한지…….
기대 가능한 모든 정보를 얻은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이쯤이면 됐다. 이제 약속을 지키마.”
“약속……. 무슨 약속을?”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고 했을 텐데.”
“아, 맞아……. 빨리 해줘……. 너무 가렵다구…….”
“비켜라 경태야.”
터엉!
난 이제껏 성실하게 대답해준 놈의 뇌를 총탄으로 긁어주었다. 전신의 가려움을 이보다 시원하게 긁어주는 방법도 없을 것이었다. 코끝에 희미한 초연이 스치고, 소음기에 한 차례 여과된 총성은 완충기 역할의 안개에 갇혀 기이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악마숭배자는 고개를 뒤로 확 꺾은 시체가 되어 흐물텅 무너져 내렸다. 나는 조금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흐르는 뇌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경태 네 추측이 맞는 것 같구나.”
“어떤 추측 말씀이십니까?”
“숲에게 사람을 먹이는 거 아니냐고 했던 것 말이다.”
“아, 그거요? 근데 얘한테 물어보신 것들 중에-”
경태가 발끝으로 방금 죽은 사탄 졸개를 툭툭 친다.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까?”
“유추할 만한 단서가 있었지. 이쪽 바닥에서만 통하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나는 내가 추측한 내용들을 들려주었다. 경태가 기가 막힌 웃음을 짓는다.
“이야, 그 마녀한텐 부하들도 그냥 소모품일 뿐입니까? 악마숭배자들의 우두머리답네요.”
“부하와 신도는 구분해라. 그리고, 그 인도년이 이런 잡것들을 좋아할 리가 없지.”
속으론 오히려 혐오해마지 않을 거다. 왜냐면 악마숭배자들은 취미로 네오나치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빛과 진리의 원탁」에 대한 증오만은 나에게 뒤지지 않을 그 미친년이, 제국주의가 낳은 사생아 새끼들을 예뻐할 리가 있나.
그러므로 O7A를 필두로 삼는 악마숭배자들의 교세는 그년에게 있어선 그저 복수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