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8화 (18/561)

#5. 짐승사냥 (6)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은 통제에 따라 일렬로 걷고 일렬로 죽었다. 그들 대부분은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은커녕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유태인이 특별히 나약한 민족이라서? 아니다. 다른 모든 학살들도 흡사한 장면들을 품고 있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나라면 어차피 죽을 거 발악 한 번 해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 있는 돼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서 동료가 죽을 때조차 숨죽이고 눈알만 굴리지 않았던가. 누구 하나라도 재갈 물고 절규하거나 분노로 몸을 뒤틀었더라면 난 「백색근위대」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했을 거다. 개념은 없을지언정 동료애와 기개는 있는 놈들이라고.

“뭔가 알아낸 게 있나?”

내가 캐런 윌리엄스를 구슬리는 사이에 부하들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진 않았을 거다. 조용히 할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내 물음에 경태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것들 핸드폰을 좀 뒤져봤습니다.”

“결과는?”

“우선 저놈이-”

경태의 시선이 간부를 가리켰다.

“근위대 운운하는 놈들의 꼭대기입니다.”

“그건 운이 좋군.”

프레이저라 했던가? 단순 간부가 아니었다니.

‘우두머리나 되는 게 겁이 너무 많은데.’

앞서 경태는 이 창고가 활동거점인 동시에 집 없는 졸개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라고 보고한 바 있다. 즉 이 프레이저라는 보스 입장에서, 자신 역시 이 창고에 머문다면 24시간 부하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금고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그밖에 다른 건?”

“밖에 있는 인원도 파악했습니다. 의외로 체계적인 놈들이더군요.”

“그래?”

“예. 비번으로 집에서 쉬는 인원이 일곱, 운반과 수금을 나간 게 열둘, 주요 사업장 경비 및 구역 순찰이 다시 열둘이었습니다. 지시를 보니 4인 1조가 기본인가 봅니다.”

“차례차례 잘라먹기 편한 숫자들이구나.”

“왜 아니겠습니까.”

“배후는?”

추장은 이들에게 지원자 내지 배후가 있을 거라 추측했었다. 경태가 대답했다.

“메신저 대화 및 통화기록들이 남아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불충분합니다. 역시 심문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그 윌리엄스라는 여자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했다. 나도 한번 보자.”

“핸드폰 말씀이십니까?”

끄덕.

손가락을 까딱이자 경태가 대장 놈의 핸드폰을 공손하게 건네주었다. 보안은 이미 다 해제된 상태였다. 홍채고 지문이고 본인을 붙잡아둔 마당에.

‘제이(Jay)라.’

막후의 인물이 텔레그램 비밀대화에서 쓰는 가명. 나는 보자마자 로버트 제이 매튜스를 떠올렸다. 지금은 사라진 네오나치 조직, 「침묵을 지키는 형제단」을 이끌었던 지도자. 하얀 추장은 여기 근위대 운운하는 스킨헤드 돼지들이 바로 그 「침묵을 지키는 형제단」의 계승을 주장한다고 증언했었고, 그래서 조사를 해보다가 접한 이름이다.

70명이 넘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죽었으니 이 머저리들의 눈엔 얼마나 장렬하고 멋있어 보였겠는가.

‘정작 매튜스 본인은 마약상들과 적대관계였는데 말이지.’

매튜스는 확신범이었다. 신념이 있는 범죄자라 이 말이다. 그 신념이라는 게 유태 시온주의자들의 세계정부 음모를 진지하게 믿는 수준이긴 했지만, 어쨌든 코카인 팔아 활동하는 놈들의 배후가 그 미들네임을 빌려 쓰는 꼴은 꽤 우습게 느껴졌다.

뭐…….

남아있는 대화를 보면 이 제이라는 놈도 저 나름의 신념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일주일분 이외엔 다 지워져서 사상의 전모나 정체를 확인하긴 어려워도.

볼 것을 다 본 나는 핸드폰을 경태에게 돌려주었다. 정보는 별로 없으나, 밖에 있는 놈들에게 거짓 지시를 내리자면 필요한 물건이다.

“심문은 내가 하고 있으마. 나머지를 잡아오도록.”

“예.”

역할분담이 이루어진 뒤, 나는 창고 내부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집회장소로도 쓰던 곳인지 접어놓은 의자가 많다. 사람을 공구리치는 데 썼을 연장과 시멘트 포대들도 보이고. 벽에는 나치와 관련된 장식물들이 난잡하게 걸려있었다. 싸구려 레플리카들이다.

“재갈을 풀어줘라.”

내 턱짓에 부하 하나가 칼을 들고 다가와 두목 놈의 재갈을 끊는다. 워낙 꽉 묶어두었으므로, 침에 불은 좌우 입가가 광대 화장처럼 부르튼 상태였다.

“다, 당신 누구야? 대체 뭐 땜에 이러는 건데?”

숨 가쁘게 묻는 말에 나는 뺨을 갈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번에도 가죽 터지는 소리가 날 정도의 힘이다. 난 방수 코트에 튄 핏물을 툭툭 쳐내며 무심히 말했다.

“말이 짧다.”

“…….”

번민하던 프레이저가 침을 삼키고 이번엔 경칭을 쓴다.

“선생님……. 선생님께선 누구십니까?”

난 다시 뺨을 갈겼다.

“질문은 내가 하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씹…….”

퍼억! 또 한 차례 꺾이는 머리통. 이번엔 코피까지 터졌다. 깔린 비닐에 후두둑 뿌려지는 핏방울들. 아파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욕설이었겠지만, 내가 그걸 이해해줘야 하나? 나는 홱 돌아간 머리통을 농구공처럼 붙잡아 원위치로 되돌렸다.

“정신 못 차리지?”

어지간히 아팠는지 답지 않게 눈물을 글썽거리는 두목 녀석. 나는 어김없이 손을 휘둘렀다. 퍽!

“눈물 보이지 마라. 역겹다.”

맞은 자리가 선명하게 변색된 프레이저 놈이 나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제발…… 그만…….”

“지금 나에게 지시를 하는 거냐?”

“아니, 아닙니다!”

치켜들었던 손을 서서히 내리자 두목 녀석은 눈에 띄게 안도한다. 광대뼈에 금이 가서 얼굴이 비정형으로 빠르게 부어오르는 중. 고막도 한쪽이 찢어졌다. 상판 상태만으로는 케이지에서 흠씬 맞고 내려온 격투기 선수처럼 보일 지경. 눈물이 비치는 건 여전하지만 일단은 넘어간다. 애초에 그냥 팰 구실이 필요했을 뿐인지라.

“이름.”

“예?”

예? 는 무슨. 나는 두목 놈의 머리를 움켜쥐고, 부어오른 중심, 금이 간 광대뼈를 엄지로 꾸욱 눌러주었다. 퍼렇게 부푼 살에 손가락이 푹 파묻히며 대번에 우드득 소리가 난다.

“끄아아아아악!”

“이름.”

이름은 이미 알고 있으나, 심문은 원래 쉬운 질문부터 시작하는 거다. ‘질문에 대답했다’라는 사실을 만들어놓고 들어가는 것.

“프레이저! 흐윽! 프레이저 듀크! 프레이저 듀끜…….”

난 절규처럼 외치는 이름을 듣고서 손을 떼었다. 마력강화가 없어도 강한 악력이라, 피멍 위로 선명한 손자국이 남는다. 골이 파인 피부에선 엷게 피가 배어났다.

“좋아. 프레이저 듀크.”

나는 프레이저를 향해 몸을 슬쩍 기울였다. 내 얼굴에 그늘이 지게끔.

“고해성사의 시간이다. 내가 너를 왜 찾아왔을까?”

“예?”

학습능력이 없는 놈이군. 상체를 되돌린 난 워커 뒷굽으로 프레이저의 무릎을 힘껏 찍어 차버렸다. 대각선으로 찍은 발굽 너머로부터 으직 하는 느낌이 전해지고, 넓은 창고엔 비명이 메아리친다. 의자 모서리와 전투화 사이에 낀 무릎은 멀쩡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조금 비껴 차지 않았다면 십자인대는 물론이고 슬개골까지 망가져버렸을 것이다.

‘한 번에 망가트려도 곤란하니까 말이지.’

필요한 건 육체와 정신을 자근자근 부수는 다채로운 폭력이었다. 뼈와 인대를 봐가면서 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야가 이런 면에서도 도움을 준다. 공포를 자아내는 무자비한 폭력과, 심문 대상을 살려두어야 하는 입장 사이의 줄타기. 지속 가능한 고통.

“다시 묻지. 내가 너를 왜 찾아왔을까?”

눈치를 보던 프레이저가 아픔 반 두려움 반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 혹시…… 14K에서 오셨습니까? 저희가 구역을 침범해서?”

“틀렸어.”

콱! 거듭 무릎을 찍힌 프레이저는 고통에 겨워 몸을 비틀었다. 후방 십자인대의 상태가 아슬아슬하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완전한 회복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여길 살아서 나갔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프레이저가 말한 14K는 삼합회의 화교계 분파였다. 정확히는 다수의 분파들로 구성된 느슨한 협력체.

‘이것들, 대책도 없이 차이나타운에서 사람을 죽였나?’

이놈은 나와 캐런의 대화를 듣고서부터 제 조직의 행보를 필사적으로 되짚어보고 있었을 것이다. 주어진 단서는 둘. 내 의뢰인이 노인이며, 내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 왔다는 것. 추가로 내가 동양계라는 것도 감안했을 터. 그러다 보니 차이나타운에서도 짚이는 게 있었던가 보다.

신생 조직 주제에 무슨 깡으로 거기서 피를 봤을까. 어지간한 조직들도 꽌시(關系)의 그물을 건드릴까 싶어 기피하는 마당에. 나는 심문을 계속했다.

“어서 맞춰보란 말이다. 내가 널 왜 찾아왔을지.”

“…….”

“틀린 답을 말하거나, 지금처럼 대답이 늦을 경우엔-”

프레이저의 입에서 악 소리가 터진다. 으지직, 뚝. 이번에야말로 놈의 십자인대와 슬개근을 끊고 슬개골마저 손상시킨 나는, 그러고도 워커 굽을 지긋이 비벼주고서야 비로소 발을 떼었다.

“이렇게 되는 거지.”

자백제를 먼저 쓰지 않는 건, 자백제로 듣는 진술에 결함이 많은 까닭이다. 서로 다른 사건들이 뒤섞이거나 전후관계가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비합리적인 괴물을 연기하는 편이 나았다.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할 틈을 주지 않으며 몰아붙이는 심문. 자백제는 그 뒤에 검증 용도로 써도 충분하다. 필요하다면 말이지만.

프레이저의 입에서 방언이 터져 나왔다.

수시로 두들겨 맞으며, 폭력의 은사(恩賜)를 받은 프레이저는 개신교도가 방언(方言) 터트리듯 저와 제 조직이 저지른 살인행각들을 마구잡이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고통 이상의 공포에 떠밀려서. 제 몸이 영구적으로 망가진다는 공포는 어지간한 고통보다도 강렬한 것일 터였다. 특히나 이놈처럼 심지 약한 유형에게는.

‘제이 그놈, 확신범이 맞군. 높은 확률로 「미국전선」의 내부인물이겠고.’

살인의 분포와 구성은 살인자의 성향을 보여준다. 이 경우엔 조직과 배후조종자의 서로 다른 지향이 섞여있었다. 평범한 강도 살인과 조직분쟁, 그리고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사냥들.

‘인디언 사냥’도 그 일환이었다. 정확하게는 이념적인 교육훈련의 일환이라고 해야겠다. 부하들을 사상적으로 고취시키고 소속감을 배양하는 동시에 조직적인 살인을 경험토록 하는 것. 원주민들은 그런 시시한 이유들로 죽어나갔다.

시시하지 않은 죽음이 흔하겠느냐마는.

무수히 쏟아진 키워드들을 토대로 나는 심문의 범위를 좁혀갔다. 진술을 들어보건대 제이는 대리인을 내세워 「백색근위대」의 창설을 도와주었고, 사상적인 기반과 법적인 비호를 제공해주었고, 그 대가로 상납금을 받거나 특정인의 실종처리를 의뢰하기도 했다.

이 등신들은 그가 내세운 「백인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에 푹 빠져있었다. 이것들에게 있어서 「백인국가」는 유토피아의 동의어였다.

여기까지 듣고 한숨 돌린 난, 손수건으로 장갑에 묻은 피를 닦으며 물었다.

“제이에 대해 좀 더 말해봐. 그건 뭐하는 놈이냐? 진짜 이름은 뭐고? 어디에 살지?”

단시간에 피투성이가 된 프레이저는 하도 처맞아 심리적으로 완전히 눌려버린 상태였다. 말이 늦어질 때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병신이 되어간다는 걸 학습했기에, 내가 슬쩍 눈을 찌푸리자마자 기겁을 해서 소리친다.

“몰라요! 모릅니다! 진짜로 몰라요! 얼굴도 본 적 없습니다! 만날 땐 항상 똘마니만 내보냈다구요! 연락도 그쪽이 먼저 하고요! 살려주세요! 때리지 마세요!”

“똘마니?”

“예, 예! 똘마니요!”

헉헉대는 호흡에 말이 끊어진다. 갈빗대가 여럿 부러져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난 권총을 뽑아 귓불을 날려버렸다. 외마디 비명 한 번 지르고 꺽꺽대며 우는 프레이저를 보며, 나는 계속 방아쇠를 당겨 놈의 남은 귀를 질금질금 줄여주었다. 고막이 진즉에 찢어져있던 쪽이다.

“울지만 말고 말을 해라, 말을. 그 똘마니는 주로 어디서 만났는지, 한 놈인지 아니면 여러 놈인지, 요구사항은 뭐였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억양은 어떻고 생김새는 또 어떤지, 접선은 어떻게 하는지……”

탁, 탁, 탁! 조용한 총성 속에 연달아 튀는 탄피들과 소음기에서 새는 초연. 한쪽 귀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경험에 프레이저는 울음 섞인 절규를 내뱉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정도로 안 죽는다.”

멀게는 고흐가 제 귀를 잘랐고 가깝게는 러시아의 반체제 예술가가 제 귀를 잘랐다. 후자, 표트르 파블렌스키는 귓불만 잘라낸 거지만, 어쨌든 경찰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도 과다출혈 같은 문제는 없었다.

뭐, 이놈은 비아그라를 처먹어놔서 상대적으로 출혈량이 많기는 하다.

바깥이 잠시 시끄럽다 싶더니 새로운 돼지 네 마리가 잡혀 들어왔다. 끌려오는 놈들은 실내에 팽배한 폭력과 공포의 냄새를 맡고 얼어붙었다.

절망이 짙어진 프레이저가 황급히 외친다.

“불러낼 수 있습니다! 제가 불러내보겠습니다!”

“그 똘마니를?”

“예!”

“어떻게?”

“예?”

“어떻게, 무슨 구실로 불러낼 거냐고 물었다.”

“그게, 저기…….”

“생각도 안 하고 막 내뱉었나? 내가 아직도 만만해 보이나 보지?”

“절대로 아닙니다!”

“아니면 생각해라. 생각을 해서 나를 납득시켜봐라. 쓸모없는 대가리에 구멍을 내기 전에.”

프레이저는 숨을 거칠게 쉬며 제이의 대리인을 낚을 구실에 골몰했다. 너무 몰아붙여도 곤란하니, 나는 이어질 폭력을 조금 유예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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