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화 (22/561)

#6. 전율하는 거인 (1)

하얀 추장에게 주문제작 스너프 필름을 발송하고서 열흘이 흐른 시점인 1월 20일, 나는 유타 주의 장구한 포플러 숲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흐린 안개 속 하얀 가지들이 떨리며 스스스스- 하는 소리들을 낸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던 난, 홀린 듯 바라보다가 탄식을 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숨이 넘어가겠군.”

모든 뿌리가 하나인 클론 클러스터, 복수가 아닌 단수로서의 숲은 휘황한 마력과 회로의 광채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대통령」은 갈대밭의 갈대 하나, 백사장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하겠다. 이 장관이 내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지경. 평범한 사람의 통상적인 시야엔 하얀 눈밭과 하얀 안개와 하얀 나무들이 보일 따름이리라. 그것만으로도 다소 몽환적인 경관이긴 하겠으나…….

이곳으로 향하기 전 먼저 들렀던 워싱턴 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유기체로서의 균사가 퍼진 주립공원은 그 규모에 비해 마법적인 실속이 없었으므로, 이곳의 포플러 클러스터는 내게 대단히 각별한 것이었다.

“주변이 어째 소란스럽네요.”

경태는 어수선한 주위를 신경 쓰고 있다. 반경 30km 이내에 그럴듯한 도시 하나 없는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오는 길의 도로변에 몇 대의 보안관 순찰차가 정차해있었다. 어디선가는 개 짖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느낌이 안 좋으냐?”

“뭔가 좀 찝찝합니다.”

“……그래?”

나는 경태가 말하는 찝찝함을 무시하지 않았다. 위험을 감지하는 이 녀석의 육감은 때때로 마법 이상의 마법처럼 느껴지곤 했으니.

「황금기의 눈」이 제공하는 시야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곳에선 정보량이 너무 많아 실질적인 가시거리가 제한된다. 특히 숲이 있는 쪽, 온갖 광채가 통상적인 인지를 넘어 범람하는 방향으로는 50미터 가량이 고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줄어들 테지.’

내 회로역장 역시 「대통령」과 대면했을 때와 비슷한 반경으로 축소될 게 뻔하다. 그간 부지런히 회로를 조율해왔는데도 이렇다. 이는 즉 눈앞의 숲이 발휘하는 마소에 대한 장악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고로 숲 내부를 탐사하는 데 많은 수의 부하들을 동반하기가 어렵다. 정제되지 않은 마력에 피폭당하는 걸 전부 막아줄 수가 없으니까.

사고의 흐름이 여기에 이르자 나 또한 신경이 조금 곤두서는 기분이다. 황홀한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숲으로 들어가려면 나 자신에 대한 보호가 매우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경태도 여기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경호실장으로서는 들어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대통령」처럼 그냥 겉으로 보시는 걸로는 부족하겠습니까?”

나는 턱짓으로 숲에 감도는 안개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안개를 봐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처음부터 위화감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호수 방향은 깨끗한데 정작 숲에는 안개가 끼다니. 그것도 해가 중천인 시간에…….”

“그렇겠지. 저건 저 숲이 구축한 술식의 결과물일 테니까.”

“마법이란 말입니까?”

“음.”

이쯤이면 이 녀석도 내가 왜 멍하니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 것이다. 인간 이외에 원시마법에 각성한 생명체의 등장을 예견했다곤 해도, 그걸 직접 목격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 나는 지금 세기적인 사건, 세계의 비가역적 변화와 대면하고 있다.

……이제 와서 별안간 마소 농도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겠지.

머리를 긁은 경태가 새롭게 제안한다.

“형님께서 정 안쪽을 살펴보고 싶으시다면, 저희가 그 뭐냐, 전에 말씀하셨던 마력피폭인지 마소피폭인지를 감수하고서라도 다 들어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니.”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조직의 정예이자 행동대의 핵심이다. 니들을 키우는 데 시간과 예산이 얼마나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무가치하게 소모해버릴 순 없어.”

마소와 마력이 원인인 암은 통상적인 암과 성질이 다르다. 조기에 발견하더라도 내 능력으로나 통상적인 의학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할 수 있었다.

‘내게 있는 건 이론과 가설일 뿐이니.’

「대통령」이 그랬듯이, 이 숲의 각성은 내 예상보다 빠른 것이다. 마소암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는가? 고로 이 녀석들에게 회로가 발현되고 자체적인 역장이 생겨 자력 방호가 가능해질 날까지는 신중을 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안 되는 건 안 돼. 애초에 어떤 위험 부담도 없이 강해질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감수할 위험은 감수해야겠지.”

나 자신이 원탁의 예상을 벗어난 비대칭전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나는 조직이 보유한 마법적 역량의 전부이며, 잠재력의 전부이기도 하다. 나의 한계치가 곧 조직의 마법적 한계치를 결정할 것이다.

경태는 한숨을 쉬고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상황을 지켜보시죠. 기다린다고 해서 저 숲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당연히 그럴 거다.”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 상황을 살펴야겠다. 왜 이런 오지에 보안관들이 떼로 몰려있는지, 경태가 느끼는 찝찝함은 무엇인지.

숙소로 임대한 산장(Cabin)은 숲과 걸어서 오가도 좋을 거리에 위치했다. 지나는 길목의 캠핑장엔 비수기인 겨울임에도 열 대 남짓한 캠핑카가 주차되어 있었다. 캠핑장 한쪽에서 크레인 저울에 물고기의 무게를 달아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얗게 언 호수에서 얼음낚시를 즐기고 돌아온 이들일 것이었다.

“실례합니다, 선생님들.”

경태가 평소와 달리 유창한 발음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떠들던 사내들 가운데 회색 캐나다구스를 입은 하나가 경태를 훑어본다.

“무슨 일이신지?”

“저희는 저쪽에 있는 숲을 보러 온 관광객들인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해서 말입니다. 보안관분들도 많이 오신 것 같고. 혹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같은 언어라도 복수의 억양을 구사하는 능력은 유용한 도구였다. 수사와 추적에 혼선을 주거나, 자신에 대한 인상을 바꾸거나. 경태가 구사하는 뉴욕 억양은 동양계 관광객의 인상을 희석시킨다. 질문을 받은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도 어제 왔을 뿐이라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 숲에서 사람이 실종되었다고 들었수. 하나도 아니고 떼거지로.”

“저런. 몇 명이나요?”

“자세히는 모른다니까는. 이것도 보안관보가 와서 이거 저거 물어볼 때 얻어들은 거요. 저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구만. 요즘 이상하게 안개가 많이 껴서 위험하다구. 울타리도 쳐놨는데 뭐 하러 굳이 들어갔는지 원…….”

사내는 안 그런가? 하고 동료를 돌아본다. 동료가 끄덕끄덕했다.

“그러지 말고 당신들도 우리처럼 낚시나 즐기다 가는 게 어떻겠수? 외지 사람들이야 저놈의 숲이 수만 년을 살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구경하러 오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진짜로 별거 없거든. 쓰러진 나무가 많아 다니기 불편하기나 하지. 눈이 쌓여서 발아래가 잘 보이지도 않을 거고.”

“하하. 말씀 고맙습니다. 근데 여기, 고기는 잘 잡힙니까?”

“보면 모르겠수?”

“단순히 낚시꾼의 실력이 좋은 것일 수도 있죠.”

경태의 아첨에 기분이 좋아진 사내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나누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송어는 못 줘도 농어는 줄 수 있노라고. 낚시터에서 흔히 보이는 인심 내지 낚시꾼의 자기만족이었다. 경태는 그걸 또 사람 수가 많으니 더 달라고 해서 큼직한 걸 세 마리나 받아낸다. 사람 멱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고 다니는 녀석이 넉살도 참 좋지.

이어지는 대화에서 낚시꾼은 멀찍이 폴리스 라인이 쳐진 캠핑카를 가리켰다.

“실종된 가족 중 하나가 몰고 온 차라고 하더이다. 저거 말고도 주인 잃은 차가 몇 대 더 있고, 산장에서도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고 그러던걸.”

“그렇군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기껏 이런 깡촌까지 오셨는데 헛걸음이 될 것 같아 유감이오.”

“여행이라는 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죠. 좋은 하루 되십시오, 선생님.”

“그쪽두. 별건 없지만 잘 놀다 가시구려.”

인사를 나누고 낚시꾼을 등진 경태는, 낚싯줄로 꿴 묵직한 농어 꾸러미를 부하에게 넘기고 입가의 웃음기를 지운다. 낚시꾼들과 적당히 멀어진 다음 묻는 말이 이렇다.

“형님. 이거 어째 갈수록 더 찝찝해지는데요?”

“흠…….”

“혹시 숲 그 자체가 범인일 순 없겠습니까?”

“글쎄.”

사람을 잡아먹는 숲이라. 어쩌면 포플러 클러스터가 일으키는 추가적인 마법적 현상이 원인일 순 있겠다. 또는 안개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헤매고 헤매다 탈진해서 쓰러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대기질이 최악인 중국에선 자기 집 앞에서 길을 못 찾아 죽을 뻔한 인간도 있지 않았나. 고작 43헥타르(0.43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숲에서도 얼마든지 조난자가 발생할 수 있다. 난 여기까지 생각하고서 입을 열었다.

“가능성은 있다고 해두지.”

“그런데도 들어가셔야 합니까?”

“시간이 흐르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겠냐.”

물론 그때는 나 또한 더욱 완성된 마법사가 되어있겠으나, 그게 반드시 더 나은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런던의 원탁내각도 질서를 확립할 테고, 새롭게 각성한 능력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영향 역시 변수가 되겠지. 세계적인 혼란이 빚어져 국가 간의 이동이 차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걸어야 할 투쟁의 길을 감안하면 지금의 위험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난 그 정도의 가시밭길을 각오하고 있다. 경태가 입맛을 다신다.

“저 캠핑 트레일러 안엔 뭔가 눈에 띄는 게 없습니까?”

폴리스 라인 너머로 시선을 틀고 시야를 조절한 나는,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딱히.”

경태는 다시금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난 멀어진 숲을 일별했다.

“숲 그 자체가 문제라면 술식이 현상으로 빚어지기 전에 그 조짐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누가 와있더라도 나 이상의 페널티를 감수해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4인 1조로 분할된 우리 일행은 연락을 나누며 여러 곳에서 탐문을 진행했다.

나와 경태는 잡화점 및 식당을 겸하는 리조트 본관에서 직원을 상대로 지나가듯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 당신은 여기서 언제부터 일을 했는지, 투숙객이 증발했다는 산장은 어디인지, 그들이 가족 손님이었는지 아닌지, 또 언제쯤 들어와 언제쯤 사라졌는지, 그밖에 뭔가 특이한 건 없었는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한 건 경태의 붙임성이었다.

직원은 비수기에 하루 6백 달러짜리 고급 산장을 세 채나 임대한 손님들을 상대로 친절하고 성실한 답변들을 돌려주었다.

“이상한 사람들이요?”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던진 마지막 질문은 뭔가 이상해 보이는 방문자가 없었느냐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런던의 제국주의자들이 하수인을 파견했다면, 종교적인 레벨의 선민의식으로 인해 무언가 특이한 티를 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충성심을 배양하는 수단이 선민의식 그 자체니까.’

원탁의 마스터들은 제 하수인들 앞에서 선지자이자 사도이자 구원자 행세를 해댄다. 사이비 종교인들과 달리 이쪽은 진짜 신비를 다루는 만큼 부하들을 세뇌하기도 쉽다.

사실 부분적으론 내게도 해당되는 사항이고.

그래도 난 나 자신을 종교적으로 포장하지는 않았다. 하찮은 양심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합리성이 마비된 조직은 그만큼 꼬리를 밟히기 쉬운 까닭이었다.

“흠,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팔짱을 끼고 검지로 상박을 두드리던 직원은 자신 없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좀 보헤미안스러운……. 그, 알죠? 잘 웃고 낙천적이고 스타일은 거지같고 머리에 나사 몇 개 풀린 것처럼 흐느적대는 야리야리야라.”

“예.”

“그런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긴 했는데, 이상하다……라고 할 것까진? 있잖아요, 왜. 여긴 이래봬도 관광지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들렀다 가는 곳이니까요.”

“그렇겠지요.”

난 친절한 답변에 고맙다고 말하고, 멘톨 담배 한 갑을 산 뒤 팁으로 100달러 지폐를 건네주었다. 직원은 황홀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물론 내가 산 담배는 피우는 용도가 아니다. 생활화된 추적 교란의 습관이지. 흡연은 중독적인 기호여서, 피우는 담배의 종류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향이 자극적인 멘톨 담배는 유사시 개를 풀어 쫓기에 좋은 냄새였다.

뭐, 나중에라도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겪을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어쨌든 몸에 익어서 나쁠 것 없는 습관이다. 언제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생각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화가 치민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밖으로 나온 난 가장 먼저 보이는 쓰레기통에 힘주어 구긴 담뱃갑을 던져 넣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