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0화 (20/561)

#5. 짐승사냥 (8)

어젯밤 나는 호텔 객실에서 권총에 열한 발의 실탄을 채웠다. 탄창에 열 발, 약실에 한 발. 그리고 지금, 날이 바뀐 오후 1시 20분, 내 권총엔 단 한 발의 실탄도 남아있지 않았다.

첫 번째 실탄은 캐런 윌리엄스가 사용했다. 아홉 발은 귀를 쳐내는 고문에 써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발은 프레이저에게 베푸는 나의 자비였다.

뚜욱- 뚝-

의자에 묶인 백돼지 두목은 앞으로 기울어진 채 한쪽 눈에서 묽은 피눈물을 쏟고 있었다. 이 금수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하기 위하여, 나는 머리통을 붙잡고 세심하게 각도를 조절해 지근거리에서 방아쇠를 격발했다. 눈을 깨고 들어간 소구경 아음속탄은 머리뼈에 갇혀 여러 각으로 튕겨졌다. 탄자의 힘이 강했으면 뒤통수로 뚫고 나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 제이의 심부름꾼을 향해 돌아서며 탄창을 교환했다.

우우우웁!

여분의 의자에 새롭게 묶인 심부름꾼이 의자를 덜컹거리며 발광한다. 탁, 하는 도축을 목격한 두 눈엔 핏발이 잔뜩 서있었다. 1만 달러의 올가미에 쉽게도 걸려든 사냥감. 마음에 안 드는 건 아침에 연락을 받고 오후가 되어서야 찾아온 느긋함뿐이었다.

나는 두려워하는 놈을 바라보며 권총을 갈무리했다.

“욕심 부리지 마라. 너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그러곤 경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온 것 있나?”

경태가 한 손으로 엄지를 세워 보인다.

“제이라는 작자의 전화번호랑 본명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예. 페이스북 페이지도 같이 말이죠. 포스트마다 열심히 좋아요를 눌러댔더라고요.”

제이의 심부름꾼은 두 개의 전화를 휴대하고 있었다. 하나는 선불 폰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으로 계약한 단말기다. 이런 자리에 올 땐 뒤쪽을 두고 오는 게 안전하지만, 이놈은 둘 다 들고 와버렸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싶었을 것이다.

“본명이 뭐냐.”

“캘빈 케네스 브라임로우입니다.”

“주소는?”

“본사에서 원격으로 내비게이션 메모리를 파보고 있습니다만, 다른 단서들과 일일이 대조해보기보다는 자백제를 쓰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써라.”

“옙.”

사실관계가 복잡한 진술이라면 모를까, 주소처럼 단순한 정보의 확인 정도는 자백제로도 믿을 만한 진술이 나온다. 양 조절을 잘못해서 상대를 재우거나, 죽이거나, 거짓말을 할 여력을 남기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이 투여량 조절은 전문가조차 가끔씩 실수를 할 만큼 까다로운 것이다. 내 부하들은 그나마 사람을 죽여 가며 실습해서 실수를 덜 하는 편.

‘어차피 죽일 놈들을 안락사로 처리해준 셈이지.’

부하 하나가 심부름꾼의 정맥에 신중히 스코폴라민 혼합물을 주사했다. 효과는 채 열을 세기도 전에 나타난다. 모든 자백제는 기본적으로 마취제이기 때문. 애당초 미 정부에 자백제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였다. 마취 상태의 산모들이 자신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더라고. 이거 잘만 쓰면 법정에서 위증을 밝히는 데도 유용하지 않겠느냐고. 당연하게도 미국은 그것을 위증을 밝히는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마취 효과가 나타나자 심부름꾼의 움직임을 억누르고 있던 다른 두 부하가 손을 떼고 물러났다. 약에 취한 놈의 게슴츠레한 눈이 허공을 헤맨다. 경태는 심부름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어이, 이봐.”

“……응.”

“캘빈 브라임로우, 알지?”

“……어.”

“그 친구 어디에 살아?”

“……롬바드……스트리트.”

“그게 어딘데?”

“러시안 힐…….”

경태가 검증 차 여러 번 되물었으나, 심부름꾼은 정확한 번지수까지 외우고 있진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탐색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경태는 본사의 현장지원팀에게 문자를 넣어주고, 기왕 자백제를 쓴 김에 다른 질문들을 추가로 던졌다. 평소엔 무슨 일을 하는지, 대인관계와 가족구성은 어떠한지, 생활패턴은 또 어떤지 등.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딩동.”

경태가 제 핸드폰을 보며 입으로 내는 소리.

“주소 확인됐습니다. 950 롬바드 스트리트, 샌프란시스코라는데요?”

“공유해라.”

“옛 썰.”

내 단말기로 전달된 주소와 사진들을 보니 도심 한복판에선 보기 드문 규모의 저택이었다. 집만 팔아도 천만장자일 인간이 뭐가 아쉬워 백인국가 건설처럼 쓸 데 없는 이상에 투신하나 싶을 정도지만, 뭐, 어떤 길이라도 갈 수 있어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는 놈들도 많으니까.

사진을 보고 있는데 영업용 단말기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보니 하얀 추장이었다. 내 부하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현장지원팀이 편집해서 보낸 게 세 시간쯤 전인데, 이제야 확인한 모양이다.

‘하던 일 하느라 바빴거나, 드는 생각이 많았거나.’

실행범으로 「백색근위대」를 지목한 시점에서 최소한 프레이저의 낯짝쯤은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 내가 보낸 영상이 가짜가 아니라는 건 보자마자 알았을 것이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돼지들을 등지고 전화를 받은 난, 인사를 생략하고 질문부터 던졌다.

“추장. 영상은 잘 보셨습니까?”

「……결과를 이토록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엄밀하게는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지요. 목숨들이 여전히 붙어있고, 막후의 인물은 조금 전 소재를 확인해서 찾아가려던 참이었으니.”

「내 말은, 어쨌든, 속도가 놀랍다는 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맞소. 설마 당신께서 직접 나서신 거요?」

“우리 회사는 그렇지요. 정말 중요한 일들은 내가 손수 처리하곤 합니다.”

「…….」

“추장님 당신에 대한 내 성의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군요.”

「그건…… 고맙소. 후견인까진 기대하지 않았건만.」

이 영감이 아무래도 진심으로 놀란 것 같다. 하기야 카지노에서 사람을 담글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었겠는가. 담가도 개인 단위로 담그고, 전투를 치러도 방어전이 고작이었겠지. 게다가 암흑경제 전반이 다 그렇듯이, 사람을 사냥하는 분야에서도 아마추어와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많은지라.

‘그러고 보면 갑을병정을 넘어서까지 하청을 준 등신들도 있었지.’

이는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다른 나라의 청부업계라고 딱히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암흑경제란 결국 공권력의 감시를 회피하는 완전자유시장이며, 경력을 검증하거나 신용을 보증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므로. 대형 범죄조직들이 나름대로 시장질서 비슷한 걸 만들어보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뢰가 너무 많다보니 지들도 밟거든.

“방침을 정해주시죠.”

「방침이라니?」

“이것들을 전부 다 살려둔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 많은 수를 다 심문할 것도 아닌데.”

「…….」

“계약이 성립한 이상, 나와 내 회사는 당신이 쥔 칼입니다. 칼을 어떻게 쓸지는 쥔 사람의 마음이지요. 우리는 날이 무딘 칼일 수도, 예리한 칼일 수도 있습니다.”

무딘 칼로 자르는 재료는 당연히 엉망진창이 된다.

추장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되도록 고통스럽게 부탁드리겠소.」

“알겠습니다. 결과는 아까처럼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후에 다시 통화합시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전화를 끊었다.

높은 창문들로부터 광선 같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고 내부엔 은은한 지린내가 감돌고 있었다. 너무 오래 묶여있어서 바지에 실례를 한 놈들이 원인이다. 무서워서 방광이 오그라든 놈들도 있겠지만. 이래서 도축은 빠를수록 좋은 건데.

경태가 묻는다.

“추장이 뭐랍니까?”

“예상대로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 뻔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묻지 않고 진행할 수는 없었다. 날 쾌락살인마 내지 이중인격 미치광이로 보게 되면 곤란하니까. 끔찍한 결과는 확실하게 추장 스스로가 원한 것이어야 한다. 난 경태와 부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진행해라.”

“예.”

되도록 고통스럽게, 라는 주문을 받긴 했으나 시간을 길게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가장 효과적인 건 역시 전기고문이겠지만…….’

그건 밀그램이 제 실험에서 거짓으로 연출했던 것처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품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리며, 무엇보다 시각적인 만족도가 낮다. 비명 좀 지르고 살 좀 타고 연기 좀 피어오르는 걸로 끝.

마찬가지로 독극물도 시각적인 자극이 약하다. 차라리 전기톱으로 갈아버리는 편이 고객만족도 향상에 유익할 것이었다.

위이이이잉-!

밀폐 보호복과 페이스실드를 착용한 부하들이 원형 전기톱에 시동을 걸었다. 다른 부하들은 테이블을 세팅했다. 재갈에 막힌 돼지들의 아우성이 모터 소리에 다시 파묻힌다. 나는 테이블에 고정된 첫 번째 돼지가 산 채로 해체되는 광경을 큰 감흥 없이 지켜보았다. 겉보기엔 우악스러워도 기술적으로는 섬세한 톱질. 소음은 쇠가 뼈를 가를 때 가장 높아졌다. 대상이 사람이고 살아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일반적인 육가공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난 첫 번째 해체까지만 보고서 창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번을 서는 부하들은 복면을 벗은 채 무기를 감추고 있었다. 아무리 후미진 골목이어도 벌건 대낮에 강도 복장을 하고 있을 순 없는 까닭이다.

도로 건너편에선 우리가 끌고 온 차들이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인근 거주지에서 누구 하나 창문을 열고 항의하는 이가 없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면 일터로 나갔을 시간이거니와, 이 창고를 주거지로 쓰는 놈들의 업보이기도 할 것이었다.

이 동네의 주거환경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치안이 나쁜 도시에서 특히 더 세가 싼 집은 싼 이유가 있는 법.

창고 앞 몇 개의 드럼통엔 불이 지펴져 있었다. 평소엔 갱들이 모여 더러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손을 녹였을 불이고, 지금은 태워야 할 것들을 태우고자 경계를 서는 녀석들이 피워놓은 불이다. 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매캐한 연기 속으로 던져 넣었다.

사람을 해체하는 톱질은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조각난 시체들은 트럭 두 대로 실어온 수산화나트륨 탱크에 던져졌고, 핏물은 바닥에 깔았던 비닐을 기울여 배수구로 흘려보냈다.

“다들 수고했다.”

난 현장을 정리하고 나온 부하들을 격려해주었다.

“이 일을 마치거든 교대로 하루씩 자유 시간을 주마.”

이제 「제이」, 본명 캘빈 브라임로우를 처리하고, 내일 새벽쯤 다시 이 창고로 애들을 보내 수산화나트륨으로 녹인 시체를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일이 남았다. 그러고서 녹지 않은 뼈만 모아 잘게 부순 뒤 바다에 던져버리면 정말로 끝.

과염소산 같은 걸 쓰면 더 빠르겠는데, 수산화나트륨 쪽이 구하기가 쉬운지라.

차에 몸을 싣자 옆자리를 차지한 경태가 물었다.

“캐런 윌리엄스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 없을까요? 형님의 맨얼굴까지 봤는데 말입니다.”

“됐다.”

난 경태의 우려를 부정했다.

“설령 그 여자가 갈등 끝에 돈을 외면하기로 한들, 어렵게 결심을 내릴 즈음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야 그렇겠지만요.”

인간의 기억은 쉽게 오염된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몽타주라 할 수 있는 유나바머의 몽타주조차 실은 전혀 무관한 제3자의 얼굴이었다. 목격자가 유나바머와 마주친 건 사실이나, 그 뒤에 마주친 또 다른 인물의 얼굴이 기억에 덧씌워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여자와 나 사이엔 인종의 장벽이 있지.’

다른 인종을 보면 웬만해선 다 비슷해 보인다고들 하지 않는가. 오늘 이후 캐런은 나와 비슷한 아시아계를 볼 때마다 흠칫거리며 놀랄 것이고, 그렇게 보는 얼굴들은 매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의 인상에 반영될 터였다. 그러한 왜곡엔 감정상태 및 다른 인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영향이 짙게 들어간다. 연령과 신장 정보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

현대 수사학에서 몽타주의 신뢰도가 ‘없는 것보단 낫다’ 수준인 이유였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한 나는 그래도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아니. 이삼 일쯤은 미행을 붙여둘까.”

경태의 안색이 밝아진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카지노 코인을 받고서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지켜보면 확실해질 것이다. 투손으로 직행한다면 더 볼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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