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율하는 거인 (2)
이틀이 지나, 해발 2,700미터의 산장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날.
간밤엔 보안관보 하나가 조사차 이 산장을 다녀갔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온다.」는 말도 있으니, 그제 도착한 우리도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보안관보의 임의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해주었다. 위조된 면허증이라도 전산망엔 정상적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로부터 확인되는 동선만으로도 우리의 결백이 증명될 터이므로. 우리의 공식적인 방문 사유는 회사 차원의 단합행사다.
보안관보를 구슬려 가며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카운티 치안당국은 이게 단순 실종인지 아닌지조차 아직 갈피를 못 잡은 상태였다. 인구밀도가 제곱킬로미터당 4명밖에 안 되는 깡촌의 보안관들이 유능해봤자 얼마나 유능하겠는가. 가뜩이나 투표로 뽑는 선출직들인데.
피로해 보이는 보안관보는 조만간 수색을 위해 상위 치안당국의 지원이 올 거라 털어놓았다. 며칠 내로 주 경찰이 오든가 하겠지. 그다음은 연방경찰일 거고.
아침 식사는 밤새 냉장 숙성시킨 농어를 구워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 피시 마요와 샐러드, 커피, 식당에서 미리 사놓은 에그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농어 구이는 한 사람당 하나가 돌아가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어제 하루를 통으로 탐문에 썼는데, 나갈 때마다 경태가 농어를 한 꾸러미씩 받아 온 덕분이다.
하여간 붙임성은.
“종합해볼까.”
식사를 끝내고 모인 자리에서, 난 상석에 앉아 부하들과 시선을 맞췄다.
“확인된 실종자의 숫자는 최소로 잡아도 서른 이상.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숲과 호수가 가장 유력한 행선지다.”
얼어붙은 호수의 존재는 안개 짙은 숲과 더불어 수색이 난항을 겪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낚시용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서 구멍을 뚫어 돌을 매단 시체를 가라앉힌 뒤, 얼음이 다시 얼기를 기다려 텐트를 걷어버리면 완전범죄가 성립하니까.
어제 저물녘, 내가 호수에서 본 텐트만 수십 개에 달한다. 밤을 새우는 낚시꾼들이었다.
게다가 저 포플러 클러스터가 이 일대에서 유일한 숲도 아니다. 안개가 끼어있고 캠핑장 및 숙박시설이 가까워 유력하게 꼽히는 장소일 뿐.
“여기서 모종의 인간사냥이 벌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검지를 세워보였다.
“첫째. 현시점에선 희생자들에게 어떤 공통분모도 없다. 이건 원탁의 귀족들에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목숨들이야. 그렇다고 나를 끌어들일 함정이라고 보기도 어렵지. 사냥꾼이 사냥감…… 쯧. 사냥감의 경계심을 자극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기분이 더럽지만, 아직까지 난 사냥감인 입장이다.
피해자들 사이에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틀 동안의 탐문에 더해 보안관간 무전까지 도청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출신도, 연령도, 성별도, 관계도, 직업도 다 제각각. 난 귀족의 사냥개들이 가족여행을 온 일가를 여섯 살 어린아이까지 물어 죽여야 할 당위성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애당초 「황금기의 눈」을 지닌 날 함정에 빠트리는 것 자체가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한 일. 숲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모를까, 괜한 가능성에 전력을 낭비하긴 싫었을 터였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
“둘째. 각 실종사건의 추정 시계열과 탐문 결과를 고려하건대, 정체불명의 살인마 집단이 웅거하고 있다손 쳐도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다. 적게 잡으면 우리의 절반 이하, 많게 잡아도 우리의 두 배 정도겠지.”
그렇다면 나와 내 애들에게 위협이 되긴 어렵다. 특히 저 안개 자욱한 숲속에서는.
“셋째. 피해자들의 출신지는 여러 주에 걸쳐있다. 그 말은 즉 이 사건이 결국 연방경찰 관할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는 뜻. 시간을 끌면 귀찮아진다.”
수색이 공식적으로 종료될 때까진 현장보존이니 뭐니 해서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될 것 아닌가. 통제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광활한 삼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넷째. 이미 말했듯이, 저 숲은 내가 새로운 마법술식의 단서와 조각들…… 이건 「코드」라고 부르기로 하지. 코드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많은 어려움 중 하나일 뿐이다. 코드를 지닌 것들이 그 속살을 순순히 보여주는 경우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나.”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하는 이상 내가 그 위험을 피할 방법은 없는 셈.
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짧으면 하루, 길어도 사나흘이면 된다. 나는 저 숲의 마법을 알아야겠다.”
그리고 지금 회로의 기초를 봐둬야만, 훗날 숲의 능력이 더욱 강하고 복잡해졌을 때 추가적인 탐색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분석의 기반이 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셈이므로.
6천 6백 톤짜리 단일 유기체의 마법적 잠재력은 다른 평범한 숲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장차 세계 최고이자 최악의 미궁 가운데 하나로 거듭날 테지. 규모 면에선 아마존 같은 곳에 한참 밀리겠지만.’
고로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얻는 지식이 나중으로 갈수록 스노우볼링을 일으키리라 확신한다.
“이견 있나?”
내 질문에 부하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없는 걸로 알지. 출발은 09시다.”
나와 동행할 1개조 이외의 나머지 인력은 숲 외곽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들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겠다고 했어도, 상황이 위급해지면 지원을 불러들이는 수밖에. 유사시 퇴출로 확보를 고려한 배치이기도 했다.
그리고 09시 30분.
나는 울타리를 넘어 희미하게 눈발이 날리는 숲으로 탐사의 첫발을 들여놓았다. 대열은 내가 가운데 낀 지그재그 형으로 정했다.
“되도록 지금 이 간격을 유지하고, 불가항력으로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돌아와라. 이건 너희들을 위해 하는 말이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음에도, 경태를 포함한 넷은 내 당부를 더없이 진지하게 들었다.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해서 죽음을 가볍게 여길 순 없는 노릇. 하물며 그 최후가 최악의 질병 가운데 하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안개 속으로 들어온 다음엔 무기를 감추지 않아도 되었다. 설산용 위장복 차림의 부하들은 각자의 짐에서 총기를 꺼내 조용하고 신속하게 조립했다. 「비흐리(Вихрь)」라는 러시아제 저소음 소총으로, 짧고 가벼워 휴대와 은닉이 용이했다. 소음기까지 결합한 길이가 한국 K-2와 비슷할 정도. 다만 탄이 좀 귀한 게 흠이었다.
“형님.”
“음.”
경태가 내미는 총을 받은 난 노리쇠를 당겼다가 느리게 전진시켰다. 마지막엔 확인차 한 번 더 밀어주기를 잊지 않는다. 초탄이 약실에 확실히 들어가게끔.
‘바깥보다 따뜻하군.’
포플러 숲이 품은 안개는 온기를 가두는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한겨울의 물속이 물밖에 비해 따뜻한 것과 같은 이치. 하기야 단순히 수분을 붙잡아둘 목적이었으면 다른 형태의 술식이 발현되었을 것이다. 짙은 안개는 광합성을 방해하니까.
난 방탄복과 방탄모를 착용하는 것으로 탐색 준비를 완료했다.
“이동하지.”
기본적인 탐색 경로는 내가 일일이 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숲의 위성지도를 토대로 GPS 좌표를 찍어 미리 기준점들을 정해둔 덕이었다. 그 점들을 연결하면 바깥으로부터 중심부를 향해 나선처럼 들어가는 길이 완성된다. 또한 이 기준점들은 흩어졌을 때의 재집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입을 여는 건 멈출 필요가 있을 때였다. 때때로 멈춰 서서 회로도를 스케치하고, 마력의 흐름을 기억하고, 암기하듯 되새기며 머릿속에서 거대한 회로의 조감도를 그려보는 일.
말이 회로이고 코드이지, 낯선 코드의 습득은 컴퓨터의 복사 붙여넣기처럼 간단할 수 없었다. 곧바로 사용 가능한 형태의 술식이 아닌 이상은. 현재로선 숲의 회로에서 9할 9푼이 군더더기라 어려움이 더 가중되는 면도 있었다.
숨쉬기가 거북할 만큼 농밀한 안개 속에서 내 가시거리는 30미터 안팎까지 축소되었다. 눈의 성능과 무관하게, 내 뇌가 시각적 정보의 홍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탓이다.
때때로 방향을 꺾어가며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그 30미터의 가시거리 끄트머리에 매우 불쾌한 상징이 걸려들었다.
“정지.”
나지막이 내린 지시에 대열이 정지한다. 난 조금 앞으로 나아가, 그 상징 근처에 위협적인 요소가 존재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를테면 마법적인 매복이나 함정 같은 것들. 원탁의 최정예에게나 가능할 일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은가.
난 두 번 세 번 안전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따라와.”
잠시 경로를 이탈할 동안엔 내가 선두에 서서 나아갔다. 여기서도 사전 합의에 따라 대열이 변경된다. 좌측 후방으로 둘, 우측 후방으로 둘.
경태는 눈밭에 살짝 드러난 사람의 손가락을 발견하곤 표정을 굳혔다.
“이건-”
“실종자 가운데 하나겠지.”
시체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원형의 상징 주변을 걸으며 발끝으로 단단한 눈을 걷어냈다. 부하들이 시체의 나머지와 숨겨진 상징을 볼 수 있도록.
인체를 길쭉하게 찢어 만든 원 속에 피를 쏟아 그려놓은 별. 별은 위아래가 뒤집힌 형상이고, 원 바깥엔 별처럼 피로 휘갈긴 일흔두 개의 라틴 문자가 있다. 불가해의 영역(Acausal Realm)으로부터 어두운 힘을 끌어내는 악마숭배자들의 표식. 그 믿음 자체는 엉터리지만, 문제는 원 속의 별이 오망성이 아닌 칠망성이라는 점이었다.
‘칠망성이라면 영국 놈들의 계보인데.’
전통적인 악마숭배의 상징은 거꾸로 그린 오망성이다. 그 형상이 염소의 머리와 닮아있는 까닭. 그러나 영국에 뿌리를 둔 사탄의 추종자들은 유독 칠망성을 사용한다. 이는 그들에게 진짜배기 마법사인 그레이스가 합류하며 일어난 변화이자, 그레이스가 훔쳐낸 원탁의 지혜였다. 그녀의 추종자들이 ‘칠각’기사단(O7A)인 이유다.
“허.”
사주경계에 임하던 경태가 곁눈질로 더러운 상징을 본다. 기가 막힌 듯한 소리는 잠재적 적대세력에 대해 틈틈이 교육이 이루어졌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섬나라 사탄쟁이들이 여기까지 온 겁니까?”
“아니.”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어설퍼.”
“어떤 부분이요?”
“문자열의 순서가 틀렸다.”
말로는 감히 형언치 못할 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카발라의 72문자(magnum nomen Domini Semenphoras licterarum). 십자가도 뒤집고 별도 뒤집는 악마숭배자들은 이 문자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 역순으로 적는다.
그 마녀 직할의 진짜배기들이 이걸 틀린다고?
그럴 리가 없지.
“본고장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양키 분파의 소행이 아닐까 싶다만.”
공권력을 빌린 원탁내각의 집요한 추적과 사냥, 탄압에도 불구하고, 인도계 마녀가 창조한 악마숭배의 새로운 흐름은 전 세계의 악마숭배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지하교회적인 확산은 필연적으로 교리의 손실과 왜곡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징 자체엔 아무런 마법적 효과도 없다.
경태가 한 번 더 곁눈질을 하고서 눈을 찌푸린다.
“어설픈 것치곤 시체의 상태가 좀 많이…… 이상하지 말입니다.”
그 말대로다. 시체는 단순히 찢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식물이 뿌리를 뻗는 형상으로 ‘펼쳐지는’ 중이었다. 핏줄과 모세혈관이 피부를 뚫고 나와 사방으로 자란다면 비슷한 모양이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시체가 아니야.”
“예?”
“식물 입장에선 여기에 웬 양분 덩어리가 있을 뿐이겠지.”
“…….”
찢어놓은 건 인간의 소행이나 끌어당기는 건 숲의 소행이다. 수분을 당기다보니 다른 성분들도 같이 끌려와, 얼결에 뿌리 끝 근단이 그 맛을 본 것이 아닐지. 아니면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고.
그 증거로서, 유해가 펼쳐지며 나아가는 방향은 지표와 지중의 뿌리 및 줄기들이 가깝고도 많은 쪽으로 쏠려 있었다.
짧게 생각에 잠겨있던 경태가 말뜻을 깨닫고 히죽 웃는다.
“즉 시신 감식에 대한 걱정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환경이다 이거네요?”
“어느 정도는.”
“좋은데요?”
좋다는 건 단순히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닌, 앞으로 치르게 될 숲 속의 전투들을 염두에 둔 만족감일 것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법의학자라도 이런 식으로 훼손된 시체에선 자세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테니까.
그러나.
“아니, 마냥 좋지만은 않은가.”
제 말을 정정하는 경태는 어느새 미소를 지우고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 좋기만 할 리가 있나.
무슨 일을 벌여도 쉽게 알려지지 않을- 혹은 묻어버리기 쉬울 환경,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미궁에 훗날 본격적으로 정치경제적 이권들이 얽히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미친놈들이 활개를 칠까? 익명성만 주어져도 사탄이 빙의하는 게 사람이건만.
녹색의 미궁에서 잡것들은 제 밑바닥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낼 것이다. 그 인간 언저리들은 내게 도움보다 방해가 될 공산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