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짐승사냥 (9)
엄밀히 말해 제이- 캘빈 브라임로우는 청부 대상이 아니다. 내가 하얀 추장에게 약속한 건 어디까지나 「백색근위대」의 말살이므로. 하지만 의뢰의 본질은 복수였고, 10의 노력을 더 들여 100의 효과를 추가로 거둘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만큼 잠수함이 필요했다. 런던을 불태울 테러리즘의 밀수선단이.
‘그러고 보면 「미국전선」도 「영국전선」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거였지.’
악마숭배의 본산도 현재는 영국이고. 하여간 세상 흉악한 건 다 영국 놈들이 일조하고 있다.
운전석의 부하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캘빈의 저택은 샌프란시스코 미술학교를 마주보는 위치에 서있었다. 경사진 지대, 평탄화를 위해 돋워놓은 터가 성곽처럼 시야를 차단한다. 여기에 두꺼운 관상수들까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어, 바깥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안에 아무도 없군.”
내 말에 경태가 고개를 기울인다.
“그렇습니까? 몇 명이라도 지키는 부하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눈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갸우뚱.
“하다못해 고용인 하나 없다는 게 이상하네요. 이 정도나 되는 저택에 말입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녀석인가 보지.”
종종 그런 유형이 있다. 자신의 무방비한 영역을 강박적으로 감추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에게 자신의 사적인 공간을 드러내는 건 타인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혹은 그냥 사람이 싫은 놈이거나.
“이유야 어쨌든 잘됐다. 우선은 너와 나, 둘만 들어가 보도록 하자. 괜찮은 게 보이는구나.”
경태는 군말 없이 끄덕였다.
“옙. 나머지 애들은 적당히 돌고 있으라고 하겠습니다.”
이곳은 주택가다. 폐쇄회로도 많고 주차된 차들도 많았다. 떼거리로 차를 대고 떼거리로 움직이기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삑- 철컹-!
한쪽에 작게 난 쪽문의 전자식 자물쇠는 마법으로 간단하게 해제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내 마법에 부족한 건 출력이지 정교함이 아니며, 자물쇠를 여는 데 필요한 전압은 고작 1.5볼트에 불과했으니까. 폐쇄회로를 잠시 정지시키는 것도 난이도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는 뒷짐을 지고 앞장섰다. 느리게 걷는 걸음에 포석 틈으로 자란 잡초가 밟힌다.
“이건 무슨 폐가도 아니고.”
뒤따르는 경태의 감상.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정원은 겨울이라 누렇게 죽어있기까지 했다. 앙상한 나목(裸木)의 가지들이 메마른 바람에 가늘게 부대꼈다. 퇴락한 정원은 저택을 완전히 둘러싸는 형태였다. 귀가한 캘빈이 잠들기를 기다려, 늦은 시각 불씨만 놓아도 간단히 태워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마법적인 방화엔 단서도 남지 않을 것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주문한 추장 역시 만족할 터였다.
그러나, 그렇게 처리해버리면 사건이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크다.
이만한 정원에 탈출의 여지가 전혀 없는 불을 지르려면 그만큼 많은 불씨를 흩뿌려야 하는데, 이는 누가 보더라도 부자연스러울 현상이다. 방화임은 확실하나 증거가 전무한 사건. 이 일대에 즐비하게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들이 그 부자연스러움을 낱낱이 기록할 것이고…….
‘머지않아 원시마법에 각성한 능력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 사건 또한 모종의 초능력에 의한 범죄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겠지.’
마소의 농도가 아무리 높아졌어도 지금은 각성자가 등장하기에 너무 이른 시기다. 스승새끼를 쫓는 원탁의 마스터들이 이 사건을 접한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터.
무엇보다, 청부자인 하얀 추장은 강력한 심증을 얻을 것이다. 그는 화재가 나의 소행임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고로 이런 쪽으론 작은 위험이라도 피해서 가고 싶다.
나와 경태는 미닫이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섰다. 여기서도 경보장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계적이든 전자적이든, 내 앞에서 대부분의 잠금장치와 방범장치들은 무용지물이었다. 「황금기의 눈」은 전기가 흐르는 배선을 고유의 색채로 인식하니, 의식만 하고 있으면 놓치고 넘어가는 장치가 있을 리도 없다. 시야 내에서 특정 정보를 탐색 및 강조하는 기능이었다.
경태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어? 하고 웃는다.
“밖에서 보셨다던 ‘괜찮은’ 게 아무래도 사제 폭탄이었나 보네요.”
“그래.”
“하필이면 TATP라니. 이쯤 되면 알리바이를 만들어 바치는 수준인데요?”
“왜. 정석적이지 않나.”
“그렇긴 하죠. 초짜들한테는.”
TATP. 트리아세톤 트리퍼옥사이드(triacetone triperoxide). 이 폭약은 아세톤, 황산, 과산화수소수만 가지고도 제조가 가능한 테러리스트의 친구다. 여기에 도구도 셋이면 충분하다. 비커, 믹서기, 그리고 여과기. 재료와 도구가 있고 혼합비율만 알면 일반인도 한 시간 내로 폭탄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별명이 「사탄의 어머니」였다. 만들기가 너무 쉬워 사탄 새끼들을 양산한다고.
경태가 냄새만 맡고도 폭탄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이 폭약이 굉장히 인공적인 과일향을 풍기기 때문이었다. 제조과정에서도 그렇고 완성품도 그렇다.
지하로 가는 문에는 별도의 잠금장치가 걸려있었다. 이번에도 쉽게 풀고 계단을 내려가자 자극적인 향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캘빈의 지하실을 본 경태가 감탄했다.
“이야. 기특하다, 기특해.”
지하실 중앙엔 폭탄과 신관을 제조하는 작업대가 놓여있었다. 주변엔 황산을 뽑아내는 데 썼을 자동차 배터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시시한 취미생활이군.’
그렇다. 취미생활이다. 이렇게 돈이 많은 놈이 수제 폭탄 만들겠다고 궁상을 떨 이유가 없었다. 완제품을 사버리면 그만이니까.
따라서 눈앞의 작업대엔 미학과 도취가 녹아있었다. 혁명가의 미학과 투쟁을 꿈꾸는 자의 유아적인 도취가. 굳이 배터리에서 황산을 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심을 피한다는 의미도 있겠다만, 가난을 패션으로 소비하는 부자를 보는 듯하다.
“형님. 혹시 이것도 보셨습니까?”
서가로 다가간 경태가 장갑 낀 손으로 책 한 권을 뽑아보였다. 제목은 「무정부주의자의 요리책」. 다양한 폭탄 제조법을 담고 있어 FBI로부터 출판금지 명령을 받고, 내용을 고쳐 다시 발간해야 했던 불온서적이었다.
그 유명세와 별개로, 이 바닥에선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입문서쯤 된다. 기실 내용보다는 수집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큰 책이다.
“도로 꽂아 놔라. 수사관들이 좋아하겠지.”
“아깝네요. 이렇게 깨끗한 초판은 구하기 어려운데.”
나는 경태의 괜한 아쉬움을 등지고 캘빈의 작업대에 앉아 납땜기의 전원을 확인했다. 마침 캘빈 놈이 만들다 만 신관이 있어, 마저 완성해서 써먹을 작정이었다. 경태가 볼을 긁는다.
“직접 하십니까?”
“그래.”
캘빈의 심부름꾼이 자백제에 취해 토해낸 바에 따르면, 캘빈은 잠시 후에 집으로 돌아올 터였다. 그러나 이 신관을 완성하는 건 불과 몇 분으로 끝나는 작업. 이 업계에 오래도록 종사해온 내게, 일부러 ‘결함이 있는’ 신관을 만들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금세 신관을 완성한 난, 완성품을 들고 작업실 한쪽의 작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캘빈이 그간 열심히 제조했을 폭탄이 반쯤 들어차있었다. 대충 15킬로그램쯤 되지 싶다.
15킬로그램이라, 15킬로그램…….
오차를 감안하고 암산해보건대 폭발압력은 5미터 거리에서 30 내지 40psia(제곱인치당 파운드)쯤이고, 밀폐된 환경을 고려하면 더욱 강력해질 것이며, 이 정도면 파편 없이도 작업대가 있는 거리까지 100% 살상지대를 형성할 위력이었다.
난 폭탄에 신관을 세팅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러곤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허전하군.”
“그렇습니까?”
“최소한 이게 누군가의 복수라는 건 알고 죽어야 할 것 아니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지위이고 권력이다. 캘빈 브라임로우는, 그 음침한 내면과는 별개로 지역사회- 정확히는 소외된 백인들의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유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 부촌의 주민들 사이에서 인맥을 넓히려는 시도에도 열심이었고.
이 시대의 ‘자칭’ 혁명가가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건 자연스러운 일.
따라서 추장이 주문한 고통스러운 죽음은, 캘빈에 한해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이 돈 많은 백인우월주의자의 최후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니까.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예산이 풍족하다. 바로 옆의 오클랜드와는 다르게.
그러니 추장도 이 불가피한 관대함을 이해해줄 테지.
나는 테이블 위, 캘빈이 레시피를 적는 데 썼을 메모장에 짧은 문장을 휘갈겨 북 찢어냈다. 그러곤 그것을 냉장고에 마그넷으로 붙여놓았다. 다른 마그넷은 다 치워버렸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복수를 원하는 자는 두 개의 무덤을 파야 한다.」
복수에 관한 중국 놈들의 격언. 하나는 원수를 위해,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
왜 이렇게 썼느냐면, 이 캘빈이라는 놈의 진짜 동기가 유색인종에 대한 원한이었기 때문이다.
몸을 돌린 난 잠시 작업대 정면을 응시했다. 벽걸이 코르크보드에 압정으로 고정된 신문 스크랩들은 거의가 백인에 대한 제도적 역차별 및 유색인종들의 범죄행각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어느 모녀가 대낮의 거리에서 흑인에게 피살당한 사건이 가장 크게 붙어있다. 두 피해자의 성씨는 브라임로우였다.
모녀를 살해한 범인은 자칭 ‘급진적인 흑인 인권운동가’로, 법정에 서서는 “기득권층인 백인은 흑인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가 될 수 없다.” “백인은 죄인과 동의어다.” “나의 살인은 범죄가 아닌 의거였다.” “백인이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등등의 개소리들을 지껄였다고 쓰여 있다.
하는 소리가 어째 「블랙 게릴라 패밀리」랑 비슷한데. 그 백인우월주의의 피부 검은 데칼코마니들. 선조가 피로써 물려준 명분을 무가치하게 소모하고 있는 집단.
사연 없는 무덤 없고 이유 없는 증오도 없다. 사회현상으로서의 집단적 증오는, 그것이 어느 집단의 증오이든 저마다 각자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으나, 대개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내 일에 관련되는 경우만을 제외하고. 두 개의 무덤이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증오에 대한 이해는 그저 사업가의 교양일 뿐이다.
브라임로우 가(家)의 비극 또한 이 순간이 지나면 내 관심사가 아니게 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대각선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문의 차고가 열리며 차 한 대가 진입하는 중이었다.
“드디어 집주인이 왔구나.”
“가시죠.”
“그래야지.”
난 들어올 때와 같이 여유롭게 걸어서 저택을 나섰다. 정문으로 들어오는 집주인과 후문으로 나가는 침입자. 서로 반대로 움직이니 집이 넓어 마주칠 일이 없다. 정원 바깥의 경사로로 내려온 나는 차에 올라타 저택 안을 주시했다.
집에 왔다고 해서 곧바로 작업대로 직행할 리는 없으니, 캘빈이 살상범위에 들어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형님.”
“뭐냐.”
“달달한 도나쓰가 땡기지 않으십니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여기는 미국이고, 도나쓰의 본고장이며, 차에서 잠복근무를 할 땐 도나쓰를 먹어주는 게 예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건 경찰의 스테레오타입 아니었나? 좀 어이가 없어서 경태를 바라보면, 이 녀석은 그냥 배가 고플 뿐이었다. 사냥이 진행되는 내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듦에 따라 허기가 밀려올 법도 했다.
‘아니, 이건 나를 신경써주는 거로군.’
열량을 간단히 채우고 호텔로 돌아가 바로 쉬게 해주려는 배려.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야말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풀어진 것일지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 시켜 봐라.”
“옙!”
경태는 유사시 탈출로 확보를 담당한 녀석들에게 무전을 넣었다. 이 근처에서 옐프(Yelp) 별점이 높은 도넛 가게를 찾아 종류별로 사람 숫자만큼 집어오라는, 참 쓸데없이 구체적인 지시였다.
잠시 후, 나는 글레이즈드 도넛에 단맛이 과한 밀크티를 곁들이며 캘빈의 움직임을 눈에 담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한 녀석은 내가 일부러 열어놓고 나온 지하실의 문을 이제야 발견하고는, 맹수와 마주친 듯 얼어붙었다가, 마른침 한 번 삼키고 벽난로의 비밀 수납장에서 권총을 챙겨 신중한 걸음으로 층계를 내려갔다.
「대통령」처럼 거대한 방해요소가 없는 이곳에서, 내 회로역장은 잠시나마 저택 전체를 삼키고도 남을 반경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범위 내에선 원격으로 마법을 구현할 수도 있다. 나는 회로에 술식 연산을 올릴 준비를 했다.
“하나 더 드시겠습니까?”
“음.”
경태가 내미는 상자에서 이번엔 초콜릿 아이스드를 고른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한 입 먹고 있으려니 굼벵이처럼 움직이던 캘빈이 마침내 냉장고 앞에 선다. 내가 붙여놓은 쪽지를 읽고 눈이 커지는 놈. 재빠른 판단으로 몸을 피하려 하나-
내 주문이 신관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게 먼저였다.
틱.
쿠구구구궁!
강력한 폭음에 지축이 흔들린다. 폭압과 박살난 냉장고 문짝이 캘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충격을 받은 천장 일부가 무너져 즉석에서 잿빛의 무덤을 만들어준다. 잔해를 분석할 경찰은 결함이 있는 신관이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결론내릴 것이다.
경태가 묻는다.
“끝났습니까?”
“잠깐.”
회로에 술식 하나를 더 돌린다. 아주 작고 간단한 발화 주문이었다. 표적은 내가 남긴 쪽지의 파편들. 눈에 띄는 큰 조각 몇 개만 제거해줘도 증거인멸로는 충분하다. 필적감정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됐다. 돌아가자.”
내 말에 운전석의 부하가 엑셀을 밟는다. 차는 속도를 높여 소란스러워진 부촌을 빠져나간다. 그러나 퇴근 시간대의 도로에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으므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시원스럽지는 못했다.
나는 그동안 세 개의 도넛을 더 집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