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4화 (24/561)

#6. 전율하는 거인 (3)

이 포플러 숲의 별명은 「전율하는 거인(Trembling giant)」이었다. 숲 전체가 하나이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흔들리는 가지들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데, 포플러가 사시나무 속(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관적인 작명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에도 ‘사시나무 떨듯 하다’라는 관용어구가 있으니.

하지만 숲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통상시야로 보는 풍경은 정적으로 변해갔다. 바깥에서 흩날리는 눈은 따스한 안개 속에 녹아버리고, 불어오는 동풍 또한 두껍고도 무거운 안개를 밀어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 안개는 숲이 마력으로 붙잡아둔 습기니까. 그 물리적 구속력을 뚫으려면 어지간히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는 부하들의 호흡이 거칠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방독면을 착용한 수준으로 저항이 느껴질 지경이라.

나도 숨쉬기가 거북하고 옷은 축축하며 이마에는 땀이 맺혀 슬슬 불쾌감을 느끼던 차였다.

북반구의 1월, 그것도 해발 2,700미터에서 땀이라니?

체감 습도는 100% 이상이었다. 최대 포화도 이상의 수분을 마력이 강제로 묶어두고 있는 느낌. 총의 금속 파트에는 어느덧 방울방울 이슬이 맺혔다.

얼마 더 가지도 않아서, 나는 또다시 악마숭배의 상징을 발견했다. 경태는 이번에도 기괴스러움의 극치인 시체를 보며 후우- 하고 숨을 내쉰다.

“이 새끼들 혹시, 이 숲에게 인간을 먹잇감으로 인식시키려는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흠. 그럼 이게 형님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겠네요? 코드 수집을 방해하려는 수작이요.”

“……글쎄.”

이게 나에 대한 견제라면 그레이스는 스승새끼의 배신을- 황금기의 눈이 원탁 밖으로 유출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는 원탁의 교조주의자들처럼 머리가 꽉 막혀있지 않을 테니, 원시마법의 쓸모와 이 눈의 활용에 대해서도 생각이 더 열려있을 것이고.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우며 음습하기 짝이 없는 원탁내각의 내부사정이 악마숭배자들에게 흘러나갔다고?

‘권력투쟁 과정에서 뭔가 사고라도 터졌으면 몰라.’

그럴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 답답하다. 차라리 원탁에 대한 견제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만,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가능성인 것이다.

“이 짓거리를 벌인 놈들을 족쳐보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턱짓으로 탐색을 재개시켰다.

악마숭배자들이 그려놓은 별은 곳곳에 숨어있었다.

진득하게 고여 있는, 흐르더라도 폐쇄적이고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안개는 보안관들이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공기가 고여 있다는 건 냄새가 갇혀있다는 뜻. 그러므로 경찰견들이 갈피를 못 잡았을 게 첫째요, 보안관들이 겁을 먹었을 게 둘째다.

보나마나 수색은 숲 외곽에서만 돌면서, 우리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며 상위 부서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었겠지. 인기투표로 뽑아놓은 보안관들의 한계다.

첫 상징을 발견하고부터 선두는 줄곧 내가 맡고 있었다. 경태 이하에게 고가의 열상장비를 챙겨주긴 했으나, 환경이 이래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쓸 만한 열화상을 뽑으려면 본격적인 거치식 장비가 필요하다.

그나마 이 안개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는다는 것.’

평범한 안개는 소리를 더욱 멀리, 더욱 빠르게 퍼트린다. 매질로서의 밀도와 탄성률이 마른 공기보다 훨씬 더 높은 까닭.

허나 마력에 묶인 안개는 그 구속력으로 인해 탄성률이 격감한다. 진동으로서의 음파에 덜 흔들린다 이 말이다. 눈을 밟는 소리도, 작게 나누는 대화도, 소음기가 줄여놓을 총성도 이 숲에선 닿는 범위가 줄어든다. 내 눈엔 그 범위가 명확하게 보였다.

텁!

가죽장갑의 마찰음. 나는 주먹을 쥐어 대열을 정지시켰다. 드디어 살아있는 인간, 악마숭배자들이 포착되었으므로. 정면, 12시 방향 29미터 거리에 두 놈이 보인다. 아마도 보초를 서는 게 아닐지. 하나의 그루터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좌우를 경계하므로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놈들의 정면은 나의 정면과 10도쯤 어긋나있었다.

그루터기 둘레엔 역시나 인간을 찢어 만든 원이 존재했다. 깔고 앉은 자리엔 당연히 핏빛 별이 그려져 있었고.

무장은 둘 다 개머리판도 없는 기관단총인데, 꼴에 또 소음기는 끼워놓았다. 정조준 자체가 불가능할 총알 분무기. 그걸 손마다 하나씩 쥐고 있다. 허리띠에 주술 토템처럼 주렁주렁 달린 탄창들이 인상적이었다.

나와 부하들은 자세를 낮춰 쓰러진 나무줄기에 엄폐했다.

새롭게 알아낸 안개의 특성을 포함하여, 상황을 전파 받은 경태가 떨떠름한 반응을 내비친다.

“쟤들도 머리를 쓰기는 쓰네요.”

“의외인가?”

“조금은 말입죠. 악마숭배자라고 하면 왜, 뇌주름 하나하나가 마약에 찌들어있을 것 같은 이미지 아닙니까. 혀에는 막 피어싱도 하고.”

“…….”

공교롭게도 두 놈 다 피어싱을 하고 있다.

경태가 머리를 굴린다고 평한 건 무기의 선택이다.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니 정밀한 사격 따위 포기하고 총탄을 마구잡이로 뿌리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 사용자의 숙련도도 감안했겠고.

문제는 저것들을 산 채로 잡아야 한다는 점. 우리가 상정한 교전은 사살이 전제였다.

놈들이 소음기를 쓰는 건 숲 외곽을 맴도는 보안관들을 의식한 조치일 테지만, 그럼에도 위험에 처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멀리 있을 패거리들을 일깨울 터였다. 기를 쓰고 내지르는 고함은 이 진득한 안개 속에서도 충분한 경보가 될 것이었다.

총은 있는 놈들이 무전기가 없는 게 의외다.

“저걸 어떻게 제압하나…….”

고심이 묻어나는 경태의 중얼거림. 나와의 간격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가서, 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렸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형님. 죄송한데 저희끼리 후딱 해치우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건의하는 경태는 여전히 내가 위험을 감수하는 게 싫은 거다.

“아시잖습니까. 진짜 잠깐이면 끝나는 거.”

“안 돼.”

난 쓰러진 나무줄기와 불투명한 풍경을 뚫고 악마숭배자들의 비루한 몸뚱이를 투시했다.

“유독 마력의 흐름이 난폭한 자리야. 거의 일부러 고른 수준이군.”

“그 말씀은?”

“저놈들이 실시간으로 X 되는 중이란 뜻이지.”

저것들은 벌써 몸속에 암세포가 자리 잡았다. 마소를 빨아들이고 마력을 양분으로 삼는 암이라, 양분이 넘치는 환경에선 평범한 암하고는 차원이 다른 증식속도를 보여준다.

‘슬슬 몸이 가려워 오나 본데.’

생명에 대한 영향 면에서 마력과 방사선 사이에 큰 차이가 하나 있다면, 전자는 세포를 파괴하기보다 변형시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거다. 겁도 없이 장전된 총의 총구로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는 사탄의 졸개들이 그 증거.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중증 환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가려움증은 암의 전조증상이자 주요증상 가운데 하나다. 장기에 빌붙는 고형암이든, 림프절과 골수 등에 생기는 혈액암이든. 말기 암환자가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도 손톱이 부러지도록 살을 벗겨대는 모습을 보면 그 가려움의 끔찍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소암도 암인지라 표면적인 증상은 일반 암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이는 원탁의 마스터들이 인체실험으로 확인한 바. 그들은 한 사람의 암환자를 만들기 위해 수백 명의 영혼을 마력의 재료로 갈아 넣었다.

그게 원래는 타인의 육체에 인위적으로 회로를 뚫을 방법의 연구였다.

그 지식의 수혜자가 바로 나고.

……이게 과연 수혜라고 표현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

경태가 한숨을 내쉰다.

“6미터면 코앞인데 진짜.”

6미터. 이 숲에서 내 마력장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의 반경. 「대통령」 때보다 고작 1미터 더 늘었다. 그러나 이 「전율하는 거인」의 압도적인 생체질량과 질량에 비례하는 회로의 장악력을 고려하면, 이 1미터는 ‘고작’ 1미터라고 할 만한 차이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농무 속에서도 맨눈으로 10미터 앞까진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6미터면 총을 든 적과의 간격으로는 지나치게 짧은 거리. 우발적인 교전이라면 상대가 날붙이를 들었어도 위험할 지경이다. 경태가 말하는 ‘코앞’의 의미였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회로에 마력을 돌려 술식을 구축했다. 이 숲에서 얻은 단서들로 구성한 낯선 술식을.

훅-

가까운 안개에 물결 같은 파문이 인다.

“놀라지 마라.”

파문을 목격한 부하들에게 손을 들어 보인다.

“내가 한 거다.”

경태 이하 넷은 비로소 자세를 풀고 총구를 내렸다.

‘될 것 같은데.’

아직 이 안개의 원리를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다. 그래도 숲이 행사하는 마법에 간섭할 만큼의 이해는 갖추었다. 온전히 내 힘만 쓰는 게 아니라, 이미 작용하고 있는 주문에 변화를 줄 뿐이므로 회로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다. 1의 출력으로 100의 결과를 내는 셈.

몇 차례의 실패를 거쳐 기교를 숙지한 나는, 숲이 만들어내는 힘의 방향을 틀어 서로 다른 안개의 흐름이 부딪히도록 유도해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정면에 훅 하고 짙은 백색의 장벽이 뭉쳤다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되는군.

비록 자그마한 성공이지만 기분이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 이는 내가 기대한 가능성을 최초로 입증하는 결과물이었으니까.

“이렇게 하지.”

난 부하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어떠냐?”

내 구상대로면 접근하는 것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 일정 간격까진 그냥 걸어가면 그만이니. 그다음은 다소 임기응변이 요구될 테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한다.

“어…….”

경태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좋긴 합니다만, 형님께선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큰 힘을 쓰시면 회로에 무리가 가지 싶은데요. 분명 적응 끝내시려면 한참 남았다고…….”

“걱정할 것 없다. 겉보기에나 크지, 실제 부담은 작아.”

“그러시다면야.”

“일어나라.”

술식은 벌써 회로에 올렸다. 몸을 세운 부하들은 벌써 만들어진 백색의 벽에 무언으로 가벼운 놀라움들을 드러냈다. 실전에서 이런 형태의 마법적 보조를 받은 적은 없었으니까. 밀도 높은 안개의 장막은 차라리 연막에 가까울 불투명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걸었다. 폭포처럼 내리흐르는 안개의 벽이 우리가 걷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걷는 만큼 밀려난다.

경태가 소리죽여 감탄했다.

“와, 형님. 이거 쩝니다, 진짜!”

“호들갑 떨지 마라.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것들에 익숙해져야 할 테니.”

우린 적을 중심으로 80도쯤을 돌아 적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29미터, 25미터, 20미터. 계속해서 줄어드는 간격. 적은 우리를 볼 수 없지만 그건 내 부하들도 마찬가지라, 경태 이하의 걸음걸이에 불가피한 긴장감이 배어든다.

사냥감과의 간격이 15미터 안으로 들어왔다. 14미터, 13미터…….

사냥감 중 하나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우리는 즉각 엄폐했다. 탐문 당시 낚시꾼도 말했듯이, 이 숲엔 죽어 넘어진 줄기들이 발에 채일 지경으로 많았다. 너무도 오래된 숲이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숭배자는 시선을 불투명한 장벽에 고정시킨 채 팔꿈치로 제 동료를 찔러댔다.

“야, 새끼야. 여기 좀 봐라.”

“뭐.”

“이쪽을 보라고 딸쟁아(Wanker).”

“……와우! 존-나게 마-직스럽네.”

마직(Magick)이란 영국계 악마숭배자들이 말하는 마법이다. 끝에 묵음 하나 붙었을 뿐인데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였다.

사탄의 두 신도는 엉거주춤 일어나 안개로 다가와, 쥐고 있던 총으로 안개의 벽을 휙휙 휘저어보았다. 장님이 허공을 더듬는 듯한 품새. 총의 약실이 내 장악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들락거린다. 충동적인 잡것들이 충동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볼 가능성 탓에 이 이상 대놓고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잡것 한 놈이 조심스레 안개장벽 속으로 발을 내딛으려 한다. 나는 그만큼 장벽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워어어어우.”

용기를 냈던 놈이 뒤의 동료를 돌아본다.

“봤냐? 봤어?”

그러곤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여전히 떨리지만 아까보다는 대담하게. 당연히 난 벽을 다시 한 차례 끌어당기며 안개의 흐름에 선명한 파문을 일으켰다. 낚시꾼이 찌를 흔들어 물고기를 유혹하듯이. 내 임기응변은 사냥감들을 신나게, 그리고 감격하게 만들었다.

“이건 이 숲이 지닌 영원한 힘(Aeonic power)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야. 마-직 그 자체라고! 생전에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그 마-직을 사람이 쓴다고는 생각도 못하는 모양이지?

이건 지식의 문제이자 상상력의 한계이다. 본토의 그레이스 직계가 아니라 그런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진정한 마법을 아는 놈들이라면 곧바로 경계태세에 돌입했을 것을. 악마적인 제례- 인신공양을 거행한 결과 이 포플러 숲이 일으키는 기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써 두 숭배자는 내 장악력이 발휘되는 범위 안으로 완전하게 들어왔다. 난 부하들에게 몇 개의 수신호를 연속으로 보냈다. 제압 방식과 제압 시점과 제압 후 행동을 모두 포함하는 신호들이다. 경태 이하는 총을 등 뒤로 돌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셋, 둘, 하나. 지금.

부하 넷이 엄폐물을 넘어 식육목의 짐승처럼 엄습하는 순간, 난 안개의 벽을 무너뜨리는 즉시 새로운 술식을 장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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